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독보다 영화사 대표님-62화 (62/140)

#62화. 회귀의 참맛

오랜만에 연락이 온 지성미는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여보세요?”

-신 대표님. 저희 밥 사주셔야죠.

“아차차, 그렇죠. 깜박 잊고 있었네요. 언제 가면 좋을까요?”

-이번 주 내로 오시는 건 어떠세요?

나는 괜찮은데 한보배가 어떨지 모르겠다.

“이번 주요? 음, 보배 씨한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네. 오신 김에 연극도 보시고요.

“연극이요? 아······!”

-까먹고 계셨죠? 바쁘셔서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하하, 죄송합니다. 이번 주에 꼭 가겠습니다.”

드디어 <투명한 사랑> 연극의 막이 오른 것이다.

나는 그 주 바로 한보배와 은동아트센터로 달려가 연극을 관람했다.

배우들의 연기, 무대 조명, 장치 및 연극에 맞게 한 편곡까지 지성미가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났다.

“어떠셨어요?”

“고생 많이 하셨을 것 같던데요?”

끝난 뒤에는 약속대로 배우들과 저녁을 먹으며 눈도장을 찍었다.

“고생은 스탭들이랑 배우들이 했죠.”

지성미 옆에 앉아 있던 극 중 성희 역 배우가 냉큼 말을 이었다.

“그래도 영화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했습니다. 제가 한보배 배우님 너무 팬이라서요.”

한보배가 물을 마시다가 깜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아, 정말요? 선배님들 연기 다들 너무 잘하시던데요. 연극 쪽 선배님들은 따라갈 수 없는 포스가 있으신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주변에 있던 배우들이 은근히 좋아했다.

“어이구. 보배 씨 이거 고기 한 점이라도 더 드세요!”

“물 좀 더 드릴까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긴 한보배가 선배님이라며 싹싹하게 행동하니 예쁘게 보고 그러는 것 같았다.

배우들은 한보배와 조금씩 친밀해지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영화를 촬영할 때 어떻게 그런 감정선을 나타냈는지 또 이 장면은 왜 그렇게 해석했는지 등등 이것저것 묻느라 바쁜 모습이다.

자연스럽게 그 대화에서 빠진 나와 지성미는 술잔을 기울였다.

“요즘 작품 많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예. 직원들 월급 줘야 하니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지성미가 미소를 지었다.

“그렇긴 하죠. 사업할 때는 바쁜 게 최고더라고요.”

나는 어차피 대화의 주체가 한정된 김에 오늘 이곳에 온 두 번째 목적을 넌지시 던졌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사님, 혹시 작품 들어갈 때 연락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저는 이쪽 배우님들 연기가 맛있더라고요.”

맛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는 드물다.

하물며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연기해야 하는 연극은 더 하기 힘들다.

그런 생생함을 가진 배우들을 영화계로 많이 끌어들이고 싶었다.

지성미는 내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는데, 갑자기 시끌벅적하던 주변이 싸해졌다.

모든 배우가 귀를 쫑긋하고 있었는지 우리 쪽으로 시선이 와있는 것이다.

내 바로 옆에 있던 남자 배우는 언제부터였는지 내게 술병을 내민 자세였다.

“저기? 대표님? 한잔 받으시죠?”

“아, 예. 그럼 한잔 받겠습니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술을 받던 나는.

그날 소문으로만 들었던 연극배우들의 평균 주량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 후 매체로 접한 <투명한 사랑> 연극은 연일 매진을 기록했고.

자연스럽게 원작을 찾아보는 사람이 늘면서 IPTV 수익도 쏠쏠하게 늘어났다.

이런 게 바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연예계 상호작용이었다.

<혐오스런 라라의 일생>은 개봉 한 달 만에 280만을 찍었다.

<투명한 사랑>이 똑같은 시기에 300만을 찍은 것에 비하면 이 작품은 성장세가 느린 편이었다.

그러나 느린 만큼 꾸준한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기에 YJ E&M과 상의해서 상영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그리고 정확히 두 달이 더 지났을 때.

<혐오스런 라라의 일생>은 극장에서 내려왔다.

