37화
<올해도 GOTY KOREA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길드를 가리는 GOTY 그 한국 예선 GOTY KOREA!>
<올해는 어떠한 길드가 또! 올해는 어떠한 헌터가 최고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수 많은 길드들이 GOTY KOREA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의 GOTY KOREA의 주인공은 어느 길드가 될까요?>
<많은 기대가 됩니다.>
뉴스에서는 GOTY KOREA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서준은 재배지에서의 시간 괴리 때문에 알지 못하던 대회였으나 현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이 알만큼 유명한 대회였다.
GOTY 즉, Guild of the Year 올해의 길드를 뽑는 대회였고 GOTY KOREA는 그 대회의 한국 예선이었다.
일전에 올림픽이나 월드컵이 하던 역할을 이제는 GOTY가 대체한 것이다.
그리고 물론 GOTY KOREA는 한국 예선이라지만 한국 대표 길드를 뽑는 중요한 대회였고 당연히 그 인기도 엄청났다.
축구를 좋아하던 서준은 어느덧 없어진 월드컵을 대체한 GOTY KOREA의 소개 영상을 보며 씁쓸해하고 있었다.
‘월드컵…. 꼭 직관해보고 싶었는데.’
다음 월드컵때는 어느나라에서 개최를 하든 꼭 찾아가서 직관하려 했던 서준이었지만 타임 워프 후 월드컵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리고 그 자리를 GOTY가 대신 차지하고 있었다. 타임 워프 후 달라진 세상에 대해 조사하던 중 가장 놀랐던 것은 헌터들의 세상이 된 것도 징병제가 폐지된 것도 아닌 바로 이것이었다.
“너도 아쉽지 어흥아?”
-어흥! 어흥!
어흥이는 서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준의 무릎에 누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며 머리를 비비고 있었다.
“아이구, 어흥이 형이랑 놀고 싶었어?”
-어흥! 어흥!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어흥이가 귀여운 건 귀여운 거였다. 어흥이가 이렇게 애교를 부릴 때면 서준의 모든 근심 걱정은 싹 날아가 버렸다.
어쩌면 머리 좋은 어흥이가 이 사실을 알고 애교를 부리는 걸지도…….
서준이 어흥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어흥이는 잠깐 눈을 감고 가만히 있다가 배를 까고 누워 서준의 손을 잡아채며 놀았다.
아직은 아기인가보다.
-어흥! 어흥!
서준이 어흥이의 손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어흥이의 배를 긁어주자 어흥이는 기분이 좋은지 골골대기 시작했다.
-띠리링, 띠리링,
그러던 와중 서준의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시간 괴리로 인간관계가 끊긴 서준에게 전화를 하는 사람은 윤희주 아니면 김소현 말고는 없었다.
<백 선생님, 윤희주입니다. 통화 가능하신가요?>
그리고 역시나 윤희주였다.
“네,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저희 길드가 GOTY 참가하는 건 알고 계시죠?>
“아뇨, 지금 알았어요.”
<하하, 매년 참가했는데…. 모르셨나요?>
“그런데 별로 관심이 없어서요.”
차마 시간 괴리 때문에 과거에서 워프해왔다고 말을 하지 못한 서준은 대충 둘러댔다.
월드컵 대신 GOTY라는 대회가 인기라는 건 알아냈어도 그 참가팀이 무엇인지 일일이 알아낼 정신은 없었다.
<정말요? GOTY에 관심 없는 남자는 처음 봐요! 남자들은 술자리만 가면 GOTY 이야기로 기본 세 시간은 떠들던데…….>
“그런가요?”
<백 선생님은 볼 때마다 헷갈리네요. 어떨 때 보면 무척이나 똑똑하신 분 같은데 어떨 때 보면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르고…… GOTY에 관심 없는 것도 그렇고, 참 특이하신 분 같아요.>
하지만 GOTY는 월드컵을 대체할 만큼 큰 경기이자 축제였다. 아니 오히려 월드컵 이상의 위상을 가진 인기 스포츠 대회였다.
