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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31화 (31/150)

31화

“이 새끼가 보고만 있으려니까 참을 수가 없네. 적당히 해야지!”

붉은 머리의 헌터가 서준에게 달려들려 할 때 누군가 소리를 지르며 그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쳤다.

붉은 머리의 헌터는 불의의 일격을 맞고 그대로 앞으로 철퍼덕 엎어졌다.

"어떤 새끼야!"

"나다 새끼야, 어쩔래?"

붉은 머리의 헌터가 뒤돌아 바라본 곳에는 김소현이 있었다.

“기, 김소현!”

이미 창천 길드는 대한민국에서도 손꼽히는 유명 길드였고 그런 길드의 전투 조장인 김소현을 모른다는 건 대한민국 헌터가 아니라는 소리 나 다름없었다.

모든 헌터들이 목표로 하는 곳이 창천 길드였고, 그런 길드의 전투 조장이 김소현이었다.

붉은 머리의 헌터도 나름 이름값 하는 헌터였지만 김소현에 비할 바는 못됐다.

“귀여운 호랑이 괴롭히는 것도 못 봐주겠는데 감히 백 선생님께 덤벼? 너 뭐 있냐?”

"네, 네가 왜… 여깄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녀석은 김소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김소현을 보고 당황한 붉은 머리의 헌터가 되물었지만 김소현의 답은 주먹으로 날아왔다.

“크헉!”

김소현의 주먹이 복부에 꽂히자 붉은 머리의 헌터는 견디지 못하고 배를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백 선생님은 호랑이 데리고 빨리 병원이나 가주세요. 여기는 제가 정리할게요.”

“네, 고마워요.”

운이 좋았다. 서준이 카운터펀치를 박아 넣기는 했지만 순전히 우연에 가까웠고, 기적에 가까웠다.

공격이 느리게 보인다고는 해도 붉은 머리의 헌터가 서준을 죽일 생각으로 전력을 다했다면 그렇게 깔끔하게 피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전투 경험이 떨어지고 체력이 떨어지는 서준은 틀림없이 졌을 것이다.

게다가 전투에서 패하는 것을 떠나서 크게 다쳤을 것이 분명했다.

김소현이 시기적절하게 나서준 것이 운이 좋았다.

서준은 다친 호랑이를 부축하며 호랑이 카페 사장과 함께 경기장을 떠났다.

#

호랑이 월드컵에서 돌아온 서준은 하루를 쭉 쉰 후 재배지에 들어왔다.

“이번에도 실패네…….”

이번에도 실패였다. 서준은 여러 조건을 두고 실험해 보았으나 초록 활력초의 변종 재배에 실패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식물이든 큰 어려움 없이 재배해냈던 서준이지만 이것만큼은 계속 실패해왔다.

서준은 식목 수첩에 적혀있는 글자 위를 찍 한 줄로 그으며 지워갔다. 그 수첩에는 서준이 미리 생각해놓은 수십 가지 조건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지워지지 않은 조건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서준인 이제 이 중에서 성공하길 간절하게 빌 뿐이었다.

하지만 안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초록 활력초 변종의 재배 실패를 제외한 나머지에서는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우선 첫 번째로 보온초의 재배에 성공했다.

눈처럼 새하얀 빛을 띠고 있는 보온초는 만지는 것만으로 몸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어 줬다.

‘음…. 양이 얼마 안 되네……. 따로 팔지는 못하겠는걸?’

서준이 따로 팔 만큼의 양은 나오지 않았다. 딱 창천 길드에 먼저 공급하기로 약속했던 양만큼만 자라났다.

다음 재배 때부터 팔고 이번에는 창천 길드에 전달만 해주면 될 것 같았다.

‘가공은 지들이 알아서 하겠지 뭐.’

초록 활력초든 안정초든 지금껏 서준은 직접 가공해서 팔아왔다.

초록 활력초는 잘 말려 분말로 만들어 놓아 상처 부위에 바르기만 하면 되었고, 안정초는 따듯한 물만 있으면 맛있는 차로 마실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보온초의 경우는 달랐다. 창천 길드가 의뢰한 약초였다. 그 가공부터 판매까지 창천 길드에서 대리해줄 것이다.

