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독보다 영화사 대표님-132화 (132/140)

#132화. 결전의 날

“여보세요? 어, 이 회장 잘 지-”

또 끊겼다.

“이런!! 개 같은 놈들이!!!”

배인규는 수화기를 던져버리려다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 거세게 내려놓았다.

“이런 씨발!!”

넥타이가 점점 목을 옥죄어 오는 느낌이라 거칠게 풀어버리곤 고민했다.

‘이제 어떻게 한담······.’

회장실에 앉아 오늘만 몇 통째 전화를 돌렸는지 모른다.

수확이라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방금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이 회장과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놈들까지 있었다.

‘좋다고 받아 처먹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오랜 비서였던 김정난이 자신 몰래 모아둔 비리를 터뜨리고, 압수수색을 받으며 곧 직접 조사까지 받으러 나가야 할 판이다.

그러니 당연히 회사가 휘청할 수밖에······.

이미 주주들 사이에선 ‘배인규를 몰아내자!’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자신의 수첩을 처음부터 다시 꼼꼼하게 살폈지만,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쳐다도 안 볼 놈들한테까지 깡그리 다 전화한 뒤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맞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최근 YJ E&M의 주가는 끝도 없이 폭락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 주식을 끌어모으는 거대한 손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있었다.

요 며칠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그 보고를 까먹고 있던 것이다.

그는 인터폰을 눌러 새로 들인 젊은 비서를 찾았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역시 나이가 깡패긴 하다.

진작 바꿀걸, 김정난을 괜히 옆에 오래 뒀다가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최근 우리 회사 주식 사들인다는 쪽 좀 자세하게 알아 와.”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배인규는 뒤돌아 나가는 비서의 요염한 뒤태를 음흉하게 보면서 다시 한번 위기를 딛고 일어설 꿈에 부풀어 있었다.

*

두바이에서의 마지막 날이자 내가 함자에게 두 가지 계획을 밝혔던 날.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친구. 내가 잘은 모르지만, 영화관 사업도 꽤 오래 걸리지 않아?

당연히 영화관도 테마파크 못지않게 오랜 시간 공들여야 하는 사업이다.

건물은 처음 지어질 때부터 용도에 맞게 지어진다.

그에 따른 법령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영화관 사업을 하려면 새로 건물을 짓거나 기존에 영화관이었던 장소로 우리가 들어가야 했다.

그렇다고 기존 영화관 자리를 우리가 들어가는 것이 쉬운 일인가.

아니다.

장사 잘 되는 곳이 나올 리 없고.

나오는 곳을 우리가 들어가 봐야 손해다.

대기업 백화점 등이 건설될 때 입점하거나 우리가 새로 짓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보면 된다.

그것도 전국적으로 지역마다.

그럼 영화관을 신설할 때 드는 비용은 얼마일까.

못해도 몇십억이 기본이다.

문제는 건설 비용뿐만이 아니었다.

4K 영사기와 돌비 애트모스(벽과 화면 뒤에 배치되는 스피커를 천장에도 배치해 관객들을 사운드 돔으로 감싸주는 기술) 상영관 구현 등의 비용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계획이 다 있었다.

-그렇지. 근데 나는 5년 안에 전국 70개 영화관을 오픈할 거야. 5년 후부터는 해외로 넓혀갈 예정이고.

함자는 내 말에 깜짝 놀랐다.

-뭐? 그게 가능한 거야?

물론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하다.

가능한 방법이 있을 뿐.

-한국에 전국적으로 70개의 영화관을 가진 대기업이 있어.

그 대기업은 바로 YJ E&M.

YJ E&M의 극장 브랜드 JYV는 현재 전국적으로 딱 70개였다.

-나는 그 대기업을 1년 안에 먹을 거야.

-혹시 거기가 저번에 말했던 곳이야?

나는 함자에게 배인규와 서태원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전생에서 내가 겪은 일을 말했다간 함자가 날 병원으로 데리고 갈지도 모르니 그건 넣어두고.

