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서준은 오늘 들어온 주문도 모두 처리했다. 통장 잔고가 쌓이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 속도는 조금 더딘 거 같았다. 호랑이들이 더 자라기 전에 호랑이들이 뛰놀만한 공간을 만들어 줘야 했다.
현재 파는 약초들도 분명 이전의 상식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높은 가격이었다.
허나, 대도시 즉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장소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솟구쳤다.
언제 어디서 괴수가 튀어나올지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다. 당연히 대도시에는 길드들이 상주해 있었고 당연히도 괴수에 대응할 전력도 훨씬 많았다.
이제 사람이 살만한 곳의 땅값은 점점 더 올랐고 그렇지 못한 곳의 땅값은 더욱 더 떨어졌다.
‘흐음… 생각보다 너무 비싸네.’
초록활력초와 호랑이차를 팔아서 사기에는 그 가격이 너무 비쌌다. 계속해서 팔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살 수야 있겠지만 호랑이들의 성장이 더 빠를 것이었다.
‘시간만 잡아놓고 큰돈이 안되네…….’
남들이 들으면 행복한 고민이라 하겠지만 돈이란 게 원래 주관적인 것이다. 게다가 서준은 필요한 돈이 무척이나 많았으니 점점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불끈초 재배만 성공하면 되는데…….’
불끈초 재배에 성공하면 분명 큰돈을 만질 수 있다. 목표에 조금 더 빨리 다가갈 수 있었다.
서준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큰 힘이 될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아직 소식은 없었고, 서준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괜히 고생하는 거보다는 소수정예가 낫지.’
싼 약초를 다수에게 많이 파는 것보다는 비싼 약초를 소수에게 파는 게 훨씬 몸이 편하다.
싼 약초를 고생해가며 하나하나 재배하는 것보다 비싼 약초 하나를 잘 길러서 좋은 가격에 파는 게 백배는 나았다.
하지만 지금 서준이 재배할 수 있는 약초들은 전부 박리다매에 어울리는 약초들이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불끈초였다.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서준에게 가장 필요한 약초가 불끈초였다.
-캬앙!
“아, 또 시작이네.”
어흥이와 캬앙이가 또 싸움이 붙어버렸다. 둘 다 몸집이 어느 정도 커진 이후로 저렇게 시도 때도 없이 싸운다. 서로 서열 잡이를 하려는 것인지 정말 끊임없이 싸웠다.
어디서 본 내용인데 이런 걸 건들지 말라 해서 서준은 최대한 가만히 놔두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둘 다 상처를 입지 않을 정도로 잘 조절해 주고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가구들을 자꾸 부숴 먹는 게 문제였다.
정말 다행인 건 크릉이가 싸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어흥이와 캬앙이 모두 앞발을 든 채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마치 복서들이 잽을 주고받듯 두 호랑이도 앞발을 휘두르고 피하기를 반복했다.
-어흥!
그러다가 어흥이가 캬앙이에게 달려들었고 이젠 그라운드 기술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조이고 누르고 위아래 포지션이 바뀌기를 반복하다가 일이 터졌다.
-쿠다타당!
“야!”
-어흥….
-카앙….
어흥이와 캬앙이가 격렬하게 싸우던 중에 텔레비전을 부숴 먹었다. 지들도 잘못한 것을 아는지 어흥이와 캬앙이는 풀이 죽어 소파 밑으로 숨어버렸다.
하지만 이미 사건은 벌어지고 난 후였다. 이제는 혼날 일만 남았다. 숨어봐야 소용없었다.
“이리 나와!”
서준은 소파 밑에 있는 어흥이와 캬앙이의 목덜미를 잡아서 들어 올렸다.
귀여운 호랑이들이라도 잘못을 했으면 혼나야 했다.
“여기서 반성하고 있어!”
서준은 어흥이와 캬앙이를 약국 구석에 칸막이를 쳐 둔 곳에 넣어놨다.
물론 녀석들이 넘어오려 하면 충분히 넘어올 수야 있겠지만 호랑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아무래도 텔레비전을 깨 먹은 게 미안했던 것 같다.
“크릉아 간식 먹자!”
물론 얌전히 있던 크릉이에게는 상을 줘야겠지, 서준은 냉장고에서 커다란 꿀닭 한 마리를 꺼내 크릉이에게 던져줬다.
-크릉! 크릉! 크르릉!
데스크 위에 얌전히 앉아서 턱을 괴고 있던 크릉이는 꿀닭 냄새를 맡고 기분이 좋아져 울어댔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어흥이와 캬앙이가 애처롭게 울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화가 잔뜩 난 서준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링
그때 서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모르는 번호였다.
“네, 호랑이 약국 백선생입니다.”
<예, 여기 초인 경찰선데요? 백서준 씨 맞으시죠?>
지금은 모든 병력이 초인으로 대체된 경찰서, 초인 경찰서였다.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시죠?”
<백서준 씨가 보냈던 택배가 모두 도둑맞았어요.>
“그게 무슨 소리죠?”
<택배 배송 중에 택배 차량을 습격한 놈들이 있는데 백서준씨 택배만 골라서 가져갔어요. 일단 서에 오셔서 얘기하시죠.>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서준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초인 경찰서로 달려갔다.
“허억…. 허억…. 저기요, 전화 받고 왔는데요?”
갑작스러운 전화에 놀라서 달려온 서준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백서준이요.”
“잠시만요.”
데스크에 앉아있던 순경이 컴퓨터로 뭔가를 확인하더니 답했다.
