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독보다 영화사 대표님-103화 (103/140)

#103화. 됐어! 지금이야!

<처절한 인생> 개봉 한 달 후.

<망자와 함께 2>가 개봉했다.

언론들은.

『‘처절한 인생’의 무서운 질주. ‘망자와 함께 2’가 잡을까?』

『후속작의 저주. ‘망자와 함께’는 과연 비껴갈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를 뛰어넘어야 하는 영화사. 아라비안필름. 전격 해부!』

등등의 기사로 대중들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일주일 후 스코어로 증명됐다.

『‘망자와 함께 2’ 전작을 뛰어넘는 영상미로 벌써 220만 돌파』

『20, 30대. ‘처절한 인생’과 ‘망자와 함께 2’를 보지 않고서는 이야기 통하지 않아』

『극장가에 부는 새로운 바람. 관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1편을 훌쩍 뛰어넘은 성적이었다.

“감독님. 아직 첫 주긴 해도 저희 영화사 최고 기록입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신서영은 최근 <왕국 : 역병의 시작> 촬영 때문에 얼굴 보기가 몹시 힘들었다.

그런 그녀가 오늘은 휴차라서 사무실로 출근했길래 티타임을 요청했다.

“아직은 얼떨떨해요.”

집과 촬영장만 왔다 갔다 할 테니 실감이 잘 나지 않을 것이다.

“<왕국 : 역병의 시작>은 거의 마무리 단계죠?”

신서영이 살포시 웃었다.

“네. 시작할 때는 안 끝날 것 같더니 그래도 끝이 보이네요.”

“뭐든 끝은 나더라고요. 아, 그리고 컴플릭스 개봉은 국내보단 전 세계적인 반응이 클 겁니다. 더 실감하기 힘드실 수도 있어요.”

“지금도 신기한데 그땐 더 신기할 것 같아요. 시즌 2도 틈틈이 집필하고 있는데 시간이 확실히 부족하네요. 아무래도 촬영 끝나면 본격적으로 틀어박혀서 글만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쉬셔도 됩니다.”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하루라도 빨리 보답해야죠.”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사랑해주는 대중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들에게 항상 보답하길 원했는데.

아마도 그 보답은 하루라도 빠른 차기작 개봉이었나 보다.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일 중독이 확실하다.

“알겠습니다. 감독님은 집필에만 집중해주세요. 다른 건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신서영은 방에 들어온 뒤로 가장 환하게 웃었다.

“에이, 그런 건 이제 말씀 안 하셔도 잘 알죠. 아라비안필름에서 한 번이라도 일한 사람은 다른 데서 일 못 하는 거 모르세요? 여기처럼 작품이랑 사람 생각해 주는 곳도 없다니까요?”

그녀의 말은 회귀 후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온 내 두 번째 인생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

“허억. 허억.”

문을 열고 들어간 체육관에는 임윤서가 숨을 헐떡이며 뛰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유심히 보고 있던 명호식이 나를 발견하고, 얼른 다가왔다.

“오셨어요! 대표님!”

체육관이 워낙 넓어서인지.

그녀가 죽기 살기로 뛰고 있어서인지.

임윤서는 나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예. 근처 볼일이 있어서 온 김에 들렀습니다.”

파주에 있는 ‘한국 액션 스쿨’ 근처에서 볼일이란 전혀 없었다.

혹시나 내 방문이 임윤서와 명호식에게 부담이 될까 봐서 한 말이다.

“그러셨어요? 오신 김에 구경하고 가시죠.”

그의 안내로 잠시 벤치에 앉았다.

“윤서 씨는 어때요? 잘 따라오고 있습니까?”

“기초체력이 부족한 편인데 알고 보니까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무용하셨더라고요. 그래서 유연성이 장난 아니십니다. 금방 따라올 것 같아요.”

임윤서와 계약한 날.

곧바로 그녀를 데리고 ‘한국 액션 스쿨’로 향했다.

<처단자> 촬영이 끝날 때까지 그녀의 액션과 안전을 맡아줄 명호식을 소개했고.

임윤서는 그날부터 일주일에 6일 이상 이곳으로 출근하는 중이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액션영화에서 주연배우는 무조건 대역이 따라붙는다.

그 대역은 무술팀 소속 팀원들이 한 명씩 도맡게 되는데.

특히나 여자 무술팀은 굉장히 귀했다.

다행히도 명호식을 잘 따르던 팀원 중 실력이 굉장한 여성 무술팀원이 있었고.

그녀는 임윤서와 키, 몸태가 비슷했다.

하지만 모든 장면을 대역으로 쓸 수는 없는 법.

얼굴이 보이는 모든 장면에서는 배우가 직접 연기해야 했다.

