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서준은 지금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었다. 아마 호랑이를 키운 이래로 최대의 고민이었을 것이다.
서준은 계속해서 안절부절하다 결국 마음을 굳게 먹고 호랑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정말 혼자 있을 수 있어?”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호랑이들은 믿어달라는 듯이 가슴을 펴며 당당하게 포효했다. 하지만 녀석들의 그 표정이 오히려 서준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왠지 무언가 작당을 꾸미는 것 같았다.
“아… 진짜 불안한데…….”
서준의 고민거리는 워크숍에 호랑이를 데려가야 하는가 마는가였다.
애초에 워크숍에 동물을 데려가도 되는지 의문이었지만, 그렇다고 놓고 가기에는 너무 불안했다.
호랑이들이 워낙에 사고뭉치라 서준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 둔다면 끊임없이 사고를 칠 게 분명했다.
이번에는 텔레비전 하나 박살 나는 정도에서 안 끝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서준은 이 사고뭉치 호랑이들과 함께 한 날 이후 호랑이들을 떼놓고 어디 간 적이 없었다.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는 모두 배송을 시켰고, 산책할 때도 같이 나갔다.
호랑이들이 서준의 시야 밖에 있는 시간은 오로지 재배지에서뿐이었다.
그곳은 부숴 먹을 것도 없는 자연 그 자체였으니깐.
“하아… 이러다가 습격이라도 받으면… 안 되는데.”
호랑이들을 두고 워크숍에 갔다가 서준이 습격이라도 받으면 더욱 큰일이었다.
물론 서준의 안전은 문제없었다. 게이트로 도망가면 그만이었으니,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호랑이들은 서준이 돌아올 때까지 굶을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 속에서 하루만 숨어있어도 호랑이들은 100일을 굶어야 했다.
“너네 재배지에 가 있을래?”
-어흥! 어흥! 어흥!
-캬앙!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크릉!
재배지에 가 있을 거냐는 물음에 호랑이들은 신이 나서 소리치며 뛰어다녔다.
“아니다, 이건 안돼.”
하지만 기각이었다. 불가능했다. 호랑이들을 재배지에 넣어둔다면 워크숍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호랑이들이 너무 커버 린다.
모든 생명체는 어릴수록 귀여운 법, 서준은 고작 이런 일 때문에 호랑이들의 어린 시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너네 정말 혼자 있을 수 있지?”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호랑이들은 벌써부터 사고 칠 생각에 신이 났는지 이리저리 방방 뛰며 즐거워했다.
서준은 냉장고에서 꿀닭을 한 포대 꺼낸 후 데스크 옆에 세워두었다.
"셋 다 이리 와 봐."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이 말하자 어흥이와 캬앙이 그리고 크릉이 셋 모두 서준의 앞에 나란히 앉았다.
지금 말을 잘 들어 서준을 방심시키기 위한 속셈이었다.
“꼭 한 끼에 한 마리만 먹어야 해? 나 이거 몇 마린지 다 기억하고 있어. 왔을 때 개수 안 맞으면 진짜 혼날 거야. 알겠지?”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은 우렁차게 답했다. 대답은 참 잘한다.
“믿어도 되지? 형 개수 다 세놨어.”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은 불안한 마음을 뒤로한 채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호랑이들을 혼자 둔 채로 약국을 나섰다.
‘오! 상당히 잘 해놨는데?’
워크숍 장소에 도착한 서준은 상당히 놀랐다. 지난번에 만났던 최석현의 모습은 상당히 후줄근했다.
정말 산속에서 살면서 약초나 캐고 다니는 약초꾼 정도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워크숍 장소부터 일단 고급 호텔이었다. 행색과는 다르게 통이 큰 모양이었다.
“음, 맛있네? 좋네, 좋아.”
다과도 입맛에 맞는 것이 너무 좋았다. 서준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다과를 집어 먹었다.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었기에 서준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관심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서준이 백선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다른 약초꾼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진짜 약초 잘 캘 거 같은 사람들만 왔네.’
서준도 편한 옷차림으로 오기는 했지만, 이곳에 모인 약초꾼들은 더 했다.
죄다 등산복을 입었고, 그를 입고 산을 많이 탔다는 걸 보여주듯 곳곳이 헤져있었다.
고급 호텔에서 열리는 워크숍답지 않게 그 구성원들의 면면은 화려하지 않았다.
호텔을 이용하러 온 다른 고객들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하하하! 내가 어제 약초밭 하나 찾았잖아, 그것만 다 팔아도 석 달은 놀고먹을걸?”
“어이구, 나는 어제 산삼 세 뿌리나 캤는걸? 적어도 오십 년은 돼 보이더라.”
“아이고 이놈들, 허풍은.”
약초꾼들은 이미 서로 안면을 트고 있었는지 삼삼오오 모여서 즐겁게 떠들고 있었다.
몸이 고된 일인지라 서로 동질감이 강했고, 전국 약초꾼 연합원이라는 소속감도 강했다.
“쯧쯧 아차산 놈들 시끄러운 건 알아줘야 해.”
“그러게 말이야, 그러니까 그런 뒷동산에서 노는 거지. 우리랑은 노는 물이 달라.”
“그러니깐, 고작 산삼 캔 거로 저리 신이 났으니 쯧쯧.”
그렇지만 그들은 서로 활동하는 산에 따라 파벌이 나뉜 듯 서로 흉을 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활동구역이 겹치는 경우는 서로 위험할 때 돕고 같이 은신처를 만들어 생활도 하며 친해졌지만, 활동구역이 다른 경우에는 동종업계 경쟁자일 뿐이었다.
-톡톡,
서준이 다과를 즐기며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마이크를 툭툭 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자리에 착석하여 주십시오. 전국 약초꾼 연합 연합장 최석현 님 오십니다.”
