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약사 백선생-1화 (1/150)

1화

“백 선생, 소화제 하나만 줘봐.”

“예, 천오백 원입니다. 소화 계속 안 되시면 병원 한번 가보세요. 요즘 들어 자주 오시는 거 같은데 방치하면 안 돼요.”

백서준은 스물일곱 살의 일 년 차 약사였다. 여자라면 최단코스로 달려 가능한 나이였지만 남자는 군대가 껴있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런가? 알겠어. 백 선생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내일 병원 한번 가볼게.”

“네 안녕히 가세요.”

그런데 어떻게 약사가 되었냐고? 백서준의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다. 그분의 이야기로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였으니 온 국민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분이었다.

거기에 백서준이 고등학생 때 부모님께서 돌아가셔 혼자 자라기까지 했으니 군대에 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부모를 잃고 생계가 힘들어 좋은 성적에도 대학을 포기하려 할 때쯤 서준의 할아버지 이야기가 영화로 개봉하였다. 게다가 영화가 흥행하자 뒤이어 서준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방송되었다.

“선생님 타이레놀 하나 주세요.”

“네, 2500원입니다.”

그 방송을 본 많은 지원단체와 익명의 재력가 한 명이 서준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익명의 재력가는 서준에게 지하 1층 지상 2층의 작은 건물을 양도하는 등 말도 안 되는 기행을 저질렀으며 시민단체는 서준의 생활비를 지원해줬다.

덕분에 머리는 좋았지만 형편이 안 좋아 대학진학을 포기하려 했던 서준은 무사히 대학에 입학할 수도, 약사가 되어 자신의 약국을 가질 수도 있었다.

“오늘은 손님이 적네? 그럼 이 틈에 벙커 관리 좀 해볼까?”

서준은 자신의 건물 지하 1층을 벙커로 꾸몄다. 출입문 자체를 뜯어고치고 그 밖에도 공사할 거리가 많았으나 조심성이 많았던 서준은 귀찮아하지 않고 그를 시행했다.

“마스크는 이쯤 하면 충분하지.”

한때 전 세계에 전염병이 돌았고 마스크의 품귀현상이 일어나고 각종 보존식품들을 구할 수 없는 지경이 된 적이 있다.

당시 부모를 잃고 혼자 사는 학생이었던 서준은 마스크를 구할 수도, 음식을 구할 수도 없었다.

그때의 힘들었던 기억 탓인지 서준은 건물을 양도받자마자 지하를 개조시켰고, 그렇게 만들어진 지하벙커를 비축창고로도 사용하고 있었다.

“끄아아! 점점 물건이 많아지니까 정리하기가 힘드네. 오늘은 이쯤 하자.”

서준은 지하벙커를 둘러보며, 먼지 쌓인 곳은 털어내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 넣는 등 관리에 온 힘을 다 썼다.

벙커 관리가 끝난 후 다시 1층 약국으로 올라온 서준은 약국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벽을 전부 튼 후 1층 전체를 약국으로 사용하고 있었기에 그 면적이 엄청났다.

그래서 서준의 약국은 노인회관처럼 동네 노인들의 모임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동네 노인들은 서준을 백 선생이라 부르며 좋아했다.

하지만 2층의 공간은 동네 노인들에게도 허용되지 않았다. 2층의 그 넓은 공간은 서준이 혼자 사용하는 생활공간이었다.

“으아! 이제 좀 깨끗해졌네. 이제야 좀 사람 사는 곳 같네.”

익명 재력가의 기행 덕에 서준은 어린 나이에 이미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건물도 있는 데다가 약사라는 직업이 돈벌이에 크게 아쉬운 직업이 아니었다. 거기에 대외적으로 보기에도 번듯한 직업이었다.

게다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고 동네방네 소문이 쫙 퍼졌으니 명예까지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동네 노인들의 사랑은 덤이었다.

-쿠구궁!

그렇게 평화롭고 안정적이던 서준의 삶에 갑작스레 위기가 찾아왔다.

