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안녕하세요. 호랑이 약국 백선생입니다. 오늘은 새로운 제품 홍보차 글을 올립니다.
오늘 준비한 상품은 호랑이차입니다. 제가 직접 만든 차입니다.
뭔 약국에서 차를 파냐고요? 이 차는 그냥 차가 아닙니다. 마시면 마음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PTSD로 고통받는 헌터분들은 이 차를 꾸준히 드시면 많이 좋아질 거예요. 확신합니다.
우리 약국 찾아오셔서 차도 마시고 호랑이 보고 가세요^^ -호랑이 약국]
서준은 초인몰에다가 글을 하나 올렸다. 초록 활력초 분말에 이은 새로운 상품인 호랑이 차를 팔기 위함이다.
재배지에 한걸음 걸을 때마다 한 움큼씩 뽑을 수 있을 만큼 널려있는 안정초로 만든 차였다. 재료 수급도 쉬운 데다가 만드는 과정도 간단했다. 잘 말리기만 하면 되었다. 팔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판매를 결정한 서준은 이름을 고민을 하다 결국 호랑이차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본래는 안정초차라고 하려했으나 영 별로라 그냥 약국의 상징인 호랑이를 붙였다.
- 아무리 백선생님이라도 이건 좀...
- 난 그래도 백선생님 믿어
- 나도 믿어 근데 사진 않을 듯 ㅋㅋㅋㅋ
- 맞지 PTSD는 솔직히 좀 모자란 애들만 걸리자너 ㅋㅋㅋㅋㅋ
게시글에 달린 댓글은 지난번과 달리 대부분 호의적이었다.
그동안 초록 활력초를 팔면서 쌓은 인지도도 있었고 수량이 한정적인 활력초를 이렇게라도 구해볼까 아부를 하는 녀석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호랑이차를 주문 하는 건 아니었다.
“쯧, 댓글만 저래 달고 주문은 아무도 안 하네.”
사실 댓글 반응은 폭발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글을 올린 후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달린 댓글이 100개가 넘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서준이 올리던 초록 활력초 분말의 인기가 상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호랑이차에 대한 주문은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다.
수많은 헌터들이 PTSD를 앓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치료를 받는 헌터는 적은 게 현실이었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창피하다는 이유로 투병 사실을 숨기고 혼자 앓았다. 이 폭발적인 반응은 모두 초록 활력초에서 오는 것일 뿐이었다.
“뭐, 상관은 없지.”
사실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도 서준은 아쉬울 게 없었다. 지천에 널린 풀떼기 좀 떼다가 만든 차일 뿐이었다. 말릴 때도 초록 활력초 옆에서 같이 말리기만 하였으니 특별히 시간이 더 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맛만 좋구만.”
게다가 맛이 좋아 이미 서준은 호랑이차를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팔리지 않아도 서준이 먹어치우면 그만이었다.
맛도 좋고 심신의 안정을 가져오니 굳이 버릴 필요는 없었다.
좀 더 고급스러운 녹차 느낌의 맛이었다.
-띠링!
서준이 차를 음미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오며 종소리가 들렸다.
손님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 안녕하세요!”
서준의 기억 속에 있는 손님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기억 하나 보네요?”
“하하, 첫 손님을 어떻게 잊습니까?”
초록 활력초를 최초로 구매해갔던 여자였다. 서준은 그때처럼 안정초를 대량 구매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저 여자가 초록 활력초를 모두 구매해 준 후 소문까지 내준 덕분에 이렇게 잘 풀릴 수 있었다.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못 산 거 아세요? 매번 10초 만에 마감이 되어버리니… 아이돌 콘서트는 표 열리는 시간이라도 알 수 있지, 이건 그냥 랜덤이라 더 힘드네요. 소문을 괜히 낸 것 같아요. 나만 쓸걸…….”
“하하, 죄송합니다. 수급에 한계가 있다 보니 어쩔 수가 없네요.”
