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독보다 영화사 대표님-114화 (114/140)

#114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

『아라비안필름. 화제의 기업 화분 엔터테인먼트와 인수합병』

『우회 상장 소식에 화분 엔터테인먼트 주가 급등』

『(주)아라비안 기업으로 새 출발 하는 화분과 아라비안필름』

『합병 소식에 화분 주주 사이엔 불안감도 맴돌아』

『아라비안필름 신바드 대표. “합병하더라도 화분 엔터 운영은 지금과 같을 것”』

그날 양상철은 내 제안을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합시다. 이렇게 성장한 것도 다 신 대표 덕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애들을 위해서라도 회사를 지키겠습니다. 건우는 화분이 자기 집이라는데 집주인이 집을 못 지켜서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화분 엔터와 아라비안필름의 합병이 성사되었고.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하기 전 아라비안필름은 화분 엔터의 지분을 최대한 늘렸다.

그 결과 양상철과 화분 엔터 임직원, 소속 연예인들, 아라비안필름까지의 합산 지분은 52.1%를 넘길 수 있었다.

이렇듯 기본적인 준비가 끝나자마자 합병 소식을 대대적으로 매스컴에 알렸다.

인수합병이 되면 자연스럽게 아라비안필름이 우회 상장하는 것이었기에 대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오, 의외네? 화분이랑 아라비안필름?]

[최근 제일 잘나가는 둘이 합병을 한다고? 이건 못 참지! 총알 준비합니다!]

[근데 회사 이름이 (주)아라비안인 거 보니 아라비안필름이 주도하는 건가 본데요?]

[신바드 대표 나이가 아직 꽤 어리던데. 사업 수완이 좋은가 보네.]

[아라비안필름 설립 후 성장세만 봐도 어마어마하죠. 한국 사람한테 천만 영화 우습게 만든 사람이니까요.]

[오케이! 보니까 앞으로 웬만해선 망할 일 없겠군. 담가봅니다!]

사람들은 여러 반응을 보였고.

인수합병 소식에 깜짝 놀라면서도 기대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서류 절차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약 6개월 뒤쯤에는 완료할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쯤 배인규는 자신들의 계획이 틀어진 걸 알고 열불이 터지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턴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꼭 필요할 때 열어볼 복주머니 하나 정도는 만들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는 메일함으로 들어가 귀한 친구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함자. 잘 지내니?

여긴 이제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이란다. 두바이는 날씨가 어때?]

이렇게 시작하는 간단한 메일을 한 통 보낸 뒤 시간은 금세 2주가 흘렀고.

다행히도 배인규 쪽에서는 별다른 반응조차 없었다.

그들도 역시 뭔가를 준비하는 중이겠지.

그러나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저 내 일을 묵묵히 하면 될 뿐이다.

*

“와, 무슨 줄이 이렇게 길어요??”

신서영은 입구부터 꽤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놀랐다.

“그러게요! 이렇게까지 많이 올 줄은 몰랐는데?!”

그 옆에 있던 차 PD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놀라길래 내가 답했다.

“오픈 빨도 있긴 하죠.”

오늘은 미사리에서 준비 중이던 <왕국 : 역병의 시작> 오픈 세트장이 문을 여는 날이다.

주말에 맞춰 개장한 덕분인지 가족, 커플 단위의 사람들이 많았다,

드라마를 보고 온 팬들의 방문이 많아서 오전부터 지금까지 기념품 매장의 매출도 꽤 짭짤하다는 보고를 받았다.

“들어가시죠.”

신서영과 차 PD는 <왕국 : 역병의 시작>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만들어왔던 사람들이기에 구경 온 관람객들을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어 데리고 온 것이다.

우리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뒷문으로 이동했다.

“오오. 정말로 관계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드는데요?!”

어째 신서영은 자신이 이 드라마의 수장임에도 줄을 서지 않고, 뒷문으로 들어가는 걸 더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간 우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을 전차가 있는 거리로 향했다.

걸으면서 신서영의 안색이 조금 이상해 살폈는데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진 모습이었다.

“감독님. 얼굴이 더 하얘지셨네요?”

최근 <왕국 : 시간의 비밀> 콘티 작업 때문에 사무실에만 콕 박혀 있던 탓이 분명하다.

“가끔은 밖에 나가서 햇빛도 좀 쐬고 그러세요. 건강 생각하셔야죠.”

내 말에 그녀는 창피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려고 기어나간 적이 있긴 있었어요. 하하. 대표님 말씀 새겨들을게요.”

이렇게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전차가 있는 곳에 도착했고.

그곳은 즐거워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모습이었다.

“와! 이거 움직인다아!”

아마 연령 제한으로 드라마는 보지 못했을 어린아이부터.

“대박! 나 여기서 사진 좀 찍어줘! 자기야!”

남자친구에게 사진을 부탁하는 여자도.

“진짜 여기서 촬영했다더니, 너무 실감 난다. 그렇지?”

아이들을 위해 주말을 반납했을 젊은 부부까지.

모두가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문득 처음 영화를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다.

그래. 맞다.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 영화를 시작했었지.

그 광경을 본 신서영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화창한 얼굴로 말했다.

“근데 또 이렇게나 사랑해주시는데 제가 어떻게 게으름을 피울 수가 있겠어요?”

그날 저녁.

나는 신서영과 차 PD를 보내고, 미사리 부지가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 올라가 그곳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황폐하던 그 땅은 하나둘 채워지는 중이었고.

오픈 세트장이 1만 2천 평이었으니 10만 평의 땅은 아직도 풍족하게 남아있었다.

이제 다음엔 이곳을 어떻게 채워볼까나.

