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약사 백선생-23화 (23/150)

23화

“백 선생! 정말 후회 안 할 텐가? 이대로 나가면 정말 끝이야 끝!”

워크숍에 더 있어봐야 기분만 나빠질 거라 판단한 서준이 자리를 뜨려 하자 최석현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다른 약초꾼들은 무슨 일이냐며 쳐다보았지만 최석현이 한 번 노려보자 무서운 듯 눈을 피했다.

정말 푸근해 보였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무서운 남자였다. 처음 만난 날 보였던 그 친절은 모두 가식이었던 걸까?

“여기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요. 그럼 다음에 보지 맙시다. 만나면 괜히 기분만 나빠질 거 같은데 앞으로 나 봐도 모른 체하세요. 쭈욱 못 본 체하며 삽시다. 서로.”

서준의 장사를 방해하고, 지금은 협박까지 하고 있는 놈이었다. 결사회라는 범죄조직을 끼고 있었기에 사실상 목숨을 인질로 걸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그런 최석현을 상대하는 서준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언제나 밝았던 서준도 최석현을 마주하니 인상이 찌푸려졌다.

서준은 길을 막고 있는 최석현의 어깨를 손으로 밀어내며 호텔을 나섰다.

-띡!

호텔에서 나온 서준은 약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사실 서준은 아직 운전면허를 따지 못해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다.

“면허나 딸까…. 어차피 당분간 장사도 못 해서 시간도 남는데.”

휴대폰을 켜 약국 주변 운전면허학원을 찾던 서준은 갑작스레 온몸에 닭살이 돋는 걸 느꼈다. 기이한 감각이었다.

지난번 부산 호랑이 카페에서 호랑이의 공격을 받기 전에 느꼈던 그러한 감각이었다.

‘또야, 이 감각…. 저번에도 느낀 적 있어.’

서준 주변의 시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서준 옆에 앉은 낯이 익은 사람의 모습, 김소현이었다.

그녀의 행동이 느려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절반 정도 속도인 것이 어느새 또 절반을, 그리도 다시 절반을…….

앞자리의 앉은 사람이 휴대폰을 보며 움직이던 손가락의 움직임도 점점 느려진다.

그리고 갑작스레 서준의 몸이 앞으로 쏠리기 시작한다. 서준은 반사적으로 버스 기사를 바라봤다.

역시나 버스 맨 앞에 앉아있는 버스 기사의 움직임이 눈에 훤히 보인다. 그의 발은 브레이크 페달 위에 올라가 있었고, 그것을 힘껏 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급브레이크를 밟았다는 건 무언가 버스 앞에 튀어나왔다는 뜻, 서준은 무의식적으로 버스의 앞 유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역시나, 웬 사람 하나가 버스를 바라본 채 길을 막고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는 그의 어깨를 따라가 보니 그의 손에는 기다란 파이프 하나가 들려있었다.

‘결사회…. 드디어, 시작된 건가? 근데 왜 시간은 자꾸 느리게 흐르는 거야?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여!’

그의 팔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름다운 호를 그렸고 커다란 파이프가 버스를 향해 가까워오기 시작했다.

그 모든 장면을 느리게 느끼고 있던 서준은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저 파이프가 향하는 방향의 끝에 자신이 서있다는 것을. 상념에 잠겨있을 틈이 없었다.

-쿠아아앙!

파이프가 유리를 깨부수고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늘어진 시간 속에서 서준은 유리 파편 하나하나가 부산스레 휘날리는 것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젠장! 피해야 해!’

파이프가 조금씩 가까워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파이프였지만 서준의 몸 역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사고는 평소처럼 돌아갔지만 서준의 몸은 주변의 느려진 시간처럼 느릿느릿 움직였다.

마치 서준의 사고만이 다른 밀도에 있는 듯했다.

서준은 우주에서 유영하듯 온몸의 힘을 쥐어 짜낸 후 반동을 만들어 튕겨냈다. 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보다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기 위하여 온몸의 근육을 쥐어짜 몸을 옆으로 밀어냈다.

-콰아아앙!