최종 스코어 480만이었다.

<투명한 사랑>보다 80만이 더 높은 결과였고.

투자를 아라비안필름에서 했으니 이번엔 이것저것 빼더라도 우리 회사로 넘어온 금액이 150억이었다.

투자금 40억을 제하더라도 순이익만 110억이다.

회귀 후 약 3년 만에 이룬 쾌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본을 모았으니 또 그 자본으로 돈을 불려야지.

만 평을 추가로 매입한 남양주 세트장을 채울 생각과 다음으로 제작할 영화까지.

일을 벌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

남양주 추가 세트장이 완공되었다.

“안 팀장님. 오셨어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완공하자마자 조촐한 완공식을 했는데 한주건설 안용덕 팀장이 커다란 화환과 함께 찾았다.

“어휴. 저는 영업팀이라 실제 시공에는 지분이 없습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찾아와 혹시 문제는 없는지 확인하고 갔다는 이야기를 예정우에게 들었다.

“이쪽에서 잠깐 차라도 한잔하시죠.”

완공식에 찾아 준 손님들을 위해 간단한 다과와 음료를 차려둔 테이블에 안용덕을 안내했다.

“혹시 맘에 들지 않는 곳은 없으십니까?”

그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내게 물었고.

나도 곧바로 답했다.

“예. 둘러봤는데 여기저기 꼼꼼히 신경 써주신 게 눈에 딱 보이던데요?”

안용덕이 안심하며 웃었다.

“다행입니다.”

“그것보다 팀장님. 저희, 공사를 하나 더 하고 싶은데 말입니다.”

“예?”

그전엔 언질이라도 줬었는데 이번엔 아무 말도 없었기에 그는 깜짝 놀란 눈치였다.

그래도 이렇게 만난 김에 이야기해버리는 게 낫다.

“똑같은 세트장을 더 짓는 겁니까?”

“아니요. 이번엔 좀 특수한 건물을 짓고 싶습니다.”

“특수한 건물이라고 하시면?”

이번엔 내가 환하게 웃었다.

“수중 촬영 세트장이요.”

아마 건축을 업으로 삼는 그에게도 생소한 건물일 것이다.

역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수중이요?”

“예. 두 동으로 짓고 싶습니다. 오신 김에 대략적으로 말씀드려도 될까요?”

“아? 예예. 잠시만요.”

그는 들고 온 서류 가방에서 메모지와 펜을 주섬주섬 꺼냈다.

“준비됐습니다. 말씀하시죠.”

“우선 한 동은 돔 형식의 건물로 내부에 작은 배 정도는 넉넉하게 띄울 수 있는 크기였으면 좋겠습니다.”

“돔 형식이요?”

“예. 그리고 둥그런 내부의 색을 그린 아니면 블루로 칠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CG 입히기가 용이하거든요.”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우선 메모를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계획설계도부터 간단하게 그려본 다음 구체적으로 방향을 잡아가면 되니까요. 또 다른 동은요?”

“다른 동은 실내에 있는 수중 촬영 세트장으로 주로 스킨스쿠버 다이버들이 훈련하는 곳 있지 않습니까. 그런 곳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으음, 다이버들이 훈련하는 곳이라······.”

“예. 5m와 25m 풀장 두 군데로 구획을 나눴으면 좋겠어요. 촬영이 없는 날은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하고 싶거든요.”

수중 세트장은 촬영으로만 굴리기엔 유지비가 많이 들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이것이었다.

지금이야 스킨 스쿠버 다이빙이 선수들만 한다는 인식이었지만.

전생에서는 취미생활로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던 만큼 점점 늘어날 것이다.

안용덕은 내 말을 다 받아 적은 뒤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 같았는지 대충 머릿속으로 구상 중인 것 같았다.

“그럼 견적 뽑아보신 다음에 나오면 알려주시죠.”

그제야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희 쪽도 회의를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럼 빠르게 연락드리겠습니다.”

한주건설은 아직 그렇게 큰 규모의 건설회사가 아니었다.

전생에서도 기억에 없는 걸 보면 결국 메이저급의 회사는 아니었던 거겠지.

