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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5화 (15/150)

15화

“음… 겹치는 게 몇 개 없네.”

서준은 창천 길드에게서 받아낸 약초 사전을 읽고 있었다.

서준은 이번 게이트 탐사에서 총 일곱 종의 약초를 캐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서준이 얻어낸 약초 중 약초 사전에 기록된 약초는 단 두 개뿐이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별다른 효능이 없는 잡초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는 건 효과를 알고 있으며, 제대로 쓸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하나 건진 건데… 이거 재배조건이 좀 까다롭네.”

그마저도 재배조건이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죽은 지 십 년 이상 된 트롤의 두개골에서만 자라난다고 적혀 있었다. 물론 이 내용이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참나, 대침공 일어난 지 십 년도 안 지났는데 이걸 어떻게 알아냈대?”

대침공 이후 이제 구 년 가까이 흘렀을 뿐이다. 그런데 약초가 십 년 이상 된 트롤의 두개골에서만 자라난다는 걸 실험적으로 증명해 볼 시간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단지 그럴 거라는 판단이 있었을 뿐이다. 사실 여부는 증명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다.

“음… 채집 과정에서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불끈초의 발견 시 그 일대 토양을 깊게 파서 함께 가져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모두 공통적으로 트롤의 두개골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렇게 수집된 트롤의 두개골을 이용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시행해 보니 모두 죽은 지 십 년 이상은 된 거로 확인되었다.”

서준은 사전에 적혀 있는 주석을 읽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저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점이 너무 많았다. 당장 서준이 대충 생각하기에도 두세 개의 허점은 찾아낼 수 있었다.

‘만약 불끈초의 성장 기간이 10년이 넘으면, 이 이론은 완전히 폐기되는 거 아닌가? 갓 죽은 트롤 두개골에 심어진 후 10년 동안 자라난 걸 수도 있잖아?’

약초의 성장 기간이 충분히 짧다면 사전에 적혀 있는 것처럼 죽은 지 십 년 이상 된 트롤의 두개골에서 자라는 것이 맞겠지만, 약초의 성장 기간이 굉장히 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약초가 갓 죽은 트롤의 두개골에 심어진 후 성장하는 데에 십 년의 기간이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약초가 자라나는 시간 동안 트롤 두개골도 자연스레 나이를 먹어갔을 테지.

“길드 물갈이해야겠네.”

길드에서 최고 기밀 수준으로 관리하는 약초 사전이었다. 그런 곳에 기재되는 정보를 이렇게 허술하게 연구해서 적어내다니, 월급도둑이 분명했다. 연구원의 물갈이가 시급해 보였다.

뭐, 서준이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건… 실험해볼 가치가 있겠어.”

서준은 트롤 두개골의 가격을 떠올리며 고민했다. 트롤의 사체는 굉장히 쓰임새가 많은 데다가 트롤 자체가 그렇게 흔한 괴수는 아니었다.

게다가 트롤의 두개골은 트롤의 사체 중에서도 비싼 값에 팔리는 품목 중 하나였다.

아마 두개골 하나당 3000만 원이 넘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뭐 돈이 있다고 해서 쉽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보통은 그 몸체를 통으로 팔지 따로 떼어 파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만큼 트롤의 사체는 이곳저곳 쓸 곳이 많았다.

“실험해보려면 적어도 두개골이 두 개는 필요한데…….”

한쪽은 십 년을 숙성시키고 한쪽은 갓 죽은 두개골을 사용해서 비교해봐야 제대로 된 재배가 가능했다.

그러기 위해선 두 개의 트롤 두개골이 필요했고, 6000만 원이라는 거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서준은 망설임 없이 초인몰에 접속했고, 글을 올렸다.

<트롤 두개골 급구!!!!>

[트롤 두개골 급하게 구합니다. 두당 5000만 원에 두 개 구합니다.

하나씩 안 사고, 오래된 거 안 삽니다.