현재 그들이 벌이고 있는 추잡한 짓거리들과 미래에 벌일 일들까지 교묘하게 추가해서 말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함자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래! 그런 놈들한테는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그 시점에서 나는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거기서 네가 해줘야 할 게 있어.

-응? 뭔데?

인수합병을 하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하다.

-천천히 그곳의 주식을 매수해 줘. 타이밍은 내가 알려줄게.

함자는 비장한 눈빛이었다.

-걱정하지 마. 아흐마드가 다 알아서 할 거야!

아흐마드라고 하니 더욱 든든하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후 결전의 날인 오늘이 왔다.

오늘은 그를 찾아갈 것이다.

“저기요! 들어가시면 안 된다니까요?!”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김정난이 나간 뒤 들어온 여자인가 보다.

나는 그녀의 말을 깨끗이 무시한 채 빠르게 걸었다.

어느새 내 뒤로는 여자 외에도 큰 덩치의 남자들이 몇 따라붙었다.

“어이! 들어가면 안 된다잖아!”

위협적인 말투였지만, 그래도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붙잡으려는 순간.

벌컥-!

그들이 그토록 열지 말라는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그곳에는 배인규가 있었다.

뒤따라오던 여자와 남자들은 아연실색하며 배인규에게 꾸벅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지금 당장 끌어내겠-”

“됐어. 강 비서. 차라도 한잔 내오지.”

여자가 눈이 댕그래져서는 대답했다.

“예? 아, 네. 회장님.”

그리고 문은 닫혔다.

“와서 앉게.”

나는 차분한 그의 음색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차가 나올 때까지 소파에 앉아 서로를 빤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곧이어 차가 나온 뒤 먼저 입을 연 건 나였다.

“더 발악하지 마시고, 죗값 받고 오시죠. 혐의를 모두 인정하세요.”

당연하게도 YJ E&M과 NX엔터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배인규는 내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싫다면? 자네가 뭘 어떻게 할 셈인가?”

“싫어도 그렇게 되실 겁니다. 우리나라 법이 만만하지 않더라고요.”

“허허, 참. 처음에 나는 자네가 내 부류인 줄 알았네. 그 눈빛, 담력, 영화를 보는 눈까지 말이야.”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겠다.

목표가 돈과 사업 번창인 것은 같으니까.

“그런데 이제 보니 우리는 아예 다른 부류의 사람이구만.”

그러나 그의 말대로 우린 분명히 달랐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악한 욕심을 부리는 것.

그게 배인규와 나의 차이였다.

“회사와 직원들은 제가 품겠습니다. 잘못된 우두머리 하나 때문에 그들이 피해를 볼 필요는 없죠.”

어쩐지 그는 여유로워 보였다.

“자네가 원하는 건 결국 그거였나? 그런데 어쩌지? 원하는 대로 절대 될 수 없을 것 같은데······?”

믿는 구석이 있는 표정이었다.

나는 당연히 그 믿는 구석이 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다.

“두바이에서 연락은 왔습니까?”

줄곧 느긋하던 배인규의 태도가 순식간에 변했다.

“두, 두바이를 자네가 어떻게?”

모르는 게 이상할 정도지.

“기다리는 연락은 오지 않을 겁니다.”

그의 동공은 상황 파악을 위해 빠르게 돌아갔다.

“설마, 이게 다 자네가 벌인 일이라고? 내가 그 함정에 빠졌다는 건가?”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면 사람은 오히려 멍해진다.

지금 눈앞의 배인규 상태가 딱 그랬다.

“함정이라고 하긴 좀 그렇네요. 저는 그냥 계획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번에도 제 계획대로 일이 돌아간 것뿐이고요.”

내 말을 들은 배인규는 이제 분노 2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 새끼가! 말장난하지 말라고!! 대답해!! 그러니까 두바이 계좌로 내 YJ 주식 사들인 놈이 너냐고?!”

