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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4화 (14/150)

14화

서준은 저도 모르게 이끌리기 시작했다. 밝게 빛나는 그 나무는 주변을 포근하게 감싸는 따스한 에너지를 내뿜었다.

-어흥! 캬앙! 크릉

세 마리의 아기 호랑이들도 그 기운에 이끌리듯 자연스레 빛의 발원지인 나무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때였다. 숨어있던 괴수 한 마리가 나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속도는 너무 빨라 서준과 호랑이들이 반응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팅!

나무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공간에서 괴수는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꼭 무언가에 부딪힌 것처럼 보였다.

겁을 먹은 괴수는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도망쳤다.

“땅이… 황폐해졌어.”

나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무슨 능력이라도 썼던 것일까? 나무 주위의 땅은 더욱더 황폐해졌다.

땅의 기운이라도 끌어다 쓴듯했다.

서준과 호랑이들은 나무를 향해 조심스레 접근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윽.”

나무가 괴수를 밀어냈던 그 거리쯤에서 무언가 막고 있는듯한 반발감을 느꼈다. 호랑이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잠시 멈칫했다.

-어흥!

그러다 문득 어흥이가 소리쳤다.

-캬앙! 크응!

뒤이어서 캬앙이와 크응이도 그게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신기하게도 나무를 지키고 있던 보이지 않는 벽이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으윽!”

한 걸음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반발감에 몸이 쓰렸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흥! 캬앙! 크릉!

나무에 가까워질수록 반발력은 강해졌고, 호랑이들은 다시 한번 소리쳤다.

그러고 나면 또 한걸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됐다!”

그리곤 도착한 나무 앞에서 서준의 손끝은 앙상하게 남은 나뭇가지에 닿았다.

-끼이에에엑!

그 순간 서준의 머릿속에 괴상한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꼭 귀신이 우는 것만 같은 그런 소리였다.

“뭐? 꺼내달라고?”

그런데 서준에게는 그 소리가 꼭 꺼내달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 좀 꺼내줘! 나 좀 구해줘! 하며 소리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알겠어. 내가 구해줄게.”

서준은 나무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안심시켰고, 메고 있던 배낭에서 모종삽을 꺼냈다.

그리고선 뿌리가 상하지 않게 조심스레 바닥을 파내기 시작했다.

“잘 안되네……."

나무가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결계를 치며 주변의 힘이라도 끌어다 쓴 듯이 바닥은 그때마다 황폐해졌었다.

처음에는 괴수를 막은 후에, 그다음에는 서준과 호랑이들을 막은 후에도 바닥은 조금씩 더 말라비틀어졌다.

주변에 풀 한 포기 없는 것으로 여태까지 얼마나 땅의 힘을 끌어다 썼는지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나무의 뿌리가 묻힌 토지는 단 한 줌의 수분도 머금고 있지 않았고, 단단하게 굳어있었다.

“괜찮아, 시간은 많으니까. 꼭 꺼내줄게.”

서준은 나무를 안심시키며 모종삽으로 단단한 바닥을 조금씩 파냈다. 그러나 그게 쉽지만은 않았다.

두께는 앙상한 나뭇가지 정도에 그 높이도 서준의 허리춤 정도까지밖에 오지 않았지만, 땅속에 묻혀있는 뿌리는 그 이상의 길이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파고 파고 계속해서 파 내려가도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뿌리의 두께는 서준의 허리둘레를 넘을 정도로 두꺼웠다.

-어흥! 캬앙! 크릉!

그때 서준의 아기 호랑이들이 서준 옆에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마치 저들만 믿으라는 듯이 용맹한 앞발을 이용해 땅을 파기 시작했다.

덕분에 속도가 붙기 시작해 순식간에 나무뿌리를 전부 바닥에서 끄집어낼 수 있었다. 나무는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온전했다.

“너희들 힘이 꽤 세구나?"

