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최정윤 : 요즘 창천 길드가 그렇게 잘 나간다면서?
김진표 : 거기 뭐냐? 호랑이 약국? 거기랑 협약 맺고 빵 터졌다는데?
최정윤 : 호랑이 약국? 그거 PTSD 걸린 놈들이 애용하는 곳 아니야?
고혜리 : 그거 말고도 하급 치료 약 질 좋고 싸서 인기 많음. 하긴 너네는 모르겠다. 길드 관리 직접 하는 수뇌부들이나 하급 헌터들이나 알지. 너네는 비싼 거만 쓸 거 아냐?
초인몰에는 여러 종류의 게시판이 존재했다. 물론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게시판은 익명게시판이었다.
많은 초인들은 익명 뒤에 숨어서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헌터들을 욕하기도 했다.
심지어 자기의 사수를 욕하는 헌터들도 많았다.
그리고 초인몰에는 역시 실명 게시판도 존재했다. 물론 그 인기는 처참할 정도로 없었다.
실명이 모두 드러나는 데에다가 따로 채팅방을 파서 지인들끼리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모든 글이 실시간 채팅형식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모두에게 공개되는 장소였다. 게시판은 단 하나로 한 개의 공간에서 모두가 떠들어야 했다.
최정윤 : 부럽네, 우리 길드가 먼저 협약 맺었어야 했는데.
고혜리 : 너는 어차피 월급쟁이잖아? 무슨 상관이야?
최정윤 : 길드 잘 나가면 인센티브 빵빵하게 주잖아.
김진표 : 근데 PTSD약이 그렇게 잘 팔려? 그거랑 하급약초 몇 개 해봐야 뭐 얼마나 팔린다고 창천 길드 주가가 저렇게 오르냐?
물론 그렇다고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과시욕이 강한 일부 헌터들은 보란 듯이 실명 게시판을 사용했다.
과시욕이 강한 데다 어느 정도 실적을 쌓아 인지도를 쌓았던 몇몇 유명 헌터들은 개인 메신저를 놔두고 일부러 실명 게시판을 사용하고는 했다.
그리고 하급 헌터들과 헌터 활동을 하지 않는 평범한 초인들은 그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질투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이 이 게시판을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고혜리 : 너 몰랐어? 불끈초 재배 성공한 백 선생이 호랑이 약국 주인이잖아. 거기서 이것저것 약초 개발 많이 한 모양이더라구. 요번에 창천 길드 혹한 지역에서 엄청 이득 봤잖아? 그게 거기서 보온초 공급받았다 하더라구.
김진표 : 아? 나는 그런 거 관심 없지. 그런 거 없어도 훌~륭합니다~
최정윤 : 아닌 거 같던데?
구하선 : 뭐야? 뭐야? 어떻게 알아?
최정윤 : 구하선 꼭 이럴 때만 튀어나오는 거 보소
구하선 : 그래서 뭔데?
최정윤 : 비밀!
그리고 이런 실명 게시판에 이렇듯 호랑이 약국 이야기가 오르내린다는 것은 이미 호랑이 약국에 대한 소문이 퍼질 만큼 퍼졌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실명 게시판을 관음하듯 훔쳐보는 수많은 초인과 헌터들이 호랑이 약국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을 뜻했다.
그동안 초록 활력초와 호랑이차로 서서히 인지도로 쌓아가다가 불끈초로 화끈하게 빵 터트렸던 호랑이 약국이었다.
그런 와중에 초인몰 실명 게시판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니 웬만한 초인들은 서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띠리링, 띠리링,
그리고 그러한 이유가 호랑이 약국의 사소한 변화를 가져왔다.
불끈초를 오프라인으로 판매하지 않는다는 게 밝혀진 이후 끊겼던 방문객들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서 오세요?”
호랑이 약국으로 한 쌍의 남녀가 들어왔다. 둘 모두 말끔하게 떨어지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남성의 경우 미중년이라는 표현이 저 남자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정도로 멋지게 나이를 먹은 중년의 사내였다.
여성은 서준 또래처럼 보이는 명랑한 여자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여기 주인장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중년의 남자가 서준을 바라보며 예의 있게 물었다. 어디서 특별한 교육이라도 받은 것처럼 몸에 배어있는 예절은 그를 한껏 더 고풍스럽게 보이게 했다.
서준도 잠시 감탄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답했다.
“아, 제가 이 약국 주인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실례했습니다. 백 선생님이시군요.”
“네, 말씀하세요.”
남성은 너무 젊어 보이는 서준을 보며 흠칫 놀랐다. 서준의 나이는 서류상으로 35살이었다. 하지만 서준의 액면가는 그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남성이 헷갈릴 만도 했다. 그는 서준을 알바로 착각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아!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해태 길드의 길드장 김영기라고 합니다.”
“저는 부 길드장 임유비예요.”
그들은 바로 해태 길드의 길드장과 부 길드장이었다. 그리고 서준은 일전에 해태 길드와 인연이 있었다.
“아! 해태 길드 분들이시군요! 그때는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결사회는 우리와도 악연이 깊었지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최운혁이 그놈을 아직 못 잡은 게 아쉬울 뿐이지요.”
해태 길드는 일전 결사회의 소탕 작전에 투입되었던 네 길드 중 하나였다. 그들 덕분에 결사회의 일부를 생포할 수 있었고 이후 계속해서 추적할 수 있었다.
비록 리더 최운혁은 아직 잡지 못했지만 그 외의 모든 일원들은 이미 사로잡거나 죽은 지 오래였다.
“오늘은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최운혁 추적은 아직 성과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 오늘은 그 일로 온 게 아닙니다.”
