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독보다 영화사 대표님-123화 (123/140)

#123화. 돈은 돈을 부른다

-다음엔 내가 한국으로 놀러 갈게.

함자는 귀국하는 우리를 공항까지 따라와 직접 마중했다.

-그래. 한국에서 보자.

그리고 우리는 당연히 돌아가는 길에도 전세기를 탔다.

나경이 돌아오는 전세기에서 제공된 베개 촉감이 너무 좋다며 연신 비비적거리자 승무원이 하나 주었고.

비행기가 착륙하자 모두의 얼굴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여행인지 출장인지 헷갈리던 두바이 일정이 끝나고.

출근하자 처리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해야 할 일들을 급한 것부터 차근히 마치자 연말이 되었고, 회귀 후 7년째 새해가 밝았다.

생각해보면 두 번째 인생의 시간은 정말로 빨리, 바쁘게도 지나갔다.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그 속도가 느려지진 않았다.

합병 후 처음 맞는 새해였기에 전체 직원들과 대규모 신년회도 했고.

여느 회사가 다 그렇듯 이리저리 참여할 행사가 많았다.

또 한 가지 큰 이슈는 시공이 끝나 오픈한 미사리 자동차 극장이었다.

자동차 극장은 어차피 국내에 몇 없어 알아서들 잘 찾아온다.

오픈한 지 며칠 되지 않았으나 벌써 알음알음 찾아오는 관객의 수가 꽤 됐었다.

대극장까지 오픈하면 그 옆에 자리한 자동차 극장은 자연스레 홍보되기도 할 테고.

관리인까지 고용하자 회사 쪽에서 신경 쓸 일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반의 시간이 더 흘러 달력이 넘어가고, 1월 중순이 되었다.

대회의실.

커다란 테이블 양쪽으론 직원들이 주르륵 앉아 있었고.

나는 프로젝터가 비추는 스크린이 가장 잘 보이는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주)아라비안의 전 팀장급들이 모인 상반기 전략 회의가 있는 날.

서로 근무 장소가 다른 아라비안필름과 화분 엔터 직원들이 유일하게 마주하는 날이기도 하다.

나는 최근에만 해도 화분 엔터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이제 나는 회사를 먼발치에서 볼 때가 온 것 같아요. 지금은 연륜 있고, 나이 많은 저 같은 사람보다는 젊은 CEO가 더 먹히는 때 아닙니까. 그리고 이쪽이 직원들에게도 덜 혼란스러울 겁니다.

양상철의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됐다.

조직이 견고해지려면 믿고, 따라야 할 우두머리가 둘로 나뉘는 것보다는 하나인 편이 훨씬 나을 테니까.

그러면서 그는 말을 덧붙였다.

-아, 그렇다고 제가 일을 아예 안 한다는 건 아닙니다. 엔터 쪽 사업은 쭉 도맡아 할 생각이에요.

쉽게 말해 양상철은 내가 우리 회사의 얼굴이 되어 주길 원했다.

그래서 공식 선상에선 무조건 나를 앞세웠다.

이런 내부 회의조차도.

“지금부터 아라비안 상반기 경영 전략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을 기점으로 회의가 시작됐다.

먼저 매니지먼트 본부에서 매니지먼트 1, 2, 3팀, 홍보팀, 영업팀장의 발표가 이어졌고.

나는 경청했다.

아직 엔터 쪽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것이 아니었으나 요즘 양상철과 이틀에 한 번은 만나 속성과외를 받는 중이다.

양상철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는 해도 내가 (주)아라비안의 진정한 CEO가 되려면 알아야 했다.

그래도 최근 들은 게 있어 대충 이들이 상반기에 뭘 계획하고 있고, 그 계획을 왜 행해야 하며 무슨 이득으로 올 것인가가 머릿속으로 흐릿하게는 그려졌다.

하반기 회의에는 더욱 뚜렷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화분 엔터 쪽 직원들의 발표가 모두 끝나고, 다음으론 아라비안필름 직원들 차례였다.

