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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35화 (35/150)

35화

서준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서준은 알 수 있었다. 이 장소가 어디인지 대강 감이 왔다.

분명 와본 적 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그 확신이 확실하다면 이곳에 특별한 위험은 없었다.

‘재배지가 분명해.’

그렇다 이 장소는 바로 재배지였다.

물론 서준이 약초 재배를 위해 장소를 이동했기에 이곳에서 직접적인 재배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장소는 분명 서준이 와본 적 있는 장소였다.

서준이 능력을 처음 각성한 날 한 달간 머물렀던 그 장소가 분명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저 멀리 보이는 강을 건너 보이는 산이 서준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재배지라는 이야기가 된다.

‘해봐야 뿔토끼랑 꿀닭이지.’

서준은 한 달간 이곳을 탐색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이곳에 위험요소가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놓쳐선 안 돼.’

이 기회는 서준이 가진 능력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놓쳐선 안 됐다. 재배지에서는 시간 괴리 때문에 할 수 없었던 일을 이곳에선 24시간을 다 써가며 할 수 있다.

“갑시다.”

“네.”

서준이 김소현에게 신호를 보냈고 김소현은 주위를 경계하며 걷기 시작했다.

서준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위험이 없는 장소에 저렇게 경계를 취하며 이동하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다.

서준은 조심스럽게 이동하는 김소현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그 주위를 다섯 마리의 호랑이들이 쫄래쫄래 따라붙었다.

‘역시, 확실해.’

그리고 이동을 거듭할 때마다 서준의 확신은 점점 더 짙어졌다.

이곳은 재배지가 확실했다.

이상한 점이라곤,

‘근데 왜 뿔토끼와 꿀닭이 안 보이는 거지?’

뿔토끼와 꿀닭이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준이 처음 재배지를 접했을 때 가장 흔하게 보이던 것이 뿔토끼와 꿀닭이었다. 몇 걸음 걸으면 한 마리가 보일 정도로 흔히 돌아다니는 동물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서준은 상당 시간 걸어왔음에도 그 어떤 동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네요. 이대로는 허탕이겠어요.”

김소현도 이곳이 텅 빈 게이트라고 생각하는지 긴장을 풀며 의기소침한 얼굴로 말했다.

위험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운이 좋다면 온전히 게이트를 독식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게이트 속에서 한 시간 가까이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가보죠.”

“네.”

조금만 더 가면 서준이 처음으로 재배지에 발을 들였던 곳이 나온다.

거기서 서준은 한 달간 생활했다. 그곳에만 가면 재배지가 이렇게 변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순간 서준은 놀라운 광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거, 철제 선반 같은데요?”

“그러네요…….”

김소현이 가리킨 것은 서준이 이곳에서 한 달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던 그 철제 선반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서준의 기억과는 사뭇 달랐다.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져 잘 녹이 슬지 않는 녀석이었다. 물론 서준이 지구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기에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는 못했었다.

그간 서준이 재배지를 오고 가며 그 모습을 확인했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철제 선반은 세월의 흐름을 정통으로 맞은 것처럼 엄청나게 녹이 슬어 있었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였냐면 살짝만 툭 건드려도 무너질 것처럼 느껴졌다.

‘어째서 이렇게 망가진 거지?’

서준이 마지막으로 철제 선반의 모습을 확인했던 것은 약 2주 전쯤이었다. 2주가 이곳에서는 3~4년이겠지만 이렇게 심하게 녹이 슬 정도의 시간은 아니었다.

-바스락!

“조심하세요!”

그때 주위에서 무언가 바스락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방향을 파악한 김소현은 경계태세를 취하며 서준을 주의 시켰다.

-크르르.

호랑이들은 자세를 낮추고 낮게 울며 보이지 않는 적에게 경고를 보냈다. 더 이상 다가오면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휴, 좀비 토끼네요. 별거 아니에요.”

