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약사 백선생-18화 (18/150)

18화

서준은 오랜만에 호랑이들을 데리고 집 밖을 나왔다. 사실 호랑이들과 집 밖 외출은 자주 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 범위가 동네 한 바퀴 정도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느덧 동네 주민들에게도 익숙해졌다.

주민들은 본래라면 마주치자마자 기겁을 하며 도망쳐야 하는 호랑이들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귀여워하며 쓰다듬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얘들아 날뛰지 말고 조심해야 해! 사람들 무서워한다. 알겠지?”

하지만 지금 서준은 부산을 가기 위해 KTX를 타러 가는 중이었고, 자연스레 동네를 벗어난 범위까지 나오게 되었다.

물론 택시를 탄다든지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서준은 호랑이들을 산책시키기 위해 걷는 것을 선택했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호랑이들은 신이 나서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주위를 마구 뛰어다녔다.

“어머! 저거 봐, 고양이가 꼭 호랑이처럼 생겼네?”

“와악! 진짜 호랑이잖아!”

당연히 자연스레 서준의 호랑이들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초인들이 호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지만 그것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으며 일반인들이 접하기는 힘든 문화였다.

그런 와중에 도심에서 세 마리의 호랑이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괜찮아요, 안 물어요.”

그럴 때마다 서준은 그들을 하나씩 안심시켰고,

-어흥! 캬앙! 크릉!

똑똑했던 호랑이들은 그때마다 멋진 울음소리를 내며 그들의 마음을 녹였다.

“와! 진짜 안무나 보네? 이거 봐, 얘네들 엄청 똑똑해.”

“와… 귀엽다… 한 번 만져봐도 돼요?”

그리고 안전이 확보된 호랑이들은 당연히 인기 만점이었다.

늠름하고 귀여운 호랑이들을 보고 넘어갈 수 있을 리 없었다.

호랑이는 위험하기 때문에 기르지 않는 것뿐이지, 안전만 확보된다면 그 어떤 동물보다 인기가 많을 것이 당연했다.

귀여움과 위엄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존재를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와… 진짜 귀엽다. 나도 한 마리 기르고 싶다.”

“한번 시도해 보세요. 후회는 안 할걸요?”

“제가 초인이 아니라서… 솔직히 무리죠. 동물원에나 가서 봐야죠, 뭐.”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씩 상대하다 보니 어느덧 역전에 도착할 수 있었고 서준은 두 자리를 끊어 안쪽엔 호랑이를 앉혀놨다.

“말썽 피우지 말고 조금만 자고 있어 얘들아. 형이 좋은 곳 데려다줄게.”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서준이 이렇듯 호랑이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향하는 이유는 부산에 있는 호랑이 카페에 가기 위함이었다.

한국의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살아남에 따라 호랑이들도 자연스럽게 이 땅 위로 돌아왔다. 일반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신비롭고 위험한 동물이지만 예전처럼 보기 힘든 그런 동물이 아니었다.

단지 기르지 못할 뿐이었다.

한 초인이 본래 흔히 있었던 고양이 카페, 강아지 카페처럼 부산에다 호랑이 카페를 만들었다. 그곳에는 직접 만지며 느낄 수 있는 새끼 호랑이들이 있었다.

위험이 있는 성체 호랑이들은 물론 따로 격리해놨지만 헌터증을 제시하면 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서준은 그동안 셋이서만 외롭게 자라던 호랑이들에게 동족의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마침 택배를 강탈해간 도둑 덕분에 의도치 않게 휴가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모처럼의 휴가를 활용키로 한 것이었다.

‘다녀왔을 때는 범인이 잡혀있었으면 좋겠네.’

어차피 서준이 용써봐야 범인을 잡는 것은 요원했다.

‘경찰도 못 잡는 걸 내가 어떻게 잡아?’

두 번의 범행에도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경찰이었다. 서준이 그런 용의주도한 놈을 잡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기에 조건을 걸어가면서까지 창천 길드에게 맡긴 것이었다.

