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독보다 영화사 대표님-108화 (108/140)

#108화. 한국인 최초 타이틀

『‘안전지대’, 영화 ‘기적’ 표절 논란으로 손배소 당해』

『이주호 감독, ‘안전지대’ 표절설 전면 부인(공식 입장)』

『새해부터 영화계 날벼락! 영화 ‘안전지대’ 표절 의혹 불거져』

『‘기적’과 ‘안전지대’의 유사성 전격 비교. 표절로 인정될 것인가?』

『잘 나가던 YJ E&M에 드리우는 어둠. 표절 논란 외에도 빗발치는 소송』

박재익 변호사를 통해 금현석과 아라비안필름은 YJ E&M과 이주호에게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흥행 영화에 표절 소송이란 제법 흔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법원에서는 ‘표절’을 인정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애초에 ‘표절’과 ‘창작’을 정확히 구별하는 게 쉽지 않기도 하고.

그런데 ‘기적’과 ‘안전지대’의 표절 논란은 여러 사건 사고가 많은 영화판에서도 이례적이었다.

보통은 원작자가 영화의 저작권을 주장하고,

손해배상과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줄거리를 가진 두 영화가 같은 시기에 나란히 개봉까지 했으니 대중의 비교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당연히 연일 가십거리로 이어졌고, 법원은 우리의 소송을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내 YJ E&M 언젠가는 터질 줄 알았다. 여기 대기업치고 정말 주먹구구식으로 일합니다. 회장 인성이 쓰레기!]

[감독 인성이 더 쓰레기입니다! 극장에서 개매너길래 뭐 하는 놈인가 했는데 꼴의 감독이었네요?!]

[물론 중립 기어 넣어야겠지만, 이번 건은 좀 많이 싸하네. 사실이면 YJ E&M한테 실망이 클 것 같습니다.]

[여기 현장 분위기도 개똥망이었습니다! 지원 나갔다가 다시는 알바도 안 나간 현장!!]

[사람을 개돼지로 보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이제라도 터져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세는 확실히 우리 쪽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같은 시각.

YJ E&M.

“정기자! 정말 이럴 거야?! 기사 한 줄 내주는 게 그렇게 어렵냐고!”

새해를 맞이했으나 YJ E&M 직원들은 덕담은커녕 오늘도 불이 나는 전 부서의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만 했다.

“아니라니까요? 법원에서 판단할 일입니다!”

“표절 아닙니다! 자꾸 이렇게 전화하시면 저희도 가만히는 안 있습니다!”

“작가님. 계약 위반이 아니라고요. 예예. 영화화를 진행하더라도 이번 건은 잘 넘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명 감독님! 팀원들 고소 취하 좀 부탁드릴게요! 예?!”

그리고······.

그들의 전화 한 통, 한 통이 쌓일 때마다 YJ E&M의 기업 가치는 50원, 100원, 200원.

그렇게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

“우와아! 고생하셨습니다! 촬영 감독님!”

“축하드립니다! 고 감독님! 아니지! 고 대표님!!”

<처단자>의 촬영이 모두 끝난 날.

현장에는 작은 파티가 있었다.

고난을 함께 했던 현장 스태프들은 고덕현의 마지막 현장을 꽃다발과 케이크로 축하했고.

언제나 현장에서 독불장군이었던 그 눈시울은 살짝 붉어졌다.

“고생 많으셨어요.”

고진주가 조심히 다가와 아버지에게 직접 준비한 꽃다발을 건네자 그의 눈은 더욱 벌게졌다.

곧 쏟아질 거 같던 눈물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그는 모두에게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다 자신 때문에 기뻐야 할 크랭크업 분위기가 영 이상해진 걸 느꼈는지 목소리가 밝게 바뀌었다.

“현장에 가끔 들릴 거니까 아예 보내는 것처럼 하지 맙시다! 모른 척도 하지 마시고! 그리고 이제 장비 대여하러 오셔야죠. 다들?”

그러자 옆에 있던 임윤서가 한마디 거들었다.

“어머? 고 감독님 벌써 홍보 시작하시는 거예요?! 사업은 처음이라고 걱정 많이 하셔놓고는!”

“그럼요! 누가 그럽디다! 사업에는 홍보가 제일이라고! 이제 나는 촬영 감독 고덕현이가 아니라 대표 아닙니까?!”

고덕현의 능청스러운 표정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빵 터졌다.

