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애정과 열정
테마파크 디자인이 시작되었다.
자말은 우선 팀원들과 아라비안필름에서 제작한 전 영화를 주제로 회의한 뒤.
어떤 방향으로 디자인할 것인지를 정해 전체적인 시안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그에 따라 우리는 시안을 기다리며 다른 부수 건물들의 설계와 행정 업무에 박차를 가했고.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회사에는 또 한 가지 중요 이벤트가 추가됐다.
바로 제2회 좀비 탈출.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일정은 작년 개최일과 비슷한 시기로.
7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그다음 주 일요일까지 10일간 개최하기로 했다.
이미 6개월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기에 5월 초인 지금은 지금껏 준비한 것들을 다시 확인하며 마무리하는 단계였다.
올해부턴 정식명칭도 바뀐다.
바로 ‘K – 좀비 축제’.
축제는 작년 신설된 사업 2팀이 주관하며 사업 1팀이 보조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작년과는 다르게 좀비 탈출 이외에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을 준비했습니다.”
앞에서 브리핑을 주관하던 사업 2팀 팀장이 레이저 포인터를 꾹 누르니 화면이 넘어갔다.
“먼저 호러 컨셉 푸드트럭은 총 20대의 입점을 확정해 계약까지 완료했습니다.”
여러 음식 사진들이 있었지만, 그중 눈알 모양 꼬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또 그 옆으로는 칵테일을 판매하는 좀비 펍을 구성한 뒤 저녁엔 클럽으로 운영하고, 칵테일은 링거팩 등에 담아 재밌게 제공할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준비한 건 많았다.
곳곳에 숨어있는 좀비들을 찾아 게임에서 이기면 스탬프를 찍어주는 이벤트인 ‘좀비를 이겨라’.
참가자들끼리 쏘면서 즐길 수 있는 물총 전쟁.
좀비들이 득실대는 미로 탈출.
또 주말에는 축제 전 오픈할 대극장에서 상영될 스릴러 뮤지컬과 섭외된 국내 밴드들의 야외무대 일정이 있었다.
대망의 좀비 탈출은······.
“총 10일 중 5일간 진행하고, 고용된 좀비들은 모두 교육 진행 후 축제에 투입할 예정입니다.”
올해부터는 좀비팀과 러너팀이 나뉘지 않는다.
작년 스릴 넘쳤던 러너팀보다는 상대적으로 좀비팀의 재미가 떨어졌다는 의견이 있었기에, 적극 반영한 것이다.
좀비팀만 할 수 있었던 좀비 분장은 좀비 탈출에 참여하지 않는 관람객만 유료로 받아볼 수 있도록 한쪽에 준비할 계획이었다.
“좀비 교육은 <왕국> 보조 출연자분들께서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왕국> 시리즈 좀비들은 철저한 오디션을 거쳐 선정한 배우들이었다.
처음에는 직접 그 출연자들을 투입할까도 생각했으나 리얼한 것도 정도가 있다.
좀비 연기로 세계 각국에서 극찬받은 그들인데 실제로 마주하면 기절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차라리 우리는 조금 덜 전문적인(?) 방법을 택했다.
“잘됐네요.”
사업 2팀 팀장이 자리로 들어가고.
홍보팀장이 나와 브리핑을 시작했다.
“어제 메인모델 한보배 씨가 촬영한 포스터 가안이 나왔습니다. 가안 괜찮다고 하시면 축제 두 달 전부터 홍보 시작할 수 있도록 확정 포스터 작업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크린에는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한보배가 좀비들로부터 도망가고 있었다.
한껏 겁에 질린 얼굴로 말이다.
작년 좀비 탈출 이후로 좀비의 진심인 여배우이자 <왕국 : 시간의 비밀> 캐스팅까지 된 그녀는 우리 축제의 모델로 안성맞춤이었다.
저 포스터는 한보배가 드라마 촬영 중 오픈 세트장에서 시간을 내어 찍은 것인데.
촬영장에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저 모습이 아니었다.
아니, 비단 포스터 촬영뿐만이 아니다.
드라마 촬영 중에도 한보배는 좀비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굉장히 즐거워했다.
“괜찮네요. 최종 포스터 작업 들어가시죠.”