“아! 1팀으로 가셔서 박도준 형사님 찾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서준은 순경의 안내를 받아 곧장 1팀으로 향했다.
경찰서 내부는 서준이 알고 있던 경찰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저들이 모두 초인일 뿐이고, 긴급상황에서도 총을 사용하지 않고 각자의 능력을 사용하는 게 다를 뿐이었다.
이렇게 사무를 하고 있을 때는 이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백서준 씨?”
서준이 두리번거리고 있자 훤칠하게 잘생긴 남성이 찾아와 말을 걸었다.
“네, 박도준 형사님이시죠?”
그의 명찰에는 박도준이라 적혀있었다.
“네, 일단 앉으시죠.”
뒤이어 이어진 박도준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오늘 두 시간 전에 택배차량이 털렸다는 신고 듣고 가봤는데 아마도 서준 씨 물건만 노리고 훔쳐 간 것 같아요.
다른 택배는 하나도 안 건드리고 서준 씨 꺼만 빼간 게 미리 계획해놓고 움직인 걸로 보입니다.”
“아......”
“혹시 예상가는 사람 있으신가요?”
“범인은 초인이죠?”
“네.”
역시나 초인이었다. 초인이라면 서준의 택배가 탐날 만했다. 애초에 초인이 아니라면 서준의 물건이 뭔지도 몰랐을 것이다.
“아무래도 제 물건 구매 실패한 헌터가 훔쳐가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제가 만든 약초들이 인기거든요.”
“그런가요? 제가 헌터가 아니라 잘 모르겠네요.”
서준의 물건은 헌터들에게는 매우 인기였지만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초인들은 잘 알지 못했다.
그들이 상처를 치료해 주는 약초나 PTSD를 완화시켜주는 차에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오늘 도난당한 물품들 총 금액이 어느 정도 되죠?”
“3500만 원쯤 되는 것 같네요.”
“허어, 꽤 크네요.”
박도준은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더니 말했다.
“어쨌든 알겠습니다. 범인 잡으면 다시 연락드리죠.”
“예.”
집으로 돌아온 서준은 접수되었던 모든 주문을 취소시켰다. 주문자들에게는 안타깝지만 물건이 사라졌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수확을 마친 서준은 서둘러 판매 물량을 만들어 판매를 했다. 하지만 역시나 몇 시간 후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역시나 택배를 한 번 더 강탈당했다는 전화였다.
‘누구지? 개인은 아닌 거 같은데…….’
개인이 벌인 범행이었다면 지난번으로 멈췄을 것이다. 한번 훔친 것만으로도 상당히 오랜 기간 사용할 만한 양을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돈이 필요하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런 일을 벌인 후 단서도 남기지 않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초인이 돈이 궁해서 몇 푼 안 되는 약초를 훔칠 리 없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것은 약초가 많이 필요한 단체이거나, 무언가 목적이 있는 단체가 아니고서야 설명되지 않았다.
‘누가 나한테 원한이라도 있나?’
길게 생각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서준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큰 원한을 살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자면 이 건물에서 살고 있던 카페 주인 정도지만, 그 사람은 초인이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서준은 생각을 정리한 후 초인몰에 글을 올렸다.
<호랑이 약국 당분간 휴업합니다.>
[어떤 미친놈이 자꾸 약초 훔쳐가서 당분간 휴업합니다.
범인 잡고 돌아옵니다. 기다려주세요.]
물론 오프라인 판매라는 방법이 있었다. 오프라인으로 물건을 팔면 배송 중 강탈당할 위험은 없었으니깐.
하지만 의미 없었다. 결국 범인은 잡지 못한 이상 온라인 판매는 끝까지 하지 못할 테고 고된 오프라인 판매만 하다 보면 서준의 몸이 축날게 분명했다.
애초에 온라인 판매로 가닥을 잡은 이유가 있었다.
결국 범인을 잡아야 해결되는 문제였다.
해결법을 고민하던 서준은 혼자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찰도 못 잡는 걸 내가 어떻게 잡아?”
두 번의 범행에도 경찰은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다. 하물며 약사인 서준이 범인을 찾을 방법은 없었다.
서준은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서준이 타임 워프 후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모두 창천 길드 사람뿐이었고 그 외의 교류는 없었다.
하는 수없이 서준은 윤희주에게 전화를 했다.
<백 선생님! 어쩐 일이신가요?>
“하하, 그냥 안부 차 전화 드렸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죠?”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백 선생님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뇨,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근데 백 선생님 안 좋은 소문이 돌던데 사실인가요?>
이미 소문이 저기까지 퍼진 듯했다. 하긴 벌써 주문취소만 두 건이니 초인몰 커뮤니티에서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 리가 없다.
“거기까지 소문이 났나 보네요.”
<워낙 소문이 빠른 업계잖아요.>
“하하, 뭐 그렇죠.”
<제가 뭐 도와드릴 건 없습니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던 서준이었는데 다행히 윤희주가 먼저 말을 열어줬다.
“도와주신다면 감사하죠. 하실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 중이었거든요. 도와만 주신다면 앞으로 초록 활력초 분말 공급해드리겠습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백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해준 게 얼만데. 일단 의심 가는 부분이 있으니 그쪽으로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네, 알아낸 거 있으면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몸조심하세요. 백 선생님을 직접 노릴 수도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다행히도 윤희주가 먼저 나서준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물론 앞으로 창천 길드에 초록 활력초를 정기적으로 공급해야겠지만 그 정도야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었고 이런 식으로 연을 만들어 놓으면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맺어 훗날 다른 어려움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찌 되었건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범인을 잡는 것이다.
“잡히면 뒤졌어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