아니, 앞으로 초록 활력초와 호랑이차 역시 창천 길드에서 판매를 대리해주기로 약속했다.

결사회 사태도 있었고 보호가 필요했던 서준에게 아주 좋은 제안이었다.

이제 서준은 힘들게 약초를 따로 판매할 필요 없이 창천 길드에게 건네주기만 하면 되었다.

물론, 불끈초와 같은 특수한 약초의 경우는 서준이 직접 판매할 생각이었다.

“이야…. 많이 컸네?”

보온초를 다 수확한 후 나무를 보러 갔던 서준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일전에 드레이크의 시체를 양분으로 먹으라고 묻어두었었는데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나무의 두께는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두꺼워졌으며 높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크기가 아니었다. 전에는 기둥만 솟았고 나뭇가지나 나뭇잎은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나뭇가지가 이곳저곳 솟아있었다. 심지어 그 중 몇몇은 싹을 피울 기미도 보이고 있었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호랑이들은 잘 자라난 나무를 보고 난 후 등반 욕구가 생겼는지 나무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호랑이들이 나무를 오르기 위해 발톱을 박아넣을 때마다 나무가 몸을 흔들며 저항했다.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은 오기가 생겼는지 계속해서 떨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나무는 더 격렬히 저항했다.

나무와 호랑이 간의 줄다리기는 서준이 말릴 새도 없이 계속됐다.

“드레이크를 먹어서 그런가? 힘도 좋네…….”

나무는 평소의 성장세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 필시 드레이크가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했다.

‘이따 나가서 또 몇 마리 부탁해야지…….’

서준은 재배지를 나서자마자 윤희주에게 전화해 괴수 시체를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 드레이크의 시체는 더 이상 받지 못하겠지만 좋은 양분이 될 다른 괴수의 시체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얘들아, 그만해! 이제 가야 해! 내려와!”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서준은 호랑이들을 챙긴 후 재배지를 벗어났다.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서준이 재배지에서 나오자마자 타이밍 좋게 휴대전화의 벨 소리가 울렸다. 윤희주였다.

“네, 호랑이 약국입니다.”

<백 선생님. 윤희주입니다. 잘 지내셨어요?>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그보다 소현이에게 얘기 들었어요.>

아무래도 김소현에게 호랑이 월드컵에서의 사건을 들은 듯했다.

<그 부분은 저희가 알아서 처리했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가요? 그놈은 어떻게 됐나요?”

<소현이한테 몇 대 얻어맞더니 쫄아서 도망갔다고 하던데요? 초인몰 안 보셨구나…. 초인몰 지금 그놈 얘기론 난리 났어요.>

“그래요? 나중에 시간 나면 확인해 볼게요.”

초인몰에는 서준에게 카운터를 맞고 그 후에는 김소현에게 무기력하게 얻어맞는 놈의 영상이 올라갔다.

헌터가 약초꾼에게 얻어맞고 또 다른 헌터에게 다시 얻어맞고 난 후 울며불며 빌고 있는 영상은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름 이름을 날리던 녀석이니 더했다. 아마 녀석은 이제 업계에서 고개를 들고 다니기 힘들 것이다.

<그나저나 최운혁이랑 최석현이 접촉했어요.>

아무래도 이쪽이 본론인 듯했다.

“잡았나요?”

<실패했어요…….>

윤희주는 한차례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하지만 최운혁은 팔 한쪽을 잃고 도주했습니다. 놈이 팔 한쪽을 폭발물로 만들어 도주하는 데 사용했어요. 앞으로 전투 시에 크게 불리하게 작용할 거에요. 다음번에 만나면 잡을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사로잡는 데는 실패한 듯했다. 놈의 능력은 폭발을 일으키는 것이었는데 자신의 신체를 이용하면 더 큰 폭발을 만들 수 있는듯했다.

팔 한쪽을 희생하면서까지 도주하는 데 사용한 최운혁을 잡는 건 아무래도 힘들었을 것이다.

<최석현은 그 자리에서 잡아서 경찰에 넘겼습니다. 결사회와 접촉하는 현장에서 그대로 사로잡았기 때문에 빠져나갈 구멍은 없을 거예요.>

“그건 잘됐네요.”