한보배 외에도 축제 개막식 축하 무대에 그린 애플이 오르기로 했고, 그녀들은 무대 후 사인회까지 개최한다.
처음엔 <블랙 히어로즈 2> 촬영 중인 아람을 제외한 3명만 와도 괜찮다고 전달했는데.
아람이 블랙 스튜디오 측에 말했는지 스케줄이 조정되어 잠깐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제가 빠지면 그린 애플이 아니죠!!
아람은 이렇게 말하며 그린 애플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보였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나는 추가하고 싶은 홍보가 하나 더 있었다.
“저번 행사 홍보 때 ‘냉혈한’이라는 인플루언서 있지 않습니까. 연락이 가능합니까?”
작년 좀비 탈출이 입소문을 타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다.
이번에는 정식으로 홍보를 부탁하고 싶었다.
“예. 접촉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
회의를 마친 우리는 각자 흩어져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며칠 뒤.
오늘까지 꼭 검토할 서류가 있던 나는 샌드위치를 사 온 뒤 사무실 복사기 앞에 서서 서류를 출력하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은 다 점심을 먹으러 나간 뒤였기에 사무실은 허전한 모습이었다.
“저기······. 실례합니다.”
누군가가 쭈뼛대며 들어오길래 입구로 다가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사무실로 들어온 사람은 20대 중반의 남자.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쓴 그는 굉장히 순한 인상의 남자였다.
“오늘 홍보팀장님과 뵙기로 한 김준이라고 합니다.”
모르는 이름과 얼굴이었다.
“그러세요? 지금 다들 점심시간이라 밥 먹으러 나갔는데.”
그러자 김준이 손사래를 쳤다.
“아! 제가 좀 많이 일찍 왔습니다! 거리 계산을 잘못해서요. 하하.”
“그럼 안내해드릴 테니까 잠깐만 앉아서 기다려주시겠어요?”
“넵! 감사합니다.”
김준은 꾸벅 인사하더니 내 뒤를 졸졸 따랐다.
나는 그런 그를 데리고 회의실로 향했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차 드릴까요?”
“아! 괜찮습니다만······. 그럼 시원한 물 한잔 만 주시겠습니까? 날이 상당히 더워졌네요. 하하.”
그는 아까 나를 마주친 이후부터 시종일관 어딘가 초조하고, 불안해 보였다.
중요한 미팅을 하러 온 사람이라 긴장한 건가.
“예. 잠시만요.”
원하는 물을 가져다주려 몸을 돌렸는데 김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혹시······.”
“예. 말씀하세요.”
“신바드 대표님 아니십니까?!”
요즘 들어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하지만 아직 이런 상황은 어색해 멋쩍은 웃음과 함께 긍정했다.
“예. 맞습니다.”
“정말요?!”
그는 깜짝 놀라더니 벌떡 일어나 인사를 다시 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준이라고 합니다!!”
“예. 하하. 이름은 아까 말씀해주셔서 알고 있습니다.”
그는 방금 자신의 흥분을 깨달았는지 얼굴이 벌게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때 뵌 이유로 팬이 돼서요······.”
“예? 팬이요? 그것보다 저희가 본 적이 있습니까?”
“대표님은 아마 저를 기억 못 하실 겁니다.”
맞다.
아무리 생각해도 초면인 거 같은-!
“응? 좀비 탈출?”
그러자 김준이 활짝 웃었다.
“와! 어떻게 기억하시네요?! 저 그때 4구역에 있었습니다!”
“맞다. 기억나요! 그 다리 끌던?”
그가 고개를 연신 위아래로 흔들었다.
와, 그런데 분장으로 얼굴을 다 덮긴 했었지만, 눈빛이 완전히 다르다.
좀비 역할에 몰입하던 그를 유심히 봤기에 이렇게 알아본 것이지 아니었으면 절대 몰랐을 거다.
어쨌거나 이렇게 보니 반가웠다.
하지만 한편으론 의문도 들었다.
“그런데, 여기는 왜······?”
“혹시 ‘냉혈한’이라고 아세요? 핸즈팝에 좀비 탈출 홍보도 했었는데.”
당연히 알지.
홍보팀장한테 ‘냉혈한’과 접촉해 달라고 한 사람은 나니까.
그런데 이 사람이 이 말을 한다는 건······.
“그럼 김준 씨가 그 ‘냉혈한’ 님?”
