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일단 이것도 담아 볼까?”
서준은 재배지에 널려있는 약초들을 캐고 있었다.
재배지에는 서준이 가지고 있는 약초 사전에 기재되지 않은 약초들이 많았다. 사실 약초인지 잡초인지는 연구를 해봐야 아는 거겠지만, 일단 그 쓰임새를 모르는 풀들이 굉장히 많았다.
안정초의 경우는 블로그에서 그 효능을 알아챘기 때문에 서준이 잘 활용하고 있지만 그 외의 것들은 쓰임새도 모르는 채 방치되어 있었다. 이들 역시 안정초처럼 재배할 것도 없이 뜯어서 쓰면 되는 것들이었지만 효능을 몰라 잠들어 있었다.
‘이거 가져다주면 대신 실험해 준다 이거지?’
하지만 서준은 이제 이런 것들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냈다. 창천 길드와 협약을 맺어 활로를 찾아냈다.
서준은 재배하고 창천 길드는 실험과 승인을 받는다. 이제 재배지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약초들을 활용할 방법이 생겼다.
“이것도 좀 챙기고.”
서준은 붉은빛을 내는 약초 하나를 캐서 가방에 던져 넣었다.
“이것도… 챙기자.”
이번에는 흰색의 약초를 가방에 넣었다. 그렇게 약초를 가방에 넣다 보니 어느새 가방 안에는 형형색색의 정체를 모를 약초들로 한가득이었다.
“이것들 좀 부탁할게요.”
“꽤 많네요? 참… 이런 것들은 어디서 구해오셨는지…….”
재배지에 돌아다니는 여러 약초들을 캔 서준은 창천 길드를 찾아가 건네주었다. 그중에선 윤희주가 게이트 너머에서 보았던 것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윤희주가 알기로는 서준이 게이트를 넘어간 것은 딱 한 번이었는데 이런 것들을 가져왔으니 의문스러울 만도 했다.
“네, 저희 연구팀한테 넘길게요. 아마 곧 효능을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쓸만하면 승인도 금방 떨어질 테고요."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저희는 이것들 좀 부탁드릴게요.”
서준에게 약초를 건네받은 윤희주도 서준에게 약초 종자 하나를 건네줬다.
“백 선생님이라면 잘 키워내실 거라고 믿어요.”
“맡겨만 주세요.”
“백 선생님이 어떻게 약초를 길러내는지는 묻지 않을게요. 새로운 능력을 각성하신 건지 아니면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묻지 않겠습니다.”
초인의 능력을 묻는 것은 실례였다. 특히 서준과 같이 전문적인 일을 하는 초인의 경우 그 능력이 삶의 밑천이 되기 때문에 묻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었다.
헌터들의 경우 서로 목숨을 맡긴 채 같이 전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능력 공유가 필수였지만, 동료가 아니라면 그 역시 능력을 물어서도 안 됐다.
하지만 윤희주의 경우는 고용주의 입장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피고용인인 서준의 능력을 물어도 무방했으나 묻지 않았다. 서준을 존중해줬기 때문이다.
“고마워요. 사실 말하기 좀 곤란했거든요.”
게이트를 생성하는 서준의 능력은 분명히 이질적인 능력이었다. 국가에서는 어떻게든 게이트를 닫아버리고 싶어 했다. 게이트가 열린 후 권력은 국가에서 초인에게로 서서히 넘어가고 있었고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서준의 능력이 밝혀진다면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사실 게이트 너머의 식물들을 지구에서 기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가끔 자생에 성공하는 녀석들이 있는데 그놈들 성장조건이 지랄맞은 건 유명하고요."
맞는 말이었다. 재배지의 식물들은 어째서인지 지구에 넘어오면 그 성장능력을 잃었다. 가끔가다 초록 활력초처럼 자생에 성공하는 녀석들이 있었지만 그 성장조건을 맞추기란 너무 어려웠다.
때문에 약초꾼들은 이계의 약초를 재배하지 않고 모두 손수 캐러 다녔다.
“요즘 과학자들이 말하기로는 이계의 땅이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특별한 식물들이 자라나는 거라고는 하는데……. 뭐 정확히 밝혀진 거는 없어요.”
