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PTSD, 한국말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발생하는 정신적, 신체적 증상들을 말한다.
전쟁과 고문 그리고 심지어 교통사고 등을 경험한 후 그 일련의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게 된다.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전후 은퇴하여 고통받는 원인 중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간과의 전쟁이 끝난 지금, 괴수들과의 전쟁에 참전한 군인인 헌터들은 상당수가 PTSD로 고통받고 있다.]
“하아아아암… 뭐 다른 돈벌이 없나? 이제 초록 활력초도 자리 잡았고 슬슬 다른 거 찾아봐도 될 것 같은데.”
서준의 초록 활력초는 어느덧 소문이 퍼져 없어서 못 구하는 그런 약품이 되었다.
헌터들은 서준의 초인몰 계정 백선생의 글 알림을 설정해 놓아 백선생의 글이 올라오면 경쟁하듯 주문을 넣었다.
덕분에 서준이 판매글을 올리면 그 후 10초 안에 매진이 될 정도였다.
지금 서준의 초록 활력초는 어느덧 초인몰 최고 인기 상품 중 하나가 되었다.
초록 활력초를 판매하기 시작 한지 약 한 달이 지난 지금 서준은 평생 벌어두었던 돈보다도 많은 돈을 만질 수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서준의 마우스 휠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게이트 너머의 약초들을 정리해둔 블로그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사실 서준처럼 홀로 활동하는 초인들은 게이트 너머의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게이트 너머의 것들은 실물이든 정보든 모두 큰돈이 되었고, 그들은 길드라는 이름 하에 관리되었다.
각각의 길드는 자신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정보의 공유를 꺼렸다. 정보의 독점이 새로운 유망 헌터를 끌어오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한 헌터가 블로그에 게이트 너머의 약초들을 정리해서 올려놨으니, 그 파장은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서준은 그따위 것 알 바 아녔다. 서준에게 중요한 것은 게이트 너머의 약초들의 정보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준도 위와 같은 일련의 상황들을 알고 있었다. 서준은 혹여나 글이 지워질까 서둘러 한 장씩 캡처하고 읽기 시작했다.
“별빛 바람초, 음… 이건 쓸데없고.”
별빛 바람초, 손에 쥐어 가루를 낸 후 바람에 흘려보내면 빛을 내며 하늘 높이 날아가는 약초였다.
약초인지라 그 무게가 매우 가벼운 데다가 밝기는 매우 밝아서 조명탄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약사였던 서준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푸른 활력초? 이건 초록 활력초보다 효과가 좀 더 좋은가 보네?”
푸른 활력초,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초록 활력초와는 색만 다르고 효과는 비슷한 약초였다. 효과는 조금 더 뛰어났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그에 비해 자라나는데 시간은 두 배 이상 걸리니 굳이 키울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이것도 제외… 아 근데 이것들은 왜 이렇게 이름이 단순해?”
게이트 너머의 약초들의 이름은 대부분 이름만 들어도 효과를 알 수 있게 지어져 있었다. 명명 과정에서 효과를 먼저 알아낸 후 이름을 붙이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다.
“아 진짜 쓸만한 게 없네, 이거 진짜 좋은 것들은 숨겨놨나보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한 헌터가 개인적 취미로 올린 글이었지만 그도 헌터라면 헌터였다. 정말 도움 될만한 정보를 이렇게 쉽게 풀 리 없었다.
“어? 이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마우스 휠을 내리던 서준은 문득 눈에 익은 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 이거 어디서 봤더라? 어흥아 너도 모르겠니?”
-어흥! 어흥!
서준의 무릎 위에서 같이 모니터를 보고 있던 어흥이는 관심이 없는지 어흥! 하고 울며 서준의 무릎에서 내려갔다.
“나쁜 놈.”
기억해보려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한 서준은 게이트를 열었다. 오늘이 초록 활력초의 수확 날이었기 때문이다.
“애들아! 가자!”
-어흥! 캬앙! 크릉!
