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차원과 차원을 연결하는 것 그것이 서준의 능력이다.
물론 연결 가능한 차원은 정해져 있었다. 지구와 서준이 한 달간 생활했던 바로 그 차원이었다.
서준은 그 차원을 재배지라고 이름 지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단지 약초 재배에 사용할 계획이었기에 그리 이름 지었을 뿐이다.
“후… 하… 후… 하….”
서준은 게이트를 열어놓고 재배지로 넘어가기 전 심호흡을 했다.
서준이 재배지로 몸을 옮기는 순간 시간의 흐름이 역전된다. 자칫 잘못하면 지구로 돌아왔을 때 상당한 시간이 흘러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재배지에 넘어가기 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재배지 안에서의 시간을 최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가자.”
서준은 미리 준비해준 물건을 한 손으로 잡고 나머지 손에는 아기 호랑이 세 마리를 넣어둔 케이지를 잡은 채 재배지로 넘어갔다.
호랑이들이 아직 너무 어려서 혼자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호랑이들을 지구에 놔둔 채 재배지에 갔다가 시간을 오래 끌어버리면 그사이에 며칠이 흘러 그동안 굶어 죽을 수도 있었다.
“이곳도 오랜만이네.”
그곳에는 서준이 놔두고 간 철제 선반이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증명하듯 군데군데 녹이 슬어있었다.
“그때는 힘들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추억이 되는구만.”
철제 선반 위에 올라가 위태위태하게 잠을 자기도 했고, 갑작스레 내리는 비 때문에 쫄딱 젖은 날도 있었다.
그때는 야외에서 생활하는 것이 그렇게 괴로웠었는데 지나고 보니 전부 추억이 되었다.
“안돼! 지지야!”
케이지 속에 있는 호랑이들이 철제 선반 위에 있는 보존식품의 냄새를 맡고 먹고 싶다고 아우성 댔지만 너무 오래돼 먹을 수 없는 음식들이었다.
서준이 지구에 있는 동안 이곳의 시간이 반대로 100배 빠르게 흐른 것이다.
-부르르릉!
서준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모터가 달린 고무보트를 강에 띄웠다.
초록 활력초는 산에서 사는 식물이었다. 하지만 지금 서준이 있는 쪽에는 초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결국 초록 활력초를 기르기 위해서는 강을 건너야 했다.
-어흥! 캬양! 크릉!
케이지 속에서 밖을 바라보던 녀석들도 고무보트를 타는 게 재미있는지 신이 나서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가량 배를 타고 나니 어느새 반대편에 도착했다.
강 반대편에 도착한 서준은 곧바로 다시 게이트를 열어 지구로 넘어갔다. 그 움직임에는 전혀 낭비가 없었다. 모두 계획대로였다.
“휴우. 그래도 이 정도면 빨리 끊은 것 같지?”
재배지에서는 속도가 생명이었다. 서준은 재배지에서 보내는 1초의 시간마저 아끼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놓았다. 괜히 시간을 끌었다가는 또다시 사망처리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준비 중 가장 많은 돈을 잡아먹었던 녀석을 잡았다. 이번 재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녀석이었다.
“후우!”
그리고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한 후 게이트를 열어 다시 재배지로 넘어갔다.
“좋아. 역시, 시작 위치가 아니고 최종 위치로 연결해주네.”
서준의 예상대로 서준은 강 건너에 있었다. 지구에서의 마지막 위치와 재배지에서의 마지막 위치의 연결, 서준이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그럼 가볼까?”
서준은 호랑이들을 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곧장 서준이 준비했었던 회심의 물건, 산악 바이크에 올라타며 시동을 걸었다.
이 녀석을 가져오기 위해 다시 지구로 돌아갔던 것이다. 보트에 올려놓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호랑이들을 넣어둔 케이지를 뒤에 태운 후 안전하게 묶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돈보단… 시간이지? 그래… 어쩔 수 없지. 아쉬워 하지 말자.”
서준은 지금도 속이 살짝 쓰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고무보트를 구입해야 했다.
산에서 이동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산악 바이크가 필요했다.
고무보트와 산악 바이크를 구매하는데 부담이 갔지만 시간을 아끼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돈은 앞으로 벌면 되지만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다.
