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뭐야? 여기 어디야?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괴물은, 괴물은 어딨는 거지?”
갑작스레 변한 풍경에 서준은 당황하며 주의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지하벙커를 가득 메우고 있던 철제선반은 단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사라졌다. 광원이라고는 몇 개의 형광등만이 전부였던 지하벙커였다.
하지만 지금 서준의 머리 위에는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서준의 뒤쪽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앞쪽에는 드넓은 초원이 시선이 끝나는 곳까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서준의 옆에는 서준의 흔들리는 다리를 지탱해주던 철제선반이 놓여있었다.
서준이 이동될 때 아무래도 같이 이동된 것 같다.
‘뭐야? 순간이동이라도 한 거야? 말도 안 돼…….’
그때 서준의 뇌리에 무엇인가 스쳤다. 바로 괴물의 습격 직전 보았던 뉴스 속보였다.
“각성!”
괴물에 쫓기던 초인들이 위험했던 바로 그 순간 알 수 없는 힘을 각성해 괴물들을 해치웠다! 라는 뉴스였다.
감격한 앵커는 그들을 인류의 구원자라고 부르기까지 했었다.
‘내가 설마 순간이동 능력자가 된 건가? 내가 인류의 구원자가 된 건가?’
가능성은 충분했다. 다른 초인들이 어느 능력을 사용했는지는 모르지만 순간이동이라는 능력이 없다는 얘기는 없었다.
‘좋은데?’
충분히 낭만적인 능력이었다.
“얍!”
서준은 허공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내 몸이 저기로 간다! 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준의 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얍! 얍!”
소리를 지르며 달리기도 해봤다. 팔을 휘두르며 점프도 해봤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는 거지?’
서준은 고민했다. 그리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아!”
그러다 문득 서준은 떠올리고 말았다. 괴물에게 쫓기던 때에 몸에서 일어나던 변화, 그 감각이 서준의 뇌리를 스쳤다.
“후우우우우…….”
서준은 심호흡을 하고 온 정신을 집중했다. 그때 그 감각을 떠올리기 위함이었다.
시도는 좋았지만 잘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실패했다.
어느덧 서준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준은 그를 알아채지 못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집중에 집중을 더하던 서준은 드디어 실마리를 찾아냈다.
몸속의 흐르던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아.”
서준은 손바닥을 펴 하늘을 바라보게 한 후 앞으로 내밀었다. 꼭 필요한 동작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자세가 집중이 잘될 것 같았다.
처음엔 실패였다. 그리도 두 번째 역시 실패였다.
또다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던 서준은 몸 속의 이질적인 기운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몸속의 흐르던 그 이질적인 기운을 손바닥을 향해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운을 계속해서 불어넣자 서준의 손바닥 위에서 공간의 비틀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앗!”
그 순간 서준은 무언가를 떠올리며 급하게 기운을 끊어냈다. 그러자 공간의 비틀림이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세상으로 돌아왔다.
“안 되지 안돼. 큰일 날 뻔했네.”
서준은 기운을 다루면서 본인의 능력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 서준의 손길에 따라 공간의 비틀림이 일어났고 그 비틀림은 공간을 다른 공간과 연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현상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서준은 직감적으로 공간 너머의 장소를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토대로 서준은 본인의 능력을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서준의 능력은 단순한 공간이동이 아니었다.
서준이 지금 서 있는 이 장소와 원래의 현실 지구 두 차원을 이어주는 게이트를 만들 수 있었다. 말하자면 차원 이동을 가능케 하는 능력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서준은 손짓 한 번으로 현실의 지구와 서준이 지금 서 있는 초원 사이의 차원 게이트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마터면 내 발로 죽으러 갈뻔했네.”
그리고 서준이 다시 공간을 연결했다면 그대로 서준은 죽고 말았을 것이다.
서준이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은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서준이 있었던 장소와 이 장소에서의 마지막 장소였다.
서준은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이대로 공간을 연결했다면 서준의 손끝에서 지하벙커와 이어진 게이트가 생성되었을 것이고 그 장소에 그대로 있던 괴물이 넘어와 서준을 해쳤을 것이다.
“한 달…. 한 달은 충분하겠어.”
서준은 철제선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선반 위에는 보존식품부터 시작해서 구급약품, 심지어 휴대용 버너와 침낭까지 생존을 위한 모든 것들이 넉넉히 담겨있었다.
저 물품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면 한 달은 거뜬히 버틸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때쯤이면 나라에서 알아서 다 처리해놨겠지.’
한 달 정도 지나면 국가에서 괴물들을 잘 정리해놓았을 것이다. 그리 판단한 서준은 상황정리가 되길 기다리며 새로운 공간에서 한 달을 버티기로 하였다.
이러기 위해 모아둔 물건이었다. 드디어 그 쓰임새를 찾았을 뿐이다.
“어디 보자.”
철제선반 위의 물건들을 확인한 서준은 제자리에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땔감으로 쓸건 충분했다. 급격한 날씨 변화만 없다면 밤에도 불만 피워놓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곳이 탁 트인 초원이라는 것이다. 필시 야생동물이 살기 좋은 환경이었다.
만약 자는 사이에 야생동물이 습격이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었다.
‘불 피워놓고 자면 괜찮겠지?’
서준은 동물들이 불을 무서워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자기 전에 불을 피워놓는다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혹시 모르니까… 주위를 좀 둘러보자.’
서준은 강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괜히 무작정 초원 쪽으로 갔다가 길을 잃어 철제선반을 찾지 못한다면 큰일이었다.