당연히 이에 대한 고민은 이미 끝난 상태다.

금현석처럼 취미로 쓴 글이 소설로 탄생하기도, 만화로 재탄생하기도 하며.

그 재밌는 글은 시나리오가 되어 영화,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한다.

또한 그 흥행작들은 뮤지컬과 연극으로 다시 탄생할 때도 있다.

그만큼 이 모든 계통은 이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는 눈 앞에 펼쳐진 이곳에 그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한 곳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집약적으로 모여있다면 얼마나 편리하겠는가.

그래서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지성미 이사]

-여보세요? 신바드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그녀는 밝은 목소리로 내 전화를 받았고.

“그러네요. 자주 연락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나도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뭘요. 바쁘신 거 다 아는데요. 그나저나 그렇게 바쁘신 대도 전화를 주신 건······.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무슨 일이야 항상 많다.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아주 직접적으로요.”

*

“어서 오세요.”

지성미가 환하게 웃으며 대표실로 들어왔다.

“축하드립니다. 회사 번창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매일 듣고 있어요. 봉수가 아무래도 신 대표님이 팬이 된 것 같더라고요.”

“제가 인복 하나는 타고난 것 같습니다. 앉으시죠.”

그녀를 소파에 앉히고, 직원에게 차를 가져다 달라 말한 뒤 나도 맞은편에 앉았다.

“사실 전화 받고, 너무 놀라서 최대한 빨리 만나자고 말씀드린 거예요.”

이틀 전 나는 지성미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고, 그녀는 곧바로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뜻을 전해왔다.

“그럼요. 놀라실 만하죠. 제가 너무 갑작스러웠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갑작스러운 걸 떠나서 사실 이 분야에 돈을 투자하시려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돈은 투자해야 돌아옵니다. 어떤 곳에 투자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그거야 그렇지만······. 사실 영화 제작사에서 뮤지컬과 연극 사업을 하신다는 게 이해가 잘 가지 않거든요.”

그렇다.

나는 그녀에게 뮤지컬과 연극 사업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간단해요. 저는 사업가입니다. 단순히 돈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3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좋습니다. 그럼 어디서 어떤 사업을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미사리에 회사 명의 부지가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 뮤지컬과 연극 등 여러 공연을 올릴 수 있는 종합 극장을 만들고 싶어요.”

“종합 극장이요?”

“예. 그런데 실행하려면 이 분야 전문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좌석의 설계, 음향, 인테리어 등등 세밀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또 이 대극장이 생겼을 때 총괄적으로 맡아주실 분도 필요하고요.”

‘종합 극장’ 소리엔 놀라던 그녀가 금세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확실히 그렇긴 하죠······.”

“저는 그 자리에 지 이사님만 한 분이 없다고 판단해 연락을 드린 겁니다.”

그녀는 현재 은동아트센터 총괄이사직을 맡고 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임기가 2개월이면 끝난다는 것을.

당연히 지성미는 내 제안에 아주 솔깃할 것이다.

아마도 총괄이사직은 그녀가 원한다면 무리 없이 연장될 테지만.

방금 내가 말한 극장의 규모는 아트센터보다 훨씬 클 것이고.

설계부터 참여해 자신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깊게 관여할 수 있었다.

또 그곳을 총괄할 수 있으니 사실 이 수락은 득과 실을 별로 따져볼 것도 없었다.

대부분이 득이었기에.

“임기가 올해 끝나기는 하는데······.”

지성미는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안정적인 현재를 택할 것인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모험해 볼 것인가.

그러나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분명 후자를 택할 것이라는걸.

왜냐.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쪽 계통 사람들의 특징이다.

새로운 일 등 모험하는 것에 환장한다.

물론 나도 그런 경향이 심하고.

“이건 고민을 오래 해본다고 해서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네요.”

역시 그녀는.

“할게요. 하겠습니다.”

예상대로 내 부류였다.

지성미와의 미팅을 마친 후 나는 예정우를 불렀다.

“부르셨어요.”

“예. 대극장 건은 지성미 이사님이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안용덕 팀장에게 그대로 전하면 될 것 같아요.”

나는 지성미와 만나기 전.

예정우와 안용덕에게 내 계획을 전달했다.

이제 지성미의 오케이 사인까지 떨어졌으니 본격적인 설계부터 시작할 것이다.

“오, 정말요? 그럼 준비 시작하겠습니다.”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그 물음에 답하려는데 예정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최근 일이 많아서인지 짙어진 다크서클과 퀭한 얼굴.

대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 많이 바쁘시죠?”

예정우는 애써 웃어 보였다.

“그렇죠. 하하. 그런데 또 바쁠 때가 가장 좋은 때 아니겠습니까!”

예정우가 이렇게 생각해 준다니 다행이다.

이제부터 조금 더 많이 바쁠 예정이었으니까.

“그럼 안용덕 팀장한테 저희 미사리에 하나 더 추가할 거라고 전해주실래요?”

“추가요? 뭘요??”

“자동차 극장이요!”

“아? 아······. 자동차 극장이요. 하하하.”

그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왔다.

“예, 또 영화를 자동차 극장에서 보는 맛은 완전히 다르지 않습니까.”

“그, 그렇긴 하죠. 하하. 알겠습니다. 그래도 자동차 극장은 주차장이랑 스크린 설비만 하면 되니깐요. 하하하!”

예정우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는 걸 보니 조만간 소고기 회식이라도 해야겠다.

음, 그리고······.

어차피 회식을 할 거라면 이것도 말해도 되겠지.

“저희 7, 8월에 행사를 하나 주최했으면 좋겠는데요. 이사님.”

웃는 얼굴엔 침 못 뱉는다.

말이 끝나자마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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