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길드장님 다 끝냈습니다.”
<백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힘든 일이었을 텐데 덕분에 일이 수월해질 것 같아요.>
서준은 털썩 주저앉으면서 답했다.
“와…. 다리에 힘이 풀리네요. 무서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최석현 반응은 어땠습니까?>
“후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난리 났죠. 그 틈에 싹 붙여놓고 나왔습니다.”
<이제 지켜보기만 하면 되겠네요.>
서준은 스마트폰에는 서울 지도가 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지도에는 누군가의 위치 정보가 표시되어 있었다.
바로 최석현의 위치였다.
윤희주는 결사회 리더의 추적에 애를 먹고 있었다. 생포한 녀석들을 심문해 정보를 얻어내기도 했지만 쓸만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애초에 점조직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단체인 데다가 리더의 명에 의해 일방적으로 움직이던 단체였다.
그 밑의 조직원들은 서로의 복면을 쓴 얼굴만 보았을 뿐 이름조차 몰랐다. 단지 리더가 소집했을 때만 모였을 뿐이다.
그렇게 수년을 운영해온 단체였다.
“와…. 근데 초인도 아닌 최석현이 어떻게 결사회랑 접촉했나 했는데…. 그런 일이 있었네요.”
<그렇죠, 저도 심문과정 지켜보다가 놀랐습니다. 실패로 끝나나 했는데 하나 건졌네요.>
“최석현이 그놈 형이라니…. 그래서 그놈 이름이 뭐라고요?”
<최운혁입니다.>
최석현은 결사회 리더, 그러니까 최운혁의 형이었다. 최석현이 젊었을 시절, 갓 사회에 진출했던 시절에 8살이었던 어린 동생 최운혁이 실종되었다.
범죄조직에 납치되었던 것인데 그곳에서 그렇게 심부름꾼 일이나 하며 겨우겨우 살아가던 최운혁은 대침공 이후 각성하여 자신을 납치했던 범죄조직을 몰살시켰다.
그 후 잃어버린 가족 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형, 최석현을 찾아갔다.
그러나 배운 일이 그런 것밖에 없었던 최운혁은 자신을 납치했던 조직과 결국 똑같은 일을 시작하고 말았다.
이것이 약초꾼 최석현이 유명 길드들이 수년을 쫓아도 꼬리조차 잡지 못했던 결사회와 연락을 할 수 있었던 이유다.
<백 선생님이 연기를 잘 해 주신 덕분에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두 사람이 접촉하기만 기다리면 됩니다.>
“그러게요, 저 연기자나 해볼까요?”
<그건 좀…….>
윤희주는 서준에게 최석현에게 위치추적장치를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동안 최운혁과 계속해서 접촉을 해왔던 최석현이 궁지에 몰리면 다시 접촉을 시도하리라 판단했다.
최운혁이 꼭꼭 숨은 지금 그를 잡으려면 최석현의 뒤를 캐는 방법밖에 없었다. 해서 서준은 최석현에게 접근했다.
이후 서준의 말에 흥분한 최석현은 서준이 위치추적장치를 붙여놓은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서준을 쫓아냈다.
이제 최운혁을 잡는 건 시간문제였다.
“얘들아 가자.”
-어흥! 캬앙! 크릉!
마음을 추스른 서준은 호랑이들을 데리고 재배지로 넘어갔다. 긴장해 다리가 풀렸든 어쨌든 할 일은 해야 했다.
“닭잡고 놀고 있어.”
-어흥!
서준이 말하자 어흥이가 대표로 답했다. 서준은 호랑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풀어두고 초록 활력초 변종을 심어놓은 곳으로 향했다.
“으음…. 또 실패네.”
-싹은 올라왔으나 열매는 맺히지 않음. 색이 평소보다 탁한 것이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음. 잎에 붉은 반점이 있음.
서준은 식목 수첩에 새로운 기록을 적어 놓았다. 눈앞에 있는 변종은 척 보기에도 먹으면 위험해 보였다.
서준은 재배지에 약초를 심은 이후로 꾸준히 초록 활력초의 변종 양산을 위해 여러 실험을 계속해왔지만 지금껏 성공하지 못했다.
“얘도 돼지 나무처럼 괴수 먹고 크나?”
