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이제부터 뭘 해야 하나
물총 전쟁이 시작됐는지 여기저기서 꺄악 소리가 들려왔고.
얼굴에 피 칠갑을 한 사람들은 유독 눈알 꼬치와 마녀 손가락 소시지를 많이 들고 다녔다.
이 두 가지가 들고 다니면서 먹기 좋아서 인기 메뉴란다.
“대표님!”
어이구, 깜짝이야.
머리를 산발한 나경의 오른쪽 뺨엔 칼빵(?)이 새겨져 있었고, 이곳저곳 실핏줄이 그려져 있었다.
옷은······.
경찰 제복이었다.
“괜찮은 거죠?”
“당연히 괜찮죠! 왜요? 이상해요?!”
“아니요. 그게 아니고······. 분장이 참 리얼해서요. 하하. 근데 옷은 어디서 났어요?”
“옷도 빌려주던데요? 그리고 여기 분장팀이 잘하더라고요. 사업 2팀에 말해줘야겠어요. 내년에도 여기랑 계약하라고.”
그녀는 주말인 오늘 쉬는 날이었으나 ‘K – 좀비 축제’에 참가했다.
그것도 사비로.
물론 직원 할인이 50% 있긴 하다.
우리는 원활한 축제 진행을 위해 개막식과 폐막식의 입장 인원을 제한하기로 했다.
돈도 돈이지만.
그린 애플과 에이든 브라운 때문에 사람들이 너무 몰리면 제한된 공간에서의 안전사고 위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루 인원 4만 명 정도로 제한해놓으면 적당하겠지, 싶어 걸어놓으면서도 설마 했었다.
그러나 개막식은 3분.
폐막식은 2분 만에 매진됐다.
나경은 그 경이로운 경쟁률에서 살아남은 직원이었다.
아직도 사업 2팀으로 폐막식 표를 구할 수 없냐는 아라비안 직원들의 연락이 빗발친다고 한다.
“아, 참! 이것 좀 드세요! 사 왔어요!”
그녀의 손엔 눈알 꼬치 2개가 들려 있었는데 위화감이 너무 없어 있는지도 몰랐다.
눈빛으로 대차게 거부했지만, 어느새 하나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아이참! 그러지 말고, 드셔보세요! 맛있어요!”
흰색 소스를 묻힌 완자 가운데에는 동공을 묘사한 파나 김이 붙어 있었고, 그렇게 생긴 완자가 총 5개 꽂혀 있었다.
은근히 손이 많이 갈 것 같은 꼬치네.
징그러워서 얼른 먹어버렸다.
“잘 드시네요!”
맛은 또 있다.
나경은 내가 잘 먹는 걸 확인한 뒤 입구에서 나눠주는 지도를 펼쳤다.
“저는 이제 숨어있는 좀비들 찾으러 가봐야 하거든요? 대표님은 누구 기다리신다고 하셨죠?”
그렇다.
나는 이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 얼른 가봐요. 근데 지금 나경 씨가 좀비 중의 가장 좀······. 아니다. 재밌게 놀아요.”
나경은 이 축제를 즐기는 게 중요했는지 내가 하려던 말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네! 이따가 저녁 공연 때 봬요!!”
손까지 흔들면서 좀비를 찾아 나섰다.
그 뒷모습이 무척이나 신나 보인다.
그나저나 내가 그때까지 있으려나······.
그러다 문득 내가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하니 무조건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왜 안 오지.
지잉-.
지잉-.
함자는 참 왕세자인데도 양반은 못 된다.
“여보세요?”
-친구! 나 지금 막 들어왔어!
내가 함자라면 세계에서 신기하다고 소문난 건 어떤 것도 다 봤을 것 같은데.
그의 목소리는 마치 놀이공원을 처음 마주한 어린아이의 떨림과도 같았다.
“응. 나 바로 앞에 있어.”
말하자마자 저 멀리 조금 낯선 모습의 함자가 보였다.
그는 평소와 아주 다른 외관이었다.
항상 입고 있던 전통의상인 흰색 칸도라가 아닌 멀끔한 캐주얼 정장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 함자? 무슨 일이야?”
함자는 내 반응이 쑥스러운 얼굴이다.
“너랑 만날 때는 항상 공식 자리 막 끝났을 때나 그런 자리에서만 만났으니까 칸도라 입고 있던 거고, 오늘 나는 관광 온 거잖아.”
