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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29화 (29/150)

29화

-캬오오오!

-크롸라라!

수십 마리의 호랑이들이 서로 위세를 뽐내며 울어대고 있다.

모두 인간에게 길러진 애완 호랑이였으며 야생 호랑이에게서는 볼 수 없는 깔끔함이 돋보였다.

-어흥! 어흥! 어흥!

-캬앙!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크릉!

서준의 어린 호랑이들도 질세라 앞발을 들어 올리며 크게 외쳤다.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서준의 호랑이들이 한껏 위세를 뽐내봤지만 귀여울 뿐이었다.

다른 호랑이들은 서준의 호랑이를 보면서 콧방귀를 끼었다.

“아동부도 있냐?”

“아니 난 못 들었는데. 구경 왔겠지 뭐.”

“그런가?”

서준의 호랑이를 보며 지나치는 자들은 서준의 호랑이를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의 호랑이들보다 더 거대한 호랑이를 기르는 녀석들도 수두룩했다.

그런 상황에 서준의 호랑이가 눈에 찰 리 없었다.

“백 선생님!”

그때 누군가 서준을 불렀다. 서준을 부른 그 사람의 옆에는 작은 아기 호랑이 두 마리가 있었다.

“소현 씨? 여기엔 어쩐 일이세요?”

김소현이었다.

“호랑이 월드컵 한다길래 구경 왔죠. 우리 애들한테 친구들도 만나게 해줄 겸.”

“그렇다기엔 겁먹은 거 같은데요?”

소현의 호랑이, 둘리와 또치는 거대한 호랑이들이 주위에서 위용을 뽐내며 울어대는 통에 벌벌 떨며 소현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서 있었다.

“하하! 강하게 키워야죠. 고양이 아니고 호랑이잖아요? 그나저나 저희 길드랑 협업하신다면서요?”

“네, 뭐 그렇게 됐네요.”

창천 길드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약초를 기를 수 있게 된 서준은 약초를 기르면서도 짬짬이 호랑이들을 훈련시켜왔다.

사실, 승부욕이 생겨버린 호랑이들이 서준이 없을 때 스스로 했던 훈련량이 더 많긴 했지만…….

그렇게 약초를 기르고 실험하던 차에 호랑이 월드컵 당일 날이 되어 이렇게 잠시 휴가를 내고 호랑이 월드컵에 참석했다.

“백 선생님은 참가자로 오신 건가요?”

“네. 우리 애들이 1등 할거에요.”

“오! 자신감!”

그렇게 서준과 김소현이 수다를 떨면서 시간 때우고 있을 무렵 호랑이 월드컵의 경기가 재개되었다.

처음 종목은 간단한 단일 종목이었다.

“지금부터 제1회! 호랑이 월드컵을 시작합니다!”

월드컵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참가자는 모두 한국인이었다. 대회 규모에 비해 쓸데없이 거창한 이름이었다.

“첫 번째 종목은 호랑이 파워 테스트입니다!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여기 보이는 펀치 머신을 누가 더 강력하게 때리는가!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호랑이가 금메달입니다!”

사회자가 가리킨 방향에는 호랑이 용으로 개조된 펀치 머신이 한 개 놓여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접수 시작합니다! 접수 기간은 단 5분입니다! 늦으면 탈락이에요!”

호랑이 월드컵은 월드컵의 참가 접수만 해두면 그 외 경기는 모두 현장접수로 이뤄지는 시스템이었다.

호랑이의 주인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참가할 경기에만 참가신청을 하면 되었다.

그리고 서준 역시 파워 테스트에 참가 신청을 했다. 요번 경기에 출장한 호랑이는 어흥이였다.

“자 그럼 번호표를 모두 배부해 드렸습니다! 이제 1번 호랑이 나와주시죠!”

-쿠와아앙!

머리를 붉은색으로 염색을 한 초인이 역시 털을 붉은빛으로 염색을 한 거대한 호랑이를 한 마리 끌고 나왔다.

아무래도 호랑이 월드컵에 참가한 호랑이 중 가장 거대한 녀석으로 보였다.

“자 그럼 펀치 날려주세요!”