초인들이 엄청난 신체 능력으로 엄청난 화력을 뿜어내는 이 시대에는 보통의 평범한 운동선수가 하는 스포츠 경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고전 스포츠들을 살리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선수들의 각성여부를 철저히 조사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흥미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늘을 날고 손에서 불덩이가 튀어나가고 입에서 광선을 뿜어내는 세상에 그 누가 평범한 스포츠를 즐겨 보겠는가?
결국 인기가 식은 일반 스포츠들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갔고, 이제 남은 거라곤 GOTY 같은 초인들의 경기뿐이었다.
그리고 초인들의 경기 중 가장 큰 대회가 GOTY였으니 관심이 없다고 말한 서준이 특이해 보이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GOTY는 갑자기 왜요?”
서준은 윤희주가 이상한 낌새를 채기 전에 말을 돌리며 물었다.
물론 윤희주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지만 아직 서준의 능력은 밝힐 단계가 아니다. 서준은 준비가 덜 됐다.
<아, 예. 그 혹시 GOTY에 저희 길드 소속으로 참여해 주실 수 있나요?>
“네? 갑자기 그건 왜요?”
서준은 무릎 위에 앉아있는 어흥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창천 길드씩이나 되는 길드에서 제가 굳이 필요한 이유가 있나요?”
창천 길드는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거대 길드 중 하나였고 당연히도 수많은 인재들이 소속되어있었다.
전투면 전투, 연구면 연구 모자란 부분 없이 각계의 전문가들이 소속되어있었다.
그러한 창천 길드에서 굳이 서준이 필요할 이유는 없었다.
<사실, 백 선생님의 호랑이들 때문입니다.>
“호랑이요?”
그리고 역시나 윤희주의 목적은 서준이 아니었다. 그가 데리고 있는 호랑이들이었다.
<저희 길드는 백 선생님의 호랑이들이 사실상 영수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백 선생님께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계셨을 거예요. 백 선생님의 호랑이들이 평범하지는 않다는 걸.>
“네, 특별한 아이들이니까요.”
-어흥!
서준은 노곤하게 누워있는 어흥이를 바라보며 한번 쓰다듬고 답했다.
서준의 호랑이들은 재배지에서 꿀닭과 뿔토끼를 사냥을 하며 능력을 각성한 듯싶었다.
서준 역시 그 사실을 파악한 후 꿀닭을 먹으며 새로운 능력을 각성하는 것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서준과 호랑이들은 재배지의 동물들을 잡아서 식사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 변화는 매우 천천히 이뤄지기에 본인들은 체감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매일매일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외부에서 지켜본 윤희주에게는 매우 유의미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영수란 것이 엄청나게 특별한 거랍니다. 일단 발견하는 것도 힘든데 길들이는 건 더 힘들어요.>
“그런가요?”
<네, 그래서 백 선생님이 더 대단하신 겁니다. 다른 종도 아닌 호랑이잖아요? 그것도 세 마리나.>
윤희주는 일부러 서준의 기분이 좋으라고 한껏 치켜세워주며 말했다.
<그리고 GOTY에선 영수의 존재 여부로 승패가 갈린 적도 있을 만큼 영수의 능력이 필요한 경기가 많습니다. 뭐 꼭 GOTY가 아니더라도 길드 구성에 영수가 들어온다면… 엄청난 이점이 많죠.>
“그거랑 제가 대회에 참가하는 게 무슨 상관이죠?”
<사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저희 길드에는……. 테이머가 없습니다.>
창천 길드는 대한민국에서 손꼽는 길드였지만, 영수를 기르고 있는 테이머를 보유하지는 못했다.
아니, 창천 길드뿐만이 아니라 테이머를 데리고 있는 길드는 매우 극소수였다. 우연히도 테이머를 손에 넣은 길드도 몇 있지만 그 영수의 수준이 너무 떨어져 써먹지 못하는 길드도 많았다.
그만큼 훌륭한 영수는 보기 힘든 존재였다.
