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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5화 (5/150)

5화

초록 활력초라는 약초가 있다. 본래 게이트 너머에서 존재하던 것이었지만 어느 순간 지구에서도 드물게 발견되는 약초였다.

효과는 초인 기준으로는 그렇게 엄청난 것은 아니었다. 분말로 만들어 상처에 바르면 얕은 상처는 약간이나마 회복된다.

근데 이 약간이라는 단어의 쓰임새가 일반인과 초인 사이의 괴리가 있다.

초록 활력초의 분말을 바르면 작은 상처는 살이 돋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의 속도로 치료가 된다. 일반인 기준으로는 기적에 가까운 현상이다.

하지만 초인 기준으로는 약간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게이트 너머에는 훨씬 더 엄청난 치료제들이 많았다.

초록 활력초는 정말 기초적인 치료제의 재료일 뿐이었다.

바로 이것이 초인과 일반인, 게이트 너머와 지구의 인식 차이였다.

“와 힘드네, 평소에 운동을 좀 해뒀어야 했는데. 돌아가면 꾸준히 운동해야겠다.”

서준은 지리산 어딘가를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지리산이 방치된 지 어언 8년 편하게 오를 수 있는 등산로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다.

지리산이 인간의 영역에서 동물들의 터전으로 돌아간 지금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은 범 사냥꾼이나 서준 같은 약초꾼이 전부였다.

“헉, 헉, 죽겠네. 이렇게 구하기가 힘드니 비싸지.”

초록 활력초는 재배에 실패한 약초였다. 사실 재배법이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그 조건이 금전적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첫째로 다 자라는데 삼 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한 뿌리 삼십 만원에서 오십 만원 정도 하는 걸 팔자고 삼 년이나 기다리기엔 너무 오래 걸렸다.

그리고 둘째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주변에 다른 초록 활력초가 심어져 있으면 바로 죽어버렸다.

그렇기에 재배를 하려면 매우 넓은 땅이 필요했다.

삼 년이라는 오랜 성장 기간과 쉽게 죽어버리는 성질 때문에 사람들은 초록 활력초의 재배를 포기했다.

기초 약품이었던 초록 활력초의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이유였다.

“뭐, 나한텐 별문제도 아니지.”

하지만 서준에게 두 문제 모두 큰 어려움은 아니었다. 손쉽게 해결이 가능했다.

만약 서준의 예상대로 재배에 성공한다면 서준은 돈방석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기초 약품인 초록 활력초는 수요가 꾸준했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산이야? 절벽이지!”

서준은 거의 암벽등반 수준으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온통 돌 바위 절벽으로만 이루어진 길이었다.

바위와 바위틈에서 자라는 초록 활력초의 특성 때문에 선택한 길이었다.

서준은 그런 곳을 오르고 약초가 자랄 만한 곳을 뒤지고 허탕을 치면 다시 오르고를 수십 번 반복했다.

“후우. 힘드네, 더는 못가겠다. 저기 가서 좀 쉬자.”

산을 네발로 기듯이 오르다 온몸의 진이 다 빠진 서준은 쉴만할 곳을 찾다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발견했다.

-풍덩!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서준을 계곡을 발견하자마자 참지 못하고 그대로 달려가 몸을 던졌다.

“꼬륵, 꼬륵”

계곡은 상당히 깊어 서준의 몸이 다 잠기고도 남을 정도였다.

수영을 잘 하는 서준이었지만 물이 시원해서 굳이 올라오지 않고 물속에서 청량함을 즐겼다. 오랜 기간 방치된 계곡은 그야말로 청정 1급수였다.

“푸헉!”

그렇게 일 분여 가량 잠수하던 서준은 숨이 차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올라와 계곡 위의 바위에 매달렸다.

“허억, 허억, 허억, 골수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 어?”

서준이 매달려있는 바위와 그 옆 바위틈에 무언가 초록색 풀이 나 있었다.

"찾았다!"

바로 초록 활력초였다.

어이없게도 서준은 쉬는 사이에 목표물을 찾아냈다.

목표했던 초록 활력초를 찾은 서준은 조심스럽게 뿌리를 뽑아서 준비해둔 가방에 담아 넣었다.