우리가 올해부터 중요하게 추진할 사업의 포인트는 두바이를 다녀오면서부터 확실한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두바이에서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날.

함자는 우리가 올해부터 추진할 두 가지 대형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로 했다.

-얼마가 필요하든 말만 해!

든든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말보다 더 든든한 말을 건넸다.

-내 친구인 신바드를 믿는다기보단 인간 신바드를 믿어. 지금까지 봐온 신바드는 실패할 사람이 아니거든. 너는 분명 해내고 말 거야!

한국에 와서는 곧바로 직원들에게 내 계획을 밝혔고.

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에, 그 돈을 정말 투자받기로 하신 거예요?

-테마파크라니, 대표님이 미사리 부지를 구매하신 게 이제야 이해가 가요!

-근데 진짜 재밌겠다! 저 놀이공원 환장하는데! 소원이 전 세계 테마파크 도장 깨기예요!

이렇듯 프로젝트에 흥미를 보이기도 했다.

예정우는 그들 중 유독 근심 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둘 다 만만치 않겠는데······.

확실히 극장 프랜차이즈 출범과 테마파크는 둘 다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쉬운 일만 해서 사업을 번창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일은 판을 키워야 그만큼 커지는 법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간 사업팀장이 마이크 앞에 섰다.

“사업팀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테마파크 프로젝트는 올해 상반기부터 시작될 예정이며-”

테마파크 프로젝트는 예정우가 있는 사업팀에서 주관하기로 했다.

그래서 올해 공채 인원도 최다로 충원할 예정이다.

사업팀장은 프로젝트의 대략적인 기간과 다른 테마파크와 비교해 얼마의 예산이 필요할지 등등을 계획서로 만들어 우리에게 설명했다.

“미사리 부지 5만 평에 건설되어 기획부터 설계까지 약 2년 반, 공사 기간 5년, 개장 전 시범 점검 기간 1년까지 총 8년 반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저희가 수립한 예산은 약 3조 2천억 원입니다.”

그 수치만 들어도 어마어마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테마파크는 개장 후 연간 약 1,200만 명의 입장객을 예상하며 이 수치는 도쿄, 파리, 플로리다 등의 유명 테마파크 입장객 수를 웃도는 수치입니다. 이 수치를 기록한다면 운영 첫해 손익분기점을 넘겨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업팀은 3조가 넘는 어마어마한 투자금을 단 1년 만에 벌어들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예상이긴 했으나 예상이란 건 원래 통계를 기반으로 한다.

그 말은 즉 이루어질 수 없는 터무니없는 말이 아니라는 거다.

하이 리스크 없는 하이 리턴은 없고.

돈은 돈을 부른다.

나는 깔끔한 발표를 마친 사업팀장에서 말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지금은 테마파크 디자이너부터 섭외하는 게 우선일 것 같으니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써주세요.”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테마파크의 구상이었다.

우리 영화의 스토리를 놀이기구에 얼마나 잘 녹여 내느냐.

그 방법으론 별것 없었고.

예산을 많이 쓰더라도 실력 있는 전문 디자이너를 섭외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가 자리로 돌아가자 다음엔 나경이 앞으로 나갔다.

“기획 1팀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나경과 이 과장이 팀장으로 있는 기획 1, 2팀은 올해부터 영화 기획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해였기에 나는 오늘을 굉장히 기대했다.

두 팀이 과연 어떤 영화를 가지고 왔을 것인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경은 스크린에 기획 1팀이 밤새워 만든 기획서를 띄웠다.

그곳에 적힌 영화의 이름은 <각성 신>.

저 영화의 운명은 오늘 나경에게 달렸다.

흥행하지 못할 영화가 기획 단계에서 엎어지는 일은 흔하고도 당연하다.

이 발표에 따라 저 <각성 신>을 제작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시나리오를 찾아 헤매어야 하는가.

둘 중 하나였다.

