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돈이 슬슬 모이기 시작하네.’
서준은 휴대폰으로 계좌를 확인하며 흐뭇해하고 있었다. 불끈초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큰돈이 들어왔다. 거기에 창천 길드가 몬스터의 시체를 무료로 공급해주니 나가는 돈도 딱히 없었다.
‘한 채 정도는 살 수 있겠네.’
이제 서준은 옆 건물 한 채 정도는 살 정도의 돈을 모았다. 비록 목표해둔 것처럼 주위의 건물들을 전부 다 산 후 호랑이들의 마당으로 만들기에는 아직 많이 남았지만 점점 더 목표에 가까워지는 건 사실이었다.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은 좁은 약국에서 뛰노는 호랑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흐음…. 돈 모이는 걸 기다리면 너무 늦을 거 같은데…….’
호랑이들의 성장이 생각보다 빨랐다. 호랑이들에게는 약국이 너무 비좁았고,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그나마 매일매일 재배지에 가는 것으로 욕구를 충족하긴 했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가 다가왔다.
이대로 돈이 모이는 것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너무 늦었다. 약국은 더 이상 호랑이들의 쉼터가 되어주지 못할 것이다.
“길드장님, 백선생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고민을 하던 서준은 결국 윤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혼자 고민해봐야 도저히 해결방법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보온초는 어떤가요? 잘 쓰고 계신가요?”
<아! 물론이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지속시간이나 성능이 훨씬 좋던데요? 역시 백 선생님께서 재배하신 약초들은 퀄리티가 너무 좋아요.>
“다행이네요.”
<저희가 요번에 들어갔던 게이트가 극한지역이었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덕분에 아무도 다치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서준은 우선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기엔 민망한 부분도 있었고, 좀 불편한 이야기기도 했다.
다행히도 윤희주는 보온초에 도움을 톡톡히 본 덕에 서준을 좀 더 호의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본래도 서준에 대한 감정이 나쁘지 않았는데 지금은 평소보다 더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지금 윤희주는 서준을 완벽한 사업 파트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할 말이 있으셔서 전화하신 거 같으신데 말씀하세요. 웬만한 건 다 들어줄 수 있어요.>
어린 나이에 대한민국 굴지의 길드의 수장으로 오른 인물이었다. 윤희주는 눈치가 빨랐고 서준이 부탁거리가 있어서 전화했음을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윤희주는 어떤 부탁이든 들어줄 능력도 있었고, 들어줄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하하,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니 더 민망해지네요.”
<백 선생님답지 않네요. 말씀을 그렇게 돌리는 거 보니 돈이라도 빌리시려구요?>
서준이 계속해서 말을 하지 않자 윤희주는 장난식으로 물었다. 서준은 이미 충분히 큰돈을 만지고 있었기에 돈 문제는 아닐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네, 사실 돈이 조금 필요합니다.”
하지만 서준이 필요한 것은 돈이 맞았다. 자력으로 돈을 벌어 주위 땅을 모두 매입하기에는 호랑이들이 너무 빠르게 성장했다.
이대로 가만 놔두다간 곧 호랑이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당황스럽네요. 빌려주는 건 딱히 어려운 게 없는데……. 백 선생님이 돈이 필요하다는 게 안 믿기네요.>
그리고 이에 윤희주가 놀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서준의 약초 판매를 대행해주고 있는 것이 창천 길드였고 자연스레 서준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불끈초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서준이 벌어들이는 대부분의 수익은 창천 길드로부터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수익은 개인이 사용하기에 버거울 정도로 많은 액수라는 것을 윤희주는 잘 알고 있었다.
“사실 호랑이들이 많이 컸어요. 지난번 약국에 오셔서 봤을 때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이 컸어요. 이대로 약국에서 키우는 건 무리라서요.”
해서 서준은 돈이 필요한 이유를 말하며 부탁했다.
<백 선생님이 지금까지 벌어둔 돈이면 마당 딸린 집 정도는 하나 살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사실 이 건물이 제가 처음 얻은 제집이기도 해서 애착이 좀 가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지역이 한국에서 제일 안전하잖아요? 굳이 떠나고 싶지는 않네요. 알다시피 제가 싸움이 아니라 약이 전공이라.”
서준은 약국 건물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준이 필요로 하는 땅의 크기를 말해주었다.
<그렇게나 많이요? 그러려면 주변 건물을 좀 많이 매입하셔야겠네요?>
“네, 호랑이들이 정말 자유롭게 뛰놀만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요. 어려울까요?”
<음…….>
윤희주는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땅값이 비싸기로는 최고로 치는 곳 중 하나였다.
아무리 창천 길드의 금고가 넉넉하다고 할지라도 부담이 되는 금액이었다.
<그 정도 금액은 길드에서 빼기에는 솔직히 무리입니다. 절차문제도 많고요.>
“그런가요?”
당연하게도 그 정도 금액을 개인이 운용하는 것은 무리였다. 윤희주로서도 부담이 되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빌려줄 수는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대신 빌려 가신 금액은 저희 길드에서 대리하는 백 선생님의 약초 판매 대금으로 받아갈게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다 갚으실 때까지는 백 선생님 수익이 없어지는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죠! 빌려만 주신다면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서준은 지금까지 모아둔 돈도 상당했다. 게다가 불끈초의 경우는 서준이 직접 판매하니 그 수익은 서준이 가져갈 수 있었다.
몇 년간은 창천 길드로부터 수익을 가져갈 수 없었지만 어차피 그 이상의 돈을 쓸 일은 없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선뜻 빌려주실 줄 사실 예상 못 했어요. 그냥 찔러나 본 거였는데…. 통이 크시네요?”
