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서준은 초인몰에 판매글을 올렸다. 최석현과 결사회에 의해 판매 중단이 된 이후 처음으로 올리는 것이었다.
결사회가 숨어버린 후 곧바로 판매재개를 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서준은 그러지 않았다.
이왕 판매재개를 하는 김에 신제품 런칭을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게시된 서준의 판매글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초록 활력초 팝니다.>
[호랑이 약국 백선생입니다. 초록 활력초 판매 재개합니다.
연락 주세요.]
-오오오! 돌아오셨습니다!
-구매 성공! 부럽냐? 새키들아.
-아, 또 매진이네. 오랜만에 파는 건데 물량 좀 늘려주지.
-그동안 뭐하다 지금 옴? 약국 옮김 ㅅㄱ
초록 활력초는 여전히 인기 많은 품목이었다. 서준의 초록 활력초 분말은 시중에 판매되는 상품보다 훨씬 좋은 성능을 내는 데다가 가격조차 그 절반에 미치지 않았다.
그동안 비싼 값에 안 좋은 약초를 사던 헌터들은 서준의 판매글이 올라오자마자 전투적으로 구매요청을 했다.
<판매재개 기념 호랑이차 1+1 이벤트 합니다.>
[호랑이차 1개 사면 1개 더 드립니다. 내일부터는 이벤트 안 해요.]
-와... 쌌다...
-6개 샀다 평생 먹을 듯 ㅋㅋㅋ
-백선생님 덕분에 꿀잠 잡니다.
-이상 위에 놈들 PTSD 걸린 찐따 새끼들 ㅋㅋㅋ
호랑이차 역시 인기상품이었다. 게다가 초록 활력초처럼 재배에 어려움이 있는 약초도 아니었다. 길거리에 널린 걸 뜯어내기만 하면 되었다.
재배지에는 산과 들이 많았고, 그곳을 온통 덮고 있는 것이 안정초였다.
그것을 잘 말려서 차로 우려내기만 하면 호랑이차 한잔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구매자들은 익명이었지만 그들이 헌터라는 것은 세상 모두가 알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헌터들의 비밀을 지켜주면서 좋은 치료 약을 제공하는 것 그것도 서준이 가지고 있는 무기 중 하나였다.
실제로 초록 활력초보다는 호랑이차로 얻는 수익이 더 컸다.
그리고 이제 대망의 불끈초까지……. 서준이 부자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불끈초 재배 성공했습니다. 소수 정예로 모십니다.>
[한 사람한테 한 세트씩 팝니다. 높은 가격순으로 팔아요. 1시간 드립니다. 알아서 금액 찍어놓으세요.]
-와... 갓랑이 약국 갓선생님!
-불끈초 재배 성공했다고??? 구라를 쳐도 정도껏 쳐야지
-댓글 달 시간에 경매 참여해라 못 배운 것들아
-솔직히 노인 새끼들이나 필요하지 우리가 이거 왜 씀?
-└안 써봤으면 말을 마셈 ㅋㅋㅋ 진짜 신세계 경험함
그동안 서준이 약초 장사를 하면서 받았던 댓글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수의 댓글이 달렸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약초였고 공급량은 매우 적었던 약초였다.
정력에 좋다는 소문만 나면 보통의 야생동물도 멸종위기 동물이 된다는데, 불끈초는 소문으로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엄청난 효능이 있는 약초였다.
한 뿌리만 씹어도 한 달은 거뜬했다.
온라인 반응만이 폭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호랑이 약국의 전화벨은 이미 불타듯이 울리고 있어 서준은 전원을 꺼 놨다. 그렇다고 포기할 자들이 아니었다.
이제는 약국으로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러나 별수 없었다. 이미 다 팔렸다는 말에 그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개중에는 돈뭉치를 서준에게 건네며 다음에 자기 걸 따로 빼달라고 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서준은 그 돈을 받지 않았다.
그런 돈 따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미 충분히 벌고 있었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서울의 한 약사가 불끈초 재배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초인들만 접속 가능하다고 알려진 초인몰입니다.
