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독보다 영화사 대표님-98화 (98/140)

#98화. 기업 가치는 하늘 높이

[아람 누나 분량 무슨 일임? 진짜 국뽕에 제대로 취한드아!]

[난 얼굴에 취함. 블랙 스튜디오에서 편집할 때 아람만 뽀샵 한 게 분명함. 아니면 설명이 안 됨.]

[천재 해커면서 싸움까지 잘하는 거 실화냐?!]

[포스터 보고, 머리에 브릿지 없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ㅜㅜ 우리나라에서 이런 배우가 나올 줄이야······.]

[아람 해외 반응도 좋아서 시즌 계약 완료했답니다!!]

[아니, 빌보드 1위랑 할리우드 히어로 무비 주연을 동시에 하는 한국인이라니? 이게 진정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맞습니까?]

[그래서 화분 엔터 주식 상장은 언제 합니까? 열렬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람이 연기한 ‘퍼플’은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이들은 문화 애국자라는 새로운 신종어를 만들며 그녀를 추종하기에 이르렀고.

어느새 그린 애플 멤버 모두는 대한민국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영화는 잘 보셨어요?

아람은 <블랙 히어로즈>를 본 날 양상철과 저녁을 먹던 중에 전화가 왔다.

-예. 고생 많으셨겠던데요.

-네. 많이 힘들었는데, 꾹 참았어요. 대표님이 마음 단단히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녀는 말하면서도 멋쩍은지 짧게 웃었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구나.

-예. 눈에 훤히 보였습니다. 저만이 아니고, 모두가 그렇게 느낄 겁니다.

그녀가 타국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나조차도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런 아람이 대견했기에 칭찬해주고 싶었다.

-잘하셨어요.

그런데 아람은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네. 저 이제 연기 꽤 잘해요. 귀국할 때쯤 들어가시는 영화 있으면 출연하고 싶습니다.

월드 스타 반열에 오른 그녀의 출연은 짧더라도 임팩트가 강력할 것이다.

귀국하면 모든 매체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할 터인데 먼저 이런 제안을 해주다니.

당연히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그럼요. 아주 알맞은 배역으로 준비해놓겠습니다.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고.

그날 저녁.

반가운 연락은 또 있었다.

[신바드! 나의 친구! 오랜만에 편지하네!

저번 답장은 짧았지만, 아주 잘 받았어. 하지만 이번엔 조금 길게 해준다면 정말 좋을 것 같군그래!

그나저나 아람의 영화를 봤어?!

역시 신바드는 봤겠지?!

나는 개인 영화관에서 20번도 더 넘게 본 것 같아!

특히 영화는 아람의 등장 씬부터 몰입이 확 되면서-.]

잔뜩 신이 난 함자의 메일이었다.

근데 등장 씬은 첫 장면인데······.

그냥 처음부터 재밌다는 소린가 보다.

짧은 답장에 서운함까지 토로하며 6,000자에 가까운 편지를 보냈으니 이번엔 조금 길게 보내줘야겠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려나.

[함자. 안녕? 나도 당연히 아람의 영화는 봤어. 영화가 정말 재미있더라. 그리고 유심히 봐야 할 건 외계인들의 생김새야. 그들의 기술은 나날이 발전-.]

염려했던 것보다 쓰다 보니 또 할 말이 많았다.

그리고······.

그린 애플로 대한민국이 떠들썩대는 사이.

나도 모르게 화분 엔터의 기업 가치는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

“회, 회장님! 찾으셨습니까!!”

쩌렁한 목소리가 회장실에 울려 퍼졌다.

“귀 안 먹었으니까 조용히 좀 하지.”

YJ E&M 배급팀 강 팀장은 그 중후한 목소리에 바짝 얼어붙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배인규는 그런 강 팀장이 영 못마땅했다.

직원들이 저런 태도를 보이면 꼭 자신이 저승사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놈은 영 떨지도 않고, 여유롭던데.’

그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놈이 생각나서 괜한 강 팀장에게 틱틱댔다.

“이제 좀 앉지. 언제까지 서 있을 참인가.”

“예······.”

강 팀장은 그제야 쭈뼛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배인규는 돌려 말하는 걸 질색했다.

