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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12화 (12/150)

12화

서준은 매일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흥! 캬앙! 크릉!

매 끼니마다 호랑이들이 잡아다 준 꿀닭을 먹었고, 집에서 운동을 했다.

뭐, 다른 헌터들처럼 특별한 훈련을 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전투 목적이 아니었고, 단순한 체력증진이 목표였을 뿐이다.

만일에 상황에 도망치기 위해선 적어도 제대로 달릴 줄은 알아야 했으니깐.

어차피 서준이 직접 싸울 것도 아니기에 전투훈련 같은 건 필요가 없었다.

서준은 날 때부터 평화주의자였고, 그 생각은 아직도 변화가 없었다.

“아! 꿀닭도 이제 질린다.”

천하일품, 천하일미라 생각했던 꿀닭이었지만 한 달 내내, 삼시 세끼 같은 음식만 먹다 보면 질리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 요리사가 서준이었다. 한 달 동안 반복되는 요리에 실력이 조금 늘긴 했지만 그래 봐야 일반인 수준이었다.

“아니 좀 유명한 길드라더니 게이트를 왜 한 달째 못 잡아?”

창천 길드 길드장인 윤희주가 게이트 수배에 나선 지 어언 한 달이 지났다.

서준은 처음 윤희주의 이야기를 들은 후, 게이트 수배까지의 기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기 위해 매일 운동을 했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꿀닭을 먹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그동안 공부만 하느라 망가졌던 몸이 꾸준한 운동을 통해 서서히 좋아지는 것을 느꼈고, 꿀닭은 정말로 맛있었다.

“어떻게 한달째 연락이 없냐고?”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한 달 내내 먹다 보니 냄새만 맡아도 토가 쏠리기 시작했다.

“그렇지 어흥아? 나 바람맞은 거지? 먹튀 한 거지?”

-어흥!

어흥이는 그러건 말건 크릉이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이제 나이가 좀 찼다고 슬슬 나를 귀찮아하기 시작했다.

“에휴, 어흥이도 무시하고 이제 살 낙이 없다. 닭볶음탕이나 해서 혼자 먹어야지.”

-캬앙! 캬앙!

닭볶음탕을 해 먹는단 소리에 캬앙이는 혹시라도 콩고물이 떨어질까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역시 너밖에 없다 캬앙아!”

-캬앙!

서준은 매일 닭만 먹다 보니 어느덧 닭요리 전문가가 되었다. 단순한 구이부터 시작해서 튀김, 강정 그리고 닭볶음탕까지 안 해본 닭 요리가 없을 정도였다.

요리실력이 그리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재료가 바로 그 꿀 닭이었기에 상당히 맛있는 수준의 음식이 탄생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종류가 다른 요리라도 결국 주재료는 꿀닭이었고, 백번 가까이 먹으면 물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러한 요리를 또다시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슬슬 질려 하던 참이었다.

“아! 진짜 먹튀 당한 건가?”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그러던 와중 서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호랑이 약국 백선생입니다.”

<백 선생님, 저 창천 길드 윤희주입니다.>

“아이고! 죽은 줄 알았습니다. 연락이 통 없으셔서.”

<하하, 죄송합니다. 저희도 일이 좀 있어서......>

한 달 만에 전화한 윤희주는 정말로 미안한 목소리를 하며 서준을 달랬다.

<죄송합니다. 백 선생님, 그동안 게이트가 이상할 정도로 많이 열려서 침투 임무 없이 계속해서 방위 임무만 떨어졌었습니다.>

“상황이라도 좀 알려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죄송합니다. 저희도 정신이 없을 정도로 하루가 멀다고 괴수들이 들이닥쳐서 경황이 없었습니다.>

지난 한 달 동안 평소보다 세 배 이상의 게이트가 열렸다. 덕분에 침투 임무를 따냈던 길드들도 게이트 너머를 탐사할 겨를도 없이 전부 방위 임무에 투입되었다.

윤희주는 그러한 상황들을 서준에게 설명해주며 서준의 마음을 풀어주고 있었다.

<어찌 됐든 보내주신 호랑이차는 정말 잘 쓰고 있습니다.>

“그럼요, 그걸 누가 만든 건데.”

