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서준이 캬앙이의 시합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번 종목 역시 선착순 신청을 받았고 많은 참가자들이 부산거리며 참가신청을 하고 있었다.
“고작 그것밖에 못 해? 뒤져 그냥!”
-쿠와아앙……
붉은 머리를 한 초인이 자신의 호랑이를 타이르고 있었다. 일전에 어흥이에게 졌던 것이 분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어흥이에 뒤를 이어서 2등이란 기록을 했는데도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새끼야! 여태까지 네가 처먹은 밥이 아깝다!”
-쿠와아앙!
초인은 붉은빛으로 아름답게 염색된 호랑이의 머리를 후려치며 말했다. 호랑이는 아팠는지 비명을 지르며 위로 뛰었다.
초인의 손을 피해서 도망을 가려 해봤지만 이미 목줄을 꽉 붙잡고 있는 초인에게서 도망갈 수는 없었다.
“뭐하는 거야?”
“에휴, 격 떨어지게 뭐하는 거야?”
초인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붉은 머리의 초인은 오히려 더 보란 듯이 목소리를 키우며 호랑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뒤져! 뒤져! 그냥 뒤져!”
-끼잉!
호랑이 역시 격렬하게 날뛰며 도망치려 했지만 별수 없었다. 아무리 맹수라고는 하지만 상대는 초인이었다.
평범한 호랑이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저런 사람이 어딜 가나 있네요.”
“그러게요. 사장님 말씀대로네요. 아이가 불쌍해요.”
서준과 호랑이 카페 사장 역시 그 광경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넓은 운동장 전체가 울릴 만큼의 소란이었다.
“주최 측에서 말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이네요?”
이 정도 소란이 벌어졌으면 주최 측에서도 말릴 법했건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사회자라는 녀석은 높은 곳에 올라앉아서 그 광경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주인의 기대를 저버린 쓸모없는 호랑이! 맞아도 쌉니다!”
그리고 그냥 바라보는 것을 떠나서 흥을 돋우고 있었다.
“과연 쓸모없는 호랑이는 주인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인가!”
쓰레기였다.
“못 봐주겠네요.”
“가죠.”
“네.”
서준은 남은 경기를 모두 포기하고 돌아가려 준비했다. 호랑이 카페 사장 역시 남은 경기를 관람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지 서준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참가자들과 관람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부분 호랑이를 기르는 사람으로서 정도를 지나쳤다 판단한 것이다.
“이 새끼가! 어디서 반항이야!”
-끼앙!
그렇다고 초인을 말리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상대가 유명 헌터인 것을 떠나서 초인간의 분쟁은 목숨을 걸어야 할 사항이었고, 그러한 상황에서 고작 호랑이 한 마리를 구하고자 목숨을 걸 사람은 없었다.
“그냥 뒤져! 이 쓸모도 없는 발! 왜 달고 다니는 거야?”
-끼아아아앙!
그때 불은 머리의 초인이 호랑이의 앞발을 발로 강하게 후려쳤다. 그 순간 운동장 안은 호랑이의 비명으로 가득 찼다.
필시 다리가 부러진 것이 분명했다.
“그만하지? 정도가 지나친 거 아닌가?”
그때 운동장 출입구 앞까지 도달했던 서준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웬만하면 서준도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참을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선 것이다.
다리가 부러질 정도였다. 단순한 훈계 수준을 지나쳤다.
“가던 길 가세요. 뒤지고 싶지 않으면. 어디 족보도 없는 새끼가.”
붉은 머리의 초인이 고개를 출입구 쪽으로 까딱거리며 말한 후 다시 호랑이의 목덜미를 잡았다. 하지만 서준은 개의치 않고 초인과 호랑이 쪽을 향해 걸어갔다.
상대가 헌터든 아니든, 목숨을 걸어야 했든 아니든 그럴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몸이 나선 것이다.
“어디서 조금 센 호랑이 주웠다고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그래, 와봐 새꺄.”
붉은 머리의 초인은 다가오는 서준을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어디 올 테면 와보란 듯이 목을 돌리며 두둑 소리를 냈다.