사실 서준은 초록 활력초를 더 재배하려면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시간의 문제였다. 더 많은 약초를 재배하면 재배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그건 큰 문제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가격의 문제였다. 사실 돈만 벌 수 더 있다면 재배지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도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공급이 많아지면 그만큼 희소성이 떨어지게 될 테고 재고라도 남는 순간 가격은 내려가기 마련이었다.
서준은 일부러 10초 정도면 다 팔릴 정도의 수량만큼만 공급을 조절하고 있었다.
“그런데 약국까진 어쩐 일이세요? 초록 활력초는 이제 인터넷 구매밖에 안 돼요. 그거 사러 오신거라면 죄송합니다.”
이미 온라인으로 10초 만에 매진되는 수준이었다. 굳이 직접 얼굴을 맞대며 오프라인 판매를 할 이유가 없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호랑이차 사려고 왔어요. PTSD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요.”
“아 그러세요? 또 첫 손님이시네요.”
“이번에도 테스트 가능할까요? 시음해보고 싶은데.”
“아 물론이죠. 제가 한잔 타 드릴게요.”
서준은 깔끔한 찻잔에 호랑이 차 한잔을 잘 우려내어 여자에게 내줬다. 본래 차를 즐기지 않는 서준이었지만 호랑이차를 만들며 새로운 찻잔을 몇 개 구매했다.
"여기요, 그런데 길드원분 중에 PTSD가 있나 보죠?"
"많죠…. 사실은 대부분이 그렇죠. 증상이 강하고 약하고의 차이일 뿐이지."
여자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아무래도 PTSD는 상당수 헌터들의 고민거리였고, 여자는 그런 헌터들을 관리하는 길드의 수장이었다.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맛있네요. 효과를 떠나서 자주 마시고 싶어질 맛이네요.”
“그럼요, 제가 어떻게 만든 건데. 제 특제 비법이 들어간 거예요.”
여자는 차를 마시면서도 고민이 많은 듯 보였다.
서준도 호랑이차를 많이 마셔봤지만 효과는 상당했다. 마시는 순간 심신이 안정되고 잡념이 사라졌다. 그렇기에 차를 즐기지 않던 서준 역시 호랑이차를 즐기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저렇게 고민을 한다는 건 그 고민거리가 상당하단 소리다.
“사실… 제가 마시려고요…….”
“길드장 님이요?”
여자는 다시 한번 차를 홀짝 마시더니 생각에 잠긴 듯 했다.
“후우… 네, 사실 제가 액면가보다 좀 더 어리거든요. 일부러 나이 들어 보이게 화장한 거예요."
“그렇습니까?”
“어린 나이에 자리를 유지하려 하니까 쉽지… 않네요. 일부러 더 과격하게 싸우고 더 잔인하게 싸워요.
괴수들을 간단하게 죽일 수 있을 때도 일부러 갈기갈기 찢어 죽이곤 해요.”
“어째서죠?”
여자는 한숨을 길게 내쉰 후 답했다.
“뭐 기싸움이죠 그냥. 그러다 보니 이제 슬슬 지치네요. 한계가 왔나 봐요. 아! 이얘기는 오프 더 레코드에요.”
“아 물론이죠.”
서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그래도 이렇게 얘기하니 맘이 좀 편해지는 거 같네요. 아니면 이 차가 좋은 건가?”
“하하, 둘 다 아닐까요? 앞으로도 힘드시면 가끔씩 이렇게 찾아와서 얘기해주세요. 다 들어드릴게요.”
“네, 앞으로 자주 애용할게요.”
대침공이 일어나기 전 서준의 약국에는 온 동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찾아와서 노인회관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때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서준을 백 선생이라 부르며 좋아라했고, 서준 역시 잘 따랐다.
덕분에 서준은 일을 할 때도 심심할 틈이 없었는데 초인 전용 약국이 되어버리니 찾아오는 사람이 뚝 끊겨버렸다.
‘오랜만에 이런것도 좋네…….’
-캬앙!
“어머나! 아기 호랑이잖아? 만져봐도 돼요?”