원래 재주는 곰이 부리는 것이다. 힘들게 직접 뛸 필요 없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채 잠시 잠들었던 서준은 어느덧 부산에 도착할 수 있었고, 곧바로 택시를 잡고 호랑이 카페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호랑이 데리고 들어가도 되죠?”

“물론이죠! 대신 어린아이들 물지 않게 주의 주셔야 합니다,”

서준의 호랑이는 어느덧 성체의 절반 수준까지 몸집이 커진 상태였다. 호랑이 카페에서 내놓은 호랑이들보다 훨씬 큰 크기였으니 주의가 필요했다.

다행히 호랑이 카페 주인은 서준의 호랑이들이 잘 길들여진 아이들이란 걸 한눈에 알아챘고 입장을 허락해줬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서준의 호랑이들이 새끼 호랑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들어갔다. 나와 만난 이후 처음 보는 동족들이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호랑이들은 신이 나서 카페에 있던 새끼 호랑이들을 핥고, 물고 때리며 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몸집이 훨씬 크다 보니 이곳에선 서준의 호랑이들이 왕이었다.

“호랑이들이 잘 컸네요.”

“그럼요, 들인 밥값이 얼만데.”

카페 주인도 서준의 호랑이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애초에 호랑이가 좋아서 호랑이 카페를 시작했으니 다른 호랑이들을 보면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한 마리는 금호네요? 보기 쉽지 않은 건데.”

“뭐 안 좋거나 한 건 아니죠?”

어흥이는 처음 본 날부터 조금 더 특별했다. 보통의 갈색 털을 가지고 있는 캬앙이와 크릉이와는 다르게 금색의 털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이죠, 강제로 금호를 만들기 위해 근친교배를 시켰을 경우에는 문제가 좀 있을 수 있는데 그게 아니고 자연발생한 경우라면 문제없어요.”

“아, 다행이네요.”

어흥이는 산에서 어미를 잃고 울고 있던 아이를 데려왔다. 동물원 등에서 관상용으로 기르던 아이가 아닌 자연 속에서 살던 아이이니 문제없을 것이다.

“호랑이는 어디서 분양받으셨어요? 요즘 저렇게 건강한 호랑이들 분양해 주는 곳 별로 없는데.”

“그래요?”

“요즘 호랑이가 인기잖아요. 그래서 강제로 새끼 까게 해서 분양시키는 곳 많아요. 그런 애들 대부분이 오래 못 살더라구요."

“저런…….”

일전에 찾아온 창천 길드 전투 조장 김소현이 호랑이 분양받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 부분은 얘기해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호랑이 집사끼리 정보는 공유해야지?’

별 인연도 아니고, 앞으로 만날 일도 요원한 것 같지만 그래도 같은 호랑이를 키우는 사람끼리 그 정도 정보는 공유해 줄 수 있었다.

서준은 그렇게 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산에서 어미 잃고 울고 있더라고요. 완전 갓난애 때였는데 두고 갈 수가 없었어요.”

“아… 좋은 분이시네요. 역시! 호랑이를 키우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네요. 정말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아무리 호랑이가 이전과는 다르게 그 개체가 많아졌다지만, 아직은 관리가 필요한 정도입니다. 정말 큰 일 하신 거에요.”

“하하, 그런가요?”

“그럼 세 마리가 다 형제인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같이 있었으니까…….”

서준과 카페 사장은 이야기를 하며 호랑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봤다.

서준의 호랑이들은 처음 보는 다른 호랑이들에 신이 나서 대장 놀이를 하고 있었고, 호랑이 카페의 호랑이들은 몸이 큰 호랑이 형들이 와서 놀아주니 신이 나서 따르기 시작했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꺄앙! 꺄앙!

어흥이가 꼬리를 휘두르면 호랑이 카페의 아기 호랑이들이 그 꼬리를 잡기 위해 폴짝폴짝 뛰었다.

캬앙이는 새끼 호랑이들과 달리기를 하며 놀았다. 천천히 달리고 있는 캬앙이의 뒤꽁무니를 따라서 뛰는 새끼 호랑이들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다.