친구란 게 그렇다.
이런 모습을 보면 괜히 놀리고 싶다.
“오올, 근데 관광치곤 많이 신경 쓴 거 같은데?”
“그런가?”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길래 그만뒀다.
“아니야. 멋있어.”
함자는 2주 전.
내게 전화해 ‘K – 좀비 축제’의 개막식 티켓을 구할 수 있냐고 물었다.
듣자마자 그 속셈은 눈치챘다.
지인들 표를 몇 장 빼놓기도 했고.
당연히 함자라면 없던 표도 만들어서 줘야 할 판이다.
그는 내 대답에 기뻐하며 1주일 전 극비리에 내한했다.
그리고 어제까지 아흐마드와 관광을 했다고 한다.
관광시켜준다는 내 제안은 극구 거절했다.
나는 축제 구경을 시켜줘야 한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오늘 하루 내내 함자와 축제를 즐겨야 한다는 건데······.
이제부터 뭘 해야 하나.
얼굴에 ‘기대’라고 적혀있는 함자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근데 뭐부터 할 거야?!”
그의 눈을 보고 있자니 떠올랐다.
“너······. 혹시 눈알 꼬치라고 먹어봤어?”
“눈알 꼬치?”
내 말을 들은 함자의 눈알이 꼭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
일주일 후.
『K - 좀비들의 축제 성공적으로 마쳐』
『에이든 브라운. 한국 팬들의 열정은 남미를 뛰어넘는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 성공. K – 좀비 축제, 내년이 더 기대되는 이유』
『뮤덕들의 아라비안아트센터 탐방기. 극찬!』
『꼭 다시 오겠다! 팬들과 약속하며 출국하는 에이든 브라운』
『일자리 창출까지, 하남시, 축제 앞으로도 적극 지원하겠다』
『영화사를 뛰어넘는 행보. 아라비안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축제는 무사히 마무리됐다.
[아니, 좀비 진짜로 <왕국> 출연 배우분들 아니에요? 저 진짜 기절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것보다 야외무대 장비들이 다 쩔던데? 에이든 브라운 음색이 하나도 묻히질 않았어요!!]
[좀비 펍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사귄 지 5일째입니다. 축하해주세요. 내년에는 꼭 둘이서 갈게요. >_<]
[그린 애플은 영원하리ㅜㅜㅜㅜ 성덕은 좀비들과 누웠습니다...]
그에 따른 수익도 어마어마했는데.
그야말로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함자. 어땠어? 재밌었어?”
나는 함자와 함께 한정식집에서 전통 소주를 기울이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함자는 5일 전 두바이로 떠났어야 했지만.
그는 내일 간다.
“응! 정말로 너무 재밌었어. 내 생의 최고에 날들이기도 했고!”
그럴 만도 하지.
개막식 날 그는 두바이에서 흔들지 못한 응원 봉을 맨 앞자리에서 맘껏 흔들었다.
함자는 이해 못 했지만.
나는 그 모습에 ‘한이 담겨있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그린 애플의 무대가 끝나고, 사인회 시작까지 잠시 시간이 남는 틈을 타 개인 팬 미팅을 주최했으니 말이다.
두바이영화제에서는 체통을 지키느라 멤버들과 사진 한 장 못 찍었다.
물론 아람과 같이 찍은 사진이 있긴 했으나 어디 팬 마음이 그렇겠나.
이번에도 어디선가 대기하고 있던 전문 사진사가 나타나 그린 애플과의 단체 사진을 팡팡! 찍었고, 사인도 받고,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시간을 가졌다.
그때 함자는 순수하게 행복해 보였다.
그 행복감을 한국에서 최대한 오래 느끼고 싶다는 엉뚱한 말을 하더니 5일이나 더 머물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아람은 다시 미국으로 갔다면서?”
그녀는 사인회가 끝나자마자 급하게 공항으로 향했다고 전달받았다.
“응. <블랙 히어로즈 2>에서 비중이 많아졌다고 하더라고.”
“그건 들었어. 이번에도 우리 회사에서 투자하고 있거든. 사실 슬쩍 말해볼까 했는데 웬일인지 시나리오가 수정되어 있더라고?”
저번 사태를 겪은 블랙 스튜디오가 먼저 함자의 눈치를 본 것이다.
“그거참. 다행이네.”
