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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25화 (25/150)

25화

서준은 식목 수첩을 꺼내 들어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식목 수첩이란, 서준이 재배지에서 기른 식물들의 변화와 재배법 그리고 특징 등을 상세히 적어놓은 수첩이었다.

“둘레가… 상당히 두꺼워졌네?”

나뭇가지가 상당히 두꺼워졌다. 이제는 나뭇가지라고 하면 민망할 정도로 두꺼워졌다.

아무래도 트롤의 시체를 양분으로 준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

서준은 식목 수첩에 새로운 내용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괴수의 시체도 양분으로 먹음. 영양제보다 효과가 월등함.

이렇듯 서준은 식목 수첩에 사소한 변화부터 두드러지는 특징까지 모두 적어 넣었다.

길드의 일급 기밀로 약초 사전이 있듯 서준에게는 식목 수첩이 있었다.

“오늘은 영양제로 참아라. 다음에 괴수 많이 잡아다 줄게.”

서준이 나무 주위에 영양제를 이리저리 꽂으며 말하자 나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직은 뼈대만 있고 나뭇가지도, 이파리도 없는 나무였지만 두꺼워진 나무는 그 존재감을 충분히 자랑했다.

비록 자라는 데에 너무 많은 양분을 필요해 서준에게 미움받고 있지만, 다 자라나면 훌륭한 열매를 피워낼 것이 분명했다.

-부르르르릉!

서준은 곧이어 산악 바이크를 타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변종 초록초가 심겨 있는 곳이었다. 그동안 많은 변종 초록초가 자연적으로 자라고, 죽고 하는 동안 서준은 많은 실험을 했다.

그리고 역시 식목 수첩에 그 모든 기록을 적어놨다.

“오늘도 실패네……. 어렵구만, 연구원이라도 구해야 하나?”

서준은 식목 일지에 한 줄 더 추가했다.

-그동안 변종이 자라났던 환경과 최대한 비슷한 곳에 심어보았지만 실패. 다양한 환경 요인을 실험해볼 생각. 다음번에는 그늘지고 좀 더 습한 환경에 심어보자.

변종에 대한 실험까지 끝마친 서준은 산악 바이크를 타고 평범한 초록 활력초를 수확하러 돌아다녔다.

약초의 특성상 멀리멀리 떨어져서 자라나기에 수확할 때마다 시간 낭비가 여간 심한 게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변종의 재배가 꼭 필요했다.

효과도 더욱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재배 시의 약점까지 제거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우다다다다다!

바이크를 타고 이동하고 잎을 따고, 다시 바이크를 따고 잎을 따고 그리고 다시 바이크를 타고 이동하기를 반복할 무렵 호랑이들이 바이크 소리를 듣고 따라왔다.

“아이고! 이쁜 것들.”

바이크 뒤꽁무니를 일렬로 주르륵 달리며 따라오는 녀석들은 어느덧 예전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살만 뒤룩뒤룩 찐 돼랑이에서 용맹하고 날렵한 멋진 호랑이로 변했다. 이 모든 게 서준의 특훈 덕이었다.

“얘들아 잘 따라와! 이제 한군데만 가면 돼!”

이제 남은 건 단 하나, 불끈초의 수확이었다.

그렇다, 오늘이 바로 서준이 계획한 불끈초의 수확 날이었다. 불끈초의 성장 환경을 알아내는 데 성공한 서준은 곧바로 양산에 들어갔고, 불끈초의 새싹이 피어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새싹이 다 자라나리라 예측한 날이었다.

-어흥! 어흥!

불끈초를 심어둔 곳에 도착하자 어흥이가 짖었다. 어흥이도 불끈초를 어디에다 심어놨는지 기억하는 것이다.

그동안 재배지를 뺀질 나게 뛰어다녔던 호랑이들은 이미 이 일대의 지리를 모두 익혔다. 호랑이의 활동 범위가 일천 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는데 오히려 서준보다 더 먼 곳까지 나가보았을 확률도 있다.

물론 물리적인 시간이 모자라기에 그리 멀리 가지 못했겠지만.

“얘들아… 우리, 진짜로… 부자 됐어! 부자라고!”

서준은 빼곡히 솟은 불끈초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호랑이들과 함께 힘을 합쳐 열 군데로 나눠 심었던 지점에는 붉은색의 약초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이걸 뜯어서 가져다 팔기만 하면 되는 부분이었다.