“그런가요?”
사실 서준도 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단지 과학자들이 내세운 하나의 가설일 뿐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재배지에서는 이 약초들을 쉽게 재배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재배지에는 이미 안정초를 비롯한 이계의 약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게다가 재배지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을 먹으면 특별한 능력을 얻고 힘이 강해지는 효과도 있었다.
지구와는 다른 특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들어맞았다.
“일단은 길러볼게요.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아요. 근데 어디다 쓰는 약초인가요?”
서준은 윤희주가 건네주는 약초를 받으며 물었다. 쓰임새도 모르면서 기를 순 없었다.
나쁜 효과를 일으키는 약초일 수도, 악용될 수도 있었기에 서준은 그 쓰임새를 알아야 했다.
“보온초에요.”
“보온초요?”
“네, 게이트 너머의 환경은 천차만별이랍니다.”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게이트 너머의 세계는 사막일 수도 빙하일 수도 있었다. 심지어 바다 위에 게이트가 열려 게이트를 넘어갔던 헌터들이 모두 수장되어 죽은 적도 있었다.
일전에 서준이 넘어갔던 게이트는 다행히도 특별한 위험을 끼치는 환경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름다운 대자연이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복용하면 체온을 유지시켜줍니다. 아무리 추운 곳을 가더라도 한 시간은 버티게 해줘요.”
“극한지역을 대비한 것이네요?”
“네.”
이런 효능을 지닌 약초라면 재배해도 별 탈 없었다. 오히려 많은 헌터들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서준은 재배하기로 결심했다.
“맡겨만 주세요. 훌륭하게 잘 길러내겠습니다.”
약초 종자를 받아낸 서준은 메고 온 배낭에 잘 넣어두었다. 혹여라도 상하게 되면 큰일이었다. 이계의 약초 종자는 창천 길드라도 다시 얻어내기 힘든 것이었다.
“아! 길드장님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말씀하세요.”
서준은 이왕 이렇게 서로 돕기로 한거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사실 서준의 돈으로 해결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왕 도움을 받을 거면 이 정도 지원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괴수 사체 좀 얻을 수 있을까요?”
“괴수요?”
“네, 종류는 상관없어요. 이왕이면 엄청 거대한 녀석이면 좋겠어요. 그 수도 많으면 좋고.”
어느 순간부터 서준은 나무를 길러내기 위해 필요한 영양분을 영양제가 아닌 괴수의 사체로 대체했다. 그 효과가 차원이 다를 정도로 차이 났을뿐더러 한번 단체로 묻어두면 그를 다 흡수할 때까지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괴수의 사체는 어디다 쓰시려고요? 좀 갑작스럽네요.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안 물어보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 약초 재배에 괴수의 사체를 사용하시는 건가요?”
“비슷해요.”
윤희주가 부탁한 약초 재배에 사용하는 건 아니었지만 나무재배에 사용하는 건 맞았다. 어쨌든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아… 알겠습니다. 약국으로 보내드리면 되나요?”
“예.”
“길드 창고 재고를 확인해봐야 해서 뭘 보내드릴지는 확답은 못 해 드립니다. 어쨌든 최대한 큰 거로 한 열 구 정도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뭘요, 더 필요하면 그때 가서 말씀해주세요. 최대한 구해서 드릴게요.”
윤희주는 웃으며 답했다.
윤희주에게서 약초를 받은 서준은 약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재배지에 들어가서 약초 재배에 착수했다.
해가 잘 들고 주변에 강이 흐르는 좋은 당을 찾아서 종자를 심었다. 종자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았는지라 최대한 종자가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뤘다.
이제 이놈의 성장조건이 까다롭지만 않다면 특별한 문제 없이 재배에 성공할 것이었다.
“지구에서 못 본 녀석이니까…. 별문제 없겠지.”
그리고 보통 성장조건이 지랄맞은 녀석은 지구에서 자생에 성공했다. 과학자들에 가설에 따르면 성장조건이 까다로운 만큼 이계의 땅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힘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서라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자라난 녀석들은 어쨌든 자라나긴 했지만 특별한 힘을 먹으며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그 질이 매우 떨어진다고 한다.