“그래도 한 개라도 찾으니까 힘이 좀 나네. 이왕 이렇게 된 거 몇 개 더 찾아보자!”

초록 활력초를 찾아 신이 난 서준은 소리를 지르며 의욕을 돋우었다.

그리고 날다람쥐처럼 산을 활보하며 약초를 찾으러 다녔다. 신이 난 서준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와 미쳤네? 이게 나온다고? 그냥 로또나 살걸.”

여섯 뿌리나 캐낼 수 있었다. 다른 약초꾼들이 들으면 절대 믿지 않을 만큼의 수확이었다.

보통의 약초꾼들이 한 달 내내 산에서 먹고 자고 하며 뒤져도 이만큼 못 찾을 때도 있었다.

하물며 초보 약초꾼이었던 서준이 첫날에 여섯 뿌리를 캐내었다고 하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이만하면 목표치를 넘었지. 그만 내려가자.”

원래 목표했던 것 이상의 수확을 얻어낸 서준은 더 오래 산에 머물 필요가 없었다.

서준은 기쁜 마음으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올라올 때는 그렇게 고통스러웠는데 내려갈 때는 뭐가 이렇게 즐거운지 서준은 싱글싱글 웃었다.

-낑, 낑, 낑,

초록 활력초를 이미 다 찾았기에 절벽으로 가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서준은 그나마 완만한 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는데 멀리서 동물이 낑낑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서준은 이래 봬도 약사였다. 비록 갑작스레 벌어진 일들 덕에 심경의 변화가 생겨 약국 문은 닫고 돈을 위해 달리고 있지만 그 심성이 어디 간 건 아니었다.

수많은 직업 중 약사를 선택한 것도 그 심성 덕이었다.

“가봐야겠지?”

서준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수풀을 해치며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리고 그곳엔,

“헉! 호랑이다!”

호랑이가 있었다. 8년 동안 인간의 발길이 끊긴 지리산에는 이미 여러 호랑이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었다.

“죽은 건가?”

나무 뒤에 숨어 조심스럽게 살펴보던 서준은 쓰러져있던 호랑이 한 마리가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낑, 낑, 낑,

“소리는 계속 나는데?”

하지만 죽어서 미동도 안 하는 호랑이 쪽에서 낑낑대는 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아무래도 거대한 몸체 뒤에 가려진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했다.

“새끼가 있나?”

서준은 용기를 내어 호랑이 쪽으로 다가갔다. 역시나 죽은 호랑이의 품속엔 새끼 호랑이 세 마리가 상처를 입은 채 낑낑대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언가의 습격을 받은 어미 호랑이가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새끼들을 끌어안은 채 모든 공격을 받아내었던 모양이다.

-낑, 낑, 낑,

세 마리의 새끼 호랑이들은 어미가 죽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는지 피를 흘리면서도 죽은 어미를 핥고 있었다.

안쓰러웠다.

“어쩌지?”

서준은 잠시나마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장 가방에서 초록 활력초 세 뿌리를 꺼냈다.

“젠장, 이거 비싼 건데.”

하지만 새끼 호랑이의 귀여움이 서준의 이성을 이겨냈다. 어차피 남은 세 뿌리면 충분히 재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서준은 가방에서 꺼낸 활력초를 돌멩이를 이용해 빻아냈다. 분말로 만들었을 때 효과가 제일 좋지만 지금은 이 방법이 최선이었다.

“아까워하지 말자. 잘 된 거야. 어릴 적부터 호랑이 한 마리 꼭 키우고 싶어 했잖아.”

어릴 적부터 티브이 프로그램에 아기 호랑이가 나올 때면 꼭 한 마리 키워보고 싶다 생각했던 서준이었다. 어쩌면 오늘 그 꿈을 이룰지도 몰랐다.

“괜찮아, 괜찮아, 형아가 이제 안 아프게 해줄게. 형만 믿어. 안심해.”

서준은 아기 호랑이들을 안심시키며 다가갔다.

호랑이들은 경계의 눈빛을 보냈지만 반항할 힘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는지 순순히 서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낑, 낑, 낑,

“진짜 효과 미쳤네? 와…… 이게 고작 30만 원이라고?”