특별한 조제도 필요 없었다. 날것 그 상태로 먹기만 해도 효과를 발휘하는 약초였다.

그냥 뜯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불티나게 팔려나갈 것이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약초였고, 인기도 많은 약초였다.

단지 그 물량이 매우 적어서 구하지 못할 뿐이었다. 게다가 서준이 물량을 늘린다 해도 가격이 떨어질 걱정은 없었다. 그 수요가 엄청나다는 것을 이미 서준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어흥! 어흥! 어흥!

-캬앙!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크릉!

호랑이들은 신이 나서 서준 주위를 뛰놀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서준을 부모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누구나가 그렇듯 부모가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있던 호랑이들도 절로 행복해진 것이다.

“얘들아, 오늘 맛난 거 먹을까?”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특식을 약속한 서준은 기쁜 마음으로 불끈초를 뜯어냈다. 들뜰 대로 들뜬 서준은 거침없이 불끈초를 수확해갔으며 그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 가자!”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이 게이트를 열자 어흥이와 캬앙이 그리고 크릉이 순으로 차례로 게이트를 넘어갔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서준도 호랑이들을 따라 게이트를 넘어갔다.

-딸랑딸랑, 딸랑딸랑,

서준이 게이트를 넘어가 약초들을 손질하고 있을 무렵 누군가가 약국을 찾아왔다. 평소 방문자가 거의 없던 약국인 데다가 최근 사건도 있어 긴장하며 문을 바라봤던 서준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창천 길드 전투조장 김소현이었다.

“소현 씨! 어쩐 일이세요?”

그동안 가끔씩 불쑥 찾아와 서준과 놀아주곤 했던 김소현이었다. 게다가 최근 결사회 사태로 창천 길드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엔 누군가 방문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곤 하면 귀찮아하던 서준이었는데 이번에는 진심으로 반갑게 맞을 수 있었다.

“저도 우리 애기들 데려왔어요! 이거 보세요! 둘리랑 또치예요!”

김소현은 손에 들고 있던 동물용 케이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 안에는 아주 작은 새끼 호랑이 두 마리가 호기심 많은 눈으로 케이지 밖 세상, 약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꾸아아앙!

아직 너무 어렸던 두 호랑이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 섞인 목소리로 울었다. 그 모습을 본 서준은 저도 모르게 절로 입가가 귀에 걸렸다.

어흥이와 캬앙이 그리고 크릉이의 예전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서준의 호랑이들도 어린 시절에는 저렇게 귀여울 때가 있었다.

지금은 말썽쟁이에 사고뭉치지만.

“얘네들 풀어놔도 되죠?”

-킁! 킁!

김소현은 서준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곧장 케이지를 열었다. 그 안에서 밖을 살펴보고 있던 둘리와 또치는 차마 케이지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고 코만 내밀어 냄새를 맡았다.

-어흥! 어흥!

데스크에 누워 자고 있던 어흥이도 흥미가 생겼는지 둘리와 또치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흥이도 어린아이들을 차마 어찌하진 못하고 서로 코를 맞댄 채 킁킁대며 냄새를 맡아댔다.

-캬앙! 크릉!

뒤이어 캬앙이와 크릉이도 잠에서 깨어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호랑이 카페 이후 처음 만나는 동족들이었다.

심지어 그때 만났던 호랑이들과는 비교도 못할 만큼 어린아이들이었다. 서준의 호랑이들은 김소현의 호랑이 둘리와 또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어머! 애들끼리 벌써 친해졌나 봐요! 이러다 정들어서 집에 안 간다 그러면 어쩌지!”

김소현은 아직 냄새를 맡으며 서로를 파악하고 있는 호랑이들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다시 봐도 아직 친해진 거 같지는 않았다.

“둘리랑 또치라고 그랬죠? 애들이 잘생겼네요. 수컷인가요?”

“아뇨, 둘 다 공주님인데요.”

“아, 죄송합니다.”

서준의 말실수에 김소현이 싸늘하게 답했다.

-꾸아아앙!

어흥이가 또치의 얼굴을 핥아대기 시작했다. 어흥이의 혓바닥이 이미 또치의 얼굴만 했기에 또치 얼굴 전체를 거대한 혀가 핥는 그런 모양새가 되었다.

또치는 갑작스러운 어흥이의 행동이 괴로운지 비명을 질렀다.