여기 보시면 불끈초에 재배 성공했다, 판매하겠다.라는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진위 여부는 따져봐야 알 수 있겠지만, 그동안의 판매 이력을 볼 때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커 보입니다.
호랑이 약국 백선생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하는 이 약사는 그동안 초록 활력초 분말과 호랑이차라는 차를 팔고 있는데 이는 안정초로 만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초록 활력초와 안정초 역시 재배에 성공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초록 활력초의 경우는 재배법이 밝혀졌지만 그 조건이 매우 까다로워 사실상 재배가 불가능한 약초입니다. 그리고 안정초 불끈초의 경우는 재배법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게이트 너머 세계의 토양이 특별한 에너지를 품고 있어 지구에서 길러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설을 학계에선 확정적으로 믿고 있는 지금, 이계의 약초들을 길러낸 초인 약사 백선생의 앞으로 행보가 기대됩니다.
불끈초가 양산됨에 따라 대침공 더욱 심해졌던 저출산 문제가 조금은 해소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바람을 해봅니다.
김일천 기자였습니다.>
“와…. 나 뉴스 나온 거야? 얘들아, 형 뉴스 나온 거 맞지?”
-어흥! 캬앙! 크릉!
심지어 뉴스에까지 나왔다. 그만큼 불끈초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 모든 남성을 대상으로 뜨거웠다.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인터넷에는 호랑이 약국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이러다 형 연예인 되는 거 아니야?”
-어흥? 카양? 크릉?
아무래도 그건 아닌가 보다. 호랑이들도 의아한 눈으로 서준을 바라봤다.
-따르릉, 따르릉,
“불끈초 다 팔렸어요!”
약국 문이 열리며 종소리가 울리자 서준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오늘만 해도 불끈초를 사겠다며 찾아온 사람이 서른 명이 넘었다.
“택밴데요?”
“아, 죄송…. 거기 두고 가세요.”
“예,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민망하게도 택배였다. 서준은 오늘 불끈초를 팔아서 얻어낸 수익으로 자이언트 오크의 시체를 열 구를 구매했다.
트롤과는 비교도 안 되게 거대한 녀석이었고 당연하게도 그 시체의 가격도 트롤보다 몇 배는 더 비쌌다.
그런 걸 열 구나 샀으니 엄청난 돈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서준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불끈초를 계속 팔면 이 정도 돈쯤이야 손쉽게 소비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불끈초는 값이 잘 나갔으며 잘 팔렸다.
“얘들아, 놀러 가자!”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은 자이언트 오크의 시체를 가지고 호랑이들과 함께 재배지로 넘어갔다.
-부르르르, 부르르르, 부르르르,
나무가 온몸을 떨며 기쁨을 표출하고 있었다. 나무도 알아본 것이었다. 자이언트 오크가 자신이 먹을 밥이었다는걸.
“돼지 새끼…. 눈치는 빨라가주고.”
서준은 삽을 들어 나무 주위의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서준이 한 삽을 뜨자마자 눈치 빠른 호랑이들은 서준 옆에서 거들기 시작했다. 자이언트 오크의 시체 열 구를 묻으려면 상당히 깊고 넓게 파야 했지만 호랑이들과 함께라면 문제없었다.
호랑이들은 이미 땅파기에 달인이었고, 거기에 서준의 지휘가 곁들여지니 금상첨화였다.
“잘했어 애들아.”
서준은 하루하루 눈에 보일 정도로 점점 더 커가는 나무를 보며 자이언트 오크의 시체를 땅에 묻었다.
사실 시간으로 따지면 십 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이 정도밖에 자라지 않은 것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좋은 양분을 준다면 좋은 열매를 맺을 게 분명했다.
“이제 남은 건…. 최석현 그놈 처린데…….”
자이언트 오크의 시체를 묻고 약국으로 돌아온 서준은 최석현의 처리를 고민했다. 창천 길드가 찾아내었던 증거를 이용하면 사실 곧장 처리가 가능한 문제였다.