죽은 지 일주일 안 넘은 거 두 개 한 번에 팔 사람만 연락 주세요.]

서준은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급구한다는 글을 대충 적어서 올렸다.

트롤의 두개골은 분명히 비싼 가격이 틀림없었다. 돈을 상당히 많이 번 서준에게도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하지만 트롤의 머리만을 따로 그것도 빠른 시일에 구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고였다.

지출은 많았지만 불끈 초 재배에 성공한다면 이보다 훨씬 큰돈을 만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돈을 아낄 게 아니라 시간을 아끼는 게 훨씬 나았다.

초인 몰에 글을 올린 서준은 거래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며 텔레비전을 켰다.

<바로 어제 일입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창천 길드가 전멸할 뻔했습니다.>

<게이트 침투 임무를 수행 중이던 창천 길드가 게이트 내부에서 게이트 보스를 맞닥뜨렸습니다.>

<레이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창천 길드는 여섯 명의 사망자를 내며 겨우 게이트 보스를 쓰러트렸다고 합니다.

<어째서 게이트 보스가 그대로 게이트 안에 남아있었는지는 조사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고인이 되신 창천 길드의 길드원 김기두, 전성현, 임건식, 오형석, 김현지, 최선아 헌터님들의 명복을 빕니다.>

뉴스에는 어제 있었던 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준이 열매를 먹여가며 남은 길드원들은 살려내었지만, 서준이 도착했을 때 이미 죽어있던 여섯은 어쩔 수 없었다.

게이트 임무 중 사망했던 헌터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되게 될 것이다.

“이래서 PTSD가 걸리는 거구나.”

서준은 잘 다려진 호랑이차를 마시며 마음을 다스렸다. 고작 한 번이었다.

딱 한 번 게이트에 들어갔을 뿐인데 동료 여섯이 죽었다. 비록 죽은 모두가 그날 처음 본 사람들이었지만 서준에게도 가벼운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이를 업으로 삼는 헌터들의 경우는 매일같이 이런 광경을 봐왔을 것이다. 괴수들의 폭력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 헌터들에게 보다 더 괴로운 건 동료들의 죽음이었을 것이다.

호랑이차를 한 모금 더 마신 후 서준은 인터넷으로 택배를 불렀다.

‘이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목적지는 창천 길드였고 내용물은 특별할 거 없는 호랑이차였다.

이 선물은 이번 임무로 또다시 고통받고 있을 창천 길드가 호랑이차라도 마시며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어내기 바라는 서준의 바람이었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서준의 마음 수습이 다 되어갈 때쯤 호랑이들이 울어대기 시작했다.

“벌써 밥 시간이 되었나 보네?”

심란한 마음에 호랑이들 밥을 제때 챙겨주지 못했던 것이다.

서준은 곧바로 게이트를 열고 호랑이들과 함께 들어갔다.

“얘들아 알아서 놀다가 형이 부르면 바로 와야 해. 알았지?”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어흥이와 캬앙이 그리고 크릉이는 신나게 달리며 서준의 시야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꿀닭을 먹은 이후로 뿔토끼에 흥미를 잃었는지 뿔토끼는 먹지 않기 시작했다. 언제나 밥때가 되면 꿀닭을 찾았다.

그래서 서준은 활동구역을 뿔토끼 서식지에서 꿀닭 서식지로 옮겼다.

덕분에 고생깨나 했지만 호랑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 고생들은 씻은 듯이 사라져갔다.

호랑이들을 만난 이후로 서준의 모든 행동은 호랑이 중심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꿀닭 서식지 정중앙에는 앙상한 나뭇가지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이번 게이트에서 얻은 최고의 수확이었다. 물론 그 쓰임새는 아직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저 정도 되는 존재감이면 엄청난 물건임이 틀림없다.

서준은 조심스레 녀석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게이트에서처럼 결계를 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호랑이들 참 대단하단 말야.”

