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야 저거 봐라, 재는 뭔데 꼽사리냐?”
“그러게, 호랑이 데려온 거 봐라 참나, 소풍 왔나?”
창천 길드는 지금 게이트 침투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게이트를 향해 이동 중이었다.
그리고 길드원들은 서준을 보며 불만을 표출 중이었다.
“야 조용해, 들리겠어.”
“들으라고 한 건데?”
“너 진짜 저 사람 누군지 몰라서 그래?”
“누군데?”
모두 다 길드에 들어오기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했던 자들이었다. 길드에 들어와서도 게이트 침투 임무에 투입되기 위해서 엄청난 시간을 투자했던 자득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갑자기 튀어나온 서준은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 호랑이약국 백선생이잖아! 밉보이면 공급 끊길걸?”
“아 그래? 그 사람이면 뭐가 달라져? 어차피 초록 활력초 구하지도 못하는데 공급이 끊기나 안 끊기나 뭔 상관?”
서준에게 들릴 정도의 큰 소리로 얘기하는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얼굴 기억해놨다 인마, 너는 이제 내 물건 아무것도 못 사.’
앞으로 서준이 팔 물건들은 무궁무진했다. 재배지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물건들은 서준이 생각해도 엄청난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방금 서준의 앞담을 깠던 녀석들은 그 물건을 사용할 기회를 잃었다.
“야 쟤네 길드 봐라, 소풍 왔나 봐?”
“누구는 뭐 빠지게 괴수 막고 있는데 호랑이 데리고 온 거 봐라.”
서준을 욕하는 건 창천 길드원뿐만이 아니었다. 방위 임무를 하고 있는 흑호 길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흑호 길드 너네도 끝이야, 얼굴 다 기억해놨어.’
그리고 흑호 길드 역시 서준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서준이 자신을 욕하는 녀석들의 얼굴을 하나씩 기억해 가고 있을 무렵 그들은 게이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게이트 폐쇄까지 남은 시간은?”
“11시간 32분 남았습니다.”
“그래? 많이 남았네.”
윤희주와 그의 보좌가 게이트 정보에 관하여 대화 중이었다.
게이트는 아직도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현상이었다.
게이트는 처음 열린 시간부터 정확히 24시간 후에 닫혔다. 덕분에 아직 게이트 너머는 미지의 세계로 남겨져 있었다.
보통의 길드가 게이트 침투 시에 허락받는 시간은 두세 시간 남짓이었다. 사실 겉만 대충 훑고 돌아오는 정도의 시간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가끔 꽝이 있긴 했지만…….
“흑호 길드한테 고맙네.”
오늘의 게이트는 폐쇄 시까지 11시간이 넘게 남았다. 모두 흑호 길드가 괴수처리를 엄청난 속도로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게이트가 꽝만 아니라면 창천 길드는 오늘을 계기로 엄청난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게이트에 돌입한다. 남은 시간은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해 지금으로부터 11시간으로 잡는다.
게이트에 침투한 후 초반 안전을 확보할 때까지는 독립행동을 금한다.
그럼 지금부터 전투조인 제1조부터 시작해서 차례대로 입장 시작한다.
게이트 돌입!”
윤희주의 말에 이어서 곧바로 전투조가 게이트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미리 정해놓은 순서대로 게이트를 넘어갔다.
“백 선생님, 선생님께선 저와 함께 마지막에 돌입하면 됩니다. 게이트를 처음 넘을 시 심한 멀미가 있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세요.”
“네.”
이 세상 누구보다 게이트를 많이 넘어본 서준이다. 걱정할 필요 없었다.
“근데 호랑이들은 정말 괜찮겠습니까? 사실 침투조는 큰 위험이 없긴 한데…. 혹시 모릅니다.”
“괜찮아요, 이놈들 보통 호랑이 아니에요.”
게이트 침투 임무는 모든 길드가 바라는 임무였다.
그 이유로 가장 첫 번째 되는 것은 당연히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이 안전한 임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괴수들은 게이트가 열리면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지구를 넘어와 공격하는 습성이 있었다.
