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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6화 (16/150)

16화

-띠리링,

언제나와 같이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호랑이 약국의 문을 누군가 열고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종소리를 들은 서준은 반사적으로 인사말을 건네며 입구를 바라봤다.

‘누구지? 어디서 본적 있는 거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분명 서준의 눈에 익은 자였다. 하지만 가물가물한 것이 서준과 친분이 적었거나 큰 존재감이 있던 사람 같지는 않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 기억하시나요?”

“죄송합니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네요.”

“하하하, 뭐 그럴 수 있죠. 창천 길드 전투 조장 김소현이에요.”

여자는 서준에게 명함을 건네주며 자기소개를 했다.

‘아! 어쩐지 낯이 익더라, 게이트에서 봤었구나.’

게이트 내부에서도 대부분 개인 활동을 했고 전투모와 대화할 이유도 없었기에 딱히 접촉이 없었다.

덕분에 서준은 자신이 목숨을 구해준 창천 길드원의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그때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해서 못 보고 지나쳤나 봐요.”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저희는 오프라인 판매 안 하는데요?”

이미 초록 활력초와 호랑이차 모두 초인몰에서 자리를 잡았고, 최고 인기 상품 중 하나가 되었다.

온라인에 상품이 등록되는 순간 완판되는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힘들게 오프라인 판매를 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오프라인 판매만의 장점도 있었기에 자리를 잡는다면 언젠간 재개하리라 하는 마음은 있었다.

“아 소개받고 왔어요! 여기 오면 호랑이 차도 주고 심리 상담도 해준다고 하던데요?”

“그게 뭔 소립니까? 도대체?”

“길드장 님이 말씀해 주시던데요?”

“아니, 뭔…….”

이전 창천 길드의 길드장 윤희주가 찾아왔을 때 서준이 이야기를 들어준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단지 호랑이차를 팔기 위함이었지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윤희주는 그를 오해하고 길드원에게 호랑이 약국을 소개해준 듯싶었다.

“예…. 뭐, 해 보세요.”

이미 찾아온 사람을 쫓아내기에는 뭐한지 서준은 하는 수 없이 호랑이차를 한잔 내린 후 김소현에게 건네줬다.

지난번에 윤희주와의 대화도 사실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결국 끝나고 나서는 살짝 보람도 느꼈다.

어쩌면 이것이 서준의 천성일지도 몰랐다.

-호로록,

“근데 저 호랑이들 만져봐도 되나요?”

김소현은 데스크 위에 서로 몸을 맞댄 후 잠을 자는 호랑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본래 목적이 무엇이었든 서준의 호랑이들을 본 순간 까맣게 잊어버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만큼 서준의 호랑이들은 매우 귀여웠다.

“안돼요.”

“왜요? 길드장 님은 호랑이 만지다 왔다고 하던데요?”

“자고 있잖아요. 깨우면 안 돼요.”

자는 호랑이를 깨울 수는 없었다. 지금껏 칭얼대다가 겨우 재운 참이었다. 활동성이 강한 어린 호랑이들을 재우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호랑이들을 지금 깨워버리면 분명 게이트에 들어가자고 보챌 게 분명했다.

이제 어느 정도 클 대로 커서 약국이 좁아진 호랑이들은 약국에 있는 시간을 매우 답답해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본래는 백두대간을 넘나들며 수천 킬로미터의 활동 영역을 가진 영역 동물이었으니깐.

그렇다고 매번 게이트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감당 못 할 일은 하지 않는 게 답이었다.

자고 있던 호랑이를 깨워서는 안 됐다.

“에이, 아쉽네. 사실 상담은 핑계고 호랑이 보러 온 건데…….”

“호랑이는 왜요?”

“게이트에서 봤는데 너무 귀엽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호랑이 분양 알아보고 있어요! 요즘 인가라면서요?”

사실 게이트에서 호랑이들이 많이 귀엽기는 했다.

