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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4화 (4/150)

4화

“초인등록이라… 돈 벌라면 이거 해야겠네.”

서준은 문을 닫아놓은 약국 데스크에 앉아서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었다. 다시 생산 활동을 하기 전 우선 달라진 세상에 대해 파악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전과 제일 크게 변한 것 초인, 바로 그 초인 위주로 검색어를 잡아 찾아보는 중이었다.

“50만 원씩 주는데 안 하면 미친놈이지.”

초인등록, 특별히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초인관리청에 찾아가서 초인임을 증명하고 신분등록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초인임을 증명해주는 초인증을 받을 수 있다.

처음에는 초인 등록을 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정보를 찾다보니 서준의 눈길을 끄는 두 가지 사항이 있었다. 첫 번째는 초인 등록 시 매달 50만 원 지급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대침공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끊임없이 초인들이 튀어나왔다. 정부는 이들을 이용해 경찰도 군대도 초인부대로 개편했다.

현대무기가 사라지면서 뚫린 치안 구멍을 메꾼 것이다.

하지만 예전만큼 좋아질 수는 없었다. 범죄자 중에서도 역시 초인이 있었고, 그들이 맘을 먹고 행패를 부리면 피해가 상당했다.

정부는 그들을 관리하기 위해 초인등록제를 시행했다. 그리고 초인 등록을 하면 매달 50만 원을 지원해줬다.

이렇게라도 해서 초인들이 본인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숨어서 범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확실했다. 음지에 숨어있던 초인들이 일제히 초인 등록을 하러 양지로 올라왔다.

“일단 신분확인부터 하겠습니다. 여기에 지문 찍어주세요.”

“네.”

어느새 초인관리청에 도착한 서준은 초인등록을 하기 위해 접수하고 있었다.

“백서준씨… 맞으시죠? 우와 8년 만에 돌아오셨네.”

“아 네, 뭐…….”

“산속에라도 숨어계셨나? 능력이 생존할 때 유리한 그런 거였나 보네요.”

뭐라 딱히 대답할 말이 없던 서준은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뭐 절차는 별로 어려운 거 없어요. 능력만 증명해주시면 됩니다. 초인임이 확인되면 바로 초인증 발부해 드립니다.”

“네.”

접수원은 서류에 이것저것 휘갈기기 시작하더니 말했다.

“무슨 능력 각성하셨나요? 간단한 거면 여기서 확인하고 위험한 거면 실습실 예약하셔야 합니다. 일주일쯤 걸리실 거에요.”

“간단한 거예요. 여기서 보여줄 수 있어요.”

서준은 본인의 진짜 능력은 숨기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냥 솔직히 밝힐까도 했지만 두려웠다.

서준의 능력은 다른 차원과의 게이트를 여는 능력이었다.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괴수들을 쏟아내는 게이트 그것과 서준의 능력은 분명 비슷한 점이 있었다.

서준은 본인이 능력을 밝히면 괜히 미친 과학자들한테 끌려가 해부라도 당할까 두려웠다.

“제 능력은… 창고능력이에요.”

“창고요?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잘 보세요”

서준은 데스크에 놓여있는 펜을 하나 들더니 손에 기운을 집중했다. 최대한 작고 섬세하게.

서준의 손바닥 위에선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공간의 균열이 일어났다. 그리고 어느새 볼펜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오! 이런 능력이구나. 혹시 다시 꺼낼 수도 있나요?”

“물론이죠.”

서준은 공간을 열고 펜을 다시 꺼내왔다. 그동안 신원 문제라든지 건물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연습해왔던 것이다.

서준은 이제 공간을 넘어 다니지 않아도 게이트 생성 위치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올 수 있었다.

물론 게이트 생성위치와 멀리 떨어져 있는 물건들은 직접 들어가서 꺼내와야 했다.

“와! 여태까지 이런 능력은 본 적 없은데! 대단해요! 서준 씨 진짜 이곳저곳에서 러브콜 많이 올 것 같은데요?”

