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조금 이상한 홍보
오랜만에 만난 예정우는 사람이 그리웠는지 지나가는 전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했다.
“여어! 잘 지냈어요?! 나 없으니깐 현장이 안 돌아가죠?!”
이미 <투명한 사랑>부터 합을 맞춰온 스태프들은.
“하하, 네. 오랜만이네요.”
그런 예정우의 성격을 알고 있어 대충 웃고 넘겼다.
“형님. 다들 바쁜데 말 좀 그만 시켜요.”
내 말에 예정우가 눈을 잠깐 흘기더니 그제야 지나가던 스태프들을 붙잡지 않았다.
<혐오스런 라라의 일생>의 로케 촬영이 모두 끝났다.
이제 8회차의 세트 분량만 남았으니 이번 촬영도 거의 끝났다고 볼 수 있었다.
“우와. 근데 무슨 꽃들이 끝도 없이 들어오냐.”
아까부터 세트장 입구에 서 있던 우리 앞으론 꽃을 든 사람들이 계속 지나다니고 있었다.
미술, 소품팀들이 활짝 핀 각양각색의 생화들을 세트장 안으로 옮겨 세팅 중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라라 꽃길 걷는 장면이잖아요. 라라 근처에 걸리는 꽃들은 CG 처리 못 하니까 어쩔 수 없죠.”
“그래도 그렇지. 비싼 생화까지 가져다 놓을 필요가 있나?”
“허 감독님이 꼭 생화를 원하셨다고 하던데요? 돈은 퀄리티를 위해서 쓰는 거니 아깝지 않은데, 꽃 시들까 봐 당일 세팅하는 미술 소품팀이 고생이죠.”
“그러게, 진짜 고생이긴 하다. 그나저나 꽃 남은 건 아까워서 어떡하냐.”
“스태프들 나눠주죠. 다들 바빠서 집에 꽃 사 들고 갈 일도 없을 텐데.”
예정우는 그 말에 웃음이 터졌다.
“풉! 다들 집에서 놀라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안 하던 짓 한다고.”
우리는 곧 촬영이 시작될 세트장 안으로 들어갔다.
세팅된 생화들 때문인지 삭막했던 세트장은 새라도 지저귈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예정우가 물었다.
“아, 맞다. 그린 애플 순위 계속 올라가고 있다면서?”
“예. 속도가 느려서 그렇지 꾸준히 올라가나 봐요.”
“다행이다. 이러다 일내는 거 아니냐?”
“그럼 좋죠. 우리도 덕 좀 보게.”
낙수효과는 비롯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그린 애플의 해체를 막으려고 했던 것이고.
그린 애플의 문제는 잘 해결된 거 같으니 우선 제쳐두고, 벌여놓은 사업부터 신경 써야 했다.
“세트장이랑 장비 차 대여는 연락 좀 많이 와요?”
예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영화 쪽은 꾸준히 와. 근데 드라마랑 광고 쪽은 별로? 아직은 입소문이 부족한가 봐.”
어차피 <혐오스런 라라의 일생>이랑 <망자와 함께> 때문에, 세트장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아라비안필름 제작 작품으로만 세트장을 굴릴 순 없다.
뭔가 획기적인 홍보 방법이 없으려나.
그때.
지나가던 스태프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뭐? 진짜로?”
“응! 진짜라니까! 미술팀 애가 어제 늦게까지 세팅하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누가 자기 이름을 부르더래!”
“에이, 안에 누구 있었던 거 아니야?”
“아니야! 놀라서 밖에 나가보니 아무도 없었고, 세트장에 있던 스탭들 다 세팅 중이었다는데?”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예정우를 쳐다봤다.
“형님도 본 적 있어요?”
그도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지 바로 답했다.
“뭐? 귀신?”
“예.”
세트장 관리는 예정우가 하고 있었으니 혹시나 해서 물은 것이다.
“아니, 미술팀 애가 너무 피곤해서 잘 못 들었겠지. 형은 귀신 안 믿는다.”
그러면서 손은 왜 떨고 있는데.
“그래도 우리 영화 대박 나려나 보다.”
긍정적인 그의 말을 듣자 좋은 생각이 팍하고 떠올랐다.
흠, 이거 잘만하면 세트장 홍보에 영화 홍보까지 톡톡히 할 수 있겠다.