최석현은 이제 쓸모가 다 했으니 더 이상 풀어둘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이제는 최운혁도 최석현을 만나주지 않을 것이었다.

이제는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일만 남았다.

“그나저나 보온초 다 길러냈습니다.”

<예? 벌써요? 며칠이나 지났다고…….>

서준의 능력을 알 길이 없는 윤희주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보온초를 재배해달라며 건네준 게 고작 며칠 전이었다.

서준이 재배법을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싹이 자라나는데 필요한 시간은 그것보다는 훨씬 길 것이 분명했다. 약초를 재배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네, 별 탈 없이 잘 길러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뭐, 묻지 않기로 했으니 묻지 않겠습니다.>

“이건 택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길드 본관으로 보내면 되나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윤희주는 이미 서준의 능력을 묻지 않기로 약속했다. 윤희주 본인으로서는 궁금해 미칠 따름이었지만 별도리는 없었다.

서준이 먼저 말해주지 않는 이상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한 번만 더 보내주시죠.”

서준의 말에 윤희주는 한참을 침묵했다. 서준이 원하는 것이 괴수의 시체인지 드레이크의 시체인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윤희주는 처음 서준이 크고 강한 괴수의 시체를 달라 했을 때는 당혹스러웠었다.

그러나 약초 재배에 필요할 것이라는 오해를 하며 이왕이면 강한 괴수의 시체를 보내주자 하였고 길드 창고에 숨겨두었던 드레이크의 시체를 보내주었다.

이는 정말 큰 결심이었다. 드레이크의 시체만 잘 이용해도 길드의 위상은 엄청나게 상승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윤희주가 개인적으로 사용했더라면 윤희주 역시 전 세계의 이름을 날리는 헌터가 될 수도 있었다.

이것은 창천 길드와 윤희주가 서준의 투자가치를 그만큼 높게 잡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렇게 힘들게 결심하고 보내준 그 드레이크의 시체조차도 보낸 지 며칠 흐르지 않았다. 그런데 서준은 벌써 또 다른 시체를 원하고 있었다.

<드레이크가 필요한 건가요?>

“아뇨, 헌터 세계 물정 잘 모르는 저도 드레이크가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어요. 용족은 만나는 것도 힘들잖아요? 그냥 강하고 큰 괴수의 시체일수록 좋을 뿐이지 드레이크일 필요는 없어요.”

서준의 말을 들은 윤희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다시 드레이크의 시체를 원했다면 굉장히 곤란했을 것이다. 그건 구해다 주고 싶다고 맘대로 구할 수도 없는 물건이었다.

다행히 서준이 원하는 것은 드레이크가 아니었다. 크고 강한 괴수라면 그 종류도 굉장히 많았고 구하는데 큰 어려움이 따르지 않았다.

심지어 굉장히 크고 굉장히 강한 괴수임에도 그 시체의 쓰임새가 없어 가격이 저렴한 것들도 많았다.

오히려 그런 녀석들은 시체 처리가 곤란할 따름이었다.

<크고 강하기만 하면 괜찮은 건가요? 사실 시체 처리가 어려운 놈들도 있습니다. 굉장히 크고…. 힘도 굉장히 강하긴 한데…. 그 시체가 쓸 곳이 없어서요. 심지어 잘 썩지도 않습니다.>

“좋네요. 저한테 보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저희도 처치 곤란이었는데 잘됐네요.>

창천 길드 역시 게이트에서 그런 괴수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고 당연히 그 시체를 처리하지 못해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 서준이 부탁하니 오히려 창천 길드 쪽에서도 손해는 아니었다.

그리고 서준의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무의 먹성이라면 아무리 질긴 시체라도 잘 씹어먹을 것이었다.

<근데 정말 약초 기르는데 필요한 거 맞죠? 혹시 이상한데 쓰시는건 아니죠?>

“네.”

약초는 아니고 나무 기르는데 필요한 거였지만……. 뭐 거짓말은 아니지 않은가?

<정말이죠? 혹시 네크로맨서라거나 그런 거 아니죠?>

이제 하다 하다 별 오해를 다 하는 윤희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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