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서준과 김소현이 미확인 게이트에 빠져들어 갔다가 강제로 튕겨 나온 지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날 서준과 김소현이 겪은 미확인 게이트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미확인 게이트가 동시다발적으로 오픈되었다.
현재까지 그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어 각국의 지도자들은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게이트 경보 시스템에 보완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많은 길드의 전문가들이 그에 사력을 쏟고 있었다.
창천 길드 역시 다를 바 없었다. 당장 창천 길드의 전투 조장이 경고 없이 나타난 미확인 게이트에 말려들었고, 강력한 힘에 강제로 튕겨 나왔다.
이는 다른 길드나, 정부 조사에서 밝혀진 미확인 게이트들과는 확연히 다른 결과였다.
물론 일반인들도 상당수 말려들었고 아직 모든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서준과 김소현의 경우가 특별했음을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지금껏 게이트를 직접 넘지 않고 다른 힘에 의해 게이트에서 쫓겨난 적은 없었으니깐.
<전 세계에 천 개 이상의 미확인 게이트가 갑작스레 오픈된 지 벌써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우리 정부는 지금껏 돌아오지 않은 실종자를 게이트에 갇힌 것으로 판단 사망처리 하였습니다.>
<이에 유가족들은 게이트 관리부를 찾아가 시위를 하는 등…….>
뉴스에서도 일주일 째 이 이야기만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서준 역시 지난 일주일 동안 이것에 대한 생각을 깊게 했다.
그리고 서준은 서준 나름대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서준 앞에는 서준의 생각을 정리하며 이것저것 낙서해 놓은 종이가 한 장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종이의 한 가운데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있었다.
-과거의 세계를 구현?
그 주위를 여러 단어를 나열해 플로 차트를 구현해 놓은 서준은 생각을 확고히 정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재배지는 게이트 너머 세계의 과거를 구현한 듯한데…….’
서준과 김소현이 이계를 탐색하던 중 철제선반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철제선반은 서준의 선반이었다.
그리고 녹이 슬어 부서져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재배지가 있는 장소로 넘어갔을 때 황폐해진 재배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서준의 재배지가 게이트 너머의 세계의 예전 모습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게 했다.
-게이트는 모두 연결되어있다.
서준은 종이 끄트머리에 적혀 있는 글자를 읽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건 뭐 반론의 여지도 없는 정설이지.’
지금껏 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정말 수많은 게이트들이 열렸고, 많은 헌터들이 수많은 게이트를 탐사했다.
그리고 결론 낸 것이 있었다. 게이트 너머의 세계는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게이트 너머의 식생들을 공유하는 게이트가 많았기 때문에 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졌다.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재배지에서 좀 더 멀리 나가볼 필요가 있겠어.’
그렇다는 이야기는 서준의 재배지에서 멀리 나가면 여태까지 게이트로 열렸던 다른 지역에 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시간 괴리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예, 윤희주입니다.>
“안녕하세요. 백선생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혼자서 고민을 하던 서준은 윤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민거리는 전문가에게 상담해야지.
“뭐 새로운 조사결과는 나왔나요?”
<아뇨, 아직 딱히 더 밝혀진 건 없어요. 다른 곳에서 열린 게이트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는 거 외에는 딱히 특별한 것은 없어요. 백 선생님이랑 소현이 게이트의 경우만 조금 특별한 경우라 조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네요.>
그렇다. 사실 서준과 김소현이 들어갔던 게이트도 특별히 다를 건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게이트 경보에 걸리지 않는 게이트 천 개 이상이 동시에 열린 사건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서준과 김소현이 게이트에서 튕겨 나온 이유는 단순했다.
좀비 강철곰에게 둘러싸인 서준을 구하기 위해 나무가 힘을 쓴 것, 그뿐이었다.
그리고 서준 역시 그 사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단지 말할 수 없었을 뿐이다.
괜히 말했다가 나무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묻게될 것이었고 그러다가는 자신의 능력을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서준의 판단으로는 자신의 능력을 공개하는 데에는 아직 무리가 있었다. 그만큼 희귀하고 특별한 능력이었고 서준도 그를 잘 알고 있었다.
“길드장 님, 혹시 각성 능력을 발달시키는 방법 있습니까?”
서준은 윤희주에게 전화를 걸었던 본 목적을 물었다. 지금 서준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네, 뭐…. 어렵긴 하지만 있죠. 꾸준한 반복훈련 또는 아티펙트…. 그것도 아니면 영약을 먹어야겠죠?>
“역시…. 그렇겠죠?”
서준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별 도움 되지 않는 정보였다.
꾸준한 반복은 지금도 매일매일 게이트를 드나들며 하고 있었다. 아티펙트의 경우는 구하고 싶다고 구해지는 것도 아닌 데다가 본인의 능력과 궁합이 잘 맞아야 했다.
물론 능력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도 많았다. 실제로 돈 많은 거부들이 몰래 아티팩트를 구매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아티팩트의 능력에 의존한 것이지 능력을 강화한다는 의미와는 전혀 달랐다.
게다가 영약 역시 아티펙트와 마찬가지였다. 본인의 능력과 궁합이 맞는다면 엄청난 향상을 이룰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삼 한뿌리 캐 먹는 것과 별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그 가격 역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서준이 구하기엔 요원했다.
물론 돈이 많다고 쉽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발전을 뜻하는 모든 헌터들과 초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모든 일반인들의 관심이 쏠린 물건이었다.
전화를 끊은 서준은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능력을 발전시켜야 해.’