서준이 수확하러 가는 날마다 따라와서 뿔토끼 사냥에 나섰던 녀석들은 서준의 말을 듣자 신이 나서 서준보다 먼저 게이트를 넘어갔다.
이제는 활동 반경이 넓어진 녀석들에게 약국은 좁았고, 즐길 거리가 없었다.
그에 비해 재배지는 사냥감도 많았고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계곡도 있었다.
“어이구, 이놈들 봐라.”
서준은 그런 모습이 귀여웠는지 미소를 띠며 따라 움직였다. 요즘 서준은 돈벌이보다 저놈들 보는 낙으로 살고 있었다.
8년의 워프와 대침공으로 친구들과 연락이 끊겨 고립된 서준에게 저 녀석들이라도 있었기에 서준은 이렇게 밝을 수 있었다.
“애들아 형은 일하고 올 테니까 여기서 놀고 있어. 멀리 가면 안 되는 거 알지?”
-캬앙! 크릉! 어흥!
대답은 참 잘하는 녀석들이다.
서준은 자기들끼리 재밌게 물고 때리며 재미있게 노는 녀석들을 뒤로 한 채 일하러 움직였다.
“이게 가장의 책임감인가?”
산악 바이크를 타며 이동하는 서준은 시선을 아기 호랑이들에게서 거두지 못했다. 서준도 같이 가서 놀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지만, 시간 괴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8년의 워프는 서준에게도 굉장히 큰 충격이었고, 서준은 항상 시간 관리에 집착으로 보일 정도의 강박을 가지며 움직였다.
“끝났다!”
표시해놓은 재배 장소를 모두 들러 잎을 따 낸 서준은 약초 꾸러미를 바이크 뒤에 실은 채 호랑이들을 내려놓은 장소로 향했다.
“어! 저거 그거 같은데?”
서준은 호랑이들을 찾으러 가던 와중 뿔토끼가 뭔가를 씹어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블로그에 있던 거 그거!”
직전 서준이 블로그를 뒤지다 보았던 약초였다.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재배지에 널려있던 약초였다.
얼마나 흔하면 뿔토끼의 주식일 정도였다. 뿔토끼는 서준이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약초를 뜯어 먹고 있었다.
“일단 좀 챙길까?”
서준은 빈 자루 하나를 꺼내서 눈에 보이는 곳 가득 피어 올라있는 약초를 자루가 가득 찰 때까지 뜯어 넣었다.
하나둘 챙기다 보니 어느덧 자루 두 개가 가득 찼다.
“괜히 쓸데없이 챙기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직 제대로 된 쓸모조차 모르는 약초를 챙기던 서준은 더 이상은 과하다고 생각했는지 바이크를 타고 호랑이들을 찾으러 갔다.
-어흥! 어흥!
역시나 호랑이들은 뿔토끼 사냥을 하고 있었다. 이제 서준과 만난 지 삼 개월 차에 들어서 몸집이 더 커진 녀석들은 각자 한 마리의 뿔토끼를 잡아서 먹고 있었다.
예전에는 셋이 함께 잡아야 했던 뿔토끼도 혼자서 능숙하게 잡아낼 수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재배지에서 사냥을 하다 보니 사냥 실력이 부쩍 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보통 호랑이 같지는 않단 말야.”
확실히 보통의 호랑이와는 많이 달랐다. 아무리 아기 호랑이라지만 맹수였다. 그런데도 사람을 잘 따라도 너무 잘 따랐다.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약국 손님들에게도 애교를 부렸다. 그러다 손님이 진상이라도 부리려 하면 바로 목소리를 깔아서 울어대는 것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듯했다.
심지어 어느 날엔 지인들과 연락이 모두 끊긴 서준이 외로움에 우울해하고 있자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크릉이가 먼저 다가와서 서준에게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다른 날에는 계속해서 간식을 달라고 보채던 어흥이와 캬앙이도 그날만큼은 조용했다.