따라서 게이트로 안에는 남아있는 괴수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방위 임무를 맡은 길드가 괴수들을 처리하며 게이트로 가는 길목을 확보하면 침투 임무를 받은 길드가 게이트를 넘어가는 협동이 이뤄졌다.
이 상황에서 고생은 방위 임무를 수행한 길드가 했지만 대부분의 이득은 침투 임무를 따낸 길드의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모든 길드는 침투 임무를 하나라도 더 따내기 위해 많은 금전적 노력을 쏟는 중이었다.
“가자, 애들아.”
-어흥! 캬앙! 크릉!
서준과 호랑이들은 익숙하게 게이트를 넘었다. 아마 지구상에 그들보다 게이트에 익숙한 이들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멀미 따위는 전혀 없었다.
첫 광경은 피와 비명이었다. 아직 게이트 내부에 남아있던 얼마 안 되던 괴수들, 그들을 먼저 투입된 전투조가 처리 중이었다.
“잘 싸우네.”
-어흥!
그들의 싸움을 보며 감탄하는 서준을 보자 어흥이는 내가 더 잘 싸울 수 있다며 크게 울었다.
“그나저나 여기 진짜 이쁘네?”
서준은 괴수와 싸우는 전투조를 뒤로한 채 게이트 내부의 전경을 살펴보았다.
그곳은 재배지와 견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괴수들이 튀어나오는구나…….”
물론 모든 게이트 넘어가 이렇게 아름답지는 않았다. 정말 지옥 같은 곳도 있었다.
그러나 게이트 너머의 정보는 일부 길드들이 독점하고 있는 현 상황에 서준이 그를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대강 다 처리된 거 같네요. 이동합시다.”
애초에 게이트 내부에는 괴수 몇 마리 없었다. 대부분의 괴수들은 지구로 넘어갔고, 지금도 흑호 길드와 싸우고 있었다.
싸움이 마무리된 후 길드원들과 서준은 게이트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끔씩 괴수들이 튀어나왔지만 전투조가 간단히 처리했다.
애초에 강하다고 할만한 녀석들은 모두 지구로 넘어갔다. 남아있는 녀석들이라고 해봐야 쭉정이 수준인 게 보통의 게이트였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호랑이들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게이트 내부를 활보하고 있었다.
새로운 환경이었지만 경계심 따위는 없어 보였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라면 그저 좋은듯했다.
-어흥! 어흥!
커다란 나비가 팔랑팔랑 어흥이의 눈앞을 날아다녔고, 어흥이는 앞발을 휘두르며 따라다녔다.
뿔토끼도 꿀닭도 모두 손쉽게 사냥하던 어흥이였지만 나비를 잡는 건 쉽지 않았나 보다.
-캬앙! 크릉!
남은 두 녀석도 어흥이의 뒤를 따라 뛰어다녔다.
‘이거 아무래도 게이트를 좀 자주 와야겠는데?’
매일 재배지와 집을 반복하는 일상이 지루했던 것일까? 호랑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모습에 서준은 잠시 고민을 하기도 했다.
애초에 다 성장한 호랑이의 경우 행동반경이 일천 제곱킬로미터에 다다른다.
재배지가 넓다지만 시간 제약 때문에 그 활동반경에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호랑이들도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야 쟤네 봐, 너무 귀엽지 않아?”
“아까는 소풍 왔다느니 놀러 왔다느니 툴툴대더니?”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지.”
“맞아 맞아, 너무 귀여운데? 나도 한 마리 분양받을까?”
창천 길드의 길드원들도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애초에 아기 호랑이들을 보고 빠져들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채증 카메라를 들고 온 녀석은 어느새 정신이 팔려 호랑이 사진만 찍고 있었다.
‘신기한 게 많네?’
서준은 즐겁게 뛰노는 호랑이들을 뒤로한 채 자신의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서준은 눈에 보이는 약초란 약초는 모두 뽑아 담기 시작했다.
분명 게이트 너머에는 특수한 약초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는 섭취자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있었다.
호랑이 가족의 가장으로서 서준은 돈도 벌고 운이 좋다면 강해질 수 있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어머! 저거 저래도 되는 거야?”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놔둬, 저래야 실력이 늘지.”