“형님. 요즘 좀 한가하죠?”
내 말에 예정우가 질색했다.
“대표님. 너는 내가 눈에 안 보이니까 무슨 놀고, 먹는 줄 알지! 예약 관리에다 세트장 무슨 문제는 없나 노심초사, 한 팀 나가면 청소 업체 불러, 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런 그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에이, 조금 더 바빠지면 형도 좋고, 저도 좋죠. 정 힘드시면 그땐 인원 충원해드릴게요.”
예정우가 질렸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
“아, 지 이사님. 잘 지내셨습니까?”
지성미 이사의 전화가 왔다.
-네. 대표님도 잘 지내시죠? 저희 연극 준비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궁금하실 것 같아서요.
“어휴, 그쪽으론 이사님이 전문가신데, 잘 준비되고 있겠죠.”
전화기 너머 지성미의 웃음소리가 짧게 들려왔다.
-믿어주시니 감사하네요. 지금 캐스팅 완료된 배우들 하루에 10시간씩 연습하고 있어요. 특히 성희 역 배우가 눈에 불을 켜고 합니다.
열연한 한보배가 상까지 받았으니 연극에서 성희를 맡은 배우는 부담이 클 것이다.
또 관객들 앞에서 투명 인간과의 교감을 보여줘야 하니 거의 마임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줘야 할 것이고.
“고생들이 많으시네요. 제가 언제 회식 한번 거하게 쏘겠습니다.”
-어머, 정말요? 그럼 보배 양하고 언제 같이 오시죠. 배우들이 보배 양을 너무 보고 싶어 해서요.
“아, 그럴까요? 요즘 바쁜 것 같긴 하던데 물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이렇게 연극 쪽 인연을 만들어놔도 좋겠지.
베테랑 연극배우들은 연기가 엄청나서 영화나 드라마로 넘어와도 위화감 없이 성공하는 경우들이 많다.
들어갈 영화도 많으니 배우들을 미리 선점해놓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
“어우! 추워!”
예정우가 호들갑을 떨며 세트장으로 들어왔다.
“형님. 그렇게 추우면 담배를 안 피우시는 게······.”
“그렇다고 싸나이가 추위에 질 수는 없지!”
그래. 그렇다고 해주자.
12월이 되었다.
티 테이블에는 언제 다녀왔는지 코코아를 들고 있던 예정우는 내용물을 호호 불었다.
“그래도 무사히 끝났네. 촬영.”
“형님. 그런 말 하는 거 아닙니다. 아직 안 끝났어요.”
“오늘 크랭크업인데 뭐. 다 끝났지.”
“제가 누누이 말하지만, 영화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니까요.”
그가 피식 웃었다.
“우리 대표님은 걱정도 많으셔. 세트에다 3시간 정도만 더 찍으면 끝나는데? 이제 긴장 좀 풀어도 돼.”
이 형님이 아직 뭘 모르시네.
예정우는 말을 다 했는지 호호 불던 코코아를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가 그것을 호로록 넘기려는 그 순간.
“어? 저거 왜 저럽니까?”
허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태프들은 감독의 말에 하던 일을 멈추고,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엔 천장에 매달린 조명 하나가 좌우로 괴이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조감독은 주변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요? 이상하네. 세트장 문도 다 닫혀있는데.”
그의 말대로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혹시 몰라 근처에 있던 제작팀을 불러 확인했으나 환풍기를 틀어놓은 것도 아니었다.
주변 스태프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귀신 아니야?”
“으아! 소름 끼쳐! 그 소리 좀 그만해!”
“막말로 촬영하는 동안 본 사람이 한둘이야?”
그 말을 들은 허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세상에, 귀신이라니요! 조명 감독님! 저거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요? 하하하!”
조명감독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뭘 어떻게 해도 저렇게 흔들릴 수가 없는데. 이상하네요.”
그러자 허훈이 더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농담도 참! 하하하하!”
많이 무서운가 보다.
촬영을 재개하더라도 흔들리는 조명은 멈춰야 했기에 조명감독은 조명팀에게 지시했다.
“누가 저거 타워 올라가서 확인 좀 해봐라!”
모여있던 조명팀은 너도나도 올라갈 사람을 서로에게 떠밀더니 결국 가위바위보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예정우가 말했다.