최석현이 온다는 말에 모든 약초꾼들이 원탁을 하나씩 잡고 삼사 오오 모여서 앉기 시작했다.
딴짓을 하는 약초꾼은 한 명도 없었다. 아무래도 최석현이 기강을 꽉 잡고 있는듯했다.
서준도 가까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원래 앉아있던 천마산 약초꾼들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서준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아는 사람 없는 서준은 어디에 앉아도 이런 취급이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저 아저씨 생각보다 대단하네… 처음 본 날엔 그냥 성격 좋은 아저씨라고 생각했는데, 약초꾼들 확실히 휘어잡았네.’
서준이 자리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실 때쯤 최석현이 단상 위로 올라왔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 셋 넷.”
최석현은 마이크에 대고 이런저런 소리를 하더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연합장 최석현입니다. 우선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약초꾼 여러분들 감사드립니다.
지금 현재, 많은 약초꾼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대침공이래 가장 큰 위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이기적인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약초꾼들이 배를 곯고 있습니다.”
최석현은 꼭 서준을 비난하듯이 서준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미친놈, 뭔 개소리래?’
하지만 서준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 역시 눈을 피하지 않고 최석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저희 약초꾼 연합은 이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대책을 강구했습니다. 우리 약초꾼들끼리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최석현은 PPT를 넘기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첫째로 우선, 모든 유통은 전국 약초꾼 연합에서 관리하겠습니다.
약초꾼 여러분들께선 이제 고생고생하며 약초를 팔러 다니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약초를 캐는 데에만 집중을 하시면 우리가 그 약초들을 좋은 값에 팔아드리겠습니다.”
서준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최석현을 지켜봤다. 어디까지 개소리를 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최석현은 다시금 PPT를 넘기며 말했다.
“둘째로 약초 정찰제를 시행하겠습니다. 품질 기준을 정한 후 약초에 등급을 매기겠습니다.
그리고 같은 등급의 약초는 똑같은 가격으로 팔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이 사태는 이기적인 누군가가 치킨게임을 시도했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좋은 품질의 약초를 싼값에 팔아치워 여러분들이 지금 굶고 계신 겁니다.
약초 정찰제를 시행해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최석현의 말에 서준은 코웃음을 쳤다.
서준은 고품질의 약초를 원하는 만큼 공급할 능력이 있었고, 적당한 가격을 메겼을 뿐이었다.
‘애초에 나는 왜 부른 거야? 연합원도 아닌데.’
재배를 하지 못해 야생에서 뜯어낸 저품질의 약초를 비싸게 파는 놈들이 불만을 쏟아낼 상황은 아니었다.
능력 있는 서준이,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에 내놓았을 뿐이다.
“이하의 세부 사항은 나눠드린 팸플릿에 적혀있습니다. 저만 믿고 따라와 주신다면 약초꾼 여러분들이 더 이상 배곯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최석현이 인사를 마치며 내려오자 약초꾼들은 삼삼오오 모여 토의를 하기 시작했다.
이게 맞네, 아니 이건 그래도 아니야 하며 말하는 약초꾼들은 이제 파벌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다 같이 모여 얘기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최석현의 수완도 만만히 볼 건 아니었다. 그의 말은 정돈되지 않아 거칠었지만 그의 카리스마는 충분히 통했다.
“백 선생 맞지? 오랜만이네, 나 기억하지? 지리산에서 만났었잖아. 그때는 네가 백 선생인 줄 몰랐지 뭐야. 그때 지리산에서 봤을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때 최석현이 서준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네요, 아저씨. 아저씨가 연합장이었다니… 저도 못 알아봤네요.”
서준에게 인사를 건넨 최석현은 크게 웃더니 서준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하하하! 도둑질당했다며? 안됐네…. 힘들게 구한 약초들일 텐데. 앞으로 어떡할 계획이야? 우리 연합에 들어오면 보호받을 수 있어.”
“그럴 일 없습니다.”
최석현의 속셈은 뻔했다. 서준을 연합으로 끌어들여 서준의 약초를 판 대금의 수수료를 떼고, 서준을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서준 역시 그 사실을 훤히 알고 있었다.
“재배가 사실상 불가능으로 판명 난 초록 활력초를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양을 구하고, 거기다가 그런 퀄리티로 양산해내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혼자 막 나가서 되겠어?
앞으로도 그러면 계속 도둑질당할 거라고, 너만 힘들어지는 거야. 우리 연합 들어오면 안전해진다니까?”
“역시, 아저씨가 꾸민 짓이었네요.”
최석현은 배후에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일부러 흘리기라도 하듯 서준을 도발했다.
서준의 능력으로는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초록 활력초 캐려고 사람 몇을 쓰는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장사 못 해서 그거 유지비 감당되겠어?”
“걱정할 거 없습니다.”
아무래도 최석현은 서준이 사람을 써 초록 활력초를 수급한다고 생각했다. 재배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의심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더니 최석현이 서준에게 더욱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귓가에 속삭이기 시작했다.
“거절하면 오늘 집에 돌아가다가 다칠 수도 있는데? 생각 잘 해봐, 나는 저기서 밥 좀 먹고 있을 테니. 생각 바뀌면 언제든 와서 말하라고. 나는 마음씨가 넓은 사람이니까.”
습격을 예고하며 귓가에 속삭이던 최석현은 비릿하게 웃다가 자리를 떴다.
‘왜, 습격이라도 하려고? 그게 내가 바라던 바다.’
하지만 오히려 서준은 그를 원하고 있었다.
결사회의 꼬리를 잡기 위해서는 그들이 움직여줘야 했으니깐.
대비는 충분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