“<안전지대> 표절이 확실한가?”

이번엔 강 팀장의 표정이 정말로 저승사자라도 본 듯한 얼굴로 변했다.

눈은 화등잔만 하게 커져서 입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뻐끔거렸다.

그가 반응하는 태도는.

“표절이 맞구만.”

너무나도 확실한 증거였다.

김 비서에게 직원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이라는 보고를 받고는 설마 했다.

“언제 알았나? 처음부터 알고 시나리오를 올린 건 아니겠지?”

그런 간 큰 직원이 자신 밑에 있을 리 없었다.

강 팀장은 모든 것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안전지대>의 표절 사실은 절대 위에 알릴 수 없었다.

그런 시나리오를 올렸다는 게 알려지면 지금까지 회사에서 쌓아왔던 신망이 모두 바닥칠 것이 분명했고.

자신의 능력 부족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냥 위도 아닌 배인규가 알아버렸다.

강 팀장은 자신의 이야기가 암암리에 소문으로 퍼졌다는 건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원래 당사자 앞에서 하는 건 뒷담화가 아니다.

어쨌든 배인규가 알아버린 이상 거짓말은 의미가 없었다.

“촬영이 시작되고 알았습니다. 시나리오를 처음 발견한 최세준 과장이 알아냈고, 제가 보고할 수 없다고 하자 퇴사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죄를 고한 강 팀장은 두 눈을 꾹 감았다.

이제 다 끝났다.

그런데.

“그래? 그랬구만.”

눈을 뜨자 보이는 배인규의 반응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내가 보기엔 자네가 잘못한 건 없는데? 왜 그렇게 주눅 들어 있나?”

“예?”

강 팀장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순간 혼란스러웠다.

배인규는 자신의 말을 되묻는 강 팀장이 답답했으나 설명을 보충해줬다.

“원작이 무슨 블로그 글이라지?”

“예. 맞습니다.”

표절은 영화판에서 꽤 오랫동안 지속되던 논란 중 하나였다.

원작자의 표절 주장에도 결론 나지 않고,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절로 인정하는 건 대단히 어렵고도 힘들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번 <안전지대>의 원작자는 고작 블로그 운영자다.

그런 자가 언감생심 자신들에게 비벼볼 생각이나 하겠는가.

만에 하나 논란으로 이어져도 상관없었다.

직접 개발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라고 하면 대중들도 그런가 하고 만다.

“난 또 표절이라길래 개봉한 외화라던가 출간된 책이 있는 줄 알았네. 영화가 재밌으면 됐지. 그깟 ‘참고’가 무슨 잘못인가?”

‘표절’은 어느새 그의 입에서 ‘참고’로 바뀌어있었다.

“촬영 잘 끝내고, 하루빨리 개봉이나 하게.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친구가 있으니까 말이야.”

“아, 예! 알겠습니다!”

강 팀장은 습관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으나 뭔가 찝찝했다.

정말 이걸로 다 된 걸까?

배 회장이 뭔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건 아닐까?

배인규는 그런 그의 반응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 그보다 아라비안필름 말이야.”

강 팀장은 살짝 놀라웠다.

아라비안필름은 대기업 회장의 입에서 나오기에 의외인 회사였기 때문이다.

거론한다는 자체가 그 회사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는 건데.

아무리 최근 흥하고 있는 제작사라지만, YJ E&M에 비하면 아라비안필름은 구멍가게에 불과했다.

“이번에 칸에 간다고 하던데 그 제목이 뭐더라.”

역시 배인규는 그저 <처절한 인생> 칸 진출에 관심 있었던 모양이다.

“예. <처절한 인생>입니다.”

“아아, 맞아. 그거. 그런데 그것도 우리 쪽에서 배급하는 거 맞지? 국내 배급. 내가 알기로 지금까지 개봉한 아라비안필름 영화는 모두 우리 쪽에서 한 거로 알고 있는데?”

강 팀장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최근 아라비안필름은 자신들과 손절한 상태이다.

배급팀에서 아무리 사정해도 그들은 떠날 생각을 굳힌 뒤였다.

그것도 경쟁사인 캐리엔터로 갔으니 이건 명백한 배신이었다.