사실 서준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인류에게 닥친 위기였다.

“꺄아아아아아아! 괴물! 괴물이야!”

“사, 사, 사람을 먹었어!”

“도망쳐어어어!”

갑작스레 허공에 공간의 분리가 일어났다. 그 공간의 일그러짐 너머로는 다른 공간과 이어주기라도 하는 듯 못 보던 풍경의 땅이 펼쳐져 있었고, 그 일그러짐 사이에서 괴물들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쿵! 쿵!

훗날 사람들은 차원과 차원 사이의 문이 연결되었다고 판단해 이 현상을 차원문 혹은 게이트라 불렀다.

“경찰! 경찰은 어딨어!”

“으아악! 내 다리! 저놈이 내 다리를 먹었어!”

공격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정부에서 군대를 투입할 틈조차 없이 도심 곳곳에서 괴물들이 쏟아져나왔다.

길거리는 이미 온통 피로 물들었고, 괴물들의 침임이 성공한 건물 내부는 비명으로 가득 찼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아포칼립스라는 말이 걸맞은 상황이었다.

-쿵! 쿵!

"이게 무슨……."

그러던 와중 거대한 괴물 한 마리가 서준의 약국 문을 몸을 박아가며 부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괴물의 시도는 단 한 번에 성공했다.

평범한 유리로 이루어진 약국 문이 괴물의 거체를 버텨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서준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지체 없이 지하로 뛰어 내려가며 문을 잠갔다.

-철컹!

지하의 문은 서준이 이미 개조 완료한 상태로 웬만해선 부수기 힘들 정도로 튼튼한 상태였다.

게다가 그 안에는 많은 식량과 비상 식품 등이 가득 차 있었으니 문만 부서지지 않는다면 반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건물을 양도 받은 후 서준이 틈틈이 채워둔 노력이 이제야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쿵! 쾅! 쿵!

어느덧 약국 문을 부수고 들어온 괴물은 서준의 냄새를 맡고 지하벙커로의 침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서준은 두려움에 웅크려 앉아서 벌벌 떨고 있었다. 지하벙커 안엔 이것저것 사용할 만한 무기들도 있었지만 별 소용은 없어 보였다.

평범한 약사인 서준이 무기를 든다 해서 저 거대한 괴물을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쿵! 쿵!

그러던 와중에도 괴물은 문을 계속해서 공격하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방법을 찾자!”

서준은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휴대폰을 켰다. 역시나 인터넷 플랫폼 메인에는 방송사마다의 생방송 뉴스 속보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속보입니다!>

<갑작스레 알 수 없는 원인을 이유로 괴물들이 공격해왔습니다.>

<현재 전 세계 곳곳 대도시부터 산간 오지까지 다발적으로 공간의 비틀림과 함께 괴물들이 침공해오고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소설 속 장면과 유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이 현상을 게이트라 부르며 다른 차원에서 지구로의 습격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도심 곳곳에서 일어난 현상에 정부는 서둘러 군대를 투입하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현재까지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현대무기 대부분이 기능을 잃고 무용지물이 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무도가들이라도 나서서 괴물들을 막을 것을 호소하고… 흑, 흑…. 죄, 죄송합니다. 우리 인류는 이대로 끝인 걸까요? 우리는 이제 끝난 걸까요?>

방송은 거기까지였다. 결국 이성을 잃고 눈물을 흘린 앵커를 뒤로한 채 방송이 급작스럽게 종료되었다.

“아… 이게 뭐야… 군대가 안 와?”

뉴스를 본 서준은 온몸에 힘이 풀려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조금만 버티면 지원이 올 거라 생각했는데 정부의 대응은 어이없을 정도로 한심했다.

저 괴물이 벙커를 뚫기 전에 만 군대가 오면 살 수 있다 생각했건만, 기대는 와르르 무너졌다.

무도가들에게 나가서 싸우라니 이게 국가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사실상 대응을 포기했다고 봐야 했다. 아니 그들도 역시 도망치고 있겠지.