“분명 처음 왔을 때는 저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처음 녀석들을 데려왔을 대는 저러지 않았다. 보통의 호랑이를 길러본 적은 없지만 적어도 저 정도로 지능이 높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갓 태어났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선 안 되는 거겠지만 그래도 정도를 넘었다.
게다가 어린 나이에 비해 빨라도 너무 빨랐고 힘이 세도 너무 셌다. 녀석들이 재배지에서 더 놀고 싶은 마음에 마음먹고 도망 다닐 때면 서준이 애를 먹을 정도였다.
“확실히… 뿔토끼를 먹기 시작한 후부터 변한 것 같은데… 아! 잘 모르겠다!”
서준은 고민해봐야 답이 안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뿔토끼를 못 먹게 해 변화를 비교할 수도 없었고, 똑똑해지고 강해져서 나쁠 건 없었다.
-어흥!
이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위험했기 때문에 서준은 뿔토끼를 먹고 있는 어흥이부터 시작해서 한 놈씩 목덜미를 잡고 게이트 너머로 던졌다.
-캬앙! 그릉!
녀석들은 반항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서준의 시간에 관한 강박은 호랑이들의 귀여움을 넘어섰다.
“이름이 안정초구나?”
다시 지구로 넘어온 서준은 블로그를 다시 열어 뜯어온 약초와 비교해 보았다.
역시나 서준의 예상대로 그 약초가 맞았다. 약초의 이름은 안정초로 차로 우려먹으면 마음이 안정된다고 한다.
“음… 특별한 효과도 없고 재배법을 밝혀내지 못한 데다가 지구에서 자생하지 않는 풀이다. 첫 발견 이후 특별한 연구가 진행된 것은 없다라…… 에잉 꽝이네.”
-크릉!
서준이 안정초의 정보를 읽은 후 실망을 하며 저 많은 풀떼기를 어찌 처리할까 고민하던 와중 어흥이와 장난치던 크릉이가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띡!
<예! 오늘은 헌터 전문 정신과 전문의 송치호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아 예, 안녕하세요? 정신과 전문의 송치호입니다.>
<예! 오늘 해주실 이야기는 뭔가요? 많은 방청객분들과 시청자분들께서 벌써부터 기대하고 계십니다.>
<아 네. 오늘 제가 해드릴 이야기는 헌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다들 초인들에 관심이 많으시죠? 특히 헌터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죠! 아무래도 특별한 사람들이니까요.>
<그렇게 항상 밝게 빛날 거 같은 헌터들에게도 아픈 상처가 있답니다. 바로 상당수가 PTSD를 앓고 있다는…….>
블로그 글을 읽으며 안정초의 처리를 고민하던 와중 들리던 텔레비전 소리가 서준의 귓가를 스쳤다.
“아!”
그 순간 서준의 머릿속에는 돈다발이 가득했다. 하늘에서 돈다발이 비처럼 내리고 서준과 아기 호랑이들이 돈다발의 홍수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크릉아! 잘했어! 사랑해! 오늘 뭐 먹고 싶어? 오빠가 다 해줄게!”
서준은 그 순간 마우스를 내팽개치고 크릉이에게 달려가 크릉이를 끌어안고는 다정하게 말하며 크릉이를 쓰다듬어줬다.
서준은 크릉이가 텔레비전 전원을 켜 준 덕분에 안정초의 쓰임새를 떠올릴 수 있었다.
-크릉! 크릉!
크릉이는 간식을 준다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기분이 좋아 평소와 다르게 서준의 볼을 할짝대며 애교를 부렸다. 간식은 크링이도 애교를 부리게 한다.
“아이고 귀여운 것! 평소에도 요거 반만큼만 해라!”
-어흥! 캬앙!
서준이 크릉이만 귀여워 해주자 어흥이와 캬앙이도 서준에게 다가가 몸을 비비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알겠어, 알겠어, 다 같이 맛난 거 먹으러 가자! 이제 우리 진짜 부자야!”
서준은 텔레비전 전원도 끄지 않은 채 아기 호랑이들의 특식을 챙겨주기 위해서 부엌으로 향했다.
-어흥! 캬앙! 크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