YJ E&M이 그동안 얼마나 잘해줬는데 그렇게 쉽게 떠나버린 건 욕 먹어 마땅한 일이었다.

강 팀장은 이를 배인규에게 알려 이 찝찝한 화살을 자신에게서 아라비안필름으로 돌리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할 것 같았다.

“그게 말입니다. 회장님. 아니, 글쎄 이놈들이 이번에 그 영화 배급 계약을 캐리엔터랑-!”

“뭐라고?!”

강 팀장은 갑작스럽게 떨어진 호통에 딸꾹질까지 목구멍을 쳐댔다.

“어이쿠! 딸꾹!”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강 팀장은 뭔가가 잘못됐음을 깊이 깨달았다.

하지만 방금의 발언으로 배인규의 심기가 제대로 뒤틀려버렸다는 것까진 알지 못했다.

*

마무리 중이던 <처절한 인생>의 후반이 완전히 끝났다.

우리는 국내 개봉을 위한 등급 접수를 진행하기 전에 다 같이 모여 최종본을 확인했다.

-영화 잘 빠졌는데요?

-그러게요. 느와르 분위기 너무 잘 나요!

영화는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우리가 중요하게 본 것은 내용보다.

-대표님이 보시기엔 몇 세가 적당할 것 같습니까?

영화를 어떤 등급으로 접수할 것인가.

이것이었다.

보통 등급을 접수할 때는 영화사에서 생각하는 등급이 뭔지를 정한 뒤 미리 알린다.

그럼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영화사에서 정한 그 등급이 적당한지 판단하는데.

종종 의아한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게 어떻게 15세지?

의문이 드는 영화들은 대부분 영화사에서 15세로 접수했는데 등급위원회에서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사례다.

-15세로 접수하죠?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우선 15세로 넣어보고, 청불 나오면 그렇게 개봉합시다. 캐리엔터에 이야기해서 홍보용 예고편에는 등급심사 중으로 표기하라고 할게요.

<처절한 인생>의 완성본은 총기와 칼 등 무기류가 나오지만, 마약류는 나오지 않아 청불로 넣기도 애매했다.

그렇게 우리는 <처절한 인생>을 15세로 접수했고.

약 10일 뒤 나올 결과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보다 나는 지금 비행기 안이다.

내 옆으로는 허훈, 이안, 정 PD가 주르륵 앉아 있었다.

하도 출장을 많이 가서 이제는 장거리 비행이 꽤 익숙해졌다.

“그런데 저까지 가도 되는 겁니까?”

목소리의 주인공은 비행기 이곳저곳을 살피며 한껏 들뜬 모습의 정 PD.

“당연하죠. PD님이 빠지시면 됩니까.”

이안도 설레는 모습인 건 마찬가지였다.

“칸이라니! 진짜로 칸이라니!”

허훈은 혼자 꿈이라도 꾸고 있는 듯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수다를 떨고, 음식도 먹으며 프랑스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대화에 끼지 않고 있었는데.

출국 전 누군가와의 인상적인 대화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대표님! 드디어! 다 썼습니다! 메일로 보냈으니까 확인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인천공항에서 받은 전화 너머로는 고진주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표님이 힘을 주신 덕분에 넣고 싶은 장면 다 넣었습니다! 혹시 아니다 싶으신 장면은 가감 없이 말씀해 주세요! 잡아주시는 방향으로 수정하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상기를 넘어서 광기로 물드는 듯했다.

-그래요? 기대되는데요?! 그럼 프랑스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그때 기대된다는 말을 너무 섣불리 했던 건 아닐까.

응? 이게 뭐야?

공항에서 미리 다운로드해놓은 시나리오를 노트북으로 정독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신바드의 모험>에 적혀있던 ‘독특한 감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래. 그랬었지. 고진주는 독특한 감성을 가지고 있었지.

이 글은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 여기서 이런 장면을?

또는

그런데 이 장면을 어떻게 찍어야 하지?

예술과 제작자 사이를 계속 넘나들게 만들었다.

그만큼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글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독특한 감성이라도 그렇지.

그녀 머릿속에 담긴 액션은 너무······.

심하잖아.

현실적으로 이런 액션 구현이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드는 그런 시나리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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