서준과 여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캬앙이가 다가와서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캬앙이의 눈에도 여자가 안쓰러워 보였나보다.
이쯤 되니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게 분명했다.
“네, 아마 괜찮을걸요? 사람을 꽤 잘 따라요. 진상만 안 부리면.”
“하하, 조심해야겠네요. 얘 이름은 뭐예요?”
여자는 캬앙이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캬앙!
“뭘 거 같아요?”
“글쎄요?”
“걔는 캬앙이예요.”
-캬앙! 캬앙!
“하하하! 울음소리가 캬앙거리는 데 혹시 그것 때문에?”
“네.”
“귀엽네요.”
캬앙이의 애교에 여자는 좋아 죽으려 했다. 캬앙이는 그 모습을 보고서는 머리를 비비며 더욱더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어흥!
그에 질세라 어흥이도 달려와 내 무릎에 뛰어 올라왔다. 어흥이는 캬앙이가 애교를 부리고 있을 때면 다가와 그 자리를 뺏고는 했다.
“걔는 그럼 어흥이에요?”
“네. 잘생겼죠?”
“털이 금색이네요? 금호라고 부르던 거 같던데……. 근데 저기 멀리 있는 아이는 안 오네요?”
여자는 데스크 위에 목만 올려놓고 차가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크릉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크릉이는 얼음 공주에요. 아무나 따르지 않아요.”
“아쉽네요. 제일 이쁘게 생겼는데.”
여자는 아쉬워하며 말했다. 사실 크릉이를 꼬실 방법은 있었다. 간단했다. 간식을 주면 쉽게 넘어왔다.
그러나 서준은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크릉이마저 뺏기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호랑이를 기르는 초인들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요. 그래도 맹수라 길들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이 아이들은 사람 말을 참 잘 듣네요.”
‘그래서 산다는 거야 안 산다는 거야?’
하지만 여자의 말이 계속해서 길어지자 서준도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그리웠던 서준이라지만 한 시간 넘게 의미 없는 대화가 계속되자 얼굴에 표가 나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사실 게이트를 넘어갔다 왔거든요? 저희 길드는 그동안 쭉 방위 임무만 하다가 처음으로 넘어갔거든요. 근데 그 안에…….”
여자는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삼십 분 동안이나 쓸모없는 이야기들이 계속되었다.
호랑이차를 팔기 위해 참고 있던 서준이었지만 더 이상은 힘들었다.
‘내가 심리상담가도 아니고, 이제 좀 적당히 하지…….’
캬앙이도 서준의 동생답게 슬슬 질리는지 여자의 품에서 빠져나와서 크릉이가 있는 데스크 위로 올라가 크릉이와 놀기 시작했다.
-크릉! 캬앙!
“어머! 재들 봐! 싸우는 거 아니에요? 말려야 할 거 같은데.”
“괜찮습니다. 노는 거에요.”
서준은 어흥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아!”
그리고 그때가 돼서야 여자도 서준의 지친 표정을 이제야 봤는지 남은 차를 호로록 다 마시고는 찻잔을 내려놨다.
“아! 죄송해요. 제가 말이 너무 길었네요. 호랑이들이 너무 귀엽다 보니…….”
“아니에요. 다음에 또 오셔도 됩니다.”
간다고 한 적도 없는데 다음에 오라고 하는 서준이었다.
“아뇨, 이쯤하고 돌아가야죠.”
“네, 저도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봬요.”
드디어 여자가 간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이 들었던 서준이었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불만이 가득 쌓였다.
‘저렇게 떠들고 결국 안 산다고? 너무하네! 진짜. 너한테는 이제 초록 활력초 안 판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서준이 그렇게 속으로만 불만을 삭이고 있을 때 갑작스레 다시 자리에 앉은 여자가 말했다.
“백 선생님, 사실 백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부탁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한번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예, 말씀해 보시죠. 일단 들어는 볼게요.”
여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고, 서준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자세를 고쳐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