그러한 경고를 무시하고 다가온 그것은 토끼의 형태를 띠고 있는 좀비였다. 김소현은 이미 여러 번 접해본 듯 경계태세를 풀고 서준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서준의 관심은 이미 토끼에 꽂혀있었다.

‘뿔이 달려있는 거 같은데?’

온몸이 허물어져 군데군데 뼈가 보이는 토끼였다. 게다가 뼈조차도 부식이 되었는지 군데군데 빠져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토끼의 이마에는 뿔이었던 것의 흔적이 보였다.

‘뿔토끼가 맞는 거 같은데?’

분명히 뿔토끼였다. 어떠한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뿔토끼가 좀비화한 것이었다.

“좀비 토끼요? 흔한 겁니까?”

“네, 게이트 넘어가면 둘 중 한번은 볼 수 있을걸요? 지난번에 저희 길드와 백 선생님이 함께 갔을 때는 보지 못했지만 헌터들 중에서는 뿔토끼를 보지 못한 헌터는 없어요.”

“공격성은 없어 보이네요?”

“네, 공격성도 없고 우리가 먼저 공격해도 도망치기만 할 뿐이에요. 가끔 반격하기는 하는데 위협적이진 않아요.”

그 특징 역시 뿔토끼와 다를 바 없었다.

서준은 호랑이들이 뿔토끼를 잡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그것도 매우 많이 보았다. 재배지에 넘어갈 때면 호랑이들은 대부분 뿔토끼나 꿀닭을 사냥하며 놀았으니깐.

그리고 뿔토끼는 그때마다 도망치기에 바빴다. 물론 가끔가다 호랑이들을 상대하며 반격한 적도 있었는데 호랑이들이 정말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위협이 된 적도 없었다.

“강을 건너보죠.”

“강을요?”

“네, 이쪽에는 별거 없는 거 같은데요? 강이라도 건너서 살펴보죠.”

이유를 알 순 없지만 이곳의 시간은 서준이 알고 있던 것보다 엄청나게 많이 흐른 듯했다. 철제 선반이 그를 증명했다.

게다가 뿔토끼 역시 좀비화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를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특별히 발견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강을 건너 서준이 재배지로 활용하고 있는 곳에 가보는 것이었다. 그곳에 가면 뭐가 변했더라도 어떻게 변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흐음…. 그렇다면 잠시만요.”

김소현이 강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김소현의 손끝에서부터 강물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우와…….”

소문으로만 듣던 김소현의 능력을 실제로 본 서준은 놀라움에 감탄했다. 그동안 김소현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능력을 사용한 것은 처음이었다.

기껏해야 타격점이 얼어붙는 것이 다였다. 그러나 지금은 강물을 다 얼려버릴 정도로 광범위한 능력을 사용했다.

“허억, 허억, 허억,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힘들긴 한데 뭐, 딱히 건너갈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죠, 뭐.”

계속해서 숨을 헐떡이는 김소현은 지친 표정과는 반대로 아무렇지 않은 듯 명랑하게 말했다.

“감사해요. 무리한 부탁이었을 텐데…. 이렇게 선뜻 따라주시고.”

“뭐, 저도 같은 생각이었을 뿐이에요.”

김소현은 서준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대꾸하며 먼저 앞장서서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얘들아, 미끄러우니까 조심해.”

그리고 그 뒤를 서준과 호랑이들이 따랐다. 하지만 이 호랑이들은 원래 추운 시베리아에서 살던 호랑이들의 후손이었다.

눈 위를 뛰놀던 호랑이들의 후예들에게는 이 정도 얼음 따위 끄떡없었다.

자신의 능력을 믿는지 성큼성큼 걷는 김소현의 뒤를 서준이 조심스럽게 따랐다.

김소현이 믿으라 했지만 혹시 얼음이 깨질지 누가 아는가? 호랑이들은 그런 서준의 뒤를 아장아장 걸으며 따라왔다.

“산 위쪽에서 강력한 기운이 느껴져요. 올라가 보죠.”