나무뿌리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상당히 깊은 곳까지 땅을 파냈다. 그 깊이는 상당했고, 그 속에 들어있던 나무의 무게도 상당했다.

-어흥! 캬앙! 크릉!

그러나 호랑이들은 아무 문제 없단 듯이 셋이서 힘을 합쳐 나무를 땅에서 끄집어냈다.

“이건 아무래도 들고 다니는 건 무리지?”

서준은 게이트를 넘어와 캐냈던 약초는 전부 배낭에다 잘 보관해 두었다. 처음에는 재배지에 던져놓으면 되겠지 생각을 했었지만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재배지와 지구와의 시간 괴리 때문에 상해버릴 우려가 있었다. 마냥 창고 능력이라며 주위에 얘기하고 다니던 것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 나무는 들고 다니기엔 그 크기가 너무 엄청났고, 다른 약초들과 다르게 소유권에 분쟁이 생길 우려도 있었다.

뿌리가 뽑힌 상태에서도 따스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나무를 보면 그 누구라도 욕심을 부릴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조금 애매하네?”

서준은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시간을 계산해봤다. 다행히 남은 시간이 그리 촉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배지를 넘어가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단 3~4분 만에 땅을 파고 나무를 다시 심어 넣는 모든 일을 해내야 했다. 서준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호랑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무리였다.

-어흥! 어흥!

“뭐? 어흥아 너만 믿으라고?”

-어흥!

-캬앙!

-크릉!

그러던 그때 호랑이들이 앞발을 들어 올리며 늠름하게 외쳤다.

“흐음…….”

서준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호랑이들과 재배지에 들어간 날은 많았지만, 호랑이들만 보냈던 적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늦게 꺼내줬다가는 시간 괴리로 인해 호랑이들이 늙어버릴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 상황에 넣었다 잠시 후 꺼내준다면 길어야 며칠일 것이다. 아니, 호랑이들의 힘을 생각하면 재배지 안에서 하루, 서준의 기준으로는 단 몇 분 만에 끝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재깍! 재깍! 재깍!

서준이 걱정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이내 서준은 마음을 굳힌 듯 두 팔을 높이 뻗어 게이트를 열었다.

-어흥! 어흥!

그 순간 어흥이의 지휘하에 호랑이들이 나무를 들고 게이트를 넘어갔다.

서준은 걱정이 되는지 게이트를 닫지 않은 채 주위를 서성이며 게이트 속을 바라봤다.

그 속에는 호랑이들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다. 꼭 빨리 감기라도 한 것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그 실루엣들을 바라보며 서준은 시간을 체크했다.

일분, 이분 지나갈 때마다 서준의 속은 타들어갔다. 그 순간 땅속으로 사라졌던 호랑이들의 실루엣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땅을 다 파낸듯싶었다.

이윽고 땅속에 나무를 파묻더니 흙을 덮는 호랑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100배속의 속도로 보는 호랑이들의 움직임은 날렵하기 그지없었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호랑이들은 늠름한 울음소리를 내며 게이트를 넘어왔다.

“잘했어 얘들아!”

시간을 확인한 서준은 안도의 한숨을 지으며 호랑이들에게 달려갔다.

세 마리의 호랑이를 모두 한 손에 안은 서준은 번갈아가며 녀석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호랑이들도 고된 작업에 지쳤는지 서준에게 그대로 몸을 맡긴 채 잠에 들었다.

서준은 잠든 호랑이들은 잠시 편하게 잘 수 있게 놔둔 채 게이트를 닫았다.

“끄응차!”

서준은 시간을 체크하다 호랑이들을 품에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너무 곤히 자고 있으니 깨울 수가 없었다. 서준은 세 마리의 아기 호랑이들을 모두 품에 안은 채 합류 장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장소에 도착한 서준은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다들 괜찮으세요?”