돌덩이로 대강 빻은 초록 활력초를 호랑이들의 상처에 바르자 순식간에 상처가 아무는 것이 보였다. 정말로 신비한 약초였다.

-끼잉, 끼잉,

호랑이들은 새살이 돋는 것이 가려운지 계속해서 낑낑대고 있었다.

“엄청 귀엽네. 안 되겠다 데려가야지. 더는 못 참아.”

그 모습을 본 서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호랑이들을 가방에 챙겨 넣어 집으로 향했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서준의 약국의 도착한 호랑이들은 새로운 환경이 낯선지 계속해서 울어댔다.

상처가 다 치료되고 이제 기력이 좀 생겼는지 매섭게 울었다.

서준은 그런 호랑이들을 내버려 둔 채 인터넷을 켰다. 아기 호랑이들에게 뭘 먹여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호랑이 관련 영상은 몇 개 없었다. 애초에 애완동물이 아닌 맹수였으니깐.

하지만 호랑이도 결국 고양잇과 동물이 아닌가? 서준은 새끼 고양이를 기르는 영상 몇 개를 보더니 마트에 가서 젖병과 고양이용 우유를 사 왔다.

-어흥!

-캬앙!

-크릉!

젖병에 우유를 담자 그 냄새를 맡은 녀석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경계의 눈빛은 사라졌다.

허기짐이 경계심을 완벽하게 이겨낸 것이다.

녀석들은 서로 먼저 먹겠다고 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수라도 아니고 두 개의 팔만 가지고 있는 서준은 한 번에 한 마리에밖에 줄 수 없었다.

-캬앙!

놈들은 서로 먼저 먹겠다며 서준의 팔을 할퀴어댄다. 서준은 그런 녀석들의 목덜미를 잡아떼며 한 마리씩 먹이기 시작했다.

먹이는 와중에도 다른 녀석들이 계속 달려들어 서준의 팔을 할퀴었다. 심지어 이미 다 먹은 녀석까지 달려들었다.

“아파! 그만해!”

서준의 팔은 손톱자국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호랑이를 집사의 명예 훈장이라 생각할 수밖에.

나중에 초록 활력초 재배에 성공하면 이 정도 상처는 금방 치료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서준이었다.

“이야 한 놈은 황금색이네?”

서준은 녀석들에게 우유를 먹이면서 놈들의 외향을 살폈다.

두 마리는 평범한 호랑이였지만 어흥 하고 울던 한 놈은 털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좋아. 이름은 지어줘야지.”

서준은 녀석들을 보며 좋은 이름 없을까? 생각하다 잠시 후 결론을 내렸다.

“너는 어흥이, 너는 캬앙이 그리고 너는 크릉이야.”

단순했다. 서준은 녀석들의 울음소리를 따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금색 놈은 어흥 하고 울었고 나머지 둘은 캬앙, 크릉하며 각자 자기만의 울음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어흥! 어흥!

-캬앙! 캬앙!

-크릉! 크릉!

녀석들은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자기 이름에 맞게 울어댔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부른지 트림을 한번 꺽 하더니 잠이 들었다.

“좋아. 약국은 어차피 아직 쉬고 있으니까 일단은 여기서 키우자. 꽤 넓으니 아기 때는 충분하겠지.”

집에 데려가서 키울까도 고민을 해봤지만 집보다는 아직 텅텅 비어있는 약국이 좀 더 안전할 것 같았다.

괜히 집에 데리고 올라갔다가는 가구들이 모두 망가졌을 것이다.

“요즘 초인 중엔 맹수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던데…… 어쨌든 나도 초인이니 괜찮겠지?”

8년 전 서준의 상식으로는 사실 호랑이를 기르는 건 범죄였다.

기르던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최근 들어 맹수에게 물려 죽을 걱정 없는 초인들 중 상당수가 호랑이나 표범 같은 맹수를 기르기 시작했다.

아직 그 과도기라 정보는 많이 없지만 확실한 이야기였다.

서준도 신체가 강해지는 계열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초인이니 괜찮겠거니 했다.

“그럼…… 애들도 잠들었고 이제 시작해볼까?”

서준은 잠이든 호랑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게이트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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