<탕비실에 처음 놔뒀을 때는 요즘 누가 차를 마시냐고 커피나 종류별로 놔두라는 얘기도 많았는데, 어느덧 한 두 번씩 마시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최고 인기 음료가 되어버렸네요.>

“당연하죠, 그거 제가 특제 비법으로 만든 거라니깐요?”

호랑이차는 심신 안정의 효과를 제외하고 봐도 그 가치가 상당했다. 맛으로도 수위를 다투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창천 길드의 길드원들도 그 맛을 봤다면 중독이 되지 않고는 버티지 않을 수 없었을 테지.

물론 만드는데 특제 비법이 들어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근데 PTSD 치료제인 걸 알고 나서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길드원들 반발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그냥 맛있는 차 하나 구해왔다고 속이고 마시게 했는데 어느 순간 호랑이 차인 걸 다 알아버렸더라고요. 워낙에 백 선생님이 유명하시니깐…….>

“저런…….”

<호랑이차가 PTSD 치료제인 걸 알고 나더니 자존심이 좀 상했나 봐요. 그래서 안 마신다는 인원들도 좀 나오기 시작했죠.>

헌터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의 최정상 층이었다. 괴수들의 공격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시대에서는 개인의 무력이 권력이 되었고, 헌터들은 그 무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떠받들어지며 특권을 누리고 살아왔다.

힘 하나만을 가지고 추종을 받던 사람들이 PTSD를 앓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건 자존심을 다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서준의 호랑이차도 익명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호랑이차 역시 초록 활력초처럼 순식간에 매진되는 제품이었으나 판매 게시글에 달린 댓글은 정반대였다.

<그래도 그 효과가 워낙 확실하다 보니 하나둘씩 찾는 사람이 늘어나더라구요.>

“아, 효과는 확실히 보셨습니까?”

<네, 저부터도 확실히 효과를 봤습니다. 완치가 되는 건 아니지만 상당한 완화 효과를 봤습니다. 저희 길드원 모두 백 선생님 덕분에 간만에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뇨 별것도 아닌데요. 뭐.”

창천 길드의 길드원들은 호랑이차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최근 들어 잦은 침공 때문에 수많은 헌터들의 PTSD 증상이 악화하고 있었다.

최근 대부분의 헌터들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괴수와 싸워댔는데, 그 악랄한 과정에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힘들었다.

그러나 창천 길드의 길드원들은 꾸준히 호랑이차를 복용함으로써 그를 극복해 낼 수 있었고, 이번 방위 임무로 떠오른 주요 길드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덕분에 저도 위신이 좀 섰습니다. 구하기 힘들어 난리 난 호랑이차를 이렇게 꾸준히 공급해주니 길드원들이 저를 보는 눈빛이 좀 달라지더라구요.

초록 활력초도 이렇게 좀 정기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그쯤 해두고 본론으로 넘어가시죠?”

<네. 알겠습니다.>

초록 활력초 이야기가 나오자 서준은 서로에 대한 인사치레는 이 정도로 하자며 이야기를 넘겼다.

여기서 굳이 초록 활력초까지 건네주며 받을만한 이득이 없었기 때문이다.

창천 길드는 단 한 번의 게이트 침투 기회를 얻기 위함이었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게이트 전조증상이 있었습니다. 저희 길드는 내일 오후 게이트 침투 임무를 수행할 겁니다. 아직 생각이 변하지 않으셨다면 내일 오후가 마지막 기회가 되실 거 같습니다.>

“내일이요? 흠….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제가 뭘 하면 되죠?”

<사실 백 선생님께서 하실 건 별로 없습니다. 자세한 계획은 내일 만나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백 선생님께서는 개인 무장만 챙겨오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서준은 곧바로 게이트를 열어 재배지로 넘어갔다.

내일 있을 침투 임무를 위해 꼭 준비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준이 시장에 내놓지 않고 숨겨놓았던 비장의 무기였다.

“얘들아 타!”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이 바이크의 뒷자리를 툭툭 치자 호랑이들이 올라타 각자 자리를 잡았다.

"가자!"

-부르르르릉!

산악 바이크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

언덕을 넘고 바위를 넘고 먼 길을 달렸다. 그리고 어느덧 도착한 곳에는 조금 특별한 초록 활력초가 있었다.

“내가 너를 수확하는 날이 오는구나.”