서준의 볼을 스치듯이 지나친 파이프는 버스 뒤판을 뚫고 그대로 날아갔다. 조금이라도, 단 1인치라도 덜 움직였다면 서준은 평생 얼굴에 큰 흉터를 지고 살아갈 뻔했다.

“허억, 허억, 허억.”

서준이 위기에서 벗어나자 느려졌던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 시간으로 돌아왔다. 습격할 걸 예상하고 대비하고 있긴 했지만 실제로 닥치니 생각보다 무서웠다.

서준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대침공 당일 괴수를 만났을 때도, 재배지에서 강철곰을 만났을 때도 이 정도로 무섭지는 않았다.

방금의 서준은 죽음의 늪에 몸을 절반 정도는 담갔다 빠져나왔다고 해도 될 만큼 정말로 위험했다.

-우당탕탕!

파이프를 던진 남자를 필두로 복면을 쓴 사내들이 버스 문을 부수고 버스 안으로 난입했다. 그 수는 총 열다섯으로 버스가 좁게 느껴질 만큼 많은 수였고,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집중! 집중!’

서준은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곧바로 게이트 속으로 도망가기 위해 집중에 집중을 더했다.

조금 전에는 갑작스레 시간이 느려져 대응을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파이프가 날아오든 유성이 떨어지든 다 피해낼 자신이 있었다.

“이봐, 네가 백 선생 맞지? 아까는 용케 잘 피하더라? 약초꾼 주제에 제법이야?”

서준에게 파이프를 던졌던 복면인이 서준을 바라보며 능글맞게 물었다. 긴장이라고는 단 하나도 하지 않은 눈치였다.

하긴 약초꾼 상대로 긴장하는 범죄조직이 있을 리가 없다.

“니들이 결사회냐?”

“허! 우리를 알고 있어? 대단한데?”

놈은 서준이 결사회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듯했다. 최석현이 서준을 연합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협박하긴 했지만 결사회에 관한 단어는 단 한 글자도 꺼낸 적 없었다. 단지 위협을 했을 뿐이다.

그만큼 그들은 보안이 철저한 단체였고 입단속도 확실한 단체였다.

그들은 당연하게도 서준이 자신들의 정체는 상상도 못 한 체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준은 자신들을 알고있었고, 겁조차 먹지 않고 당당했다. 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됐고, 내가 너네를 알고 있다는 건 너네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소리도 되는 거 알지? 이거 함정이야, 개새끼야.”

목숨의 위협을 느껴서였을까? 흥분한 서준의 입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버스 기사를 비롯한 버스에 타고 있던 모든 승객이 숨겨두었던 무기를 꺼내 들어 그들을 향해 겨눴다.

비좁았던 버스는 순식간에 결사회를 포함해 서른 명에 가까운 초인들이 서로 무기를 겨누고 서 있는 전장이 되었다.

단 한 걸음이면 바로 공격 범위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하하하하! 이 버스 자체가 위장이었던 것인가?”

그렇다 이 버스 자체가 사실 위장이었다. 서준과 창천 길드는 워크숍에서 분명 녀석들이 무언가를 꾸밀 것이라 생각했고 서준 몸에 도청기를 달아놨다. 애초에 서준을 워크숍으로 부른 것부터가 수상했다.

필시 회유가 되지 않는다면 제거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도청장치로 최석현의 말을 엿듣던 윤희주는 서준의 귀갓길에 일이 터질 걸 예상하고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이 버스 안에는 창천 길드의 전투 조원들이 승객으로 가장해 숨어있었다. 심지어 버스 기사 역시 헌터였다.

“어이 결사회 개새끼들아, 내가 니들 잡으려고 4년간 뺑이 쳤어. 너넨 오늘이 이승에서 마지막 날이니까 기도 올려라.”

버스 기사로 위장했던 헌터가 무기를 치켜들며 말했다. 그 역시 창천 길드의 창립멤버로서 전 길드장의 죽음에 크나큰 슬픔을 느꼈고, 복수심에 가득 차 있던 자중 하나였다.

나머지 길드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 길드장은 신임받고 존경받는 길드장이었고 그런 그를 죽인 결사회를 창천 길드 모두가 증오했다.

