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ARABIAN FILM
“기대된다. 그치?”
“나는 너무 기대 안 하려고. 영화제 상 받은 작품들은 지루한 것들도 많잖아.”
옆에 앉아 있던 커플의 상반된 반응에 흐뭇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개인적으로 기대하지 않고 보는 영화가 더 재밌다. 라고 생각하는 나로선 남자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은 <투명한 사랑>의 개봉일.
영화는 시사회를 포함해 수없이 봐왔지만, 생생한 반응들이 궁금해 극장으로 향했다.
잠시 후 장내가 어두워지자 주변에선 ‘한다! 한다!’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고.
광고만 줄기차게 나오던 스크린은 암전됐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관객들이 필수로 보는 것이 있다.
바로 각 배급사, 제작사의 오프닝 영상인데, 회사를 짧은 시간 내에 확실히 각인시키려는 목적으로 중독성 있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어느새 화면에는 폭죽들이 팡팡 터지더니 배급사인 YJ E&M의 익숙한 오프닝이 시작됐다.
다음으론 사무실 식구들이 며칠이나 머리를 쥐어 짜내 만든 우리의 오프닝.
검은색 화면 오른쪽에서 하얀색의 아이 모양 그림자가 쑥 머리를 내밀더니 휘파람을 불며 룰루랄라 걷는다.
아이는 화면 왼쪽까지 쭉 걷다가 휙 뒤로 돌아 입으로 바람을 후, 하고 불었다.
바람이 날아간 곳으로 새겨지는 알파벳.
[ARABIAN FILM]
아라비안필름이 세상에 알려지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주변 반응부터 살폈다.
훌쩍거리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으나 이걸로는 충분치가 않아 밖으로 나가 사람들이 나오는 길목에서 서성거렸다.
본래 영화에 대한 사담이 가장 리얼한 곳은 화장실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로맨스 영화라고 분류되는 <투명한 사랑>의 관객들이 대부분 커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서성이고 있자.
슬슬 나오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슬펐어. 집에서 혼자 봤으면 아마 엉엉 울었을 거야.”
“음악이 진짜 좋더라. 이거 따로 음반 나오려나? 그냥 듣고 싶은데.”
“한보배 동생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더 공감되더라. 연기하면서 계속 생각했을 거 아니야.”
“마지막에 도건우 봤어? 대박! 너무 잘 생겼어!”
도건우와 한보배가 만나는 마지막 장면에선 여자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서프라이즈에 성공한 것이다.
전체적인 반응이 이 정도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화제 수상 후 흥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어 와본 것이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나는 경쾌한 걸음으로 휘파람까지 불며 극장을 빠져나왔다.
<투명한 사랑>은 첫 주 스코어 80만이라는 산뜻한 숫자로 흥행을 알렸다.
흔하지 않은 소재와 로맨스 영화라는 점에선 아주 성공적인 출발이었고.
[슬프고도 기괴한 어른들의 동화]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단순한 남녀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소수를 대변하는 영화]
이렇듯 유명 평론가들의 격찬이 이어지며 손익분기점인 100만을 넘기는 건 순식간의 일이 되어버렸다.
*
한 달 후.
“이건 어디에다 놓을까요?”
사다리차에서 책상을 내린 이삿짐센터 직원이 물었다.
“이쪽에 쭉 놔주세요. 짐부터 정리하고, 책상 배치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예. 알겠습니다.”
드디어 홍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라비안필름의 보금자리로 입주했다.
<투명한 사랑>이 개봉한 지 한 달 만에 300만을 넘었고.
이 기세라면 400만까지도 노려볼 만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것저것 다 빼도 50억 정도가 우리 쪽으로 들어온다.
<워싱>처럼 VOD 서비스까지 시작되면 수익은 더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벼르고 있던 사무실을 이사했다.
또 이 기쁨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어 아라비안필름 식구들과 <투명한 사랑> 스태프들에게 보너스를 지급했다.
약 3억 원의 지출이 있었으나 이로써 <망자와 함께>로 넘어오는 대부분의 스태프는 의욕이 넘칠 것이다.
능률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고.
사무실은 비상식적으로 비싼 강남역 대신 학동역 근처로 정했다.
조금이라도 넓은 사무실을 위해 역세권을 포기했고, 덕분에 방 3개, 아담한 회의실, 창고까지 있는 60평대의 사무실을 구할 수 있었다.
전체 층수 6층 건물에 꼭대기 층이었지만, 전 사무실과는 다르게 엘리베이터도 있었고, 회귀 후 처음으로 개인 집무실을 사용할 수 있어 아주 만족했다.
“읏차!”
