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국민 여러분
『청룡의 대이변. 이서아 신인여우상 수상!』
『최연소 신인여우상의 주인공 이서아, 차기작은 무슨 작품?』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대박! 상까지 받은 ‘어울림’ 도대체 무슨 영화인가.』
『수상소감까지도 완벽했던 이서아. 감동적인 영화제였다. 호평』
『시상식 이후 ‘어울림’ 굿즈 판매량 급속도로 증가』
영화제 다음날 이서아의 기사는 쏟아졌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2관왕에는 실패했다.
여우주연상은 다른 성인 배우가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신인여우상 수상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제 청룡 보고 운 사람? 나만 운 거 아니지? ㅜㅜ]
[이서아는 어쩜 그렇게 말도 똑 부러지게 하는지. 키우는 맛이 있겠더라!!]
[진짜 우리나라 배우의 미래임! 여우주연상도 최연소 수상자가 되지 않을까.]
[서아야!! 삼촌이다! 굿즈도 종류별로 싹 다 샀다! 아, 참고로 집에 아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강아지 나라의 금비는 누구일까요?]
[예전에 인터뷰 기사를 본 게 있는데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라고 합니다. 몇 년 전에 죽었고요.]
[세상에······.]
[역시 동물원은 폐지가 답이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반대한다는 건 이로써 증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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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더 화제가 된 것은 이서아의 수상소감 때문이었다.
잠시 회상해보자면 아이는 사뿐사뿐 가볍게 걸어 무대로 올라갔으나 마이크가 너무 높아 까치발을 들어야 했다.
그 모습에 객석에선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고.
옆에 있던 송소리가 얼른 스탠드 마이크를 이서아 키에 맞게 조절해주었다.
그제야 아이의 목소리는 국립극장 곳곳을 메우기 시작했다.
-아아, 감사합니다. 소리 선배님!
자기 딴에는 공식 석상이라고 야무지게 붙이는 선배님 소리가 또랑또랑 울렸다.
송소리도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미소로 화답했다.
-먼저 이런 큰 상을 주신 청룡영화제 관계자분들과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많은 사랑을 주지 않으셨다면 이 상을 받지 못했을 테니깐요.
다음날에야 알게 됐는데 이때 카메라에 잠시 잡힌 한 남배우의 표정이 화제 되기도 했다.
『배우 이병용. 이서아가 너무 귀여워!』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쨌든 이서아는 그 외의 고마운 사람들의 이름을 나열했다.
연출을 맡은 노흥기.
같이 합을 맞췄던 라운이와 동물 친구들.
현장에서 같이 고생한 스태프들.
내 이름도 역시 빼먹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국민 여러분께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자꾸 사용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말은 아이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아 피식 웃음을 주곤 했다.
하지만 아이가 이은 그다음 말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저는 제 친구 ‘현서’와 생각이 같아졌습니다. 촬영할 때 유심히 본 동물원에 갇힌 동물 친구들은 불행해 보였어요. 모두가 이 문제에 같이 화를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강아지 나라에 살고 있을 금비도 분명 행복해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아이는 받은 트로피를 번쩍 들어 보였다.
마치 금비에게 그 상을 바치듯이 말이다.
그렇다 보니 이처럼 기사와 댓글이 폭주 중인 것이다.
스크롤을 쭉쭉 내려 댓글들을 하나하나 정독했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댓글을 발견했다.
[저는 이제부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라비안필름 영화라면 볼랍니다! 제 취향 타율 100%네요!!]
아마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는 게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다.
*
한자로 쓰인 각양각색의 간판들은 생활감을 주기 위한 미술, 소품팀의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고.
한주건설에서 나온 설비팀은 전차의 시범 운행을 준비 중이었다.
1만 2천 평의 드넓은 그곳에는 근대양식 건축물과 기와집, 초가집, 적산가옥까지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어느 곳은 흙길이지만, 어느 곳은 깔끔하게 포장된.
우리 역사 중 가장 드라마틱 한 시대라고 할 수 있는 구한말을 그대로 재현한 곳.
<왕국 : 역병의 시작>의 오픈 세트장이었다.