사업엔 홍보가 가장 중요하다.

라고 흘리듯 말한 사람은 나다.

“자자! 여기서 이러지들 마시고, 다들 뒤풀이 장소 가서 이야기 나누시죠?”

내 말에 모두의 정리 속도는 급속히 빨라졌고.

마지막으로 제작팀이 현장을 확인하고 나오면서 <처단자>의 촬영은 정말로 모두 끝이 났다.

고난도 액션으로 초반에 걱정이 많았던 <처단자>는 다행히도 작은 사고조차 없었다.

며칠 후.

“대표님. 요새 진주 사무실에도 안 나옵니까?”

촬영 감독이 아닌 사업 파트너로서 다시 본 고덕현은 오자마자 딸의 행방부터 물었다.

“예. <처단자> 본격적으로 편집 시작하셔서 편집실로 출퇴근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아니, 편집실에 라꾸라꾸 하나 사놓고, 잔다더라고요? 출퇴근 시간도 아깝다면서요. 어휴, 고집은 누구 닮아서 또 그렇게 쎄던지.”

순간 ‘아버지요.’라고 할 뻔했다.

그만큼 둘은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똑 닮았다.

요 며칠 집에도 안 들어갔다는 고진주의 행동은 너무나도 고덕현스러웠다.

“<처단자>에 대한 애착이 강하시지 않습니까. 청불이라 괜히 관객 수 안 나올까 걱정이 많으시더라고요.”

<처단자>는 아라비안필름의 첫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다.

그러니 고진주는 그에 대한 부담감도 느꼈을 것이다.

고덕현은 미소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에휴. 뭐, 알아서 잘하겠죠. 그나저나 시공 완료했다고 들었습니다.”

“예. 이제 장비만 넣으면 될 것 같습니다.”

<처단자>가 딱 끝날 무렵.

남양주의 장비 렌탈샵 시공도 끝이 났다.

그전부터 사야 할 장비들의 리스트를 고덕현과 함께 정리하긴 했으나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슬슬 물건들 들여놓고, 여기저기 홍보도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최종 리스트 보내드리고 지출은 지연 씨랑 따로 이야기할게요.”

고덕현은 이야기하다 뭔가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아, 맞다. 대표님. 렌탈샵 상호는 생각해보라고 하셔서 해보긴 했는데 영 괜찮은 게 안 떠오르네요?”

그럴 줄 알고, 생각해둔 게 하나 있긴 하다.

“그럼 AB렌탈 어떻습니까? 아라비안에서 따온 건데요.”

“오, 괜찮은데요?! 외우기도 쉽고요!”

“그럼 그렇게 진행하죠.”

그렇게 우리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쯤.

바깥에선 갑작스러운 환호성이 들려왔다.

나는 사무실에서 들리는 환호성이 익숙해 ‘또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고덕현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더니 대표실 문을 다급하게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는 환호성을 비명으로 들은 게 분명하다.

예정우가 슬그머니 와서는 우리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기적>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에다 2개 부문 후보 올랐습니다.”

“에에?! 베를린이요? 초청도 모자라 후보오?!”

깜짝 놀라는 고덕현에 비해 나는 느긋하게 물었다.

“어느 부문입니까?”

예정우가 넉살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황금곰상이랑 은곰상 남우주연상이요.”

“에에에에?!”

고덕현은 마치 인간 사이렌이라도 된 듯 울어댔다.

“황금곰상이라고요?! 진짭니까?!!”

황금곰상.

그 상은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고의 영화에게 시상되는 상이다.

또 지금까지 한국인이 단 한 번도 영예를 얻지 못한 상이기도 하다.

즉, 아라비안필름에서 또 한국인 최초 타이틀을 가져갈 기회기도 했다.

*

한 달 후.

『‘기적’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 최초의 황금곰상 한국인 주인이 탄생할 것인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거장 노흥기. 네티즌들 자랑스러워』

『‘기적’, 영화 ‘안전지대’의 불운에도 황금곰상 후보에 올라』

『표절 논란 ‘안전지대’, 지금이라도 ‘기적’의 발목 잡는 짓 그만하라는 여론 거세』

『‘기적’ 원작자 금현석 씨. 베를린 간다!』

“다들 잘 다녀오세요.”

나는 입국장 앞에 선 사람들을 배웅하는 중이었다.

노흥기와 리암.

도건우, 그의 매니저, 스타일리스트.

수상소감 통역을 위한 전해성.

