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독보다 영화사 대표님-139화 (139/140)

#139화. 헛되게 살지 않았다는 증거

나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 부모님 이야기를 한 번 꺼낸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 나는 왜 아빠랑 엄마가 없어?

그날 할머니는 내게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슬퍼하셨다.

그 후로 부모님 이야기는 사랑하는 할머니를 아프게 한다는 걸 알았고.

아빠 엄마의 ‘아’자도 꺼낸 적이 없다.

그래도 사진 하나는 꼭 간직하고 있었다.

그 사진은 할머니 방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도둑질로 얻은 것으로 어린 나를 안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찍힌 사진이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초본으로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과 두 분 다 이미 오래전 돌아가셨다는 것.

2살 때 할머니가 개명한 내 이름은 원래 신준영이었다는 것.

개명 시기쯤에 할머니와 같이 살 게 된 것까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혹시 친구분의 아내는 어떻게 되셨는지 아십니까?”

양상철이 한 단계 더 슬퍼진 눈으로 답했다.

“제수씨도 얼마 안 돼 친구 뒤를 따라갔습니다. 아이는 할머니 손에 맡겨져 자랐을 거고요.”

정말인 걸까.

내 가정이 점점 맞아 들고 있었다.

“어쩌다가 돌아가시게 됐습니까?”

내가 꼬치꼬치 캐물었지만.

그는 그저 담담하게 답할 뿐이었다.

“아들을 데리고 열심히 살아보려다가 과로로 쓰러졌다고 들었습니다. 낮에는 건물 청소, 밤에는 식당 서빙······. 체력적으로 남아나질 않았던 거죠. 과로로 찾은 병원에서 암 선고를 받아 아이를 자신이 더 키울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대요. 그제야 10년간 연락을 끊고 살던 자신의 엄마에게 연락한 거고요.”

할머니가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버릇처럼 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도 이렇게 예쁜 우리 바드 데리고 왔으니 할미가 용서해야 하는 거겠지? 10년의 질겼던 응어리는 이제 다 풀렸다만······.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사는 건지······.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할머니의 버릇 같던 말은 부모님의 죽음을 몰랐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양 회장님은 친구분이 돌아가신 뒤에도 아내분과 연락을 계속하신 겁니까? 사정을 잘 알고 계신 것 같아서요.”

그 답은 착잡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었다.

“친구가 죽고 몇 달 뒤 제수씨한테서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가 암이라 얼마 살지 못한다고요. 내가 그걸 어떻게 외면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다면······.

“병원에 가니 그러더라고요. 아들은 친정으로 보냈다고, 다행히 10년간 연락 없던 못난 딸의 아들을 받아주셨다고요. 사위의 죽음과 자신의 암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대요.”

할머니는······. 부모님의 죽음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 미안하지만, 내게 한 가지를 더 부탁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부탁이 뭐였습니까?”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자신과 남편의 유골함을 성인이 된 아들이 원한다면 찾아올 수 있도록 지켜달라는 부탁이요.”

그 뒤로는 먹먹한 마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매년 찾아와달라는 염치없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하더이다. 그저 납골당에 계속 안치될 수 있도록 신경 써줄 수 있겠냐고 하더군요.”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봉안당도 기간을 주기적으로 연장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군가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결국 그 부탁을 받았습니다······.”

거기까지 들은 나는 조용히 정장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언제나 지갑 안에 간직하고 있던 그 사진을 집어 들었다.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양상철에게 전했고.

“혹시 말씀하신 친구분이 이분 맞습니까?”

사진을 받아든 양상철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벅벅 문질렀다.

“아니······! 이걸 어떻게······. 신 회장이?”

사진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는 양상철.

“그럼 신 회장이 내 친구 신진호의 그 돌잡이 아들이란 말입니까?!”

나는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듣는 것이 처음이었다.

*

“기분이 어때요?”

달리는 차 안에서 묵묵히 밖을 보고 있던 내게 양상철이 물었다.

“아직은 얼떨떨합니다.”

그가 괜히 걱정할까 싶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겠죠. 한 시간 정도 더 가야 나옵니다. 한숨 자 둬요.”

나를 배려한 양상철은 도착할 때까지 말을 걸지 않았다.

며칠 전.

나는 애써 외면했던 부모님의 사연과 지금 어디 계신 지까지 알게 되었다.

양상철이 부탁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그는 둘의 유골함을 경기도의 한 봉안당에 모셨다.

그리고 그곳을 매년 찾았다고 한다.