크랭크인이 약 2주 남은 시점이었기에 현장에는 신서영과 차 PD, 한주건설 안용덕 팀장까지 와 있었다.
모두 막바지 점검을 하고 있던 터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오셨습니까!”
그중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지휘하던 안용덕이 나를 발견했다.
나는 옆에 있던 권현미와 리암에게 잠시 양해를 구했다.
“잠깐 이야기 좀 나누고 와도 되겠습니까? 촬영이 얼마 안 남아서요.”
권현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리암은 정신없이 세트장을 구경하느라 내 이야기를 못 들은 눈치다.
그들은 잠시 두고, 안용덕에게로 향했다.
“고생 많으십니다. 팀장님.”
“이제 끝물이라 괜찮습니다. 이런 건물 짓는 의뢰는 거의 없으니 재밌기도 했고요.”
긍정적인 그는 나를 만난 김에 구조검사 결과와 지금까지의 진행을 설명해줬다.
실제 건축물인 7동 외에도 전체적인 세트장의 구조검사를 모두 완료해 아주 안정적이라는 결과를 받았다고 한다.
촬영이 모두 끝난 뒤 진행할 영업 허가도 착착 준비 중이었다.
“아, 빌딩 리모델링도 거의 끝나갑니다.”
“벌써요? 금방 끝나네요?”
“리모델링 공기야 건물 새로 짓는 거에 비하면 아주 짧아요. 조만간 마무리되기 전에 오셔서 같이 보시죠. 마음에 안 드는 곳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시고요.”
“에이, 안 팀장님이 신경 써주신 곳인데 마음에 안 드는 곳이 있겠습니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오오!! 신바아아드으으!! 대표오오니임!”
요상한 소리가 근처에서 나를 불렀다.
그곳에는 시범 운행 중이던 전차에 탄 리암과 그 옆에서 창피해하는 권현미가 있었다.
“응?”
갑작스러운 모습에 나 혼자 작은 소리로 놀랐던 것인데.
“저분이 <기적> 촬영 감독님이시라면서요?”
말을 건 사람은 차 PD였다.
또 다른 쪽 옆은 어느새 밀려났는지 안용덕 대신 신서영이 차지하고 있었다.
“참 꾸밈이 없는 분이네요. 그나저나 할리우드 촬영 감독님이라니. 저분은 어떻게 섭외하신 거예요?”
리암의 섭외는 권현미의 인맥 덕분에 운 좋게 할 수 있었던 거지만.
“신 대표님이 불가능한 게 어디 있습니까. 감독님.”
나직한 차 PD 목소리에 신서영이 끄덕였다.
“하긴. 우리나라 영화 발전을 위해 이런 세트장을 짓는 분이신데, 그 또한 발로 뛰신 노력 덕분이겠죠.”
그런 거 전혀 아닌데.
내가 조용히 있자 신서영이 풉, 웃으며 권현미를 가리켰다.
“그런데 권 PD님 지금 창피해하시는 거 맞죠?”
권현미는 그리 길지도 않은 전차이건만 리암과 최대한 떨어져 먼 산을 보고 있었다.
“맞는 거 같네요.”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오늘 리암을 이곳에 데리고 온 것은 어쩌다 꺼낸 구한말 세트라는 말 때문이었고.
아주 눈이 초롱초롱해져서는 환장하는 바람에 데리고 온 것이다.
다행히 저렇게도 좋아하네.
아주 많이. 하하.
아직 제대로 된 관광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근심이 밀려왔다.
왠지 지금 권현미 모습이 근접한 미래의 내 모습일 것 같다는 그런 근심.
가는 데마다 저러면 어떡하지.
*
<왕국 : 역병의 시작>이 크랭크인 했다.
그와 함께 회귀 후 5년째 봄도 시작되었다.
그리고 봄에는······.
놀러 갈 곳이 많다.
리암의 리스트에는 총 25곳의 관광지가 적혀있었는데.
3일간 이 모두를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협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진짜 가고 싶은 6곳을 택하라고 했지만, 그는 며칠 동안 연락이 없었다.
아마도 줄이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10곳을 택하면 촬영 중 휴차 때라도 시간을 내어 같이 가주겠다 전했고.