그들이 의뢰했던 내용은 명확했고, 그 의뢰처가 결사회였다. 증거와 함께 경찰에 넘기면 곧바로 처리될 문제였다.
하지만 서준은 그냥 이렇게 끝내기에는 뭔가 아쉽다고 느꼈다.
서준은 곧장 옷을 챙겨입고 일전에 받은 명함에 적혀있는 전국 약초꾼 연합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어떻게 오셨나요?”
“최석현 회장 보러 왔습니다.”
“혹시 약속하고 오셨습니까?”
으리으리하게 지어진 사무실 내부로 들어가자 데스크에 앉아있던 안내직원이 서준을 맞았다.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던 최석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
겉으로 보이던 성격과 하는 행동이 달랐던 것처럼 이런 점마저 이중적이었다.
“아니요. 백선생 왔다고 하면 알아들을 겁니다.”
“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안내직원이 수화기를 들어 이런저런 말을 하더니 곧이어 수화기를 내려놓고 서준을 안내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안내직원이 거대한 방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석현이었다.
“자네가 여기엔 무슨 일이지?”
“모르고 물어보는 건 아니죠?”
최석현이 썩은 표정을 지으며 묻자 서준도 받아쳤다. 최석현에 의해 요단강 직전까지 갔던 서준이었다. 좋은 감정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사과라도 바라는가?”
“사과라…. 참 낭만적이시네요.”
서준이 고작 사과를 받을 거였으면 직접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법의 심판에 맡겼을 것이다.
“그래, 그럼 협박이라도 하려고? 돈이라도 뜯어갈 텐가? 내 전 재산을 털어도 자네가 만족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불끈초의 재배라…. 참 대단한 일을 하셨어! 허허허…. 내가 참으로 무서운 놈을 건드렸어.”
궁지에 몰린 최석현은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도 서준이 찾아오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평범한 일상은 이제 끝이 났다는 것을, 어두운 철창 속에서 살아갈 날들이 그렇지 않은 날들보다 더 만을 수도 있음을.
“증거는 이미 다 확보해 놨습니다. 증거를 경찰에 넘기면 회장님은 이대로 끝입니다.”
서준은 윤희주에게 미리 받아두었던 증거들을 최석현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태블릿 속에 들어있던 그 증거들은 최석현이 결사회의 멤버 중 하나와 접촉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사과 상자 가득 차 있는 5만 원권 역시 사진에 정확히 찍혀있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냔 말이냐! 협박만 하지 말고 원하는 걸 말해라!”
정신을 놓아버린 최석현은 얼굴을 붉히며 서준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적반하장이네요…. 빌어도 모자랄 판에.”
“사과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는가? 빨리 원하는 걸 말해, 더는 괴롭히지 말고. 피차 편하게 목적만 이루자고.”
한껏 화를 풀어낸 최석현은 정신을 차렸는지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를 내봐야 상황이 악화하기만 한다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전국 약초꾼 연합, 이 연합을 원합니다.”
“이 새끼가! 돌아도 단단히 돌았구나! 내 이! 연합을! 어떻게 일궈냈는데! 그걸 홀라당 먹어버리겠다고!”
드디어 최석현은 이성을 완전히 잃고 소리쳤다. 직전에 화를 냈던 것은 사실 서준과의 심리전에 불과했다면 지금의 것은 진심으로 화를 낸 것이었다.
대침공 이후 모든 삶의 기반을 잃었던 최석현은 약초를 캐며 하루하루 연명해왔었다. 그러다 헌터들이 길드를 만들어 서로 힘을 합치는 것을 보고 약초꾼 동료들과 연합을 만들었다.
그리고 연합의 크기가 점점 더 커지자 힘든 시간을 함께했던 그 동료들을 모두 쳐내면서까지 연합을 홀로 먹어치웠다.
대침공 이후의 그의 인생 모두를 바쳐가며 길러냈던 연합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연합에 대한 집착은 서준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심했다.
“연합은… 제가 먹겠습니다. 오늘부터 전국 약초꾼 연합은 제가 운영하겠습니다.”
서준은 그런 연합을 최석현에게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