한때 잘 나갔던 연예인이었던 사회자의 촌스러운 경기 진행으로 시합은 시작되었다.

-쿠와아앙!

붉은빛의 호랑이가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오른쪽 앞발을 뒤로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 순간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났다.

“굉장합니다! 굉장해요! 단 한 번의 충격으로 먼지바람이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오오!”

사회자의 싼 티 나는 진행에 참가자들의 이목이 점수판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점수판에 있는 숫자는 아주 빠른 속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0에서 100으로 100에서 150으로 그리고…….

“223점! 223점 믿을 수 없습니다! 평범한 호랑이가 223점의 기록을 내다니! 이거 육체파 초인이라도 빙의된 것일까요?”

하지만 사회자의 노력에도 주위의 반응은 없었다. 아무래도 방금 참가자가 첫 참가자라는 원인도 있었고 223점이라는 기록이 얼마나 높은 기록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면 다음 순서! 2번 호랑이 나와 주세요!”

그리고 그다음 순서의 호랑이부터는 100점대의 저 득점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102점, 107점, 153점… 심지어 82점까지……. 223점에 근접하는 기록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아! 이번 참가자는 특이하군요! 아직 성체가 되지도 않은 어린 호랑이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어린이에게 경험이라도 쌓아주자는 것이었나요?”

그러다 어흥이의 차례가 다가왔다. 사회자는 어흥이의 프로필을 보며 참가자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입을 놀렸다.

“이것 보십시오! 저 작고 깜찍한 모습을! 저 황금빛으로 빛나는 털은 타고난 것일까요? 염색한 것일까요?”

사회자에 진행에 다른 호랑이 주인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애를 데려왔네?”

“구경 온 줄 알았는데 참여한다고?”

“나 둬, 이거 한번 나선다고 다치는 것도 아니고 기분 좀 내려고 왔나 보지.”

“근데 금호인가 본데? 털이 황금빛이야.”

당연하게도 어흥이에 대한 기대는 한 한마디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직 성체까지 자라지 못한 어흥이의 크기는 월드컵에 참가한 호랑이들과 비교하면 현저히 작았다.

게다가 이 월드컵에 참여한 호랑이들은 보통의 호랑이와 비교하면 모두 거체를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그 정도 자신감은 있는 호랑이 주인들만 월드컵에 참가 신청을 했다.

-어흥! 어흥!

“꺅! 귀엽잖아! 애한테 뭐라고 하지마!”

하지만 어흥이를 무시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어흥이가 어슬렁거리며 경기장으로 걸어 나오자 어흥이의 잘생긴 외모를 보며 감탄하는 호랑이 주인들도 있었다.

“그러면 우리 어린이! 펀치 머신을 멋지게 한번 후려갈겨 주세요!”

어흥이가 펀치 머신 앞에 서자 사회자가 말했다. 하지만 펀치 머신은 성체 호랑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어흥이가 치기에는 상당히 높이가 높았다. 정상적으로는 치지 못할 높이였다.

“아 우리 어린이! 키가 너무 작아서 치지 못하는 건가요? 형아가 발판이라도 마련해줘야 하는 걸까요?”

-어흥! 어흥!

사회자가 계속해서 깐족대자 그 말을 알아들은 어흥이는 화가 났는지 신경질적으로 울어댔다.

“제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걸까요? 너무 똑똑하네요! 너무 귀엽습니다!”

하지만 사회자는 멈추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어흥이는 그대로 점프하며 온 힘을 다해 펀치 머신을 후려쳤다.

그와 동시에 툭! 하며 짧은 타격음이 들렸다.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그에 어울리지 않았다.

“오! 오! 오! 올라갑니다! 쭉쭉! 올라갑니다!”

점수판에 나타난 점수가 계속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00까지 빠르게 올라가더니 그다음엔 150을 찍었다.

그리고 속도는 조금 느려졌지만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계속 올라갑니다! 믿을 수 없습니다!”

점수는 어느새 200점을 넘어섰다. 다른 호랑이 주인들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200점을 뚫고도 멈추지 않습니다! 작은 고추가 맵습니다! 정말!”