크릉이는 놀면서 몸이 더러워지는 호랑이들을 하나씩 붙잡아 털을 핥아줬다. 겉으로는 차가운 아이였지만 속마음은 누구보다 따듯한 호랑이였다.

“아이들이 참 밝네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쪽은 뭐에요?”

서준은 철창이 쳐있는 곳을 향해 걸어가며 물었다.

“아! 그쪽은 위험합니다. 혹시 모르니 다가가지 않는 편이 좋아요.”

철창 뒤편에는 기다란 통로가 있었는데 이곳 카페와 다른 곳을 연결해주는 듯했다.

“그 뒤편에는 성체 호랑이들이 살고 있어요. 헌터증 보여주시고 전투 헌터인 거 증명된 사람만 갈 수 있는데 요즘에는 웬만하면 안 보여주는 편이에요.”

“아, 그래요? 헌터들도 안 보여줘요?”

“네. 한 놈이 유독 유별나서요. 영수까지는 아닌데 좀 많이 사납고 많이 강합니다. 헌터들도 위험할 수 있어요.”

어쩐지 통로 뒤에서 강력한 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서준의 머리털이 삐쭉 솟았다.

“그래도 이렇게 계속 기르고 있는 거 보면 사장님 말은 잘 듣나 보네요? 아니면 사장님이 혹시 은둔 고수 그런 건가?”

“하하하, 아뇨, 그냥 저는 어릴 때부터 길러주다니 물지 않는 정도예요. 그래도 배고프면 바로 달려들걸요? 그놈은 좀 무서워요 저도.”

아무래도 사장도 컨트롤하기 힘든 녀석인 듯했다.

사장의 말에 서준도 혹시 모르니 철창에서 떨어져야겠다 싶어 뒤로 물러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때 서준의 감각이 예민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직전에 느껴졌던 살기가 진짜인 것 마냥.

서준의 발은 그 자리에 굳어 떨어지지 않았다.

‘뭐지?’

마치 주위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서준의 시간만 밀도가 짙어진 것처럼 다른 모든 움직임이 느껴졌다.

-투욱, 투욱, 투욱,

호랑이들은 맹수였다. 지구상 존재하는 동물 중에 최고의 사냥꾼이었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그러나 서준에게는 똑똑히 들리고 있었다.

-그르르르르르

통로에서 물소라고 해도 믿을만한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천천히 걸어 나오며 낮게 울었다.

산에서 호랑이를 마주치면 온몸이 굳어버려 도망치지 못한다고 했던가? 서준은 지금 그를 경험하고 있는 듯했다.

철책에서 떨어지려 했지만 발이 땅바닥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조오 시이임 하아 세에 요오!”

뒤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며 외치는 카페 사장의 말이 늘어지게 들렸다. 마치 천천히 감은 것처럼 카페 사장의 움직임은 느렸고, 목소리 또한 길게 늘어졌다.

-투욱, 투욱, 투욱

짙어진 시간의 밀도 속에서 서준과 마주 보고 있는 호랑이 두 존재만이 같은 시간에 있는 듯 호랑이의 걸음은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하게 서준을 향해 오고 있었다.

-어흐응! 어흐응!

-캬아앙! 캬아앙!

-크르응! 크르응!

서준의 호랑이들도 사태를 파악한 듯 포효를 하며 서준에게 달려오고 있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렸다. 시간을 제때 맞추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크라아아앙!

그리고 호랑이는 서준의 앞에 당도했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서준을 마주 본 호랑이는 입을 아주 크게 벌리며 소리쳤다.

늘어진 시간 속에서 호랑이가 포효하며 튀는 침 한 방울 한 방울이 다 느껴졌다.

그리고 녀석은 그대로 앞발을 들어 그대로 서준을 향해 내리쳤다.

철창과 철창 사이 그 작은 틈을 정확히 겨냥한 호랑이의 앞발은 서준의 얼굴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