그러다 내가 성인이 되던 해.

나를 찾으려고 했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딸과 사위가 괘씸했던 할머니가 내 이름을 신준영에서 신바드로 바꾸었으니까.

할머니는 하늘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셨을까.

차가 밀릴 정도의 가파른 오르막길을 계속 올랐다.

“거의 다 왔네. 내릴 준비하지.”

양상철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한 회색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봉안당’이라고 적혀있었다.

주차장에 멈춰 선 차에서 내려 그곳으로 들어가니 희미한 향냄새가 느껴졌다.

“이쪽이네. 내가 그래도 제일 좋은 자리로 달라고 통사정을 했었어.”

당시엔 양상철도 그렇게 넉넉한 사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하늘에서 이 모든 것을 보고, 내게 양상철을 소개해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평생 갚지 못할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아달라고 말이다.

미로 같던 그곳을 익숙한 듯 요리조리 들어가던 양상철이 멈춰 섰다.

“진호야. 나왔다.”

안치단에 유골함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그곳은 아마도 봉안당 건물에서 채광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곳이 아닐까.

그만큼 볕이 잘 드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안치단 한가운데에는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양상철은 내내 억누르던 감정이 터져 나오는 모습이었다.

“이제야, 이제야 데리고 왔어. 늦어서 미안합니다. 제수씨······.”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듯 묵직했지만, 삼켜냈다.

너무 오랜 시간에 걸쳐 마주한 부모님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왔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평소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데.

당장에 생각나는 말은 없었다.

그저 두 개의 유골함을 빤히 쳐다볼 뿐.

그러다 가방에서 이곳까지 가지고 온 물건을 꺼냈다.

그건 황금빛의 오스카 트로피였다.

십자군의 칼을 든 기사가 영화 릴 위에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이 트로피는 내가 지금까지 헛되게 살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그것을 부모님께 보이며 말했다.

“그래도······. 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아요······.”

내 말을 들은 양상철은 결국, 무너져내렸다.

나는 오열하는 그를 다독였다.

괜찮다고.

이렇게라도 만났으니 된 거라고.

그리고 시간은 6년이 지났다.

*

익숙한 OST들이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로부터 흘러나왔다.

마침, 내 옆을 타다닥 뛰어 지나가는 남자아이는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아빠!! 다음엔 ‘어울림’ 타러 가자!! 저거 VR이래! VR!!”

아이는 느리게 오는 아빠가 답답했는지 다시 쏜살같이 돌아가 아빠의 팔 자락을 붙잡고 끌었다.

“아이! 빨리 가자니까아아!”

그러다 나는 아이의 아빠와 눈을 딱 마주쳤다.

남자가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지길래 괜찮다는 고갯짓을 보였다.

내게 꾸벅 인사한 남자는 서둘러 아이를 둘러메고는 뛰어갔다.

남자아이는 까르륵 웃으며 좋아 죽는다.

나는 그의 얼굴을 모르지만, 그는 나를 알아봤을 것이다.

그는 아라비안 소속 직원일 테니까.

오늘은 아라비안랜드의 개장 일주일 전.

시공은 물론이고, 안전 검사까지 모두 완료했고.

모두의 기원 덕분이었는지 자잘한 사고 하나 없이 무탈한 현장이었다.

기공식 때 흙이 폴폴 날리던 허허벌판의 미사리 부지는 각양각색의 놀이기구들이 들어선 모습이었다.

그리고 공식 오픈 전 마지막 주말인 오늘 아라비안 소속 직원들과 연예인들을 이곳으로 초대했다.

실제처럼 테마파크 직원들을 배치해 운영해봄으로써 개장 시 혼란을 줄이기 위함도 있었고.

고생한 직원들이 맨 처음으로 즐겼으면 하는 이유도 있었다.

저 멀리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아! 정말! ‘처단자 바이크’부터 타야지! 시시하게 무슨 ‘모노레일’이야!”

“‘모노레일’로 놀이공원 전체를 한번 다 둘러본 뒤에 타야 좋다니까?”

임윤서와 도건우였다.

저 둘은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하다가 2년 전부터 공개 연애 중으로 연예계 대표 연상연하 커플이 되었다.

물론 연애 중이라고 티격태격을 멈춘 건 아니다.

뭐, 둘이 잘 맞으니까 사귀겠지.

“어! 바드! 나의 친구!!”

임윤서와 도건우 옆으로는 함자와 아흐마드가 나란히 오고 있었다.