<어차피 백 선생님이라면 금방 회수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을 뿐이에요.>
윤희주는 이로써 서준을 완벽히 포섭했다고 판단했다. 드레이크의 시신을 양도했던 것과 오늘 돈을 빌려줌으로써 서준을 완벽히 창천 길드의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확신했다.
그동안 서준이 보여준 능력과 보온초를 순식간에 길러냈던 능력을 보았을 때 서준은 창천 길드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사실 이까짓 돈 빌려주지 않고 그냥 주어도 서준과 가까워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럼 이왕 부탁하는 김에 한 가지 부탁을 더 해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건물 다 헐고 마당 만들어야 하는 데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법적인 문제 처리 좀 도와주세요. 저 혼자 감당하기엔 좀 복잡할 것 같네요.”
<후훗.>
윤희주는 서준의 말을 듣고 웃더니 답했다.
<마당까지 이쁘게 깔아드릴게요. 호랑이들이 놀기 좋은 환경으로.>
그 후로 모든 일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윤희주는 막대한 재력을 이용해 건물들을 순식간에 샀고 폭파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그 위로 호랑이들을 위한 넓은 마당이 만들어졌다.
“이거…. 생각보다 너무 큰데?”
단지 그 스케일이 서준의 상상보다 너무 큰 것이 문제였다.
서준은 적당히 넓은 마당 정도로 생각했었지만 윤희주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그것을 초월했다.
심지어 마당 중앙에는 인공 호수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엄청나게 넓은 공간에 호랑이들이 올라타 놀 수 있는 커다란 나무들도 곳곳이 심어져 있었고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바위도 있었다.
마당 수준을 넘어 커다란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이러면 서른 중반까지 빚쟁이 신센데…….”
몇 년만 갚아나가면 될 것이라 생각했던 서준이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몇 년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아! 나 이미 서른 중반이구나?”
아직 타임워프로 인해 변한 나이가 익숙지 않은 서준이었다. 한창 잘나가던 20대 약사에서 순식간에 30대 중반의 빚쟁이가 되어버렸다.
“아저씨에다가 빚쟁이라니……. 내 인생도 끝장났구나!”
-어흥! 어흥! 어흥!
-캬앙!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크릉!
그런 서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랑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놀고 있었다.
고양잇과 동물중 유일하게 물을 좋아하는 호랑이답게 녀석들은 호수에 몸을 던져 물고기를 잡으며 놀았다.
마음이 심란했던 서준도 호랑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조금씩 마음이 풀렸다.
“같이 놀자 얘들아!”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서준이 호랑이들을 향해 달려가자 신이 난 호랑이들도 서준을 향해 몸을 날렸다.
“악! 하지 마! 다 젖잖아!”
연못에 몸을 담갔던 호랑이들의 몸은 온통 젖어있었다. 그 상태로 녀석들이 서준을 덮치자 서준의 옷도 같이 젖어갔다.
“그래…. 포기하면 편하지.”
비싼 옷이었지만 이미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서준은 호랑이들을 데리고 함께 연못에 들어갔다.
발이 닿지 않을 만큼 깊은 데다가 수영도 잘 하지 못했던 서준이었지만 호랑이들을 튜브 대신 잡고 놀 수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가자! 얘들아! 더 빨리 헤엄쳐봐!”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신이 난 호랑이들은 서준을 끌고 다니며 빠르게 헤엄쳤다. 호랑이들만 있으면 여름에 수상스키 타러 갈 필요도 없었다.
“야 저거 봐 호랑이 아니야?”
“헉! 진짜 호랑이네? 근데 저거 사람 아니야?”
“야! 신고해! 빨리! 저러다 죽겠어!”
마당 주위를 지나는 사람이 보기에는 호랑이 세 마리가 서준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그런 거 아니에요! 노는 거예요!”
다행히도 서준이 그 소리를 들었다. 초인이 된 이후로 모든 감각은 당연히도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
호랑이들과 물장구를 치며 노는 와중에도 멀리서 들리는 작은 소리도 포착할 수 있었고, 다행히도 신고를 막을 수 있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호랑이들과 놀 때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한 서준이었다.
“아 좋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물놀이 후 서준과 호랑이들은 평평한 바위에 누워서 일광욕을 즐겼다.
강렬한 햇볕을 받으며 젖은 몸을 말리고 있으니 서준과 호랑이들은 기분이 좋아졌다.
“마당 생기니까 좋아?”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서준이 배를 까고 누워있는 호랑이들의 배를 긁어주며 묻자 호랑이들이 기분 좋은 소리로 답했다.
호랑이들도 내심 약국이 답답했었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제 재배지에서처럼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니 서준 역시 호랑이들과 더욱 자주, 더욱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었다.
그동안에는 재배지에서 호랑이들이 놀 때 서준은 일을 했기 때문에 같이 놀 시간이 부족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 딱 하나만 빼고.
“형이 말이야…. 너희 때문에 빚쟁이가 되었어.”
부모를 잃고 혼자 살 때에도 빚만은 지지 않고 살았던 서준이었다. 한데 그 어느 때보다 돈을 많이 벌고 있는 지금 오히려 빚쟁이가 되어버렸다.
-어흥! 어흥! 어흥!
-캬앙!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크릉!
호랑이들은 그런 서준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신이 나서 울어대고 있었다.
“그래…. 빚도 재산이랬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서준도 그런 호랑이들을 보고나니 마음이 풀렸는지 기쁨 가득한 얼굴로 호랑이들의 배를 계속 긁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