물론 그들의 방문 목적은 최운혁이 아니었다. 어차피 서준은 최운혁과 관련된 모든 일은 윤희주와 주고받고 있었기에 이들과 따로 연락을 나눠본 적도 없었다.
“요즘 창천 길드와 재미 좀 보고 계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네, 창천 길드와 연구 협약을 맺었고…. 뭐, 결과는 운이 좋았어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창천 길드를 버리고 우리와 함께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해태 길드는 창천 길드와 비슷한 수준의 길드로 그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길드 중 하나였다. 해태 길드와 창천 길드, 두 길드 모두 최고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모두가 선망하는 그런 길드였다.
그러던 와중 창천 길드가 호랑이 약국과 연구 협약을 맺었고, 그로 인해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는 소문은 초인계에 싹 퍼졌고, 당연하게도 해태 길드의 귀에도 들어갔다.
몇 년째 엎치락뒤치락하며 우위를 다투던 길드가 확 치고 나가니 해태 길드 입장에서도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해서, 무리한 요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서준을 찾아왔고 서준에게 협상을 시도했다.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서준은 거절했다. 그동안 창천 길드에게 받은 수많은 도움들을 뒤로한 체 그들을 저버릴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게다가 서준은 이미 윤희주에게 채무 관계로 얽혀버렸다.
“창천 길드가 어떤 조건을 제시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무조건 그보다 좋은 조건을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창천 길드보다는 저희 길드가 미래가 창창합니다. 창천 길드에는 유망주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헌터 양성 프로그램으로 수많은 유망주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이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십 년 후에는 그 차이가 더 커질 겁니다. 코앞을 말고 미래를 내다보세요.”
길드장 김영기가 말하자 그 옆에서 부 길드장 임유비가 거들었다. 하지만 서준의 마음은 미동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사실 창천 길드에서는 저에게서 어떤 것도 받아가지 않습니다. 연구를 대신해주고 판매도 대신해줍니다. 거기에 수익까지 전부 제 손으로 들어옵니다. 그보다 좋은 조건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창천 길드는 서준이 재배한 약초를 일부 공급받는 것 외에는 서준에게서 가져가는 것이 없었다. 거기에 괴수의 시체를 제공해주는 등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물론 그 약초 제공이라는 것이 창천 길드에게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주고 있었지만, 그 정도는 서준이 가진 약초 중 극히 일부분이었을 뿐이다.
“대충 예상은 했는데 역시 그렇군요……. 하지만 저희도 그 정도는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약초 공급만 해주신다면 오히려 웃돈을 더 얹어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창천 길드와의 연구 협약을 깰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준은 그 역시 거절했다. 서준은 적어도 그 정도의 신의는 있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편의를 봐주고 어려운 시절 도와주었던 창천 길드를 버릴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면 창천 길드로 가는 공급을 끊어달라는 얘기는 안 하겠습니다. 저희에게도 정기적으로 공급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서준의 약초 대부분은 창천 길드에서 판매를 대행하고 있었다. 창천 길드가 그를 어디에다가 어떻게 판매하는지는 서준도 잘 알지 못했다.
아마 지금 해태 길드의 반응을 보아하니 창천 길드로부터의 구매가 원활하지 않은 듯했다.
“그것도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창천 길드와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하지만 그것 역시 서준이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이었다. 이미 서준의 약초는 판매뿐만 아니라 가공과 제약까지 모두 창천 길드에서 대행해주고 있었다.
굳이 서준이 힘을 들여가며 제약을 하고, 해태 길드에 가져다주는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크흠….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생각 바뀌면 연락 주십시오.”
서준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 서준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고 판단한 김영기는 명함을 한 장 건네주며 약국을 떠났다.
하지만 혹시라도, 만의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끝까지 예의를 지켰다. 정말 멋진 남자였다.
그리고 김영기와 임유비 이후로도 그러한 방문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아마 서울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는 중소 길드의 구 할은 호랑이 약국을 방문한 듯싶었다.
“으아! 드디어 끝났나? 징하다 징해! 그렇지 얘들아?”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드디어 길드의 방문이 끊겨 더 이상 문에 달린 종소리가 들리지 않자 서준은 기지개를 켜며 웬일인지 서준 옆에 얌전히 앉아있는 호랑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마당에서 신나게 놀다가 어느새 약국에 들어와 서준 옆에서 쉬고 있던 호랑이들은 서준을 안쓰러운 듯이 바라보며 대답했다.
“으아! 손님들 상대하느라 일도 밀렸네, 애들아 지금 넘어갈까?”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계속해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서준은 재배지에서 해야 할 일들을 못 하고 있었다.
호랑이들 역시 마당보다는 끝없이 넓은 재배지를 더 좋아했기에 어느새 신이 나서 서준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끄응차!”
-어흥! 캬앙! 크릉!
서준과 호랑이들은 창천 길드로부터 제공받은 괴수의 시체들을 짊어진 채 게이트를 넘어갔다.
그리고 재배지에 넘어선 그들은 놀라운 광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드디어! 열렸다!”
어렸을 때는 영양제로 시작해서 지금은 아주 거대한 괴수의 시체를 게걸스럽게 먹어대던 그 나무에 드디어 열매가 열렸다.
앙상한 나뭇가지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서준이 고개를 빳빳이 들어야 겨우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높아진 나무의 성장은 참 느렸다.
재배지의 시간 흐름은 지구보다 100배나 빨랐고, 그동안 나무가 먹어치운 괴수도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열매를 피울 생각을 하지 않은 나무였으나, 드디어 서준의 바람대로 열매를 피워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