서준의 능력을 본 공무원은 자기 일처럼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이게 왜요? 싸울 때 쓰지도 못할 텐데. 그냥 창고 대용이잖아요?”

서준의 말에 공무원이 방긋 웃으며 답했다.

“아니죠. 그렇지 않아요. 서준 씨가 어느 정도 무게를 들 수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그 능력은 매우 유용한 능력이에요. 진짜 인기 폭발 일 거라니까요?”

“어느 부분이요?”

“게이트 탐사가 이제 막 시작됐다는 사실은 잘 아시죠? 그런데 사실 어려움이 많아요. 생존 용품을 들고 다니기엔 손이 모자라거든요. 그래서 헌터들이 게이트 넘어갈 때 사실 제대로 된 준비도 못 하고 가거든요. 근데 그 문제가 서준 씨 한 명이 따라가는 걸로 쉽게 해결이 되잖아요”

“아아….”

“그게 끝이게요? 하나 더 있죠. 게이트 너머의 물건을 가져올 때도 얼마나 편한데요? 그동안 시간에 쫓겨 무거운 건 다 놔두고 왔는데 서준 씨만 있으면 그 문제도 이젠 끝이죠.”

접수원은 본인 일이라도 되는 양 즐거운 표정으로 서준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서준의 인상이 워낙 좋은 데다 약사 출신 초인이라니 호감이 갔나 보다.

“음… 일단 알겠어요. 생각해 볼게요.”

사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서준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미쳤다고 게이트를 넘어가?’

게이트 너머는 괴물들의 서식지다. 서준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곳에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금 서준이 계획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돈을 만질 수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일단은 등록만 할게요. 계좌번호 찍어주세요. 다음 달부터 매달 20일 날 50만 원씩 들어갈 거에요.”

“여기요.”

서준이 계좌번호를 찍어주자 몇 초 후 찌지직 소리와 함께 3D프린터에서 초인증을 찍어냈다.

“오! 저런 것도 되네.”

“풉! 진짜 8년 동안 숨어계셨나 보네요?”

8년 새에 참 많은 발전을 이뤘다.

“여기 초인증이요. 헌터로 활동하시려면 따로 시험 봐야 하니까 인터넷 보고 접수해주세요.”

“네.”

“서준 씨는 진짜 헌터 시험만 붙으면 여기저기서 러브콜 많이 올 거예요. 진지하게 생각해보세요.”

하지만 서준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진 잘나왔네.”

초인증을 받아든 서준은 기쁜 마음으로 초인증을 살펴보며 집으로 돌아갔다.

“좋아. 이제 초인등록도 했겠다. 다시 일 시작해야지.”

서준은 앞으로 돈도 많이 벌고 편한 일만 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약사라는 직업은 거기에 부합되었다.

물론 그 약사라는 것이 평범한 약사는 아니었다.

‘일반인들 상대로 푼돈벌이해서 뭐 하냐? 큰물에서 놀자.’

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분명히 약사는 아직도 훌륭한 직업이었다.

초인을 제외한 일반인들은 아직도 예전과 별다를 바 없는 생활을 했다. 그렇기에 사용하는 약 역시 크게 변하지 않았다.

‘소수에게 비싸게 팔자’

하지만 그래선 8년 전과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계속해서 많은 손님을 상대해야 하고 큰돈은 만질 수 없었다.

그래서 서준이 떠올린 것이 초인 약국이었다. 일반인들 상대로 하루 종일 일해서 푼돈을 만질 이유가 없었다.

소수의 인원만 상대하며 비싼 값으로 약을 판다면 몸도 편하고 지갑도 더욱 두툼해질 수 있었다.

병원에서 괜히 VIP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치 이게 최고지.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고.’

이것이 서준이 초인등록을 하게 한 두 번째 이유였다. 사실 50만 원보다는 이 이유가 더 컸다.