그러면서도 복싱 자세를 취하며 전투 준비를 했다. 그에게는 서준에 대한 정보가 없었고, 육체파 헌터인 그로서는 최선의 준비를 한 것이다.
서준이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주먹을 날리려 준비했다.
하지만 서준은 그를 그대로 지나쳐 상처를 입고 낑낑대는 호랑이에게 갔다. 서준에게는 저런 쓰레기 한 명보다는 다친 호랑이가 우선이었다.
“괜찮니?? 이거 바르면 상처가 조금은 회복될 거야.”
서준은 평소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던 초록 활력초 분말을 상처 입은 호랑이의 상처에 덕지덕지 발라주기 시작했다.
어차피 그 양은 충분했기에 귀한 초록 활력초를 아낌없이 듬뿍 발라주었다.
-꾸와아앙…….
호랑이는 부러진 앞발처럼 미쳐 회복되지 않는 곳이 아픈 와중에도 치료되는 상처가 가려워 몸을 비틀며 낑낑댔다.
“그러면 안 돼. 움직이면 다리가 더 상할 수 있어. 가만히 있어.”
-뚝!
서준은 운동장 한편에 준비되어 있던 철제의자의 다리를 부러트린 후 호랑이 앞발에 대었다. 부목 대용으로 사용할 요량이었다.
“붕대가…. 어쩔 수 없네.”
부목 대용은 어떻게 구했다지만 붕대로 사용할 만한 것은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서준은 하는 수없이 겉옷을 벗어 호랑이 다리에 묶어두었다.
임시방편이었지만 그래도 철제의자와 겉옷이면 호랑이의 다리를 지탱해주기엔 충분했다. 남은 건 병원에서 치료하면 될 뿐이었다.
어차피 초록 활력초 덕분에 눈에 보이는 상처는 다 아물었다.
“허이고! 이제 보니 부잣집 도련님이었구만? 그래서 이제 어쩌자고?”
붉은 머리의 초인이 쪼그려 앉아 호랑이를 치료하던 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초록 활력초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아무래도 어디 부잣집 도련님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초록 활력초가 그리 비싼 약초는 아니지만 구하기 힘든 것은 사실이었고, 그런 약초를 이렇게 거리낌 없이 쓰는 서준이 웃돈을 주고 초록 활력초를 구매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백 선생님. 호랑이는 제가 데려갈게요. 저희 카페에서 기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네,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서준이 치료를 다 했을 무렵 호랑이 카페 사장이 다가와 말했다. 그의 카페는 이미 여러 호랑이를 기르고 있었다. 한 마리쯤 추가된다고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옮기는 것 좀 도와주세요. 아무래도 다친 녀석이라 혼자 옮기는 건 좀 힘들 것 같네요.”
“네.”
한쪽 다리를 다친 녀석이라 그냥 끌고 갈 수는 없는 요량이었다. 다리가 땅에 닿으면 고통스러워할 게 분명했다.
호랑이 카페 사장도 역시 초인으로 일반인보다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처 입은 호랑이들 들고 갈 정도의 괴력은 지니지 못했다.
그는 정신 조작 계열의 초인이었다. 그가 호랑이를 때리지 않고도 잘 기를 수 있던 것은 호랑이들의 기분이 항상 안정되도록 조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호랑이에게 먹히는 것은 아니어서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지만…….
-꾸와아아앙……
호랑이 카페 사장이 녀석의 목줄을 잡고 걸었다. 아무래도 한쪽 다리가 불편한 녀석이라 걸을 때마다 신음을 냈다.
서준은 옆에서 호랑이가 좀 더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 순간 서준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했다. 최운혁에게 공격을 당한 이후로 처음이었다.
서준은 그 순간 위험을 직감했다. 최근에는 최운혁에게서 그 전에는 호랑이 카페에서였다. 이 감각은 서준이 위험했을 때에만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서준도 지난 두 번의 경험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이것이 서준이 지니고 있는 또 다른 능력이라는 것을.
본래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서준의 예상대로 꿀닭을 먹으며 새로운 능력을 얻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능력이 이제는 서준의 것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서준은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온몸의 감각이 찌릿찌릿한 것이 뒤통수를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남의 걸 훔쳐가! 뒤져 이 새끼야!”
