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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약사 백선생-3화 (3/150)

3화

서울 어딘가 지하창고, 갑자기 허공에 균열이 생기더니 사람 발처럼 생긴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이윽고 다리 허리 그리고 얼굴까지 사람의 형체를 한 무언가가 넘어왔다.

바로 서준이었다.

“한 달 만이네? 그리웠다. 나의 집아!”

서준은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생각에 감격에 잠겼다. 한 달간의 긴 여정이었다. 캠핑도 가보지 못했던 서준이 한달간의 야외생활을 했으니 고생이 말이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주위를 둘러본 서준은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응? 뭔가 이상한데?”

지하 벙커의 모습이 많이 변해있었다.

분명히 집의 구조는 서준의 집의 지하와 동일했다. 그러나 그 안의 구성물이 많이 달랐다.

서준이 차곡차곡 넣어둔 철제 선반들은 모두 사라졌다. 물론 쌓아두었던 비축 식량도 구급약품도 모두 사라졌다.

그저 보통의 창고처럼 변해 이런저런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한 달 새에 누가 내 집을 털었나?”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괴물들이 튀어나와 온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놨으니 치안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현대무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경찰력이 온전할 수 없었다.

서준은 서둘러 지하 벙커 아니 이제는 지하창고인 곳의 문을 열고 나왔다.

거금을 들여 두꺼운 강철로 만들어놨던 문도 평범한 문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어라?”

서준의 약국이 아니었다. 애초에 약국 자체가 아니었다. 보통의 평범한 카페처럼 보였다.

“다른곳으로 와버렸나? 그건 아닌데 건물 구조가... 내꺼 맞는데?”

다른 곳으로 워프를 했나 의심도 해봤지만 건물 구조가 확실히 서준의 건물이 맞았다. 누군가 서준이 없는 새 건물을 차지한 게 분명했다.

애초의 서준의 능력은 마지막 장소로의 차원 문밖에 열지 못한다. 그건 서준 본인도 이미 파악한 상황이었다.

“거기 누구요? 왜 거기서 나오는 거예요?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안 보입니까?”

그때 카페 점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서준에게 달려와 따지듯이 물었다.

“제가 관계잔데요?”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겁니까? 당신이 왜 관계자야? 당신 누구냐고?”

서준이 말하자 카페 점주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게 묻는 그쪽은 누군데요?”

“나 여기 사장이요.”

서준의 물음에 카페 점주가 답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것이 켕기는 것 없이 떳떳해 보였다.

“나 이 건물 주인인데요?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예요?”

“뭔 소리요? 여기 십 년 전부터 내가 쓰던 곳인데.”

“아니 무슨 소리세요. 내가 여기서 산 게 몇 년인데”

서준과 카페 점주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언성만 높이며 싸웠다.

“아니 이사람이 보자보자 하니까! 장난도 적당히 쳐야지!”

“장난은 무슨! 여기 내 건물이야!”

“경찰 불러! 당신 같은 사람은 경찰한테 혼쭐나봐야 해!”

결국 둘은 해결책을 찾지 못했고 경찰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서준과 카페 점주 둘은 사이좋게 순찰차를 타고 경찰서로 갔다.

“일단 신원조회부터 할게요. 성함이?”

“박서준이요.”

서준은 답하며 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내 경찰에게 건넸다.

경찰은 그 신분증을 의아하게 바라보며 서준이 본적 없는 기계를 꺼냈다.

“참 취향이 올드하시네… 이게 언제 적 신분증이야? 그냥 여기 지문 찍으세요.”

“네.”

서준은 경찰이 시키는 대로 처음 보는 기계에 지문을 찍었다. 서준이 모르는 새에 새로운 기계가 개발되어 경찰에게 보급되었던 모양이다.

“엥? 백서준씨… 8년 전에 사망했다고 나오는데요?”

“무슨 소리에요? 내가 왜 8년 전에 죽어요?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다시 한번 해봐요!”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경찰의 말에 서준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침공 시작된 날 이후 종적이 없으셔서 사망처리 되신 거 같은데요? 8년 동안 산속에 숨어계시기라도 하신 거예요?”