초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초인들이 사용할 만한 약을 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체로 게이트 너머에서 나온다. 그리고 게이트 너머의 물건을 다루기 위해선 초인증이 필요했다.

서준은 고작 50만 원이 아닌 더 큰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약초를 길러서 팔면 분명 돈이 될 거야.’

게이트 너머에는 정말 신비한 물건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헌터들이 애용하는 약초들도 많았다.

먹으면 힘이 쏟아놓아 지고 무기력증이 사라진다거나 잘린 신체 부위를 붙이는 약초도 있었다.

전부 말하려면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특이한 약초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내가 게이트를 넘어갈 이유는 없지?’

물론 게이트를 넘어가서 약초를 캐 오기 위해서는 헌터증이 필요했다. 하지만 서준은 헌터증을 딸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서준은 게이트를 넘지 않아도 게이트 너머의 약초를 구할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이루기 위해 서준은 지리산을 찾았다.

“높네? 호랑이라도 튀어나오겠어.”

대침공 이후로 산은 인간에게 위험한 장소가 되었다. 인간들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괴물들에게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더욱 똘똘 뭉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장소는 대부분 도심으로 집중되었다.

덕분에 대한민국의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산은 인간의 발길이 끊겼다. 그리고 그 결과 예전의 환경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인간의 발길이 끊기자 맹수들 역시 다시 활기를 찾았다. 한국에서 이미 멸종되었다고 알려졌던 늑대, 표범 심지어 호랑이까지 모두 돌아왔다.

‘한 달도 버텼는데 오늘 하루 쯤이야.

하지만 서준은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할 생각이었다. 서준은 한 달 동안 야생의 초원에서 먹고 자고 하며 지냈다. 고작 오늘 하루 정도에 겁먹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혹시라도 맹수가 나타난다 하여도 게이트를 열고 도망가면 그만이었다. 게이트 속에서 1분만 보내도 이곳에선 100분의 시간이 흐르니 그사이에 맹수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어이, 젊은 총각! 총각도 약초꾼이야? 젊은 나이에 고생하네. 그래도 이 일이 나쁘지 않아. 운 좋아 대박 나면 일 년을 꽁으로 먹는다니까?”

“하하, 네. 오늘 같이 대박 납시다!”

“그려.”

웬 털보 아저씨가 서준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그는 약초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리산 곳곳에는 수많은 약초꾼들이 일확천금을 노리며 산을 탔다.

약초꾼이라는 새로운 직업군이 생길 정도로 적지 않은 수였다.

“총각도 고생하라고. 젋을 때 바짝 벌면 나중에 편해. 이 형처럼 나이 먹어 고생하지 말고. 나도 이번엔 열 뿌리만 뽑았으면 좋겠네. 그럼 한 달은 먹고 살 걱정 없을 텐데 말이야”

이렇게 약초꾼들이 산을 타고 다니게 된 이유 역시 게이트와 관련이 있었다. 게이트 너머의 식생들은 분명히 돈이 됐지만 헌터증이 없는 일반인들은 그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게이트 너머의 식생들도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간헐적으로 넘어왔다. 바람을 타고 넘어오는 경우도 있었고, 괴수의 몸에 달라붙어 넘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넘어온 식생들이 가끔 산에 자생에 성공하기도 했다.

약초꾼들은 그러한 약초를 캐기 위해 산에 올라 산에서 길게는 한 달씩 먹고 자며 약초를 캐러 다녔다.

“지리산에 있는 게 초록 활력초랬지?”

오늘 서준의 목표였다. 초록 활력초 게이트 너머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약초였다. 그리고 지리산에서 자생에 성공한 약초이기도 했다. 물론 그 특성상 많은 수를 찾을 수는 없었다.

“오늘 안에 무조건 찾아서 내려간다.”

하지만 서준은 오랜 기간 산에 머물 생각은 없었다. 오늘 안에 약초를 찾아내 내려갈 생각이었다. 서준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뿌리였다.

다른 약초꾼들과는 다르게 서준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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