서준은 시간 괴리 때문에 재배지의 탐사를 하지 못했다. 만약 그 부분을 해결한다면, 그렇게 해서 더 먼 곳을 나갈 수만 있다면 정말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 분명했다.
재배지는 이계의 과거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철제선반과 나무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서준이 하는 행동이 현재의 이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서준이 미리 손을 써둔다면 게이트가 열리는 것을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생각했다.
게이트가 열리는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이계의 지배자에 의한 침입이라든가 하는 가설은 있지만 그 진실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재배지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낸 후 사전에 제거한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어.’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다면 이제 모든 평범한 사람들도 마음을 졸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서준은 본인의 능력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그리고 그것은 서준 역시 바라는 부분이었다. 매일매일 불안에 떨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서준에게도 불편했다.
어려서부터 정의감이 투철했던 서준이었다. DNA에 새겨진 정의감일 수도 있었다. 그의 가족들 역시 그랬으니깐.
서준은 본인이 돈을 좀 더 편하게 버는 이러한 상황보다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원했다.
그러나 뭐 지금으로써는 요원한 일이었다.
“얘들아! 밥 먹자!”
서준은 잠시 복잡한 생각을 내려두고 마당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호랑이들에게 꿀닭을 던져줬다.
-어흥! 어흥! 어흥!
-캬앙!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크릉!
호랑이들은 질리지도 않는지 신나게 울어대며 꿀닭을 맛있게 씹었다.
-크릉! 크릉!
어느새 다 먹은 크릉이는 기분이 좋은지 앉아있는 서준 무릎 위로 뛰어 올라와 앞발로 서준의 허벅지를 꾹꾹 눌러댔다.
이제 어느덧 힘이 세진 크릉이의 행동은 서준에게 조금 버거웠지만, 서준은 그 모습이 귀여워서 참고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어흥! 어흥!
어흥이는 기분이 좋은지 바위에다가 발톱을 몇 번 긁어대더니 나무를 타 올라가 그 위에 자리를 잡고 배를 까 누웠다.
아무래도 저 위에서 잠을 잘 요량인 듯했다. 나무 위는 어흥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였다.
-캬앙! 캬앙!
캬앙이는 꿀닭을 먹고 더러워진 발을 핥으며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요즘 들어 캬앙이가 부쩍 털 관리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데…….
이제 어느덧 사춘기가 온 듯하다.
“계세요? 계십니까?”
서준이 호랑이들과 마당에서 놀고 있을 때 누가 큰 소리를 내며 서준을 찾았다.
아마 마당이 너무 넓다 보니 마당에서 쉬고 있던 서준을 못 본 듯했다.
“예! 갑니다. 잠시만요!”
-크릉! 크릉!
서준은 무릎 위에 올라와 있는 크릉이를 내려다 놓고 약국으로 뛰었다. 크릉이가 내려가기 싫다고 잠시 반항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크릉이는 꼭 이렇게 원하는 게 있을 때만 애교를 부렸다.
-어흥!
나무 위에서 바라보던 어흥이는 그 모습이 재밌었는지 배를 긁으며 웃었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서준이 물음에도 남자는 쭈뼛대며 답을 하지 못했다.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말씀하세요. 최대한 맞춰드릴게요.”
본래 오프라인 장사를 하지 않는 서준이었지만 요즘 모든 판매를 창천 길드에서 해주기에 무료했던 참이었다.
게다가 호랑이들과 놀다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남자가 필요한 게 있다면 맞춰줄 생각이었다.
“저… 그거…. 그거 있나요?”
“그게 뭐죠?”
하지만 남자는 뭐가 그렇게 쑥스러운지 서준의 눈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땅에 고개를 박은 채 물었다.
“그거 있잖아요…. 그거…….”
“그거 뭐요?”
서준이 답답한 마음에 큰 소리로 묻자 남자는 그제야 답했다.
“불끈초요…….”
“아, 불끈초요? 진작에 말씀하시지.”
서준은 싱긋 웃으며 남자의 몸을 한번 훑었다. 남자도 그를 느꼈는지 발끈하며 답했다.
“아니! 저 문제 없거든요? 그냥 혹시나 해서 비상용으로 하나 챙기는거에요.”
“저 아무 말도 안했는 데요?”
서준은 싱긋 웃으며 약초를 정리해 놓은 서랍에서 불끈초 하나를 꺼냈다. 이 비싼 불끈초를 이렇게 보관하는 걸 다른 약사들이 알면 놀라 자빠질 것이다.
하지만 서준에게는 별거 아니었다. 불끈초는 언제든 재배 가능한 약초중 하나일 뿐이었다.
“일단 헌터증부터 확인할게요.”
“꼭 확인해야 해요? 이름…. 알려지는 거 싫은데.”
“괜찮아요. 어디 가서 소문 안내요.”
남자는 쭈뼛대며 서준에게 헌터증을 넘겼다.
“김진표 씨…. 확인됐습니다. 여기 불끈초 있어요. 카드로 하실 거죠?”
“네, 일시불이요.”
“오! 일시불이요? 알겠습니다.”
초인몰 실명 게시판의 단골이던 김진표는 일시불로 불끈초를 구매했다. 초인몰 실명 게시판에서 활동할 정도의 헌터였으니 그 정도 재력은 충분했을 것이다.
“안녕히 가세요!”
서준은 김진표를 보내며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서준의 통장 잔고는 늘어갔다.
윤희주에게 진 빚이 많았던 서준은 이런 식으로 몰래몰래 버는 돈 하나하나가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