길드원들은 다시 한번 호랑이들을 보며 놀라며 감탄했다.
“호랑이들이 괴수를 잡네, 미쳤다 미쳤어.”
“재들 크면 헌터 시켜도 되겠다.”
호랑이들은 게이트 내부에 남은 쭉정이 괴수 한 마리를 함께 사냥하고 있었다.
사실 괴수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작은 녀석이었다. 전투력이 있는 녀석은 대부분 지구로 넘어갔고 남아있는 녀석들은 모두 저런 작은 녀석들이었다.
뭐, 아무리 작다지만 어찌 되었건 새끼 호랑이보다는 큰 녀석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아기 호랑이들은 기가 막히는 연계를 보여주며 괴수를 잡아버렸다.
“저거 호랑이 맞아? 영수 아니야?”
“영수면 우리가 알고 있겠지, 한국에 몇 마리나 있다고? 한 사람이 세 마리나 가지고 있으면 소문났지.”
심지어 호랑이들을 영수가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생각났다.
각성한 사람들을 초인이라 부르는 것처럼 각성한 동물들은 영수라 불렀다.
‘영수라고? 음…. 그럴 수도 있겠네.’
그리고 호랑이들은 분명 영수라 의심할 만한 능력을 보여줬다.
‘분명 처음엔 아니었는데…. 이것도 뿔토끼 효관가?’
만약 뿔토끼의 힘이 단순히 강해지는 걸 돕는 게 아니라 각성까지 이끄는 것이라면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해질 것이었다.
‘이건…. 나중 가서 생각하고 내 할 일이나 하자.’
서준은 주위를 둘러보며 윤희주를 찾았다.
윤희주는 선두에 서서 일행들을 이끄는 중이었다.
“저기 길드장님, 이제 흩어져서 탐색하시죠? 이제 딱히 위험한 괴수들도 안 보이는데…….”
“흠…. 그럽시다.”
윤희주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자 주목! 우리도 지금부터 흩어져서 탐색 시작합니다. 각자 최대한 많은 이계의 물건들을 챙길 수 있도록 합니다.
그에 따른 보상이나 배분은 길드 측에서 합리적으로 결정할 것입니다.
집합 시간은 오후 네 시까지입니다. 오후 네 시 이 장소로 집합합니다.
1초라도 늦을 시 징계가 있으니 시간 엄수 바랍니다!”
윤희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길드원들은 신이 나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도 이렇게 긴 시간을 할당받은 건 처음이었으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백 선생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위험할 수 있어요.”
“괜찮아요, 호랑이들도 있고 저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아요.”
서준은 속으로 지난 한 달간 꿀닭과의 사투를 떠올리며 답했다.
“그럼 알겠습니다. 저도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윤희주도 말을 마침과 동시에 먼 방향으로 달려나갔다.
“얘들아 그럼 가볼까?”
-어흥! 캬앙! 크릉!
"자유다!"
-어흥! 캬앙! 크릉!
호랑이들은 신이 나서 뛰어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북적 한 것보다는 서준만 있는 게 그들 맘에도 편했다.
-크릉! 크릉!
크릉이 역시 기분이 많이 좋았는지 평소와 다르게 서준에 가슴팍에 뛰어올라 안겼다.
“크릉이 기분이 좋았어요?”
-크릉! 크릉!
서준이 크릉이 머리를 쓰다듬자 크릉이는 기분이 좋았는지 눈을 감고 머리를 비볐다.
그렇게 서준과 호랑이들이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약초들을 캐고 있을 무렵이었다.
-어흥! 어흥!
어흥이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윽고 서준과 남은 호랑이들도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냥 지나치기에는 그 존재감이 엄청났다.
“나무… 인가?”
나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앙상했다. 나뭇가지 정도 되는 크기의 막대기가 땅에 박혀있었다.
그 껍질도 말라비틀어졌는지 다 뜯겨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존재가 내뿜는 존재감은 엄청났다.
나뭇가지, 아니 그 묘목은 황량한 흙더미 속에서 홀로 빛을 내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