“먼저 <각성 신>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각성 신>에서의 지구는 우주에서 온 빌런에 의해 갑작스러운 멸망 위기를 겪게 됩니다. 그때 11인의 현대인이 과거 동양의 신들이 가졌던 초능력을 부여받게 되고, 빌런을 처치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응? 잠깐만. 이거 내용이······.

나는 그녀가 잠시 숨을 고르는 타이밍에 물었다.

“그럼 한국형 히어로 물이라는 겁니까?”

나경이 밝게 답했다.

“네. 맞습니다. <각성 신>은 지금까지 나온 서양의 히어로와는 다르게 동양적인 매력이 물씬 묻어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형 히어로라.

한번 만들어 볼 수 있겠다.

“시나리오 오늘 올려주세요. 읽어보고 괜찮으면 바로 추진합시다. 최대한 빠르게.”

내 말에 나경이 동그란 눈으로 목을 쭉 뺐다.

“네? 오늘요?”

아마도 이렇게 빠른 답변을 받을 줄 몰랐나 보다.

“예. 회의 끝나는 대로요.”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났으나.

“어, 아.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왜 이 작품을 저희가 선정했는지-”

흔들리는 눈으로도 발표를 이어나갔다.

<각성 신>은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었다.

길었던 회의가 끝나고, 나는 곧바로 대표실로 향해 나경이 들고 온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했다.

다 읽은 소감은 이랬다.

역시 그녀의 시나리오 찾는 눈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고.

테마파크를 위해서라도 우리 고유의 콘텐츠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상황이었다.

외국의 대형 영화사들이 다른 영화사를 공격적으로 인수하는 것엔 이유가 다 있었다.

가까운 미래에 영화판은 고유 콘텐츠를 누가 얼마나 더 많이 가지고 있느냐의 싸움이 된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아직 체감하지 못하지만, 미래를 직접 살아본 나에겐 뼈저린 현실이었다.

그러니 우리도 그 싸움에 대비할 방책이 필요했다.

많이 개발하고, 우리가 먼저 가져오고.

이 <각성 신>은 그 싸움에서 큰 방패 역할을 해줄 작품이었다.

회귀 전 본 적 없는 작품이었으나 이 시나리오는 우리처럼 도전하지 않으면 영화로 만들 수 없는 작품이었다.

내가 살았던 세상보다 더 미래에 대박 날 작품이었을 수도 있고.

나는 나경에서 진행하자는 톡을 남긴 뒤 퇴근할 준비를 했다.

오늘도 야근할 생각은 없었는데 벌써 시간이 9시다.

어렸을 때만 해도 ‘대표님’이라고 하면 퇴근 정도는 마음대로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다.

회귀 전과 현생은 대부분 달랐지만, 이것만은 같았다.

역시 대표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다는 것.

외투를 걸쳐 입고, 대표실을 나오자 텅텅 빈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직원들은 내가 그들의 야근을 질색하며 싫어하는 걸 잘 알기에 다들 먼저 퇴근한다.

언젠가 예정우는 나는 하면서 왜 자신들은 야근의 자유(?)도 없냐고 따진 적이 있었으나 절대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사람이 쉴 땐 쉬어야지.

그렇게 사무실을 나서려는데.

지잉-.

지잉-.

핸드폰이 울렸다.

이 과장이다.

오늘 회의에서 기획 2팀이 발표한 영화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어 다른 시나리오를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다.

이 과장을 정말 좋아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에 또 잘하면 되지.

그런데 그의 전화가 밤 10시에?

혹시 근처 포차에서 혼자 술이라도 달리다가 내게 서운했다는 소리라도 하려고 전화한 것은 아니겠지.

“여보세요?”

-대표님! 늦은 시간에 정말 죄송합니다!

다행히 그의 혀는 꼬부라지지 않았다.

“괜찮아요. 무슨 일입니까?”

-그게 미국에서 메일 하나가 도착했는데, 이건 바로 보고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갑자기 미국?

“무슨 메일인데요?”

-아카데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처단자>가 작품상 후보에 올랐대요!

순간 너무 놀라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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