“와, 그 아저씨 용하다. 부지에 음기가 가득하다고 하더니만.”
맞다.
예정우가 땅을 살 때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었지.
그나저나 일이 되려고 하는지 타이밍이 좋았다.
며칠 전 떠올렸던 홍보 방법에 불을 붙일 수 있겠다.
사실 촬영 중 귀신을 봤다는 소문을 내는 거로 그치려고 했다.
그럼 영화 홍보도 되고, 영화가 잘 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어느 세트장인가도 궁금해하기 마련이다.
귀신이 출몰하는 우리 세트장에서 촬영한 영화가 대박이 났습니다.
어딘가 조금 이상한 홍보 방법이긴 했으나 은근 이쪽 사람들이 미신을 잘 믿었다.
그러니 아직도 촬영 시작 전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고사를 지내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마지막 날 조명까지 흔들려 주니 내 입장에선 아주 감사한 일이었다.
또 이런 소문은 증거라도 있으면 더 자극적이고, 강력해진다.
나는 조명감독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이거 올라가서 뭐 확인하면 됩니까?”
“예?”
그는 잘못 들었나 싶은 눈치였다.
“제가 한번 올라가 보려고요.”
“대표님이요?”
“예.”
“위험할 수도 있는데요?”
당연히 처음 올라가는 사람이야 위험하지.
제작팀은 보통 현장 스태프들이 바쁘면 일손을 돕기도 한다.
빠른 진행을 위해 움직이는 팀이니까.
그런 내가 전생에서 저 타워 한번 안 올라가 봤겠는가.
“괜찮습니다. 세트장에 무슨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뭐 봐야 하는지만 알려주세요.”
올라가서 해야 할 일도 있고요.
조명감독은 내 속마음이 새까만지도 모르고.
나 혼자 올려보내는 건 영 걱정됐는지 조명팀 퍼스트를 불렀다.
“야! 기석아! 여기 대표님 모시고, 한번 올라갔다 와라!”
조금 전 가위바위보에서 이겨 환호를 지르던 남자가 터덜터덜 걸어왔고.
그와 함께 타워의 계단을 한 발, 한 발 밟았다.
다 올라간 뒤에도 잔뜩 긴장한 조명팀 퍼스트는 대충 확인해 보더니, 별 이상이 없다는 걸 알렸다.
“아무 이상도 없는데······. 아니, 애초에 흔들리는 게 이상하지. 대표님. 우선 지금 흔들리는 거 멈췄으니 얼른 내려가시죠!”
이상하게도 우리가 올라가자 흔들리던 조명은 멈춰있었다.
그는 소름이 돋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고.
한시라도 빨리 내려가려고 잡은 자세는 차마 나를 버리고 갈 수는 없어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만요.”
나는 그런 그를 세워두고,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찰칵-.
찰칵-.
“응? 대표님 뭐 하세요?”
조명팀의 의문에도 10장 정도의 사진을 연달아 찍었다.
“이제 내려가시죠.”
그렇게 내려온 우리.
나는 찍은 사진을 넘겨 가며 확인했다.
그리고 어느새 옆으로 와서 그 사진을 같이 보던 예정우는.
“어! 이거! 이거 사람 모양 아니야?!”
전매특허인 호들갑을 떨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눈코입의 식별은 불가능하지만, 남자의 머리와 몸통처럼 보이는 희미한 무언가가 있었다.
예정우의 호들갑을 들은 스태프들이 모여들었다.
“예? 진짜로요?”
“뭐야?! 그럼 대표님이 귀신 찍어 오신 거예요?”
사실 내 눈에 그 형태는 그저 조명 연결을 위해 어지럽게 엉킨 전선들이 만들어 낸 모양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존재하는 심령사진들이 그러하듯이 말하는 대로 보이는 법이다.
사진을 본 스태프들은 모두 경악하며 사진과 나를 번갈아 봤다.
“와!! 진짜 귀신이다!”
그렇게 <혐오스런 라라의 일생>의 촬영은 요란하게 끝이 났고.
나는 그날부터 스태프들 사이에서 심령사진 전문가로 불리게 되었다.
물론, 내 의도대로 영화판에서 우리 영화는 유명해졌다.
촬영 중 귀신을 본 대박이 날 영화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