나경이 큰 상자 하나를 번쩍 들더니 주방으로 옮겼다.
“나경 씨! 그거 무거울 텐데! 같이 들어요!”
그러자 나경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소리세요! 대표님은 가만히 쉬세요! 어어! 움직이지 마시라니까요!”
나경은 보너스를 받은 뒤부터 계속 저래왔다.
내가 움직이기만 하면 필요한 건 없느냐. 시킬 일은 없느냐 등등 질문 폭격을 시작했다.
마음은 알겠으나 심히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때.
지잉-.
지잉-.
핸드폰이 울리길래 보니 한보배다.
-대표님! 사무실 이사는 잘하셨어요?
“아, 그럼요. 행사는 잘되고 있습니까?”
그녀는 영화제 수상과 ‘아는 동생’ 출연으로 한 달 만에 인생이 달라졌다.
영화 캐스팅 제안은 물론, 드라마와 예능까지 단숨에 연예계 블루칩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공식 팬클럽도 생겨 오늘은 300명의 팬과 직접 만나는 팬미팅 날이었다.
-네. 이사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정말 죄송해요. 날이 딱 겹쳐버렸네요.
“이삿짐센터 불렀어요. 저희 직원도 꽤 많아져서 나눠서 하면 힘들지도 않고요.”
-그럼 제가 나중에 선물 사 들고 꼭 갈게요!
“알겠어요. 그럼 팬분들 잘 만나고 와요.”
한보배와의 짧은 통화를 끝내자 허훈이 다가왔다.
“보배 씨예요?”
“예. 이사 못 도와줘서 미안하대요.”
“어휴. 보통 배우들 급하게 뜨면 확 변하던데, 보배 씨는 예전하고 똑같네요.”
그의 말을 들으니 누군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이야 만들어진 이미지로도 먹고 살 수 있지만, 이제 인성이 중요한 시대가 올 거예요.”
“하긴. 그건 그렇죠.”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허훈에게 물었다.
“근데 감독님. 그건 고르셨어요?”
“아, 그게······.”
내 물음의 주체는 한 달 전 그가 나에게 보여준 두 개의 작품이었다.
한 명의 감독이 두 작품을 동시에 촬영할 순 없으니 먼저 제작하고 싶은 걸 알려달라고 했는데.
의외로 고르기가 힘든 지 한 달째 깜깜무소식이다.
“제가 ‘대부’부터 해서 누아르 장르를 정말로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처절한 인생>을 먼저 찍어야 하나 생각이 들다가도.”
<처절한 인생>은 한 형사가 조직에 잠입해 언더커버 생활을 하다가 한 여자아이를 만나면서 인생이 꼬여가는 스토리였다.
“<혐오스런 라라의 일생>은 지금이 아니면 절대 하지 못할 이야기인 것 같아 고민이 되네요.”
이 작품은 사랑에 빠진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린 뮤지컬 영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하기 힘든 장르였다.
“대표님 생각은 어떠세요?”
내 입장에선 당연히 성공이 보장된 <처절한 인생>이 아니고.
“저는 <혐오스런 라라의 일생>이요.”
“예? 대표님은 무조건 <처절한 인생>부터 찍자고 하실 줄 알았는데요?”
처음엔 그러려고 했다.
허훈이 고차원적인 제목의 시놉시스를 내밀었을 때만 해도 <처절한 인생>부터 찍어야지. 라는 생각뿐이었는데.
시놉시스를 읽고 나서 마음이 변했다.
“예산이 작을 것 같아서요.”
뮤지컬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성공하기 힘든 이유는 높은 제작비 대비 나오지 않는 성적 때문이다.
시놉시스를 흥미롭게 읽은 내가 허훈에게 구체적인 사실을 몇 가지 더 물었고.
그 결과 <혐오스런 라라의 일생>은 예상외로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지 않겠구나. 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영화에서 노래가 나오는 장면은 대부분 여주인공 라라의 독백이라 흔히 말해 돈이 많이 드는 떼신이 없었다.
뮤지컬 영화에서의 떼신은 일반 영화의 떼신과는 또 다르다.
전문 무용수들을 섭외해야 했기에 금액이 몇 배로 뛴다.
그 외에도 전체적인 스토리를 봤을 때 액션이 많이 들어가는 <처절한 인생>과 비교해봐도 적었다.
예산이 적다는 것 외에도 끌리는 부분은 많았다.
우선 음악.
뮤지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음악인데 우리에겐 천상현과 한우주가 있다.
천상현의 몸값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내게 바가지를 씌울 리도 없고, 무엇보다 뮤지컬 영화라고 하면 먼저 흥미를 보일 것이다.