“네.”

강을 건너온 김소현이 산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준은 느끼지 못했지만 김소현 정도 되는 헌터는 이런 것도 느낄 수 있는 듯했다.

‘이 방향이면…….’

그리고 서준은 김소현이 가리키는 방향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철제 선반을 보았을 때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지만, 재배지의 지형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서준은 이 재배지를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며 많은 일을 해왔다. 당연히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서준이 일전에 만들어 놓았던 길조차도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역시…….’

그리고 역시나 서준이 예상한 대로였다.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아주 거대한 나무가 한그루 서 있었다.

서준이 괴수의 시체를 먹여가며 정성스레 길렀던 바로 그 나무였다. 그러나 오랜 기간 양분을 흡수하지 못했는지 온몸의 껍질이 바싹 말라붙어있었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나무를 알아본 서준의 호랑이들도 나무의 이상함을 느낀 것인지 크게 소리 지르며 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호랑이들 역시 시체를 묻기 위해 열심히 땅을 팠다. 이 아이들 역시 나무를 기르는 데 큰 일조를 했었다.

호랑이들이 나무를 알아보지 못할 리 없다.

-파르르르, 파르르르

호랑이들이 다가오자 나무는 괴로운 듯이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기 시작했다. 거대한 나무가 몸을 떨자 다 말라붙은 주위의 땅이 쩌적거리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일단 가보죠?”

김소현이 말과 함께 나무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서준 역시 김소현의 뒤를 따랐다.

-부르르르르, 부르르르르,

그리고 그들이 가까워져 갈 때마다 나무의 떨림은 더욱 강렬해졌다.

아니, 나무가 서준을 알아본 것일까? 김소현이 아닌 서준이 다가갈 때마다 나무의 떨림이 더 심해졌다.

“이렇게 거대한 나무는 처음 봐요. 게다가 이렇게 말라비틀어져 죽기 직전인데도 이 나무에게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져요.”

소현은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서준 역시 산의 입구에서는 소현이 말한 그 기운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렇게 나무에 가까워지고 나니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어디서 겪어본 거 같은데?’

게다가 이미 경험한 적 있는 기운이었다. 분명히 서준은 이 기운을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었다.

서준은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열매?”

서준도 모르게 입에서 열매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서준은 떠올릴 수 있었다.

나무에 맺힌 작은 열매를 바라볼 때 느낄 수 있었던 감각을.

비록 그 열매는 너무 작아 내뿜는 기운이 적어 정확한 비교는 불가능했지만, 그 기운의 크기가 몇 배는 더 커지면 이런 느낌이 날것이 분명했다.

서준은 저도 모르게 나무의 위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역시나 열매가 하나 맺혀있었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익은 열매였다.

-쿠워어어어! 쿠워어어! 쿠아앙!

그리고 그 순간 주위에서 엄청난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김소현은 즉시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서준 역시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강철곰.’

일전에 서준과 호랑이를 공격한 적이 있었던 녀석이었다. 그때는 서준이 당해낼 수 없어 약국으로 집어 던졌었다.

그러나 녀석들이 지금 하고있는 모습은 그때와는 사뭇 달랐다. 녀석들의 몸은 뿔토끼처럼 좀비화되어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던 강철 피부는 다 녹이 슬어있었고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총명하게 빛나던 두 눈은 누가 파먹은 듯 텅 비어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녀석들이 좀비화하였다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강철곰의 수가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적어도 백 마리는 되어 보였다.

이 정도의 숫자는 아무리 김소현이라도 무리였다.

서준은 여기서 게이트를 열고 도망쳐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별 의미 없이 나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무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서준과 김소현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입을 벌리며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무는 엄청나게 강력한 힘으로 서준과 김소현, 그리고 호랑이들을 밀어냈다.

서준의 일행들은 엄청난 충격파에 몸이 밀려나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리고 그들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호랑이 약국의 마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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