게이트에서 이 녀석이 결계를 치고 서준과 호랑이들의 접근을 막았었다. 그러나 호랑이들이 몇 번 울어대니 결계는 눈 녹듯 사라졌다.

호랑이들이 나무를 설득한 것인지 결계를 없애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대단했다.

“이쯤 되면 진짜 영수지 뭐.”

영수가 뭐 따로 있겠는가? 어흥이 캬앙이 크릉이 정도면 충분히 영수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뭐, 영수 구분법에 대하여 한번 알아봐야 할 필요는 있을 듯싶었다.

“나무야, 너도 밥 먹어야지?”

서준은 메고 있던 배낭에서 나무 영양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보통의 나무 백 그루는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양이었다.

그러나 서준은 이걸로 충분할지는 아직도 확신하지 못했다.

게이트 안에서 나무 주변만 황폐했던 그 광경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리는 서준이었다.

“으흣차!”

서준은 영양제들을 나무에 꽂았다. 공간이 나지 않으면 나무 주위 땅에 규칙 없이 막 꽂아댔다.

어차피 놈이 알아서 찾아 먹을 것이다. 그 정도 신비함은 가진 녀석이었다.

-쑤우우우욱

직접 몸에 꽂아 넣은 영양제가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먹성이 엄청난 녀석이었다.

서준은 서둘러 미쳐 꽂아 넣지 못했던 영양제들로 교환해줬다.

그리고 그 역시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바닥에 꽂아 넣었던 영양제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또 지출이 느는구나.”

트롤 두개골로 이미 충분한 지출을 했던 서준이었는데 또 지출이 늘게 생겼다.

나무 영양제라고 해서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만큼 이놈의 먹성과 탐욕은 엄청났다.

“이 나이 먹고 나무 밥이나 챙겨 줘야 하더니.”

게다가 그 지출이 나무 밥값이라니… 서준의 인생도 참 기구했다.

어느덧 호랑이들을 챙겨서 약국으로 돌아온 서준은 인터넷으로 나무 영양제를 대량으로 구입했다.

“이렇게 사서 얼마나 가려나…….”

이렇게 사봐야 막대기 놈이 일주일이면 먹어치울 양이었다. 웬만한 과수원도 돌릴만한 양인데…. 어마어마한 녀석이었다.

서준은 한숨을 쉬며 초인몰에 접속했다.

다행히 트롤 두개골을 팔겠다는 녀석이 나타났다.

“당연하지 시가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싸게 사는데.”

서준은 판매자에게 약국 주소를 찍어 보낸 후 금액을 입금해줬다.

어차피 초인몰에서 사기는 없었다. 만약 사기를 쳤다간 전국의 초인들에게 쫓기게 될 텐데 누가 사기를 치겠는가?

초인몰에서 사기 치는 놈은 다 같이 함께 잡는다. 이것이 한국의 초인들이 만든 규칙 중 하나였다.

“음, 음, 음, 나, 나, 나,”

트롤의 두개골을 구매한 서준은 콧노래를 부르며 약초 주문 리스트를 확인했다. 언제나 즐거운 순간이었다.

서준의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순간이었으니깐.

“와, 이 사람은 초록 활력초랑 호랑이차 같이 주문했네? 손이 빠른가 봐.”

서준의 약초들은 모두 선착순 구매였다. 서준의 맘이 내킬 때 초인몰에 판매 글을 올렸고, 글을 본 초인들이 선착순으로 구매하는 방식이었다.

인기 많은 두 품목을 모두 주문했다는 것은 상당히 손이 빠르다는 소리였다.

서준은 그 손이 빨랐던 주문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김익현?”

어디서 많이 본 이름이었다.

서준은 초인몰에 김익현이라는 이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초인이라면 바로 나올 것이었고, 그렇지 않다면 뭐 별 볼 일 없는 사람이겠지.

“역시… 니놈한테는 안 팔아.”

서준은 과감하게 주문자 리스트에서 김익현의 이름을 지웠다.

김익현, 흑호 길드의 길드장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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