-부르르릉!
서준의 산악 바이크가 굉음을 내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초록 활력초를 심을 만한 곳을 찾고 다시 돌아가야 했다. 서준은 엑셀을 최대한 강하게 밟으며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간을 아껴야 했던 서준은 큰 바위가 보이기만 하면 일단 바이크를 세워놓고 대충 가서 초록 활력초를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성장에 시간이 걸리고 주변에 다른 초록 활력초가 있으면 죽어버렸지만, 그를 제외하면 비옥하지 않은 땅에도 자리를 잡고 잘 자라는 것이 이놈들의 특징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악조건이 되는 것들이 서준에게는 전혀 악조건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넓은 간격을 두고 초록 활력초를 모두 심은 서준은 서둘러 게이트를 열고 지구로 돌아왔다.
“이제 열흘만 기다리면 된다 이거지?”
다 자라는 데 3년이 걸리는 초록 활력초였지만 서준의 능력이 있다면 열흘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열흘 후 재배지를 찾은 서준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서준의 기대 대로 재배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두 달의 시간이 더 흘러서 초록 활력초의 양산이 성공했다.
서준이 인류 최초로 초록 활력초의 양산에 성공한 것이다.
“이게 다 얼마냐? 어흥아 형아가 이제 맛있는거 많이 사줄게!”
-어흥!
지금 서준의 약국 데스크에는 잘 말린 초록 활력초들이 늘어져 있었다.
“말리는 것도 눈 깜짝할 새에 되니까 좋네.”
서준은 재배지에서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초록 활력초의 잎을 하나씩 떼서 잘 놓은 후 지구로 돌아왔다.
그 후 잠깐 딴짓을 하다 넘어가면 잘 마른 초록 활력초를 얻을 수 있었다.
남들은 3년을 기다려야 하는 걸 단 열흘에 해내고 며칠 바싹 말려야 하는 것을 한 시간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쿵떡! 쿵떡! 쿵떡! 쿵떡!
서준은 잘 마른 초록 활력초의 잎을 절구에 넣고 빻기 시작했다.
워낙 햇볕에 잘 말랐는지라 얼마 지나지 않아 고운 분말로 만들 수 있었다. 청량한 초록빛을 내는 분말이었다.
“이제 포장만 하면 된다 이거지?”
서준은 초록 활력초의 분말들을 5g씩 정확히 나눠서 포장하기 시작했다. 약사로 일 년이나 일했던 서준이었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익숙한 일이었다.
“퀄리티는 이 정도면 최상이지. 재배지 환경이 좋긴 좋나 보네.”
활력초를 양산하는 두 달의 시간 동안 서준은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초록 활력초의 상태들을 확인했다. 분말 상태의 활력초도 확인해보았고, 원 상태의 활력초도 확인해보았다.
그러나 모두 다 야생에서 채취한 거라 퀄리티가 제각각이었고, 정말 좋은 상태의 활력초도 서준이 기른 것만 못했다.
허나 서준의 초록 활력초는 아주 깨끗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만큼 최상의 퀄리티를 자랑했다.
그만큼 재배지의 환경이 약초 재배에 최적화되어있었다.
“가격은… 10만 원 정도면 되겠지?”
분말 5g의 10만 원이면 최상급 초록 활력초 분말의 가격이었다. 서준은 자신의 분말이 그 정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10만 원에 팔리는 활력초 분말보다도 훨씬 양질의 제품이었으나 그 이상의 가격은 사실 받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일단, 유명해지면 더 받자.”
-캬앙!
서준이 돈방석에 앉아 행복한 삶을 즐기는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캬앙이가 서준에게 다가와 서준의 종아리를 툭툭 쳤다.
“어이구우, 캬앙이 배고파서 형 불렀어?”
두 달 새에 늠름한 어린이 호랑이가 된 캬앙이는 어느덧 다 큰 고양이만한 크기가 되었다.
-어흥! 어흥!
어흥이 역시 배가 고팠는지 서준의 다리를 툭 툭 쳤다.
“아직 어려도 역시 호랑이는 호랑이네.”