서준은 서준의 초록 활력초가 다른 약초꾼들이 직접 캔 초록 활력초보다 질이 좋은 것을 그 이유라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건 지금까지 서준의 경험에 의하면 저 가설은 상당히 들어맞았다.
“어흥이 달려! 더 빨리 달려!”
-어흥! 어흥! 어흥!
“캬앙이 나무 올라타!”
-캬앙! 캬앙! 캬앙!
“크릉아! 헤엄쳐서 강 건넜다 와!”
-크릉! 크릉! 크릉!
그렇게 서준은 윤희주의 부탁대로 새로운 종자를 재배하고, 호랑이 올림픽에 대비하여 호랑이를 훈련 시켰다.
호랑이들도 호랑이 올림픽에 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승부욕이 생겼는지 서준의 훈련을 잘 따라오고 있었다.
비록 아직 성체가 되려면 더 자라야 하는 녀석들이었지만 꿀닭과 뿔토끼를 먹고 자란 녀석들의 몸놀림은 평범한 성체 호랑이를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서준은 우승할 자신이 있었다.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우승하자 애들아!”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그렇게 호랑이를 훈련하고 초록 활력초 돌연변이에 대한 실험도 계속해갈 때쯤 윤희주가 약속했던 괴수의 사체를 보내줬다.
“와…. 이 누나 스케일이 쩌네?”
서준의 약국 밖에는 거대한 괴수의 사체 다섯 구가 누워있었다. 도로를 꽉 채우고 있는 그 사체들은 다행히 잘 포장되어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목이 집중되고 신고가 들어왔을 게 분명했다.
“얘들아 따라와.”
서준은 주위에 누가 보고 있는지 확인한 후 게이트를 열어 시체들을 서둘러 집어넣었다. 그 후 호랑이들에게 조용히 속삭이며 게이트를 넘어갔다.
“와…. 미쳤다 정말.”
게이트를 넘어가 괴수 시체의 포장을 벗긴 서준은 어안이 벙벙해져 잠시 넋을 잃었다. 서준은 윤희주가 이 정도까지 해줄 줄 상상도 못 했다.
“드레이크 시체라니…….”
-어흐으응… 캬아아앙… 크르르릉…
드레이크의 시체였다. 호랑이들도 거대하고 웅장한 드레이크를 보고 놀랐는지 서준의 다리 뒤에 숨어버렸다.
드레이크라 하면 유사 용족이었다. 드래곤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에 준하는 수준의 생명체였다. 당연히 게이트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흔히 볼 수 없는 생명체였다.
물론 그를 사냥하는 것도 매우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용족이란 엄청난 전투력을 자랑했으니깐.
드레이크의 시신은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다. 뼈부터 시작해서 가죽, 이빨, 심지어 혓바닥이나 눈알까지 사용되지 않는 부위가 없었다.
무기나 갑옷, 방패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건 기본이었고 마법을 사용하는 각성자들이 마법의 촉매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당연히 엄청났다. 드레이크의 송곳니로 만든 무기는 중국의 유명 헌터 차오첸이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미국의 폴 코이그니는 드레이크의 꼬리뼈로 만든 채찍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단숨에 유명 헌터가 되었다.
윤희주는 그러한 드레이크의 시신을 다섯 구나 보내준 것이다. 비용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지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거 무기로 만들어서 쓰면… 단숨에 한국 최강자리 뺏을 수 있지 않나?”
심지어 한국에는 아직 드레이크의 신체로 만든 무기를 사용하는 헌터는 없었다. 서준이 알기로는 한국에서 드레이크를 잡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해외에서 사냥에 성공한다 해도 그것을 국외로 반출할 일은 없었다.
그러한 드레이크를 창천 길드가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시체를 서준에게 건네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 열심히 해야겠네.”
서준은 윤희주가 부탁한 보온초를 꼭 키워내겠다고 다짐하면서 드레이크의 시체를 나무 밑에 고이 묻어주었다.
“근데… 이거 안 팔고 묻으면 내 손해 아닌가?”
나무를 키우는 게 드레이크 시체를 다시 되파는 것보다 이득인지는 잘 몰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