우리는 소주잔을 부딪힌 뒤 털어 넘겼다.
“크아!”
함자에게 소주 먹는 방법을 가르쳐줬는데 처음엔 영 이상하다더니 이젠 아주 한국인이 다 됐다.
“맞다. 아버지가 영화제 도와준 한국인 친구 집에 한 번 데리고 오래.”
그러니까 그건 나였다.
“아주 체면이 제대로 섰다면서 진짜 좋아하셨거든. 너랑 같이 사업 시작하기로 한 것도 다 알고 계셔. 잘 해보라고 하시더라.”
국왕을 직접 뵙는 건 조금 부담스럽긴 한데······.
“그래. 알겠어. 언제 한번 인사드리러 두바이에 다시 들를게.”
마치 초등학생이 피아노 학원 가다가 친구 집 들른다는 것처럼 쉽게 말하긴 했으나.
진심이었다.
“그래서 테마파크는 잘 되고 있어?”
“그럼 잘 되고 있지. 이번에 유명한 디자이너도 섭외했어.”
“역시! 내 친구는 잘할 줄 알았다니까!”
호탕하게 웃는 함자를 보니 생각났다.
“맞다. 혹시 소개해 줄만 한 로봇 전문가가 있을까?”
함자 정도 인맥이면 있고도 남는다.
“로봇 전문가? 으음······.”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뭔가가 떠오른 듯했다.
“아, 그 언젠가 로봇 관련 젊은 CEO를 만난 적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음, 모르겠다. 아흐마드한테 물어보고 알려줄게.”
아흐마드가 참 많은 일을 한다.
“그런데 로봇은 왜?”
“아직 구상 중이긴 한데, 테마파크에 전문가가 필요할 것 같아서.”
“그래? 오, 뭔지 궁금한데?”
그러자 함자는 내 비어있는 잔을 채우며 물었다.
“아, 그리고 나 또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뭔데?”
“축제 옆 부지로 테마파크가 들어설 거라고 했었잖아.”
나는 함자가 미사리까지 온 김에 테마파크 부지를 보여줬다.
“응. 그렇지?”
“그때 우리 부지는 5만 평이라고 했었고?”
아, 뭐가 묻고 싶은지 알겠다.
“그것도 맞지.”
함자는 혹시나 내 기분이 상하지는 않을까,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 나는 너를 믿지만, 5만 평은 작아도 너무 작은 규모 아닐까? 그 옆으로 안 쓰는 땅들도 많아 보이던데······.”
세계에서 가장 관람객이 많은 테마파크 1위의 면적은 235헥타르, 2,350,000㎡.
70만 평이 넘는 면적이다.
그러니 함자가 한 말이 맞다.
당연히 너무나도 작다.
사실 이 문제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제기됐던 논란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항상 이렇게 답했다.
“그렇지. 아주 작은 규모야. 그런데 그건 걱정하지 마. 내게 다 생각이 있어.”
테마파크가 유치되면 그 도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규모 일자리가 창출되고, 관광객 유치를 기대할 수 있다.
그 매출액만 보더라도 웬만한 대형기업이나 공업단지에 비등할 정도다.
그렇게 되면 아라비안은 지역 경제에 부분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그런 사업을 벌이는데 당연히 지자체인 하남시의 도움을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함자는 그럴 줄 알았다며 웃었다.
“그렇지? 나도 물어보면서 괜한 걸 물었다고 생각했다니까?”
밤이 깊도록 우리는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마지막 잔을 들려던 순간.
함자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프랜차이즈 브랜드 계획도 이제 곧 시작이겠네? 사실 그때까지 있고 싶은데, 두바이에 일이 있어.”
“그럼. 당연히 가봐야지. 우리는 서로 책임져야 할 식구들이 많잖아.”
우리는 월급을 줘야 할 직원들이 있다.
“그래. 마무리가 잘 됐으면 좋겠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사업을 더욱 번창해야 한다.
“한국에는 일석이조라는 사자성어가 있거든?”
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석이조? 그게 무슨 뜻인데?”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라는 뜻이야.”
답을 들은 그의 미간이 한껏 좁혀왔다.
“으음······. 그럼 어쨌든 좋은 거네?!”
나는 손뼉을 짝 치며 답했다.
“그렇지! 이번에 우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이제 본격적으로 계획을 실행할 타이밍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