컷마다 잘라서 편집하더라도 롱테이크로 쭉 이어서 찍어야 하는 액션 장면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 현장에서 수정하는 장면이 무조건 생기기에 갑자기 어떤 장면을 소화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배우도 기본적인 액션 연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소리다.

촬영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명호식은 임윤서를 더 혹독하게 밀어붙였다.

오죽하면 첫날에는 훈련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차를 멈추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갑자기 울렁거림을 호소했기 때문.

물론, 이건 나만 알고 있다.

명호식은 항상 훈련이 끝나면 그날의 성과를 내게 짧게라도 보고했다.

그래서 더욱 그를 데려오길 잘했다는 확신 중이다.

“다행입니다. 안전이 제일 우선이니까요. 윤서 씨도 무술팀원들도 위험할 거 같은 장면은 가감 없이 알려주세요. 제가 감독님이랑 상의하겠습니다.”

무리하다 사고가 나는 것보다 수고스럽고, 돈이 더 들더라도 다른 방법을 구색하는 편이 훨씬 낫다.

배우와 무술팀은 몸이 자산이다.

내가 그들의 자산을 소중히 여겨줘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물론이죠. <처단자>가 한국 영화에서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이 많아서 그렇지. 안전하게 촬영할 수 있습니다. 믿어주세요!”

“당연히 믿습니다.”

명호식은 요즘 믿어달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행동은 아마도······.

내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 같았다.

“오토바이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처단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단언컨대 ‘은서’의 오토바이 액션이었다.

물론 오토바이를 그녀가 직접 타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헬멧을 써서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을 테고.

무엇보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 그게 말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연습 삼아 타보라고 했는데요!”

명호식은 금을 발견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 손뼉을 짝 쳤다.

그 소리에 아직 뜀박질을 멈추지 않고 있던 임윤서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 대표님! 언제 오셨어요?!”

그녀는 반가운 얼굴을 하고선 그대로 방향을 바꿔 벤치로 달려왔다.

명호식은 임윤서가 오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지 하던 말을 이었다.

“글쎄! 윤서 씨가 오토바이에 소질이 있지 뭡니까?! 까놓고 말해서 저희 애들보다 잘 탑니다!”

응? 현직 무술팀보다 오토바이를 잘 탄다는 게 가능한가?

임윤서는 언제 왔는지 우리 앞에 서 있었다.

내가 그녀를 빤히 보고 있자.

“그게 사실 오토바이를 처음 탄 게 아니라서요. 하하.”

멋쩍게 웃으며 변명을 늘어놨다.

명호식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예? 그럼 타보신 적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혹시 다른 작품에서?”

내가 알기로 그건 아니다.

“아니요.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좋아하셔서요. 어렸을 때 좀 배웠어요.”

음, 처음 듣는 이야기다.

“정말요? 완전 조기 교육하신 거네요?! 어쩐지, 코너링이 예술이었습니다! 하여튼 대표님! 오토바이는 아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뭐 어쨌든 그렇다면 또 한시름 놨다.

그런데 임윤서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그보다 파주까지 오셨는데!! 맛집 갑시다! 맛집! 제가 또 소맥을 기가 막히게-!”

“윤서 씨.”

방금까지 같이 발랄하던 명호식은 그녀를 낮게 부르더니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지금 오후 2시 반입니다. 점심은 아까 많이 드시지 않았습니까. 훈련 빠질 생각하지 마시죠. 총기 액션이랑 낙법, 와이어까지 오늘도 할 게 산더미입니다.”

내가 알던 임윤서라면.

여기서 ‘나 안 해!’라던지.

들고 있던 물통을 던져버리던지.

아무 반응 없이 매니저를 불러 가버리던지.

셋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녀는 꿈틀거리는 자아들을 꾹꾹 누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잠시 씩씩대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무술 감독님. 그럼 이제 뭐 하면 돼요······.”

오,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그 임윤서가 저리도 고분고분해지다니.

“저도 업무 있어서 안 됩니다. 윤서 씨. 그 소맥은 촬영 끝나면 꼭 타주세요.”

그렇게 나는 황급히 둘에게 인사한 뒤 뒤돌아 체육관을 나왔다.

안에서는 벌써 기합 소리가 들려온다.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변하기 마련이다.

괜히 웃음이 피식 나왔다.

*

“고생하셨습니다!!”

촬영이 꽤 고됐는지 스태프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했다.

“다들 식사하고 가세요! 오늘 대표님이 소고기 쏘신답니다!!”

권 PD 외침에 스태프들은 환호로 답했다.

“오오! 쏘고기!!”

리암은 어느새 한국 사람이 다 되었다.

“대표님! 당연히 한우로 쏘시는 거겠죠?!”

언젠가 노흥기와 먹었던 한우 맛에 눈을 떠 소고기 부위를 공부까지 한다고 들었다.