김준의 고개가 또 마구 흔들렸다.
“4구역 좀비로 참여한 다음에 그 리뷰 작성하신 거예요?”
“네! 맞습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진정성 있던 좀비 연기가 떠올랐다.
좀비팀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좀비가 재밌어 보여 참가하긴 했으나 쑥스러워서 그 기량을 맘껏 펼치지 못했다.
그러니 그 사이에서 김준은 단연 돋보였다.
내가 그를 유심히 봤던 이유는 좀비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로 좀비로서 행사를 마음껏 즐기려는 그 마음이 내게 전달됐기에.
아직 2회밖에 주최되지 않았지만, 축제가 계속되려면 그만큼 애정을 가진 인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혹시 지금 일하고 있는 곳이 있어요?”
그는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당황했다.
“네?”
“실례되는 질문이었으면 미안해요. 우리 회사에서 일할 생각은 없나 해서요.”
“네에에에?!”
“한번 생각해볼래요? 저희랑 같이 일하면 재밌을 것 같은데.”
김준이 다시 흥분해서는 답했다.
“생각할 거 없습니다! 저야 뽑아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실 그날 이후로 대표님이 어떤 삶을 사셨는지 계속 찾아봤거든요. 대표님은 정말로 제 워너비세요!”
이런 소리 들으려고 제안한 건 아닌데, 참.
“응? 워너비이??”
이건 또 뭔 소린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회의실 문 앞에는 직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손에는 각자 묵직하게 생긴 봉투들을 든 채로.
나와 김준이 쳐다보자.
그들은 변명 아닌 변명을 다급히 시작했다.
“아, 대표님! 들으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혼자 샌드위치 드시면 쓸쓸하실 거 같아서 같이 먹으려고 포장해온 건데······.”
마지막은 나경이 장식했다.
“그리고 회의실에 세팅해 놓은 다음에 대표님 부르려고······. 근데 저분은 누구세요?”
그들의 표정은 어딘가 오묘했다.
점심시간에 밥 먹으러 나갈 시간도 없다던 대표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이상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김준이 씩씩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김준입니다!”
“아아?! 김준 씨? 일찍 오셨네요??”
홍보팀장이 맨 뒤에서 떡볶이를 들고 나타났다.
“네.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대표님이 여기서 기다리라고······.”
그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떡볶이를 들어 보였다.
“그런데 식사는 하셨어요?”
김준이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고.
우리는 회의실에 둘러앉아 밥부터 먹었다.
그래. 다 먹자고 하는 일이다.
그날 저녁.
나는 사업 2팀 팀장을 불러 김준의 채용 의사를 밝혔다.
“사업 2팀 사원으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올해 축제 준비 거의 끝나긴 했는데 그래도 다른 업무 배우다가 올해 말부터 내년 축제 준비에 본격적으로 투입할 수 있도록요.”
SNS 스타였으니 홍보 쪽에 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나.
나는 그보다 그의 좀비 열정을 더 높이 샀다.
어차피 사업팀은 홍보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으니 협업도 가능할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는 꾸벅 인사한 뒤 나갔고.
퇴근을 위해 대표실 자리에 앉아 업무를 마무리하려는데 누군가 문을 다급하게 두드렸다.
똑똑-!
“들어오세요.”
그러자 문이 벌컥 열렸다.
“대표님!”
문을 연 이는 방금 전 나간 사업 2팀 팀장.
얼굴을 보니 필히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다.
허허, 이놈의 회사는 하루라도 일이 안 생기면 어디가 덧나기라도 하는 건가.
“예. 무슨 일 있습니까?”
“방금 에이든 브라운 소속사에서 사무실로 전화가 왔습니다.”
에이든 브라운.
좀비 탈출을 위해 내한까지 불사하겠다는 팝가수.
그는 SNS에 좀비 탈출 이야기를 몇 번 더 올리긴 했으나 우리에게 직접 연락해 온 건 처음이었다.
“뭐라고 왔습니까?”
“그게, 축하 무대를 하고 싶다는데요??”
아니, 진짜 내한을 오겠다고?
그것도 뭐, 개인 콘서트도 아닌.
좀비 축제 축하 무대를 하러??
에이든 브라운 팬들이 들으면 팔짝 뛸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