어쩌다 입구에서 만난 모양이다.

둘은 최근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긴 했는데 아직 익숙하지 않아 임윤서와 도건우의 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함자!!”

그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 같은 날 함자가 빠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아 몇 달 전부터 꼭 와달라는 초대를 보냈다.

함자는 최근 두바이 국왕이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일 잘하는 아흐마드 덕분에 오늘 스케줄을 맞출 수 있었다고 한다.

내 앞까지 쪼르륵 와서는 반갑게 포옹한 함자가 물었다.

“잘 지냈어?! 근데 바드. 저 둘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면서 싸우고 있는 거야?”

이래서 어린애들도 싸우는 건 다 안다는 거다.

욕이 만국 공통으로 통하는 것처럼.

그런데 굳이 그 내용을 다 알 필요는 없지.

“그냥 사랑싸움.”

내가 슬쩍 웃자 함자도 알만하다는 눈치였다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변했다.

“혹시 너도 그러는 건 아니지?”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데.

“어휴, 정말! 다훈이는 왜 이렇게 긴장을 많이 하는지 몰라!”

큰 목소리가 들려오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모였다.

“여보! 미안! 오래 기다렸지? 다훈이 오늘 전체 리딩이라고 난리네.”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여자는 3년 전 내 아내가 된 한보배였고.

그녀는 한다훈과 전화 통화를 하고 오는 길이다.

처남은 최근 그렇게도 꿈에 그리던 할리우드 영화에 캐스팅됐다.

“오래 안 기다렸어. 근데 정말로 오늘 컨디션 괜찮은 거야?”

한보배가 볼록 올라온 배를 쓰다듬었다.

“응! 루하가 오랜만에 바깥바람 쐬고 싶대.”

그러자 내 주변에 있던 모두가 한보배에게 달려들었다.

“에에?! 보배 너 다음 달 예정 일 아니야?”

“와! 딸이라고 그랬죠? 신기하다!”

임윤서와 도건우는 물론.

“내 친구 보배! 혹시 조카가 뭐 가지고 싶다는 신호는 안 보냈어?!”

“이름이 루하구나······.”

함자와 아흐마드까지 난리가 났다.

그러자 한보배가 상황을 한 번에 싹 정리했다.

“아! 다들 하나씩 물어봐요! 하나씩!”

그렇게 모두가 그녀의 배를 신기한 듯 보고 있던 그때.

나경과 이 과장이 다가왔다.

“회장님. ‘모스트 몬스터’ 준비 완료했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잠시만요. 여보. 나 잠깐만 다녀올게!”

사람들 틈으로 흔드는 손이 슬쩍 보였다.

잘 다녀오라는 뜻이다.

“갑시다.”

우리는 비장하게 아라비안랜드에서 가장 레일이 우뚝 솟은 그곳으로 향했다.

잠시 후.

달달달달달.

“으아. 저는 여기 왜······?”

내 바로 뒷자리에서 허훈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 감독님. 괜찮아요. 괜찮아.”

옆에 있던 예정우가 그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예정우의 앞자리이자 내 옆자리엔 나경이 있었다.

“회장님. 괜찮으세요?”

“그럼요. 나경 씨는요?”

“저는 뭐, 이런 거 좋아해서요.”

우리는 롤러코스터 의자에 앉은 채 하늘로 향하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원년 멤버네요?”

‘모스트 몬스터’는 아라비안랜드 기획 단계서부터 심혈을 기울인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였다.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지다 보니 올라가는 것도 한참이다.

“그러게요. 근데 회장님. 저 뭐 하나만 말씀드려도 돼요?”

“뭔데요?”

나경이 슬며시 웃었다.

“지금까지 감사했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구요.”

그러자 뒤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나경이! 너! 아주 사회인 다 됐네! 다 됐어! 아부도 부릴 줄 알고 말이야!”

“그러게! 회장님! 나도! 나도 앞으로 평생 잘 부탁할게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 다 왔다!”

나경의 말을 시작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넓게 펼쳐진 아라비안랜드와 저 멀리 오픈 세트장, 대극장, 자동차 극장까지.

롤러코스터의 꼭대기는 지금까지 내가 일군 모든 것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어느새 아래를 향하고 있는 롤러코스터.

“으아! 내려간다아아!”

심장이 아래도 곤두박질치는 느낌이 들자 모두의 비명을 들려왔다.

그리고······.

“으아아아! 올라간다아앗!”

우리를 태운 ‘모스트 몬스터’는 다시 하늘 높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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