-꾸아아앙!

캬앙이와 크릉이도 질세라 둘리의 몸 구석구석을 핥아대기 시작했다. 이런 거 보면 호랑이도 역시 고양이와 동물이긴 한가 보다.

“애들을 많이 귀여워해 주네요. 지들도 애인 걸 모르고.”

“저 정도면 다 큰 거죠! 우리 애들도 얼른 컸으면 좋겠다.”

그 이후로 경계심을 풀은 둘리와 또치는 케이지 밖으로 아장아장 걸어 나왔다. 아직 걸음이 익숙하지 않은 두 호랑이는 미끄러운 약국 바닥에 적응이 덜 됐는지 자꾸만 넘어졌다.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의 호랑이들은 그러한 둘리와 또치의 행동이 재미있는지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꼬리를 팔랑거리며 둘리와 또치를 유도했다.

둘리와 또치는 오빠들과 언니가 꼬리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할 때마다 폴짝 뛰며 꼬리를 잡으려고 애썼다.

선배 호랑이인 서준의 호랑이들이 후배 호랑이인 둘리와 또치를 훈련 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 경험이 나중에 둘리와 또치가 사냥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역시 악마 조교 서준의 밑에서 훈련받은 호랑이들다웠다.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아! 이제 가야겠어요! 집에 가서 드라마 봐야 돼요! 안녕히 계세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소현은 휴대폰 알람이 울리자마자 둘리와 또치를 케이지 속으로 밀어 넣고는 서준의 인사는 듣지도 않은 채 약국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역시 사람은 안 변해.”

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김소현이 가고 난 후 호랑이들은 소파 위에 뭉쳐서 새근새근 졸고 있었다. 아기 호랑이들과 놀아주고 나서 피곤했던 모양이다.

서준도 남은 약초 손질을 다 끝낸 후 초인몰에 접속했다. 이제 돈을 벌 때가 다가왔다.

<불끈초 삽니다!>

[가격 불문! 개수 불문! 그냥 다 삽니다! 제발 저한테 팔아주세요!]

<불끈초 급구!>

[어디계시든 제가 직접 갑니다! 저한테 팔아주세요!]

<불끈초 따따블이요!>

[불끈초 평균 가격에 따따블로 삽니다!]

<불끈초 있어요.>

[연락 주세요.]

-저요! 저요! 저한테 쪽지 주세요!

-제가 삽니다! 돈은 달라는 대로 줄게요!

-형님! 저한테 파십시오!

-형님! 형님! 제발요!

초인몰 게시판을 확인하던 서준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초인몰 반응만 살펴봐도 불끈초를 원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었다.

산다는 글에는 그 어떤 댓글도 달리지 않았지만, 판매글에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모두 글 작성자에게 비굴하게 굴면서 제발 자기에게 팔아달라고 애원하는 꼴이었다.

게다가 그 가격도 원래부터 높았던 품목이니 서준이 몇 개만 풀어도 금세 돈을 벌 수 있을 것이었다.

“부자도 되고, 좋은 일도 하고 일석이조 일타쌍피지!”

서준은 그동안 약초를 팔면서도 좋은 일에 쓰이지 않는 약초는 팔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재배하지도 않았다.

돈을 벌려면 환각제나 각성제 등 중독성 있는 마약류를 팔았을 수도 있었다. 게이트 너머에는 지구의 것보다 훨씬 자극이 강한 약초들이 있었다.

이미 지구의 물건에는 질릴 대로 질려 역치가 높아진 자들은 그러한 물건들을 탐했다. 심지어 초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비싼 값을 주고 대리구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준은 그러한 물건들은 바라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재배법은 그것들이 훨씬 쉬웠다. 힘들게 초록 활력초를 재배할 필요 없이 그런 것을 재배했으면 지금쯤 큰돈을 만졌을 것이다.

하지만 서준은 장사꾼이기 이전에 약사였고, 그의 신념과 자존심은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서준이 판매한 초록 활력초는 많은 부상자들을 싼값에 치료할 수 있게 하였고, 호랑이차는 PTSD를 겪고 있는 헌터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판매할 불끈초도 사회 전체적으로 만연해 있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 분명했다.

돈도 벌면서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 서준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었다.

‘좋아, 그럼 글을 올려볼까?’

서준은 기쁜 미소를 지으며 초인몰에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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