“그럼요. 하하. 많이 드세요. 좋은 식당으로 예약했습니다.”

오늘은 <기적>의 크랭크업 날.

<기적> 팀은 유난히도 고생을 많이 했다.

재난 상황이라는 특수한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보통은 2~3명이 오는 특효팀이 어떤 때엔 8명이 떼지어 온 적도 있었으니 말 다 했다.

그만큼 특효팀의 할 일이 많았고.

현장 스태프들의 업무 환경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무리해서라도 맛있는 걸 대접하고 싶었다.

그렇게 찾은 근처 식육식당.

약 100석의 식당은 오늘을 위해 통으로 빌렸다.

리암은 같은 테이블에 있던 나, 노흥기, 도건우, 권 PD에게 가슴을 팡팡 치며 장담했다.

“제가 맛있게 구워드릴 테니까! 아무도 손대지 마세요!”

그는 집게와 가위를 들어 군침을 흘리며 고기 굽기에 전념했다.

뭐, 우리야 편해서 좋다.

“으음, 지금이다!”

그는 숯불의 온도까지 손으로 재더니 얼른 소고기 한 점을 불판 위에 올렸다.

좋은 고기로 달라고 했더니 마블링이 예술이다.

치이이익-.

맛있는 소리를 내가며 불그스름한 고기에선 육즙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 신 대표. 그 소식 들었습니까?”

노흥기가 내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어떤 소식 말입니까?”

“화분 엔터 상장 소식이요! 요즘 소문이 돌던데요?”

양상철은 며칠 전 화분 엔터의 상장 일정이 약 한 달 반 뒤로 잡혔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노흥기가 영화판 마당발이긴 하다만, 소문이 빠르긴 하다.

“그런가요?”

이미 나는 화분 엔터의 비상장주식을 아라비안필름으로 증여받은 상태였다.

받은 주식은 전체 화분 엔터 지분의 17.7%에 가까웠기 때문에 대주주로 분류되어 낸 세금만 20억에 가까웠다.

세금은 상장 후 책정되는 주가에 따라 또 내야 한다고 하니 세금으로만 어마어마한 금액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꼭 지출해야 하는 금액이고.

어차피 화분 엔터는 상장만 하면 따상에 따따상까지 기대할 수 있었으니 괜찮았다.

“이번에 그린 애플이 엄청나게 흥하기도 했고, 건우랑 이안, 윤서 씨도 아라비안필름이랑 같이 작품 하면서 몸값이 훌쩍 뛰었잖아요?”

그러더니 노흥기는 능글맞은 눈빛으로 변했다.

“신 대표가 양 대표랑 아주 친한 걸로 알고 있는데, 맞죠?! 어떻게 신 대표도 화분 엔터 상장하면 좀 담글 겁니까?”

허허. 저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라고 말할 순 없으니 화장실에 가는 척 엉덩이를 들었다.

“뭐, 생각 중입니다. 하하.”

“으음, 그렇군요. 나는 이번에 한 번 질러보렵니다!”

그 사이 리암은 무아지경에 이르러 고기를 굽다가 소리쳤다.

“됐어! 지금이야! 얼른 드셔보세요!”

각자의 앞접시에 고기를 올려주더니 내게 물었다.

“대표님 어디 가요? 지금 먹어야 딱 맛있는데?!”

“화장실이요. 화장실.”

리암의 아쉬운 눈빛을 뒤로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자리를 피한 것이었으나 또 막상 오니 신호가 온다.

볼일을 보고, 손을 씻은 뒤 나오려는데.

화장실 문밖에서 스태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들었어?

-응?

-<안전지대> 결국 사고 났다잖아.

-엥? 거기 말 많더니 또 사고가 났대?

-그냥 사고가 아니라 대형 사고라던데? 사람이 다쳤다더라고.

-뭐? 진짜? 많이 다쳤대?

-입원까지 했다니깐 간단한 부상은 아닌가 봐.

-어쩌다가 그랬대?

-듣기로는 감독이 술이 덜 깨서 왔는지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현장에 왔다더라고. 그러고는 무술팀한테 추락 장면을 와이어도 없이 맨몸으로 뛰어내리라고 했다던데?

-뭐? 미친 거 아니야?!

이주호. 결국은 사고를 치는구나.

사람까지 다쳤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밖에서 이야기하던 스태프 두 명이 들어왔다.

둘은 나를 확인하고, 흠칫 놀란 눈치로 꾸벅 인사했다.

“대표님! 소고기 정말 맛있습니다!”

“예.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 웃어 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어서 와서 자신의 고기를 맛보라는 리암의 손짓에 자리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기적>의 촬영이 끝났고, 이제 개봉도 얼마 남지 않았다.

슬슬 잘못된 작품과 현장을 이끄는 그들을 옥죄어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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