-끼익, 끼익, 끼이이이익!

버스 밖에서 커다란 트럭 세 대가 멈춰섰다. 그리고 각각의 트럭 짐칸에서 무기를 든 헌터들이 튀어나왔다.

각각 더스트, 나이츠, 해태 길드의 전투조원들이었다. 그들 길드 역시 다를 바 없었다.

동료들이 죽었든, 크게 다쳤든 모두 결사대와 연관이 있는 길드였다. 당연하게도 그들 또한 결사회에 원한을 가지고 있었고 윤희주가 연락하자 모두 달려온 것이다.

이로써 결사회대 창천, 더스트, 나이츠 그리고 해태 길드의 4대 1 전투가 시작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 길드의 전투조원들은 결사회를 향해 달려들었다. 비좁은 버스안에서 창천길드와 결사회가 엉키기 시작했고, 그 비좁은 틈을 다른 길드원들이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길드들이었다. 게다가 그런 길드의 전투요원 즉, 최정예 요원이었다. 이런 비좁은 공간에서도 충분히 잘 싸울 수 있었다.

서준은 결사회가 그들과 싸우는 틈에 버스에서 빠져나왔다. 여기서 서준이 싸울 이유는 없었다. 서준은 약초꾼일 뿐이었고, 싸움은 싸움꾼에게 맡기면 된다.

“하하하하하하하!”

그렇게 싸움이 계속되는 순간 서준에게 파이프를 던졌던 복면인이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강력한 폭발과 함께 버스가 터져버렸고 그 안에 있던 모두가 튕겨 나왔다.

만약 서준이 버스에서 조금만 늦게 내렸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그래! 우리가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나! 하하하하! 조사가 미흡했어! 그저 평범한 약초꾼인 줄로만 알았거늘! 길드와 이런 긴말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니! 뒤에서 이런 수작을 벌이고 있었다니!”

그 폭발로 인해 결사회와 길드원들 가릴 거 없이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복면인과 결사회는 상처따위 신경도 쓰지 않은체 거리낌 없이 길드원들을 향해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 있는 초인 범죄조직 중 수위를 다투는 범죄조직이었다. 철저하게 관리된 시스템에서 전투를 치러왔던 길드의 헌터들과는 달랐다.

이런 난전, 게다가 초인끼리의 전투에 이미 익숙한 듯했다. 대부분의 전투는 괴수 상대로 해오던 길드원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결사회 중 리더로 보였던 복면인이 주먹을 날릴 때면 엄청난 굉음과 함께 큰 폭발이 일어났다. 버스를 폭발시켰던 그 능력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서준에게도 충격이 느껴질 정도의 위력이었다.

“백 선생님! 이쪽으로 오세요!”

익숙한 목소리에 서준이 뒤를 바라보니 윤희주가 있었다. 그녀의 최우선 임무는 백서준의 안전 보장이었기에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길드장님! 저놈들 생각보다 반항이 거세요! 이러다가 큰일 나겠어요.”

“이 정도는 각오했습니다. 그보다 백 선생님께서는 집으로 귀가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호위 병력은 붙여드리겠습니다. 이곳에 있으면 너무 위험합니다.”

전투 능력이 없는 서준이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 이미 큰 방해가 되었다. 윤희주의 움직임은 서준을 보호하기 위해 제약될 수밖에 없었고, 길드의 최고 전투 요원인 길드장이 싸우지 못한다는 건 큰 손해를 뜻했다.

서준이 없어야 윤희주도 전투에 난입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우선 감사 인사는 나중에 드릴게요! 일단 이거 받으세요! 그리고 다치지 마세요!”

서준은 메고 있던 가방을 윤희주에게 건네며 최대한 빨리 달렸다. 전투 장소에서 조금이라도 빠르게 멀어지는 게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 이렇게나 많이….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윤희주는 멀어지는 서준을 보며 외쳤다.

그 배낭 속에는 서준이 그동안 장사를 못 하여 쟁여두었던 초록 활력초 분말이 가득 들어있었다.

이윽고 지원팀에게 배낭을 건네준 윤희주는 결사회 리더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