역시나였다. 서준이 하는 짓을 계속해서 지켜보던 녀석은 호랑이를 끌고 가려 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린 것이다.
나름 유명한 육체파 헌터인 녀석의 주먹은 상당히 빨랐다.
이미 두 번의 경험으로 느린 시간에 익숙해졌던 서준이었지만 그런 서준에게도 빠르게 보일 정도였다.
스트레이트였다. 녀석의 어깨가 앞으로 밀어져 나오고 허리가 비틀렸다. 그러면서도 녀석의 주먹, 점처럼 보이던 그것이 점점 커지는 것이 서준을 향해 가까워져 오는 듯했다.
하지만 혼자서 다른 밀도의 시간을 쓰고 있던 서준이 그를 피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늘어진 시간 속에서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이었지만 이미 두 번이나 겪어본 상황이었다. 서준은 온몸의 근육을 쥐어짜 내며 몸을 비틀었다.
주먹은 점점 더 가까워져 왔고, 서준의 몸은 점점 더 옆을 향해 비틀어져 갔다. 그리고 주먹이 서준의 코앞에 다가선 순간 서준은 몸을 완전히 비틀 수 있었다.
-파앙!
그 순간 다시 시간이 빨라졌다. 그리고 이미 몸을 완전히 비틀었던 서준의 코앞에는 녀석의 주먹이 멈춰서 있었다.
한 스텝, 단 한 스텝으로 녀석의 주먹을 완벽하게 피해낸 것이다.
그동안 이 감각에 빠져든 서준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몸을 던지듯이 움직였던 서준이었지만 이번에는 완벽하게 몸을 제어해냈다.
엄청난 발전이었다.
“피해? 어디 족보도 없는 새끼가 내 주먹을 피해?”
얼굴이 기억에도 없던 서준이 자신의 주먹을 피하자 녀석은 분했는지 씩씩거리며 다시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역시 그 순간 서준의 시간은 홀로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원투 콤보였다. 앞 손이 먼저 서준을 향해 천천히 날아왔다. 하지만 이미 한 번 피해 본 것이었고, 서준이 피하지 못할 리 없었다.
이번에 서준은 발을 떼지 않고 허리를 뒤로 살짝 굽히는 것으로 앞 손을 피해냈다. 점점 더 다른 시간 밀도에서의 움직임이 익숙해진 것이다.
녀석의 잽이 서준의 코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서준은 놈의 뒷손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준은 앞으로 한 발 걸었다. 녀석의 뒷손이 앞으로 옴에 따라 녀석의 앞 손은 뒤로 당겨져 갔다. 서준은 그 손을 따라서 녀석을 향해 걸었다.
놈의 뒷손이 서준의 가드 역할을 충실히 해주었고 녀석의 뒷손이 서준의 귓불을 스치듯이 지나갔다.
서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녀석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느려진 시간의 틈에서 보았던 녀석의 스트레이트를 그대로 표방한 펀치였다.
어깨를 빼면서 허리를 비틀었고 그러면서 스텝을 길게 앞으로 뺐다. 그리고 놈의 뒷손이 완벽하게 펴졌을 때 서준의 오른팔도 완벽하게 펴지며 놈의 안면을 강타했다.
-콰앙!
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비록 놈의 스트레이트를 보고 따라 했던 서준이지만 처음 뻗어보는 주먹이었다.
훌륭한 자세가 나올 리 없었다. 엉망이었다. 서준의 하체에서부터 올라오던 힘은 이미 사방으로 퍼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나 완벽한 타이밍에 들어간 카운터는 비록 힘이 실리지 않았음에도 훌륭한 위력을 보여줬다.
육체파 헌터로 유명한 녀석이 비틀거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큭! 이 개새끼가!”
놈이 완전히 흥분해서 서준에게 달려들었다. 이제는 폭행이 목적이 아니었다. 서준을 완전히 죽일 기세로 주먹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법이고 뭐고 사정 봐줄 요량 없이 괴수를 상대할 때나 사용할법할 공격이 서준을 향해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