“대침공이 뭔데요?”

“와 진짜 산속에 숨어 사셨나? 간혹가다 이런 사람이 있다던데…….”

서준의 물음에 경찰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8년 전에 갑자기 괴수들이 쳐들어왔잖아요. 그때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몰라요? 어제가 딱 3000일 되는 날이었죠? 추모행사도 크게 열렸잖아요”

경찰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서준은 다리가 휘청거리는 걸 겨우 버티며 벽을 짚고 섰다.

‘뭐지? 3000일? 나는 괴물 침공 다음 날 넘어가서 한 달 버텼을 뿐인데……. 설마?’

서준의 뇌리에 무언가 의심이 스쳤다. 서준은 어쩌면 큰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시간의 흐름이… 다른 거야!’

서준은 최단기간에 약사가 될 정도로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서준이 게이트 너머에 있던 시간은 30일, 그동안 지구의 시간은 3000일이 흘렀다.

서준은 곧바로 게이트와 지구의 시간의 차가 100배의 차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홀리 쉿!”

서준은 일생 최대의 실수를 한 것이다. 시간의 괴리를 판단하지 못한 것 그 실수는 서준을 27살의 청년에서 35살의 아저씨로 만들어버렸다.

“백서준 씨 진정하시고 일단 신원 회복부터 하시죠. 다른 일은 그 이후에 처리하셔야 할 거 같네요”

하는 수 없이 서준은 경찰에 말을 따르기로 했다. 사실 그 방법 말고는 별수 없었다.

서준의 신원 회복에는 그리 오랜 시간 걸리지 않았다. 단 며칠 걸렸을 뿐이다. 대침공 이후 실종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절차가 간단해졌다.

서준은 그동안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우선 지구와 차원문 너머의 시간 배율이 다른 건 확인했다.

간단한 실험이었다.

서준은 확인을 위해 다시 한번 차원문 너머로 넘어갔다. 혹여나 또 시간이 많이 흘러 40대 아저씨가 될까 봐 겁이 나 단 1분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차원문을 열었다.

-툭!

넘어오는 과정에 서준이 차고 있던 시계가 아직 그 자리에 남아있는 철제 선반에 걸려 떨어졌지만 서준은 무사히 넘어왔다.

그리고 역시.

“백분 지났네. 역시 딱 백배의 차이가 있는 건가? 저쪽 시간이 느리면 이건… 쓸모가 없는데.”

차라리 저쪽 시간의 흐름이 빨랐다면 만화에서 보던 것처럼 시간 괴리를 이용해 훈련을 하든 공부를 하든 어떻게든 써먹었겠지만 이대로는 쓸모가 없었다.

“시계나 가지러 가야겠다. 비싼 건데.”

약국을 운영하고 나서 힘들게 모은 돈으로 샀던 서준의 첫 명품이었다. 일 년 내내 서준의 몸에서 떠나지 않았던 귀중한 시계였다. 이대로 두고 올 수는 없었다.

시계가 떨어진 것은 알았지만 줍지 않았던 이유는 혹여나 시계 줍는 새에 시간이 더 흘러 정확한 측정에 방해될까 봐서였다. 그렇게 시계를 둔 채 그냥 넘어왔던 서준은 다시 시계를 주우러 차원문을 열어 넘어갔다.

“어? 이게 왜?”

서준은 거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시계를 주우며 혹시 흠집이라도 났다 확인하던 서준은 시계의 시간이 서준의 계산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두뇌 회전이 빨랐던 서준은 그 원인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시간 흐름의 100배 차이, 그것은 단순히 지구의 시간이 빠른 게 아니었다.

지구에서의 시간이 더 빠르다면 서준의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서준이 시계를 떨어트렸을 당시와 별 차이가 없었어야 했다. 잠시 지구에 넘어갔던 그 찰나의 시간은 이곳에서는 더욱더 찰나였을 테니까.