서준의 앞에 있는 활력초는 지금까지 서준이 길러왔던 활력초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는 그 크기가 서준의 허리춤까지 왔다. 기본적으로 종아리 높이까지밖에 자라지 않는 활력초였지만 이 녀석은 그를 뛰어넘어 서준의 허리춤 높이까지 자랐다.

“쓸 일은 없었으면 좋겠지만…. 준비는 해둬야겠지.”

서준은 자기 허리춤까지 오는 초록 활력초의 잎이 아닌 열매를 떼기 시작했다.

이 녀석의 또 다른 특이점이었다. 보통의 초록 활력초는 열매를 품지 않았다. 그러나 이 녀석은 십여 개의 열매를 품고 있었다.

보통의 초록 활력초보다 훨씬 거대하고 열매를 품고 있는 이 녀석, 이것이 바로 서준의 비장의 무기였다.

“조금만 기다려 다 돼가니까.”

-어흥! 캬앙! 크릉!

지구에서의 사흘이 재배지에서의 일 년이었다. 초록 활력초를 재배하기 시작한 지 어언 넉달 가량이 흘렀고, 그동안 재배지에서는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자연스레 초록 활력초의 변종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본래의 것보다 크기가 훨씬 큰 녀석도 있었고, 잎의 색이 다른 것도 있었다.

심지어 꽃을 피워내거나 열매를 피워내는 녀석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들은 보통 더 강력하거나 조금은 다른 효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열매를 피워내는 녀석은 섭취 시 내상을 치료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서준의 앞에 있는 이 녀석은 그 녀석들 중에서도 특별한 녀석이었다. 홀로 크기가 독보적으로 컸으며 제일 많은 열매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서준은 이 녀석들을 시중에 풀어놓지는 않았다.

이미 보통의 초록 활력초와 호랑이차만으로도 돈은 충분히 벌고 있었고, 제일 중요한 양산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휴…. 진짜 중요할 때 쓰려고 한 건데 어쩔 수 없지 뭐.”

그렇기에 서준은 그러한 변종 활력초들을 비장의 무기로 아껴두었다.

그리고 지금 서준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이 서준이 길러낸 최고의 작품이었다.

“아따, 실한거 봐라.”

서준 눈앞에 있는 초록 활력초는 앞서 말했다시피 서준의 허리춤까지 올라왔다. 게다가 몇 개의 열매를 품고 있었다.

서준은 조심스레 그 열매들을 따서 각각 작은 플라스틱병에 조심스레 담았다.

“맛있겠지? 어흥아?”

-어흥!

이 열매들이 서준이 길러 낸 비장의 무기였다. 한 알을 먹으면 내상 외상 가릴 것 없이 치료해주는 엄청난 녀석이었다.

물론 그 정도가 심하면 이것으로는 모자라겠지만, 그쯤 되면 그냥 죽는 게 낫다.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혹시 모르니 챙겨가야겠지.”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서준은 다음날 오후, 게이트 전조증상이 있는 장소에 와 있었다.

“아! 오셨네요? 어머! 호랑이들도 데려오셨네요? 설마 데리고 들어가실 건가요?”

“네, 이 녀석들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특별한 녀석들이거든요. 그것보다 제가 늦은 건 아니죠?”

“네, 딱 맞춰 오셨어요.”

그곳에는 침투 임무를 맡은 창천 길드가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쉬는 중이었다.

윤희주는 인사치레를 마치자마자 서준에게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길드장이다 보니 준비할 게 많아 바빴던 모양이다.

“우선 저희는 방위 임무를 맡은 흑호 길드가 침투한 괴수들을 어느정도 처리할 때까지 대기합니다.”

“곧바로 넘어가는 게 아니었군요?”

“예, 게이트 너머에는 어떤 식생이 존재할지 미지수이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괴수 처리 후에 진입합니다.”

“아하!”

서준에게 설명해주던 윤희주는 한쪽 텐트를 가리키며 서준을 안내했다.

“백 선생님께서는 여기서 쉬고 계시면 됩니다. 때가 되면 제가 부르겠습니다. 준비는 저희들이 알아서 해놓겠습니다.”

“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게이트 침투 임무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 선생님, 때가 됐습니다. 가시죠.”

“네! 가자 얘드라!”

-어흥! 캬앙! 크릉!

서준과 호랑이들은 텐트 문을 나서며 게이트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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