강은 구불구불하게 쭉 이어지고 있었다. 폭이 상당히 넓고 꽤 깊어 건너가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어차피 딱 한 달만 있을 공간 그렇게 많은 범위를 탐색할 필요도 없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살펴본 바로는 강 너머에는 높고 낮은 산들도 많이 보였다.
“아 더워.”
계속 걷다 보니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동안 지나오면서 초원을 뛰어다니는 동물 몇 마리가 보이긴 했지만 위험한 동물은 없었다.
토끼나 닭같은 작은 초식동물들만 보였다. 뭐 우스갯소리로 호주에선 인간과 토끼 사이의 전쟁도 벌어졌다고 말하지만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혹여나 저놈들을 잡으러 육식동물이라도 튀어나오면 위험하겠지만 그땐 게이트를 열고 도망가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서준이었다.
‘그때면 뭐 괴물도 없겠지 뭐.’
한 달 기한을 잡은 것은 지구의 상황이 안정되길 기다리는 것뿐이지 괴물이 지하벙커에서 한 달이나 버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한 서준은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야겠다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집 도착!”
서준은 어느덧 베이스캠프인 철제선반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오는 김에 땔감으로 쓸 거 몇 개 집어오다 보니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두워졌다.
“으영차!”
불을 피우려던 서준은 혹시나 불이 번질까 땅을 깊게 판 후 그 속에다 땔감을 던져넣었다.
-화르륵!
그 후 선반에서 라이터와 기름을 가져와 불을 붙였다.
온기가 올라오고 나니 어느덧 따듯해졌다. 안심하고 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늘은 새우 과자나 하나 먹어야겠다. 어디 보자 매운맛이…….”
서준은 선반에서 과자를 하나 꺼내 집어먹은 후 침낭을 펴고 그 속에 누웠다.
서울과는 다르게 선명히 보이는 별들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잠들었다.
“그럼 오늘도 가볼까.”
서준 일생의 첫 비박이었다. 주변에 어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밤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난 서준은 백팩에 음식과 음료를 적당히 챙긴 후 강변을 따라 걸었다. 어제와는 반대 방향이었다.
-깡총! 깡총!
저 멀리서 토끼가 깡충깡충 뛰는 게 보였다. 어제는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던 서준이었지만 오늘은 용기가 생겨 좀 더 가까이 다가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서준이 발걸음을 죽이고 한 걸음씩 다가가는데 놈이 겁도 없이 서준을 향해 다가왔다.
그렇게 딱 열 걸음, 열 걸음 정도를 두고 서서 서로를 경계했다.
‘뭔가 이상한데?’
뭔가가 이상했다. 토끼 머리에 뿔이 달려 있었다. 서준은 서둘러 가방에 넣어두었던 장도리를 꺼내 들었다.
다행히 토끼들은 서준을 겁내는 건지 고개를 돌려 반대 방향으로 도망갔다.
“휴유, 십 년 감수했네. 근데 여기 동물들은 지구와 조금 다른가 봐?”
이곳의 동물들은 지구와의 차별점이 있는듯했다. 다행히도 토끼가 도망을 갔지만 공격해올 수도 있었다. 서준은 토끼의 뿔에 찔리는 상상을 하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많이 아플 것 같았나 보다.
“자는 사이에 공격하면 어쩌지? 저거 찔리면 아플 거 같은데…….”
아무래도 안전하게 지내기 위해선 특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결국 서준은 해가 지도록 특별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탁 트인 초원에서 특별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이대로는 불안해서 못 자는데…….”
서준은 주위를 둘러보다 철제선반 제일 꼭대기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아래로 옮겼다.
“설마, 여기까진 못 오겠지.”
겁이 많은 서준은 선반 제일 위로 기어 올라가 침낭을 깔고 누웠다.
‘좀 흔들거리긴 하는데 괜찮겠지. 자는 새에 습격당하는 거보다는 낫겠지.’
라고 생각한 서준은 움직일 때마다 흔들거려 아슬아슬한 철제선반 위에 중심을 잡고 누워 또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 아슬아슬하게 숨을 졸이며 버티다 보니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이제 일주일이네…. 바깥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네.”
소형 자가발전기도 있었고 보조배터리도 충분했다. 그러나 바깥과의 통신이 이어지지 않아 지구의 소식을 들을 방법이 없었다.
휴대폰은 MP3 역할 말고는 딱히 하는 게 없었다.
“뿔토끼도 먹으면 맛있으려나?”
서준은 뿔 달린 토끼의 이름을 단순하게 뿔 토끼라 명명했다. 뿔 토끼는 이 초원 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이었다.
“둘째 날에 저 새끼 보고 쫄았던 거 생각하면 아직도 쪽팔리네.”
이제 토끼나 닭은 무섭지 않았다. 애초에 놈들은 서준을 보면 도망치기만 했다.
이주일 째 되는 날 조금 멀리 왔더니 뭔가 커다란 동물의 발자국이 보였다. 그 이후 서준은 활동 반경을 최대한 줄이며 주변 산책 정도만 했다.
삼주 째 되는 날 서준은 이곳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가끔 서준을 보면 도망치는 뿔토끼를 쫓아다니며 놀기도 했다.
이쯤 되자 마음을 완전히 놓은 서준은 잘 때도 바닥에 내려와서 편하게 잘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정말로 돌아갈 때가 왔다.
“그리울 거야. 언제 시간 나면 다시 돌아올게.”
서준은 주위를 쓱 둘러보며 지난 한 달간의 추억을 곱씹었다.
그리고 지체 없이 게이트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