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오늘 오후 강남 한복판에서 초인들 간의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현장에 계신 김익환 기자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서준은 약국 소파에 앉아서 뉴스 채널을 보고 있었다. 오늘 오후에 있었던, 서준이 연관되었던 사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네, 김익환입니다. 여기 보이는 것처럼 도로며, 전봇대며 할 거 없이 파괴된 흔적들이 보이는데요. 오늘 오후에 있었던 전투의 흔적들입니다.]
현장 취재기자는 폭발하여 잔해만 남은 버스를 가리키며 전투의 격렬함을 표현했다. 버스 파편은 원래 버스였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히 찢겨나가 있었다.
<예, 어떤 상황이 있었던 건지 설명해주시죠.>
[네, 결사회라는 범죄조직이 있습니다. 초인으로 이뤄진 범죄조직인데요, 결사회는 지난 육 년간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범죄 활동을 계속해왔습니다.
살인, 강간, 방화, 절도 등 셀 수 없이 많은 범죄를 저지른 집단입니다.]
<그렇다면 범죄조직 간의 세력다툼이 있었던 것인가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결사회와 전투를 벌인 집단은 창천, 더스트, 나이츠, 그리고 해태 이상의 네 길드의 전투조였습니다.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길드들입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길드에서 나섰다는 말인가요?
그건 경찰이 할 일이지 길드가 할 일은 아닌 거로 알고 있는데요? 월권행위가 아닙니까?>
사실 길드는 범죄자를 잡을 수 있는 체포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초창기 헌터들이 초인 범죄자들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사고를 많이 쳤고, 그 이후 체포권을 회수당했다.
지금 헌터들이 할 수 있는 건 괴수 사냥뿐이었다. 경찰들도 헌터들에게 이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정치적 공세를 많이 하고 있었다.
현재 상황에서 헌터들이 범죄사냥을 한답시고 도심에서 능력을 쓰고 다니면 크나큰 중죄로 처벌받았다.
그러한 상황에 거대 길드, 그것도 네 길드가 앞장서 이런 일을 벌였으니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에 분노한 시민단체는 이번 주말에 초인 관리법 개정에 대한 시위가 계획했다고 한다.
[그렇습니다. 네 길드가 나선 이유는 단순한 원한 관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보에 의하면 창천 길드의 전 길드장 이정환을 살해한 것이 결사회라고 합니다.
그 밖에도 다른 길드들도 이런저런 원한 관계가 얽혀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범죄조직…. 그러니까 결사회는 이번 기회에 소탕이 된 건가요?
비록 월권행위라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소탕되면 좋은 거 아닙니까? 이왕 일을 벌인 김에 잘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결사회 열다섯 중 두 명이 사망하고 세 명은 생포했으나 남은 열 명은 놓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총인원 중 삼 분의 이를 놓쳤으니 실패한 거라고 봐도 무방하겠죠.]
정말 아쉽게도 결사회를 완전히 처치하는 데에 실패했다. 결사회의 리더를 비롯해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도망쳤다. 비록 큰 상처를 입혔다지만 잡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서준은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리모컨을 세게 쥐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길드의 피해는 없었나요? 토벌에 실패한 만큼 길드의 피해도 컸을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네 길드의 전투조를 다 합쳐 여든두 명이 전투에 참여했습니다. 다행히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중상자가 서른 명이 넘게 나왔고 그중 다섯 명은 위독한 상황입니다.]
심지어 길드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여든두 명중 서른 명이 부상당했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였다.
그만큼 결사회는 강력하고 파괴력 있는 범죄조직이었다.
애초에 창천 길드 길드장을 암살할 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있는 조직이었다. 단지 최석현이 암살 의뢰를 하지 않고 탈취 의뢰를 했기에 서준이 살아있는 것이었다.
운이 좋았다.
<창천, 더스트, 나이츠, 해태 길드면 한국을 대표하는 길드들인데 그런 결과가 나왔습니까?
결사회라는 조직이 굉장한 조직인가 봅니다?>
[네, 이미 창천 길드를 비롯한 길드들이 수년째 쫓았지만 이렇게 꼬리를 잡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초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범죄조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익명의 제보자에 의하면 그동안 배후를 밝힐 수 없었던 대형 범죄들의 진짜 배후가 결사회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시민들의 피해와 월권에 대한 책임 처벌 등 앞으로 일어날…….>
뉴스를 보고 있던 서준은 텔레비전 전원을 내렸다. 이미 리모컨은 반쯤 부서져 있었다. 새로 사야 할 듯싶다.
그다지 좋은 결과는 아니었기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위안거리로 삼을만한 것은 길드 쪽에서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생각보다 많이 세네…. 80대 15 정도 되는 싸움이라 무조건 이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사회의 전투력은 서준의 생각보다 많이 강했다. 전투 장소에서 떠나오면서도 서준은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서로 간의 수 차이가 워낙 심했기에 전멸시키지 못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아니 전멸시키지 못하더라도 전부 붙잡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그런데도 열 명이나 놓쳤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뚜루루루루, 뚜루루루루,
<예, 창천 길드 길드장 윤희주입니다.>
서준은 상황을 직접 듣고 앞으로의 일도 상의할 겸 윤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저 호랑이 약국 백선생입니다.”