나비를 쫓아다니는 모습은 서준도 정신을 놓고 바라봤을 정도였다. 게다가 작은 괴수들과 싸울때는 무척이나 늠름한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다른 누가 보더라도 호랑이를 길러보고자 하는 욕구가 솟구쳤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언 좀 해주세요! 호랑이 집사 선배로서! 호랑이 키우는데 뭐 주의점이나 그런 거 없나요? 사실 제가 호랑이는 처음이라……. 아니, 사실 애완동물 자체가 처음이에요.”

“별거 없어요. 저도 반려동물 키워본 적이 없는데 뭐 어려울 거 없더라고요. 밥만 제때 주면 돼요. 놀아달랄 때 놀아주고…… 뭐 그런 거 안 하면 애들이 소파고 뭐고 다 물어뜯을 테니 강제로 하게 될걸요?”

호랑이 키우는데 별거 없었다. 조금 크고 강한 고양이라고 생각하면 그뿐이었다. 어차피 헌터인 김소현에게 호랑이는 큰 위협이 아니었다.

“밥은 어떤 거 먹어요? 고양이 사료 주면 되나요?”

“에이, 설마요. 고기 줘야죠. 고기.”

어느덧 호랑이 약국은 호랑이 예비 집사 상담소가 되어있었다.

서준도 김소현이 처음에는 귀찮았지만 호랑이 얘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고 있었다.

호랑이 얘기를 하는 사람은 모두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면 완전 어릴 때는 뭐 줘야 해요? 그냥 아무 우유나 줘도 될까요?”

“별거 없어요. 그냥 진짜 아기 때는 고양이용 우유 줬어요.”

“사람용 우유는 주면 안 되는 건가요?”

“저도 잘은 몰라요. 그냥 고양잇과 동물이라 고양이용 우유 줬거든요. 근데 분양받으시는 거면 완전 새끼 때는 아닐 텐데 젖은 떼지 않았을까요?”

서준이 호랑이들을 완전 새끼 때부터 키운 이유는 상처 입은 호랑이들을 데려왔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분양과는 조금 달랐다. 호랑이를 사육하는 것이 아직은 흔치 않은 일이라 분양 과정이 어찌 되는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보통의 동물들은 젖은 떼고 나서 분양했으니 서준은 호랑이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다.

“아, 그렇네요. 그럼 젖 떼고 나서는 뭐 먹었어요?”

“아까 말했잖아요? 고기 먹었겠죠. 육식 동물인데.”

“아! 그렇구나!”

계속해서 실없는 소리나 하며 헤실헤실 웃는 김소현이었다.

“무슨 고기 좋아해요? 돼지고기? 소고기? 양고기?”

“닭고기요. 닭만 보면 환장을 해요.”

보통 닭은 아니고 꿀닭이긴 했지만 닭고기는 닭고기니깐…….

“지금 저 정도 크기면 몇 개월이나 된 거예요?”

“이제 5개월 조금 안 됐어요. 예전에는 셋을 한 번에 안고 다녔는데 이제는 힘드네요.”

꿀닭을 꾸준히 먹다 보니 서준의 힘이 많이 세진 건 사실이었다.

서준이 예상한 대로 재배지의 동물들을 먹으면 조금씩 강해졌다. 그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그냥 놀라운 일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서준일지라도 이제 호랑이 셋을 한 번에 안고 다니는 건 힘들었다.

“아 사실 호랑이도 호랑인데 기분이 좀 안 좋았거든요? 애들도 많이 죽었고……. 근데 차 마시면서 얘기하니까 좀 풀렸네요.”

“그랬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이제 가 볼게요. 즐거웠어요! 담에 또 올게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불쑥 찾아왔던 김소현은 이렇듯 맥락도 없이 불쑥 사라졌다. 김소현의 원래 성격 자체가 항상 제멋대로 하는 기분파였다.

오늘도 역시 자기 할 말만 끝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제 갈 길을 갔다.

‘제발 다신 오지 마.’

이러다 호랑이 약국이 호랑이 상담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서준은 약국이 사람으로 바글바글하며 왁자지껄한 모습을 상상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서준의 마음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안정감과 안도감 그리고 뿌듯함이 느껴졌다.

-띠리리링,

김소현이 떠나가고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있던 호랑이 약국에 또 손님이 찾아왔다.