한국에서 영화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뮤지컬 영화를 맡게 되는 일은 드무니까.
또 <망자와 함께> 촬영 전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스케줄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천재 감독 허훈이 연출하는 건데, 성공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기도 하고.
내가 왜 이렇게도 예산과 촬영 조건들을 꼼꼼히 따져봤냐면······.
“이번엔 직접 투자하려고요.”
투자사를 끼지 않고 해야 돈이 많이 남는다.
“네? 직접 하신다고요?”
허훈이 살짝 놀란 기색을 보이다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사실 <혐오스런 라라의 일생>은 이미 시나리오 초안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직접 투자하신다니 많이 부담스러운데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부담스러울 게 뭐 있습니까? 시나리오도 다 됐다니 더는 망설일 필요도 없네요. 그럼 하루라도 빨리 진행하시죠.”
*
“서아 양, 쪽에서 답은 왔습니까?”
새로운 회의실에 앉아 정 PD에게 묻자 그가 대답했다.
“예. 아주 흔쾌히 출연하시겠다던데요? 대표님을 아신다는 것 같던데.”
‘아는 동생’에서 짧게라도 인사하길 잘했다.
“그냥 오며 가며 인사 한번 했습니다.”
<망자와 함께>는 6인의 저승 신 역할 캐스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서아는 그 중, 악랄하지만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동시에 가진 신에 어울릴 것 같아 추천했는데 제안을 받아들였다니 다행이다.
“다른 배우들은요?”
“아직 답은 안 왔는데 <투명한 사랑> 때문인지 저희 회사 이미지가 좋더라고요. 아마도 대부분 긍정적인 연락이 올 것 같습니다.”
다행이었다.
“‘필름코팅’에서 파견 보낸다는 직원들은 언제부터 출근입니까?”
CG 작업할 게 많아도 너무 많아 제안 메일을 보내고, 답변 메일을 받는 등 소통에 할애하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래서 ‘필름코팅’ 대표에게 현장에 투입될 직원 2명을 아예 이쪽으로 출근시켜달라고 했고, 알겠다는 답을 받았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한다고 합니다.”
그들이 오면 촬영 준비는 속도가 더 붙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죠.”
회의를 마치고, 집무실로 향했다.
문 앞에 [대표실]이라고 적힌 금색의 문패는 누가 봐도 나경이 붙여놓은 걸 거다.
많이도 번쩍거리네.
손님들이 문을 잘 못 찾을 일은 없겠다.
들어가서 책상에 앉자 예정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대표님! 잘 지내냐!
그는 2주 전 사무실 이삿날 봐놓고는 한껏 썽이 난 목소리였다.
“잘 지내죠. 무슨 일 있어요?”
-세트장 오픈이 다음 달인데 너는 어떻게 현장을 한 번도 안 오냐!
“에이, 오픈 전에 한번 갈게요. 형님도 있는데 제가 뭐하러 가요.”
-내가 영화사에 취직한 건지. 공사장에 취직한 건지. 여튼 그럼 최대한 빨리 와! 마무리 중이니까. 뭐, 와서 마음에 안 드는 곳 있어도 나는 모른다!
말은 이렇게 해도 매일, 매주, 매월 공사 현황을 보고하는 예정우였다.
나야말로 영화사를 운영하는 건지, 건설사를 운영하는 건지 모를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예. 알겠어요. 얼른 퇴근하세요. 5시네.”
-오야!
공사장 아저씨들이랑 친해졌는지 어째 말투가 영 이상해진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이제 세트장 오픈 준비도 해야겠다.
세트장은 입소문만 나면 그 뒤부턴 알아서 굴러간다.
그래서 초반 홍보가 가장 중요한데······.
역시 홍보는 발로 뛰는 게 최고지.
그리고 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허훈의 차기작 집필이 예상보다 일찍 끝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아무리 천재인 그라도 <망자와 함께> 프리 준비까지 세세하게 신경 쓰지 못할 것이고.
촬영 초반에도 붙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투자사나 현장 스태프 때문이라도 믿을 수 있는 다른 감독을 찾아야 한다는 건데.
그때.
한 사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내 첫 영화인 <파노라마>의 감독이자 모든 영화인의 존경을 받는 노흥기 감독.
오랜 경력으로 원로감독 대열에까지 오른 그는 카리스마로 현장을 압도하는 걸로 유명했다.
‘설득만 할 수 있다면 노 감독님만큼 든든한 분도 없지. 어떻게 모셔와야 하나.’
내 머릿속은 그를 섭외할 만한 묘책을 생각해 내느라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