이제 하다 하다 서준은 별 이상한 생각까지 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안 써본 방법이 없어서 이런 것 말고는 남은 방법이 없었다.
“에이 설마…….”
그래도 서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땅을 파 꿀닭과 함께 변종의 종자를 같이 심었다.
-꿀닭을 같이 심음. 성공해도 화날 듯.
그리고 그 내용을 식목 수첩에 한구석에 기록했다.
#
“제1회 호랑이 올림픽?”
서준은 인터넷에 올라온 광고를 하나 읽고 있었다.
제1회 호랑이 올림픽, 호랑이들을 이용해 경주라든지 장애물 넘기 등 여러 가지 시합을 하는 듯했다.
-어흥! 어흥!
“어흥아 너도 나가보고 싶어?”
-어흥!
서준 옆에 누워서 하품하고 있던 어흥이가 관심이 생기는지 서준 옆에서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래? 그럼 캬앙이랑 크릉이는?”
-캬앙! 캬앙!
-크릉! 크릉!
“그렇다 이거지?”
캬앙이와 크릉이 역시 관심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서준은 곧바로 대회 참가 접수 원서를 써서 보냈다.
“그러면 특훈 시작이다!”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은 당황한 호랑이들을 데리고 집 앞 공원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곳에는 미끄럼틀이나 철봉등 장애물로 삼을 만한 것이 많았다.
“자 우선 가볍게 구보부터 시작합니다. 군가는 호랑이 어흥! 호랑이 어흥! 핫둘셋넷!”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호랑이들은 앞에서 달리는 서준의 뒤를 따라 신나게 울어대며 따라 달렸다. 아직까지는 힘든 훈련은 없고 산책하는 수준이었기에 호랑이들도 즐거웠는지 기쁜 표정을 하며 따라다녔다.
하지만 악마 조교 서준이 이대로 놔둘 리 없었다.
“자 호랑이 제군들! 선착순 두 명, 선착순 두 명, 저 끝까지 찍고 온다 실시!”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은 서준의 명에 따라 공원 끝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구력이 약한 보통의 고양잇과 동물들과 다르게 서준의 호랑이들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해냈다.
“꼴찌 한 크릉이는 오늘 간식 없습니다.”
-크릉! 크릉! 크릉!
당황한 크릉이가 애써 울어봤지만 소용없었다. 서준은 어흥이와 캬앙이에게 간식을 챙겨주고는 곧바로 다음 훈련을 시작했다.
“간식이 먹고 싶으면 최선을 다하도록 합니다. 자 저기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타 내가 서 있는 위치까지 오도록 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선착순 두 명 실시!”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이번에는 공원에 설치된 거대한 놀이기구를 거꾸로 주행하기 시작했다. 각도가 가파른 미끄럼틀을 거꾸로 거슬러 오른 호랑이들은 미끄럼틀 위의 원통을 통과하여 밧줄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서준이 반대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옵니다!”
-어흥? 캬앙? 크릉?
당황한 호랑이들이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다. 그리고 그 틈을 타 크릉이가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크릉! 크릉!
먼저 도착한 크릉이가 이쁜 미모를 뽐내며 서준에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간식을 달라는 표현이었다.
“이번에는 간식 준다고 한 적 없습니다. 꼴찌 한 캬앙이는 왕복 일 회 더 추가합니다!”
-크릉?
-캬앙...
어리둥절한 크릉이는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했는지 서준의 다리에 얼굴을 비볐고 캬앙이는 다시 한번 미끄럼틀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어흐으으응...
간식도 먹었고 이번에도 일등으로 들어온 어흥이는 하품을 하며 턱을 괴고 누워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재배하고 훈련하고 물건을 포장하며 배송시키기를 반복하던 무렵 윤희주에게 전화가 왔다.
<백 선생님 안녕하세요. 창천 길드 윤희주입니다.>
“네, 말씀하세요.”
그렇게 윤희주의 부름을 밭은 서준은 창천 길드 본관을 찾아갔다. 그동안 창천 길드와 계속해서 엮여왔던 서준이었지만 이렇게 길드 본관을 직접 방문한건 처음이었다.
“백 선생님! 어서 오세요!”
“사무실 좋은데요? 길드원들 출근할 맛 나겠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길드 본관을 방문한 서준을 맞이하여 길드장 윤희주가 직접 나왔다.