합류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던 창천 길드의 길드원들이 모두 쓰러져있었다. 멀리서만 봐도 상황은 심각해 보였다. 심지어 죽은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몇 있었다.

“괜찮으세요!”

서준은 달려가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쓰러져 있는 윤희주에 옆에는 마치 동귀어진이라도 한 듯 거대한 괴수 한 마리가 쓰러져있었다.

그 크기가 집채만 한 것이 아무래도 이 게이트의 보스 같았다.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보통의 게이트 보스들은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지구로 뛰쳐나가 앞장섰으니깐.

“어쩐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더니!”

의심을 하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늦었다. 우선 이들을 살리고 봐야 한다.

“으윽… 윽! 백 선생님… 저, 저희는 이미… 틀렸습니다. 게이트 입구까지 너무 멀어요… 남은 시간까지 돌아가는 건 무리에요. 저, 저희는 놓고 가세요.”

“아뇨 그럴 순 없어요!”

서준은 쓰러져있는 길드원들의 상처를 살피며 말했다.

“이, 이게 게이트 내부에서의… 제1원칙입니다. 게이트가 닫힐 시간이 되면… 무조건 나간다. 뒤도 돌아지 않고 그냥 나간다. 그게 제1원칙입니다. 이제 게이트 닫힐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저희는 이미 틀렸어요. 백 선생님 먼저 나가세요.”

서준은 들은 채도 않은 채 배낭에 넣어두었던 열매를 꺼냈다. 이 열매를 먹이면 모든 상처를 치료할 수 없을지는 모르나 거동이 가능한 상태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마침 쓰러져 있는 길드원들의 수도 열둘, 열매의 수도 열둘이었다. 아깝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서준은 약사였다. 직접 사람을 살리는 의사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그 역시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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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백 선생님.”

“아니에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게이트에서 탈출한 서준과 창천 길드원들은 게이트 밖에 마련된 의료용 텐트에 모여있었다.

“백 선생님이 없으셨다면 저희는 모두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겁니다.”

“아뇨, 운이 좋았죠 뭐. 저도 덕분에 게이트 탐방도 하고 얻을 것도 많이 얻었습니다.”

“아닙니다! 백 선생님 덕분에 살 수 있었어요! 다음 달 결혼인데 참… 큰일 날뻔했습니다, 정말.”

“게이트 들어가기 전에 저희가 했던 무례한 말들은 모두 사죄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처음에는 서준을 비꼬고 무시하던 길드원들도 진심을 다해 서준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시작했다.

“백 선생님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신가요? 저희 길드 차원에서 가능한 일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저희가 뭐든 도와드리겠습니다!”

“저희만 믿어주세요! 쿨럭!”

상처가 다 치료되지 않아서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되는 길드원들이었지만, 서준에 대한 고마움이 워낙 컸는지 모두 몸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크게 소리치며 말했다.

“사실 저한테 필요한 게 하나 있긴 합니다.”

“뭡니까? 말씀만 하시면 뭐든 해드리겠습니다.”

사실 서준이 탐내고 있던 물건이 있기는 했다. 길드에서 내줄 이유가 없었기에 꺼내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이쯤 되면 한번 얘기해볼 법했다. 서준은 잠들어 있는 호랑이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은 후 말했다.

“창천 길드에서 작성한 게이트 약초사전이 필요합니다.”

게이트 약초사전, 모든 길드에서 필수적으로 작성하는 기록이었다. 게이트 내부의 정보는 알다시피 한정되어 있었고, 길드 간에도 그 정보교류를 하는 경우는 적었다.

각각의 길드는 게이트 너머의 특이한 광물이라든지 약초 등을 채집했고, 그 효능을 연구했다. 심지어 재배법을 연구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물건들이 길드 외부로 나가는 것은 그에 합당한 보상이 얘기되었을 때뿐이었다. 예를 들자면 다른 길드의 기록과도 같은…….

서준은 길드의 기밀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물건을 요구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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