<기적>의 원작자인 금현석.

마켓 판매를 위한 우리 회사 해외팀과 권현미까지.

기자들도 꽤 많이 몰려 우리를 근처에서 찍어대고 있었다.

“오우! 신 대표님도 같이 가면 좋았을 텐데요!”

짙은 선글라스를 낀 리암이었다.

그는 <기적> 촬영이 끝난 후.

자비로 한국에 머물며 전국 여행을 했다.

여행을 거의 끝마쳤을 즈음 마침 영화제에 초청받았고, 참석 후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뜻을 밝혀왔다.

“저는 한국에서 해결할 일이 남아서요. 영광스러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해서 아쉽네요.”

나는 이번엔 한국에 남기로 했다.

표절 사건이 이제 막 물밑으로 올라온 상황이기도 했고, 소송도 한창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YJ E&M 측에서 내가 없을 때 무슨 짓을 할지 몰랐으니 갈 수가 없었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선택을 후회하진 않았다.

아라비안필름에서 받을 상은 아직 무궁무진할 테니깐.

“리암도 고생 많았어요. 덕분에 영화가 정말 잘 나왔습니다.”

리암이 손을 크게 내 저었다.

어느새 한국식 리액션이 몸에 꽤 익었나 보다.

“아휴, 아니에요! 한국 보는 거 너무 좋았고, 또 노 감독님이랑 다른 스태프들이랑 일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다음에 또 작품 있으면 불러줘요.”

그렇게 리암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권현미를 찾았다.

“권 PD님. 먹는 거, 자는 거 전부 아끼지 마시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리고 아라비안필름 대표 자격으로 가는 거니까 현지에서 무슨 급한 일 있으면 PD님 권한으로 다 처리하시고요.”

“네. 도착해서 바로 연락드릴게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람들은 저마다 손을 흔들며 입국장으로 들어갔다.

“신 대표님! 좋은 결과 가지고 올게요!”

도건우가 내게 큰소리로 외치며 손을 흔들자 기자들의 파바밧-! 소리가 빗발쳤다.

그 모습에 무언가가 안 봐도 눈에 선했다.

내일 헤드라인은 벌써 뽑혔네. 뽑혔어.

이틀 뒤 아라비안 필름 사무실.

현재 시각 새벽 4시 41분.

나경은 경사스러운 날을 그냥 넘길 수 없다며 지원하는 직원에 한 해 사무실에서 생방송을 시청하자는 의견을 내왔다.

나는 어느 직원이 그런 걸 참여하려나 싶었는데.

수상하지 못하면 1일 휴무.

상을 하나라도 받으면 2일 휴무.

2관왕 하면 3일 휴무.

라는 예정우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자 전 직원이 모두 나와 응원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황금곰상에는 노흥기 감독의 <기적>! 축하드립니다!

TV 속에 비추던 영광스러운 그 자리에선 익숙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와! 어떻게 해! 진짜로 받았어요!”

“미쳤나 봐! 진짜 <기적> 부른 거 맞죠?!”

“노 감독님 우시는 거 아니에요?! 많이 놀라신 거 같은데?”

“그럼 우리 2관왕 한 거 맞는 거죠? 대박!!”

사실 직전에 남우주연상을 도건우가 받았기에 황금곰상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다.

한 영화에 두 개의 상을 몰아준다는 건 거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화면은 수상소감을 위해 단상에 올라간 노흥기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고.

그 옆은 전해성이 함께하고 있었다.

영어를 곧잘 하는 도건우와 노흥기였으나 그래도 큰 시상식장에서는 긴장해 횡설수설하는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아, 정말로 쟁쟁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수상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전해성이 곧바로 능숙하게 그의 말을 통역했다.

통역이 끝나자 노흥기가 다시 말을 이었다.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 나열하기 힘들 정도네요. 우선-.

다소 긴 수상소감의 시작이었으나 간간이 화면에 비추는 해외 배우, 감독들은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시상식 전 권현미가 보내온 문자를 다시 꺼내 보았다.

절대 노흥기의 수상소감이 길어서 딴짓을 한 건 아니다.

그저 그 문자가 너무 흐뭇하길래 한 번 더 보고 싶었을 뿐.

나를 이다지도 미소 짓게 만든 문자는 이것이었다.

[대표님. <기적> 총 170개국 판매 완료했습니다.]

이번엔 또 얼마나 다디단 꿀 수익이 들어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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