끝까지 YJ E&M이 자기 거란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아니고, 제 친구가 사들인 겁니다. 그러니 헛된 기대하지 마시고, 죗값 치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크리스털 재떨이를 집어 들었다.

그래. 그 손버릇이 어디 가겠어.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 당신이 이런 꼴이 된 거겠지.

“이! 이!! 개새끼야!!!”

노인네가 목청도 좋다.

온 힘을 다해 재떨이를 내게 던지려던 그때.

퍽!

문이 꼭 뜯어져 나갈 것처럼 힘차게 열렸다.

“배인규 씨. 당신을 청탁 금지법 위반 혐의 및-”

그 순간은 나도 당황스러웠다.

회장실로 들이닥친 이들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경찰들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며 배인규의 팔을 양쪽에서 붙들자.

그는 발버둥 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뭐야! 이것들은! 야! 빨리 와서 뭐 어떻게 좀 해봐!!”

기세 좋게 나를 따라오던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게 전부였다.

“안돼! 이렇게는 못 가!!”

배인규가 온몸을 흔들며 발악했지만.

경찰들을 힘으로 이길 순 없었다.

그렇게 그는 회장실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갔다.

언젠가 자신이 이곳에서 행했을 행동을 그대로 돌려받은 모습이었다.

*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경찰이 들이닥친다는 이유는 배인규가 2~3차례 검찰 소환에 불응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불응한 이유를 추측하자면 아마도 두바이에서 올 희망찬 연락을 기다리던 중이었겠지.

나는 그저 배인규와 마지막 대화를 나누기 위해 간 것인데, 어쩌다 그날이 딱 맞은 것이다.

어쨌든 배인규가 회사 1층까지 질질 끌려 내려와 경찰차 안으로 구겨지는 모습은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찍혔고.

그 사진은 YJ E&M에서 어떻게 손써볼 틈도 없이 삽시간에 퍼졌다.

[와, 진짜 추하다. 대기업 회장이 저렇게까지 될 수가 있구나.]

[저거, 저거! 안 들어가려고 뻐팅기는 것 좀 보소!]

[몰라서 그렇지. 우리나라에는 더 추한 놈들도 많을 거임.]

[어휴, YJ는 이제 끝났네······. 내 주식 떡락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ㅜㅜ 얼마를 잃은 거야!!!]

[아니! 지금 YJ 소송 걸린 게 몇 갠데!! 그건 다 해결하고 가! 이 영감탱이야!!]

[충격적입니다. 어떻게 한나라의 대기업 총수라는 분이 이렇게도 극악무도한 일들을 벌이고는 소환에도 불응합니까? 예?!]

[언젠가는 터질 게 터진 겁니다. 이제 영화계는 투톱 체제로 가겠네요. 아라비안이랑 캐리랑]

[이거 곧 펑 할 건데, 배인규 조카가 서태원이라고 함. 지인이 YJ E&M 직원이라서 확실한 정보임!]

YJ E&M는 사상 최악의 주가를 기록했으며 우리는 또 그 주가를 주섬주섬 사들였다.

그리고.

『학교 폭력 논란, 서태원 내일(15일) 입대』

『고개 숙인 서태원, 피해자들에게 죄송해』

『‘학폭’ 인정 서태원, 활동 중단하고 입대. “반성의 시간 가질 것”』

서태원은 전생과 똑같이 졸렬한 방법으로 도피했다.

그래. 국방의 의무는 잘 수행하고 와라.

다녀와서도 이곳에는 발가락조차 못 붙이게 해줄 테니까.

복귀 따위는 생각도 못 하게 해줄 예정이다.

서태원이 입대한 그 주 금요일엔 또 하나의 화젯거리가 있었다.

『아라비안, 이번엔 YJ E&M 품는다』

『화분 엔터에 이어 YJ E&M 인수 계획 밝힌 아라비안』

『바닥 친 YJ E&M의 주가는 회복될 것인가. 주주들은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

우리는 인수합병 절차를 본격적으로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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