창천 길드에서도 토끼 영수를 부리는 테이머가 있었다. 그러나 결사회의 습격으로 전 길드장이 죽었을 때 그 영수 역시 같이 죽고 말았다. 그 아이는 전 길드장이 기르던 토끼였다.
“흐음…. 그런가요? 의외네요?”
<부탁드립니다.>
서준은 호랑이들과 눈을 한 번씩 마주치며 고민했다. 대회에서 필요한 건 어차피 서준의 능력이 아닌 호랑이들의 능력이었고, 당연히 대회에 나가서 고생을 하는 건 호랑이들이었다.
“솔직히 조금 부담이 되는데요?”
<호랑이 올림픽에 참여하셨던 것처럼 그냥 호랑이들 추억 쌓는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힘든 건 저희 길드원들이 다 할거에요. 백 선생님이랑 호랑이들은 탐색에만 도움을 좀 주셨으면 해요.>
GOTY에서 호랑이들이 중요한 이유는 탐지능력에 있었다.
기본적으로 맹수들은 인간보다 월등히 좋은 후각과 청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영수화 하면서 그 능력은 더욱더 발달했다.
그러한 영수를 데리고 있는 길드와 그렇지 않은 길드는 탐지능력에서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창천 길드가 서준을 간절히 원하는 이유였다.
“흐음…. 좋아요.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요.”
<조건이요? 말씀하세요.>
이왕 부탁을 들어줄 거 받을 수 있는 건 받는 게 맞았다.
“빚을 좀 깎아주시죠.”
<네? 빚이요? 얼마나……. 깎아드릴까요?>
언제까지고 빚쟁이로 살 수는 없었다.
서준의 제안에 윤희주는 당황한 듯 보였으나 급한 건 윤희주였고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화끈하게 반만 깎아주세요.”
<네? 반이요? 그건 너무 많아요!>
서준은 일단 크게 반을 질렀다. 안 그래도 땅값이 비싼 지역에 건물을 몇 채나 사다 주었다. 그 금액은 결코 적지 않았다.
윤희주에게도 매우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단지 서준을 창천 길드에 묶어놓기 위해 부담을 짊어졌을 뿐이다.
<으음…….>
윤희주는 깊게 신음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금액이 크다 보니 쉽게 결정하기는 힘든 모양이다.
‘어차피 다 깎아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해.’
서준 역시도 다 깎아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여행지에서 상인들이 일단 열 배의 가격을 질러놓고 협상을 하듯 서준도 일단 크게 질러본 거뿐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십 퍼센트만 깎아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흥! 어흥!
어흥이도 서준이 나쁘다는 걸 아는지 서준을 혼내듯이 울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흥이 밥값이 다 저기서 나온다. 양보할 수 없었다.
<좋아요…. 대신에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그냥 참가하는 수준이 아니고 저희 팀에 완전히 녹아들어야 해요.>
“네? 정말요? 정말로 반이나 깎아주실 거에요?”
그리고 놀랍게도 윤희주는 서준의 제안에 승낙했다.
그 금액의 절반이면 윤희주에게도 정말 큰 금액임이 분명했다. 쉽사리 깎아주기에는 그 금액이 너무 컸다.
그러나 윤희주에게는 돈보다는 창천 길드가 더 중요했다.
본인이 손해를 보더라도 창천 길드가 더 발전하고 이름을 떨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렇기에 윤희주는 서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신, 매일 저희 길드에 오셔서 훈련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된 거 우승을 목표로 갑니다.>
“우승 좋죠!”
서준은 호랑이들 추억도 쌓고 빚도 탕감하고 일석이조의 상황에 즐거운 나머지 큰 손해를 본 윤희주의 속이 썩어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신나게 답했다.
<좋아요, 그럼 우리 서로 열심히 해봐요.>
“물론이죠! 애들아? 너희들도 열심히 할거지?”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호랑이들도 서준의 물음에 크게 답하며 울었다. 호랑이들 역시 호랑이 올림픽이 중간에 중단되어 좀이 쑤시던 참이었다.
<그러면 내일 아침에 저희 길드에서 봐요.>
“넵.”
서준은 힘차게 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서준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