하지만 시계는 서준이 지구에서 느꼈던 체감 시간보다 100배는 빨리 돌아있었다.

시간은 지구에서 100배 빠르게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시간은 서준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느리게 흐르는 것이었다.

서준이 지구에 있다면 이곳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이곳에 있다면 지구의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서준이 존재하는 곳에서의 하루가 차원문 건너의 백일이었다.

“일단…. 이건 나중에 생각하고 집부터 되찾자. 이 고민은 나중에 해도 충분해”

서준은 우선 집부터 되찾기로 했다. 그리고 그것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서준은 곧장 동결된 계좌를 살렸고 비싸고 실력 좋은 변호사를 선임했다.

“언론플레이하시죠? 이거 쉬운 싸움입니다.”

“변호사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서준의 변호사는 곧바로 서준의 정보를 인터넷에 풀기 시작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얻어낸 건물, 괴물의 침공 때문에 8년을 숨어 살았다 돌아왔더니 웬 나쁜 놈이 그 건물을 빼앗았다.

이러한 내용을 온라인이고 오프라인이고 쫙 돌렸다. 서준의 할아버지는 애초에 굉장히 유명한 분이셨고 존경을 한몸에 받는 분이셨다. 그 분의 이야기가 포함되자 소문은 금새 퍼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서준의 이야기가 정리된 짤들이 돌아다녔다. 서준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커뮤니티가 없을 정도였다.

재판부는 여론을 의식하여 건물을 서준에게 돌려주었다. 서준의 할아버지는 재판부에서도 함부로 건드리기 힘든 인물이었다.

물론 카페 사장은 이대로 순순히 건물에서 나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배 째려면 째라는 식으로 버틸 생각이었다.

허나, 모든 일이 그의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서준을 백선생이라 부르며 좋아라 했던 동네 주민부터 시작해서 시민단체까지 찾아와 서준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카페 사장 앞에서 시위도 하고 사장을 향해 계란을 던지는 듯의 폭력을 행사했고 결국 그를 강제로 건물에서 끌어내었다. 이후 서준은 손쉽게 건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괴물의 침공 후 8년 국가기관도 일반 시민들도 사고방식이 많이 변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저 아저씨한테는 미안하지만 내 알 바 아니지. 그리고 내 잘못도 아니잖아? 원래 내 건물인데.”

갑작스레 8년을 워프했던 서준은 남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27살의 오빠에서 35살의 아저씨가 되었으니 속이 타들어 갈 지경이었다. 그런 와중에 남의 심경 따위는 안중 밖이었다.

“많이도 변했네.”

서준은 되찾은 집에 앉아서 세상의 변화를 살펴봤다.

서준이 확인한 내용은 이랬다.

10년 동안 초인들은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 중 괴수잡이를 직업으로 하는 자들도 생겨났고 사람들은 그들을 헌터라고 불렀다.

“게이트라고 하는 거구나…. 내 능력이랑 비슷한데?”

그리고 게이트도 그날 이후 꾸준히 열렸다. 전조도 없이 갑작스레 열린 게이트는 생성 시점부터 딱 24시간 후 사라졌는데 그 원인은 아직도 파악하지 못했다.

“게이트 탐사도 하는구나? 대단한데?”

이제 슬슬 게이트 너머를 탐사하는 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제한시간이 24시간뿐인 데다가 침공해오는 괴수들을 모두 처리하고 가야 했기에 아직 큰 수확을 얻지는 못했다.

단지 게이트 너머에 존재한 세계에서 약초 같은 걸 캐고 광물 몇 개를 들고 오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 약초들과 광물들이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수는 매우 소량이었기에 일반인들은 그 특혜를 누리지 못했다.

그 특혜는 오로지 초인들에게만 돌아갔다.

“그래도 아직은 먹고살 만하네? 이 정도면 부자 되는 건 순식간이겠는걸? 앞으로는 편하게만 살자 편하게…….”

그동안의 정보를 확인한 서준은 앞으로의 목표를 세우며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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