“아니, 이번엔 누구세요?”

서준의 입에서 반사적으로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왔다.

“퀵 서비슨데요?”

“아! 어서 오세요! 물건은 여기다 놔두시고.”

서준은 곧바로 태도를 바꿔 웃는 얼굴로 퀵 서비스를 받았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트롤의 두개골이 도착한 것이다.

“조심히 가세요!”

문 앞까지 마중을 나갔던 서준은 서둘러 포장을 풀었다.

“우웩!”

그 안에는 트롤의 두개골, 아니 대가리가 두 통이 들어있었다.

눈알만 파진 채 얼굴이 온전한 트롤의 머리에선 썩은 내가 가득했다.

서준은 이대로 두다간 약국에 냄새가 가득 퍼질 걸 걱정해 곧바로 게이트를 열고 트롤 대가리를 모두 재배지로 던져버렸다.

“후아! 심하네 이건 좀.”

-어흥!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이 게이트를 연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호랑이들은 잠에서 깨 울기 시작했다.

“알겠어, 알겠어! 재배지 놀러 가자.”

어차피 이제 재배지에서 해야 할 일이 생겼기에 호랑이들을 깨울 참이었던 서준은 호랑이들을 달래며 함께 재배지로 넘어갔다.

-캬앙! 캬앙!

호랑이들은 신이 나서 재배지를 뛰어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든 서준은 신이 나게 노는 호랑이들을 한참 바라보다가 일을 시작했다.

“으영차! 으영차!”

서준은 조금 떨어진 두 장소의 땅을 깊이 팠다. 그 후 한 개의 두개골은 그냥 묻어버렸고 다른 한 개의 두개골에는 불 끈 초의 종자를 눈알이나 입 구멍 등 얼굴에 있는 구멍에 집어넣고 묻어버렸다.

‘뭐, 둘 중 하나는 성공하겠지.’

서준은 한 개의 머리통은 10년을 숙성시킬 생각이었고, 남은 한 개의 머리통은 약초를 심은 후 십 년간 방치 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둘 중 하나만 성공해도 계속해서 재배할 수 있으니 남은 건 시간 남 보내며 기다리면 되었다.

“10년 후에는 뭐 결판나겠지.”

두개골을 땅에 묻은 후 땅을 고른 서준은 곧바로 주워온 나뭇가지 쪽으로 가 땅에 영양제를 꽂기 시작했다.

“어휴, 이놈도 돈을 많이 먹는구나.”

통장 잔고를 떠올린 서준은 한숨을 푹 쉬었다. 분명 벌어들이는 돈은 엄청나게 많았는데 그만큼 필요한 돈도 많았기에 턱없이 모자랐다.

게다가 앞으로 써야 할 돈도 많았다.

-어흥! 캬앙! 크릉!

‘저놈들 기르려면 더 필요한데…. 불끈초 재배가 성공하길 바라야지.’

호랑이들은 어느덧 약국에서만 생활하기엔 너무 많이 성장했다.

실제로도 호랑이들은 답답해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서준도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얘들아! 형이 부자 돼서 꼭 마당 만들어 줄게!”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재배지는 원할 때마다 들어오기엔 제약이 많은 장소였기에 호랑이들에게는 또 다른 장소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마당을 내기에는 현재 건물 위치가 좋지 않았다.

현재 서준이 머무는 건물의 좌우와 뒤에 모두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건물 입구에는 바로 도로가 있었다.

마당을 낼 수 없는 구조였다.

‘그냥 다 사버리면 되잖아?’

해서, 서준은 목표를 세웠다. 주위에 있는 건물들을 모두 사 헐어버리면 그 자리에 호랑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법률적인 문제가 뒤따르겠지만 그 부분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문제였다. 일단 부지를 사는 게 중요했다.

어차피 서준은 초인이었기에 법률적인 부분에서 어느 정도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자 되자! 부자!”

호랑이들이 넓은 마당에서 즐겁게 뛰노는 모습을 상상한 서준은 눈에 불을 켜고 안정초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원래 집사는 몸이 고생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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