하지만 나는 이곳에 의뢰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같이 성장해나가는 것 또한 회귀의 참맛이 아니겠는가.

*

“감사합니다. 다 대표님 덕분이에요.”

오랜만에 본 임윤서는 밝은 표정이었다.

“제가 뭐한 게 있습니까. 다 같이 힘써주신 덕분이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그녀의 법정 공방이 약 6개월 만에 끝이 났다.

NX엔터는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았으나 우리 쪽 증거가 너무나도 확실해서 패소했다.

오늘은 축하라고 하긴 뭐 하지만, 그래도 좋은 일이었으니 고급 중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다.

“그나저나 진짜 미친놈들 보는 줄 알았다니까요. 예전처럼 집 앞에 찾아와서는 보고 있질 않나. 소름이 끼쳐서 집도 이사했어요.”

같이 자리한 양상철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했다.

“당분간은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저희 쪽 인원 붙여드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요.”

임윤서는 NX엔터와의 관계가 정리되자마자 화분 엔터와 계약했다.

내 말 한마디에 덜컥, 했다기보다는 양상철을 직접 만나보더니 그날 바로 구두계약을 해버렸다.

그녀의 판단이 내 판단과 같았나 보다.

어쨌든 둘 모두에게 잘 된 일이었다.

임윤서는 앞접시에 덜어놓은 해삼요리를 오물오물 씹더니 양상철에게 물었다.

“아, 맞다. 양 대표님. 그린 애플 애들은 그럼 이제 어떻게 활동하는 거예요?”

하긴 아람이 조연이라도 연기를 하게 되면 팀 활동에 지장이 생길 것이다.

“우선 아람이 빼고 한국으로 들어올 겁니다. 빌보드는 30위권에서 성장이 멈췄고, 아람이는 연기를 해야 하니 상위권은 다음 앨범으로 노려보려고요.”

이번엔 내가 그의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아람 씨는 잘 준비하고 있는 겁니까?”

“예. 현지에서 연기랑 언어랑 피부랑 뭐 여러 가지로 케어하고 있습니다. 아마 내년 1월쯤에는 촬영이 들어갈 것 같아요.”

임윤서는 그런 아람에게 대견함 반, 부러움 반 정도를 느끼는 것 같았다.

“와, 아람 씨. 좋겠다. 저는 은퇴하기 전에 할리우드 땅이라도 밟아볼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대표님 저도 영어 좀 배워두면 어때요?”

“허허! 뭐든 배워두면 쓸 때가 있습니다! 윤서 씨.”

내가 아는 임윤서는 할리우드 땅은 밟지 못해도 나중에 한 영화로 포텐이 제대로 터진다.

그건 바로 아주 시원하고 화끈한 액션영화였다.

어차피 알고 있는 미래이니, 아라비안필름에서 제작하고, 임윤서를 딱 주연으로 앉히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런 부류의 시나리오는 아직 내 수중에 없다.

해봤자 <처절한 인생>이지만, 임윤서의 인생 영화는 남자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그런 누아르가 아니었다.

뭐, 어떻게든 찾으면 나오겠지.

어차피 아직은 그 시기가 아니다.

기다리면 복이 오나니.

며칠 뒤.

아람의 <블랙 히어로즈> 캐스팅 확정 기사가 공식 발표되었다.

이미 그린 애플이 빌보드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던 터라 대중은 열광했다.

[아람 누나! 축하해요!!]

[이거 리웨이랑 경쟁하다 아람이 최종 캐스팅된 거잖아. 대박이다. 진짜!]

[근데 연기를 잘하려나? 할리우드까지 가서 망신만 당하고 오는 거 아님?]

[저기요. <투명한 사랑> 안 본 거 같은데 보고 말하죠?]

[<투명한 사랑>에서 한보배가 너무 미친 연기력을 보여줘서 그렇지. 아람도 전혀 꿇리지 않았음.]

물론 고작 캐스팅 기사였기에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나는 곰곰이 떠올려봤다.

그나저나 아람이 연기하는 ‘퍼플’이라······.

이거 너무 기대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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