“이쪽으로 오시면 돼요.”
이윽고 윤희주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며 서준을 어디론가 안내했다. 버튼을 누른 후 지문인식과 카드인식까지 하는 것을 보니 보안 수준이 높은 곳으로 향하는 듯했다.
-띵
그렇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도착한 곳에는 실험복을 입은 수많은 연구원들과 엄청난 실험 장비들이 한가득이었다.
거대한 건물의 한 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었으니 그 넓이 역시 엄청났다.
“여기가 창천 길드의 연구실인가요? 대단하네요.”
“별건 아닙니다. 이제 백 선생님께서 도와만 주신다면 더욱 발전시킬 수 있어요.”
“제가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하하하, 그동안 해내신 것만 봐도 충분히 대단하신데요.”
윤희주는 서준이 불끈초의 재배를 성공한 것을 본 후 결심했다. 길드의 발전을 위해서 서준이 꼭 필요한 사람이었고, 그와 함께해야 길드가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해서 윤희주는 서준에게 창천 길드 약초 연구소와의 협업을 부탁했다.
창천 길드는 연구를 통해 알아낸 좋은 약초들을 서준에게 전달하고, 서준은 그 약초를 재배해 팔아 수익을 나눈다.
그리고 또한 서준이 재배에 성공해냈으나 개인인 서준이 제대로 파악해 내지 못한 약초들의 실험을 대행해준다.
또한 서준 개인의 실험 결과로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내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창천 길드는 그 부분을 지원할 수 있었다.
“저희 길드는 실험과 기관과의 협상을 맡고 백 선생님은 재배를 맡고 서로 힘을 합치면 국내에선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거예요.”
서준에게도 전혀 손해 보는 제안은 아니었다. 사실 그동안 재배지에서 발견한 약초들이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그 효능도 제대로 알아내지 못했고, 부작용 또한 마찬가지였다.
창천 길드에서 약초의 효능과 부작용에 대한 실험을 대신해준다면 서준이 팔 수 있는 약초의 개수도 상당히 늘어날 것이다.
“그럼 이제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서준이 묻자 윤희주가 답했다.
“지금까지 하시던 것과 크게 다를 것 없습니다. 백 선생님께서는 지금처럼 약초를 재배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실험이 필요한 약초를 가져다주셔도 되고요. 그러다가 저희가 재배를 부탁한 약초가 있다면 그를 받아 재배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판매 대금은…. 어떻게 나누죠? 단순히 퍼센트로 나누기에는 좀 복잡한 사항 같은데요?”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다. 서준이 본래부터 팔던 약초들도 있었고, 서준이 찾아낸 약초도 있었다. 하지만 창천 길드에서 건네주는 약초도 분명 생길 것이다.
이 비율들을 제대로 나누는 게 이 협상의 핵심이었다.
“수익은 나눠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길드는 이미 게이트 임무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수익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면 길드에서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거 아닌가요? 너무 저한테만 유리한 계약 같은데요?”
의아한 마음에 서준이 물었다. 길드에서 실험도 대신 해주고 허가도 대신 받아주는데 수익은 서준이 다 먹는다면 길드에서 가져가는 이득은 제로였다.
“저희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저희가 구해낸 약초든 백 선생님께서 직접 얻어낸 약초든 재배한 약초들을 저희 길드원 모두가 아니, 적어도 전투조 모두가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양을 공급받기를 원합니다.”
전투조라고 해봐야 한 길드 당 스무 명 남짓이었다. 서준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양이었다.
“이정도면 백 선생님께 아주 유리한 조건 아닌가요?”
연구에는 막대한 인력과 비용이 필요했다. 그를 모두 부담해주면서도 요구하는 양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서준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창천 길드로서도 얻는 이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준이 재배에 성공하여 전투조가 사용할 만큼의 양만을 공급받는다 하여도 그것만으로 큰 이득이었다.
서준이 재배한 약초들의 효능은 이미 직접 겪어봤고, 앞으로 재배할 것들은 더 좋을 것임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전투조가 그러한 약초들을 사용한다면 길드가 날아오를 것이란 것은 확정적인 예측이었다.
“좋습니다. 같이 해보죠.”
서준과 창천 길드의 협업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제약 산업이 크게 요동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