<백 선생님, 안 그래도 연락 드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뉴스 봤습니다. 부상자들은 괜찮습니까? 많이 다쳤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저희 길드는 괜찮습니다. 백 선생님께서 지원해주신 약초 덕분에 다들 며칠만 요양하면 털고 일어날 수 있어요. 중상자들도 모두 다른 길드 소속이라 저희는 큰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이었다. 부상자가 많다고 들었는데 창천 길드는 큰 문제 없는 듯했다. 다른 길드야 서준과 말 한마디 안 섞어본 자들이었으니 다쳤다는 게 안타깝기는 하지만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서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죄송합니다. 백 선생님께서 위험을 무릅쓰고 만들어주신 기회였는데…. 실패하고 말았네요.>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뭐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데요. 위험은 길드장님이 위험했죠, 뭐.”
<그래도 세 명이나 생포했으니 곧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 거예요. 각 길드에서 고문 기술자와 정신계통 능력 각성자들 차출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정보 얻어낼게요.
그 후에는 어떻게든 일망타진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천천히 하세요. 다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나마 위안거리는 세 명을 생포했다는 것이었다.
결사회와 전투 중 한 명을 죽이고 네 명을 사로잡았는데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그렇게 남은 게 셋이었다. 이제 길드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그들에게 정보를 뜯어낼 계획이었다.
이제 결사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리 강하다 한들 쪽수가 딸리면 답이 없다.
그동안은 정보가 없어서 잡지 못했을 뿐 이제는 시간문제였다.
“그나저나 경찰들이 난리 칠 텐데 어떻게 하실 계획이세요?”
서준은 창천 길드의 월권행위에 관해 물었다. 심하면 길드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는 크나큰 문제였다. 시위까지 일어난다니 가볍게 볼 문제는 아니었다.
서준은 진심으로 걱정했다.
<징계가 떨어지긴 할거에요. 그래도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창천 길드가 그리 호락호락한 길드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내에서도 수위에 꼽히는 길드였고, 지금까지 그들이 처치한 괴수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창천 길드를 지지했으며, 길드에서 파생되어 나온 일자리도 한둘이 아니었다.
정부에서 호락호락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다.
<뭐, 벌금만 조금 내면 해결될 거예요. 손해배상하고 벌금 내고 자숙 좀 하다 보면 끝이죠 뭐.>
“정말 다행이네요. 괜히 저 때문에 큰일 나는 줄 알았네요.”
<아니요, 백 선생님이 아니셔도 결사회는 저희가 처리했어야 하는 문제에요. 어찌 되었건 이제 놈들도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할 거예요. 당분간은 쥐 죽은 듯 숨어있을 겁니다.
백 선생님께서는 이제 예전처럼 장사 시작하셔도 별문제 없을 거예요.>
“하하,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요. 덕분에 숨통이 트이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결사회 잡으러 갈 때 연락 주세요. 최대한 지원해 드릴게요.”
놈들도 멤버 다섯을 잃는 큰 타격을 입은 데다가 부상도 입었다. 그리고 사로잡힌 일당들이 정보를 누설할 가능성도 있었다.
결사회도 이제 쉽사리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윤희주와 통화를 마친 서준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갔다.
결사회에게 택배를 약탈당하기 전, 평범했던 약초를 캐고, 약을 제조하여 팔던 평범한 약초꾼이자 약사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흥… 어흥…
-카앙… 카앙…
-크릉… 크릉…
서준이 통화를 마치자 호랑이들이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뭐? 또 밥 달라고? 너네 살찐 거를 봐!”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도 자기들이 잘못한 걸 알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하진 못하고 서준 주위를 조용히 어슬렁거렸다.
“이거 보라고, 텅텅 비었잖아!”
서준은 텅 빈 봉투를 흔들며 보여줬다. 그 안에는 꿀닭이 정말 한가득 들어있었다.
한 달을 내내 먹어도 될만한 양이었다.
그러나 서준이 잠시 워크숍을 다녀온 사이 호랑이들은 그걸 다 먹어치웠다. 고작 반나절만에.
“나는 돼랑이는 싫어! 운동해!”
서준은 어흥이의 뱃살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정말로 어흥이는 단 하루 새에 딴 호랑이가 되어 있었다.
온몸에 살이 뒤룩뒤룩 쪄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물론 다른 녀석들도 다를 건 없었다. 녀석들도 공범이었다.
“이러면 무릎에 무리 간단 말야! 따라 나와!”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서준의 호통에 기가 죽은 호랑이들은 하는 수 없이 서준을 따라나섰다.
“뛰어!”
-후다다닥! 후다닥!
호랑이들은 서준의 구령에 맞춰서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었다.
약국 근처에 있는 한적한 놀이터에서 놀이기구를 오르고, 넘어 다니며 축적된 지방을 빼고 있었다.
“걷지 않습니다. 전속력으로 달립니다.”
-어흐으응…
-캬아아앙…
-크르르릉…
계속되는 훈련에 호랑이들은 힘이 드는지 축 처진 목소리를 하며 서준을 간절하게 바라봤다.
하지만 그런 호랑이들의 애원에도 서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호랑이들의 건강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꾀부리지 않습니다. 앞만 보고 달립니다.”
호랑이들은 애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발이 보입니다. 발이 보이지 않도록 더 빨리 달립니다.”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은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호랑이들의 뱃살을 보며 더욱 훈련에 박차를 가했다.
“다시는 돼랑이가 되지 않습니다! 복명복창하십시오!”
-어흥! 어흥! 어흥!
-캬앙!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크릉!
악마 조교 서준의 말에 호랑이들은 크게 답하며 더욱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호랑이들은 서서히 예전 날렵했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