사회자의 싼 티 나는 진행에도 점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올라갔다. 그리고 도달한 점수는 278점. 최고 기록이었다.

“굉장합니다! 278점! 현재까지 최고 기록입니다!”

장내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붉은 머리를 하고 있던 호랑이 주인도, 그 외의 자신감이 넘치던 다른 호랑이 주인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미쳤어! 미쳤어!”

“저 미모로 저렇게 세다고? 저 작은 애가?”

“어디서 샀는지 물어볼까?”

사회자와 마찬가지로 다른 호랑이 주인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입에는 한동안 어흥이의 얘기가 계속해서 오르내렸다.

“잘했어, 어흥아.”

-어흥! 어흥!

하지만 서준은 당연한 결과라는 듯 어흥이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관중석으로 물러났다.

게다가 호랑이들이 살이 찐 날 이후부터는 서준이 특훈을 시켰다. 그전부터 특별한 호랑이였는데 서준의 힘든 특훈까지 견뎌낸 어흥이다. 1등 하는 게 당연했다.

“백 선생님 대단하신데요?”

“아! 사장님! 사장님도 오셨네요?”

그때 벤치에 앉아있는 서준을 향해 누군가 다가왔다. 부산의 호랑이 카페 사장이었다.

“근데 호랑이는 안 데려오셨어요?”

“아 저는 그냥 구경 왔어요. 부산에서 서울까지 데려오는 것도 일이잖아요?”

아무래도 호랑이 카페 주인인지라 호랑이 월드컵에 관심이 있던 카페 사장은 참가 신청은 하지 않고, 김소현처럼 관람객으로 온 듯하다.

“1등 축하드려요. 어흥이 대단한데요?”

“뭘요, 이제 한 경기 했는데요.”

어흥이의 뒤로도 많은 호랑이들이 경기에 참여해 펀치 머신을 때렸으나, 어흥이의 기록은커녕 200점을 넘기는 호랑이도 없었다.

그렇게 첫 경기인 파워 테스트에서는 어흥이가 우승했다.

“그나저나 신기하네요.”

“뭐가요?”

서준은 다른 호랑이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쟤네들 사고 안 치고 가만히 있는 거요. 아무리 그래도 호랑이는 맹수잖아요? 이렇게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들이랑 있는데…. 심지어 다른 호랑이들도 이렇게 많은데 사고 안 치고 주인 말 잘 듣는 게 신기해서요.”

사실 호랑이는 맹수였고 길들이는 게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서준의 호랑이들이야 워낙 어린 시절부터 서준이 먹여살렸고, 재배지의 동물들을 먹으면서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다른 호랑이들은 그렇지 않았을 텐데 신기하게도 주인의 말을 거스르는 녀석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주인이 초인이잖아요.”

“그게 왜요?”

카페 사장은 서준의 물음에 웃으면서 답했다.

“맹수들이라도 눈치는 있어요. 대들면 죽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거죠... 그뿐이에요. 단지 죽기 싫어서 복종하는 거죠. 어릴 때부터 엄청 맞았을 거예요."

“아…….”

“저는 그게 싫어서 저렇게 안 키워요. 우리 애들이 말 안 듣고 속 썩이는 게 많긴 해도 제가 힘든 게 낫지 애들 고통받는 건 싫어요.”

사실 그랬다. 서준이 호랑이 카페에 갔을 때도 어린 호랑이들은 손님들이 직접 볼 수 있게 풀어놨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녀석들은 모두 따로 빼놔 볼 수 없게 해놨다.

호랑이 월드컵에 참여한 호랑이들처럼 컨트롤할 수 없었기에 분리해 놓았던 것이다.

“흐음…….”

서준은 생각이 많아졌다. 서준처럼 호랑이를 키우는 초인들이 모두 서준처럼 좋은 마음으로 기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흐음…. 설마? 아니겠지…….”

서준은 저 멀리 앉아서 호랑이들과 간식을 나눠 먹고 있는 김소현을 바라봤다.

설마 김소현도 그러지는 않겠지? 라며 생각 중이던 찰나에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곧바로 다음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역시 참가 신청은 선착순입니다!”

이번에는 캬앙이가 나설 차례였다.

-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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