서준은 탄식하고 또 탄식했다.

“하아… 이제 좀 인생 풀리려 했는데 참… 조금만 즐길 시간 더 주지 너무하네…….”

이제야 약국도 자리 잡아가고 통장에 돈이 쌓이기 시작했다. 어려웠던 시절 겨우 견뎌내고 자리 잡았는데 모든 게 끝장이나 게 생겼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앞으로는 힘 빼고 편하게 살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기회를 더 주세요.”

본디 종교를 믿지 않는 서준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서준은 저도 모르게 경건히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혹시라도 신이 존재한다면 이 위기에서 자신을 구해주길 바라며 빌고 또 빌었다.

-쿵! 쿵!

그렇게 주저앉아 기도하다 보니 어느새 괴물도 지쳤는지 쿵 쿵 소리의 빈도가 줄었다.

괴물이 벙커를 뚫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긴장이 풀린 서준은 얼마 버티지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하아… 잠들었네, 상황 좀 변했으려나?”

-쿵! 쿵!

잠에서 깬 서준은 기지개를 켜며 뭉친 근육을 풀었다. 여전히 괴물이 문을 들이박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빈도는 매우 줄었고 소리의 크기 역시 줄어들었다.

서준은 괴물이 애를 써봐야 저 두꺼운 강철 문을 뚫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애초에 제작할 때 거금을 들여 만든 문이었다.

안심한 서준은 두 눈을 비비며 눈곱을 떼고 스마트폰의 전원을 켰다. 하루 새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두 눈을 비비며 눈곱을 떼고 스마트폰의 전원을 켰다.

<속보입니다!>

<어디선가 초인들이 나타나 괴물들을 때려잡기 시작했습니다!>

<괴물 사냥을 마친 어느 초인의 말에 따르면 어제 괴물의 침공과 동시에 특별한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각성한 사람들 대부분 괴물에게 쫓기는 위험 상황에 반사적으로 능력을 사용해 각성 사실을 알아챘다고 합니다!>

<그들이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돌연변이인지 신인류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들은 인류의 구원자입니다. 우리 인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응원해 주십시오! 같이 싸워주십시오!>

<인류의 희망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쾅!

그 순간이었다. 서준이 뉴스 속보를 보며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고 있을 때 괴물이 드디어 지하벙커의 문을 부쉈다.

문에 몸을 얼마나 박아댔는지 온몸에 피가 철철 흐르는 괴물은 비틀거리며 지하벙커로 기어들어 왔다.

서준은 겁에 질려 조용히 숨어들었다. 지하벙커를 가득 메우고 있는 철제 선반 사이에 몸을 숨긴 서준은 웅크려 앉아 상황을 주시하려 했다.

“킁! 킁!”

하지만 별 소용없었다. 몇 번 코를 킁킁이던 괴물은 이윽고 서준의 위치를 파악해냈다. 그리고 서준을 발견한 괴물은 지체 없이 서준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 안돼!”

서준은 달려드는 괴물을 보자마자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그 상황에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애초에 군대조차 가지 않았던 서준이었다.

뒷걸음질 치다 다리가 풀려버린 서준은 넘어지기 직선 여러 생존 물품이 쌓여있는 철제 선반 하나를 붙잡고 겨우 버티어 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서준의 눈앞에는 커다란 기둥 하나가 보였다.

바로 괴물의 앞다리였다.

그리고 그 순간 괴물은 지체 없이 그대로 서준을 향해 앞발을 내리쳤다. 무자비하고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공격이었다.

"으 안돼!"

그 순간 주변 광경이 180도 변했다. 서준 앞에 있던 괴물도 사라졌고 서준이 있는 장소도 실내가 아닌 실외로 바뀌었다.

변하지 않은 건 서준과 서준이 붙잡고 있었던 철제 선반뿐이었다.

서준은 원래 있던 지하벙커가 아닌 다른 공간 위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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