그제야 나는 무리한 다이어트를 한 리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오늘 찾은 곳은 북촌 한옥마을.
그곳에는 노흥기도 함께였다.
현장에서 감독이 가장 소통을 많이 하는 사람은 아마 배우보다 촬영 감독일 것이다.
그래서 촬영 전에 둘이 조금이라도 친해지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고.
노흥기 감독의 시간이 비는 날이 오늘이었다.
우리는 한복까지 정갈하게 차려입은 채로 한옥마을을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신 대표님. 저 좀 찍어줘요!”
리암은 언제부턴가 ‘신 대표님’이라는 호칭으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권현미가 알려줬단다.
“노 감독님! 감독님도 옆에 서보세요. 찍어드릴게요.”
노흥기는 사극에서나 보던 대감이 금방 뛰쳐나온 거 같은 포스로 한복이 정말 잘 어울렸다.
“나는 됐어요. 내가 찍어줄게. 신 대표가 서봐요.”
사진 찍기 싫다는 사람에게 강요하긴 그래서 조용히 리암 옆에 가서 섰다.
노흥기는 아직 리암을 낯설어했다.
젊었을 때 유학까지 다녀온 그였기에 다행히 언어는 잘 통했다.
그저 일로써 만난 외국인 촬영 감독이라 어색해하는 것 같았다.
둘의 공통적인 관심사가 있으면 친해지기에 좋을 것 같은데······.
찰칵-.
찰칵-.
리암은 대여한 한복을 벗고, 다음 장소인 인사동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리암은 카메라를 정말 좋아하나 보네요.”
외국인인 리암을 배려해 오늘만큼은 계속 영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자신에게 한 말임을 눈치챈 리암이 노흥기에게 답했다.
“네. 이 작은 물건으로 세상을 간직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카메라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노흥기가 끄덕였다.
“세상을 간직한다라 시적인 표현이네요.”
인사동에 도착할 때까지도 둘의 심오한 대화는 드문드문 이어졌다.
걱정했던 것보다 말이 잘 통하는 모양이다.
“자, 내리시죠.”
차에서 내린 우리는 거리의 미술관으로 불리는 골목들을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 곳곳마다 골동품상과 고서점, 표구사, 화랑들이 발걸음을 붙잡았다.
가게들은 왜 외국인이 인사동을 그리도 사랑하는지 알 것 같은 한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내뿜고 있었다.
슬쩍 살펴본 리암은 감격까지 한 얼굴이었다.
그러다가.
“오 마이 갓······.”
그는 어떤 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눈을 떼지 못했다.
“리암?”
그곳은 온통 도자기가 진열되어 있던 곳이었는데.
“이, 이렇게 아름다운 그릇이라니! 이건 또 뭔가요? 술병?!”
리암은 내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며 가게 안을 돌아다녔다.
어찌나 요란이던지.
전차에서의 권현미 얼굴이 떠올랐다.
같이 있던 노흥기가 조용하길래 먼저 갔나 싶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아니, 이건! 아무리 봐도 여기 있을 자기가 아닌데!!”
“네?”
놀라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오오! 감독님! 이렇게 아름다운 물건을 볼 줄 아시는 겁니까?!”
한 마리의 파리처럼 노흥기에게 찰싹 붙은 것은 리암이었다.
그 뒤로도 둘 사이엔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이런 풍의 도자기는 고려청자를 계승한-.”
“오오! 그렇다면 이건 뭡니까?!”
도자기 가게 주인까지 노흥기의 설명을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둘의 목소리가 좀 많이 커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럼 뭐 어떤가.
이 또한 영화를 위한 일이었음을.
그때 나의 이 창피함이 전해지기라고 한 듯.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여보세요?”
-대표님. 문제가 좀 생겼는데요.
‘문제’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권현미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어떤 문제 말입니까?”
-당장 두 분 모시고, 사무실로 와주셔야 할 것 같아요.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갑자기 조연 배우들 프로필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요.
순간 비밀이 새어 나갔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저 아라비안필름에서 하는 작품이라면 시나리오를 보지 않더라도 출연하겠다는 의지.
제작사의 위상이 올라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