몸은 아직은 고작 고양이 크기에 불과하지만 녀석들의 발바닥은 성인의 손 크기에 견줄 만큼 컸다.
조금 더 크면 정말 위협적인 앞발이 될것이 분명했다.
“크릉이 저 녀석은 너무 시크하단 말야.”
어흥이와 캬앙이는 틈만 나면 서준에게 달려들어 애교를 부렸다.
하지만 유일한 암컷 호랑이였던 크릉이는 전생에 얼음공주였는지 애교가 전혀 없었다.
-어흥! 어흥!
“알겠어, 알겠어 그만 보채.”
어흥이가 더 이상은 못 참겠는지 서준의 다리를 툭 툭 건드리는 수준에서 휘둘러 때리는 수준으로 변했다.
“자 먹어라!”
서준은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생닭 세 마리를 던졌다.
-어흥! 캬앙! 크릉!
녀석들이 싸우지 않도록 닭을 서로 멀리 던지는 건 기본이었다.
“그나저나 어흥이 저놈은 점점 더 잘생겨진단 말야.”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홀로 금색 빛의 털을 가지고 있던 어흥이는 털 뿐만이 아니라 얼굴마저 늠름하게 변해갔다.
아마 미스터 타이거 선발대회 같은 게 있다면 일등은 떼 놓은 당상일 것이다.
-캬앙! 캬앙!
-크릉!
그러던 와중 먼저 닭 한 마리를 다 먹어치워 버린 캬앙이가 크릉이의 닭을 뺏으려고 달려들었다.
“캬앙이 안돼!”
서준은 욕심을 부리는 캬앙이의 목덜미를 잡아서 크릉이에게서 떼어냈다.
“악!”
하지만 이제는 캬앙이도 힘이 좀 세져 예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캬앙이의 발톱에 할퀴어진 서준의 팔에는 기다란 상처가 났고 피가 맺히기 시작했다.
“캬앙이 너! 형한테 이럴 거야?”
서준이 캬앙이의 엉덩이를 한 대 치면서 소리치자,
-캬아앙…
캬앙이는 풀이 죽어 소파 밑에 들어가 숨었다.
“아 이거 놔두면 흉 지겠네…. 어쩔 수 없지”
상처가 깊어 그대로 두면 흉터가 남을 게 분명했다. 고민하던 서준은 결국 포장해둔 초록 활력초 분말 봉지를 뜯었다.
“이거 십 만원 짜린데…. 캬앙이 너 저녁 굶어!”
서준은 맘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뜯어놓은 분말을 상처 부위에 뿌렸다.
“으! 앗!”
그 순간 상처가 순식간에 메워지기 시작했다. 서준은 그 광경에 놀라면서도 가려움에 괴로워했다.
-캬앙! 캬앙!
캬앙이는 서준을 다치게 했던 게 미안했던지 어느새 달려와 상처 부위를 핥고 있었다.
이미 분말의 효과로 상처는 다 나았지만 서준은 그것으로 기분이 풀려서 헤실헤실 웃었다.
“요 귀여운 녀석, 앞으로 형 말 잘 들어야 해?”
-캬앙!
-어흥!
캬앙이만 귀여워 하는 게 질투 났는지 어느새 어흥이도 달려와 서준의 무릎 위에 배를 까고 누웠다.
-어흥! 어흥!
그 모습을 본 서준이 어흥이의 배를 긁어주자 기분이 좋은지 낮게 그릉대기 시작했다.
“에휴 크릉이도 이렇게 애교 좀 부리면 얼마나 좋아?”
서준은 데스크 위에 홀로 앉아서 햇볕을 쬐고 있는 크릉이를 보며 안타까움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아기 호랑이들과 놀아주기를 한 시간 정도 했을까? 녀석들이 지쳤는지 소파 위로 올라가 하나둘씩 잠들기 시작했다.
“휴우… 육아가 이렇게 힘든 거구나.”
서준은 그런 녀석들의 사진을 찍었다. 녀석들을 키운 이후로 서준에게 생긴 습관이자 취미였다.
장난을 치거나 잠자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을 보면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귀여운 것들.”
찍어놓은 사진은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변경한 서준은 데스크에 앉아서 노트북을 켰다.
“좋아. 그럼 이제 장사를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