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독보다 영화사 대표님-34화 (34/140)

#34화. 영화 같은 인생

천상현은 <워싱>의 입장이 시작되자 촬영 동의서에 서명한 뒤 안으로 들어왔다.

‘워, 관객 반응 촬영한다더니 진짜로 하네?’

조금은 유난이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하며 좌석에 앉았다.

자신이 일찍 들어온 탓에 시간은 아직 10분 정도 남아 있었다.

그는 팝콘을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입장하기 전 겪은 기분 좋은 일을 떠올렸다.

<워싱>을 수입한 회사의 대표라는 사람이 대뜸 와서는 명함을 내밀길래 처음엔 뭔가 싶었다.

-저, 혹시 천상현 가수 아니십니까?

정말 많이 깜짝 놀랐다.

앨범을 내긴 했으나 음악 방송도 정말 몇 번. 인터뷰도 정말 몇 번.

그래서인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 전무하다고 볼 수 있었지.

그런데 날카롭게 생긴 그 대표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뿐 아니라, 팬이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 자신을 놀리는 건가 싶어, 타이틀곡이라도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자신의 이름도 알고 있으니 몇 안 되는 소중한 팬에게 의심을 거뒀다.

그는 자신이 작곡한 곡들을 다 좋아한다며 꼭 성공할 거라고, 힘내라는 말을 건넸는데 그 말에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내는 앨범마다 망해서 심신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더니 그는 무언가를 제안하며, 꼭 연락 달라는 말을 남겼다.

바로 영화 음악을 해볼 생각이 없냐는 황당한 제안.

2장의 앨범에 들어간 모든 곡은 아니었으나 꽤 많은 곡을 자신이 작곡했다.

영화도 좋아한다.

그런데 영화 음악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분야였다.

그래도······.

‘아마 돈도 주겠지. 이번 달 월세랑 또 들어가야 할 게 핸드폰, 또-.’

그때.

극장 안 불이 서서히 꺼졌다.

영화가 시작할 모양새다.

다시 천상현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복잡한 생각은 나중에 하고, 우선 영화에 집중하자.’

스크린이 밝아지면서 깔리는 음악.

체에엥-!

체에엥-!

심벌즈를 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서늘한 분위기의 피아노 연주가 그 위에 올려졌다.

심벌즈의 울림과 피아노 선율은 교묘하게 섞여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기 전 공포를 고조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역시, 오길 잘했다.’

오프닝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조금 무섭긴 했지만.

천상현은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 뒤······.

극장 안은 모두의 긴장으로 숨 막힐 듯한 공포감이 조성된 상태였고.

스크린이 점점 심장을 조여오며 압박하다 귀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그 순간!

“으아아아악-!”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새하얀 팝콘 눈을 선사하고 말았다.

*

<워싱>의 시사회는 성공적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한 명이 팝콘을 내던지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났고.

몇 명은 중간에 나가기까지 했다.

도저히 못 보겠다는 말과 함께.

나는 영화가 끝날 때쯤.

화장실 한 칸을 자리 잡고 앉아있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비공개 시사회에 참가한 기자, 평론가, 지인의 쌍욕들이 날아다녔다.

-아니, 씨팔! 지금 이걸 보라고 만들어 놓은 영화야?

-나는 2시간 내내 온몸에 힘을 주고 있어서 진이 다 빠졌어······.

-저는 중간에 나왔습니다.

-공포 영화 매니아인 내가 꼽은 역대급으로 재밌는 영화다. 진짜.

-야, 역대급으로 재밌긴 무슨. 너 아까 안에서 욕했잖아. 다 들었어!

좋은 반응이었다.

너무 무서워 화까지 나게 할 수 있는 공포 영화가 몇이나 되겠는가.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화장실을 나오자 잊고 있던 그것이 떠올랐다.

바로 인터뷰.

최세준 과장에게 감독도 아닌 내가 무슨 인터뷰냐며 한 번 거절했으나 그 기자도 참 끈질긴 사람이었다.

바쁜 최세준을 그렇게도 괴롭혔단다.

내가 인터뷰에 응해주지 않으면 그가 먼저 회사를 그만둘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오케이 했다.

그리고 그게 오늘이었지.

인터뷰를 위해 YJ E&M 측에서 대기실까지 마련해 줬다.

회식도 해야 하니 짧게 끝내고 오자.

약속했던 대기실로 들어가자 단발머리의 또롱또롱하게 생긴 여기자가 일어나며 나를 반겼다.

“아! 안녕하세요! 장혜리 기자라고 합니다!”

군기가 바짝 들어간 게 아직 신입이고만.

“예. 안녕하세요. 신바드라고 합니다.”

그녀는 내게 의자를 권하며 말을 이었다.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진짜 무섭던데요?! 올여름은 아마 <워싱>이 휩쓸 것 같아요!”

장혜리가 가리킨 의자에 앉으며 대답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와, 근데 대표님. 생각보다 젊으시네요?!”

“대표라는 직함에 비하면 젊은 편이죠.”

그렇게 호호, 웃는 장혜리와의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인터뷰는 다소 형식적이었다.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

제작사 이름이 특이하던데 무슨 뜻이냐.

태국 공포 영화라는 게 생소한데, <워싱>은 어떻게 수입하게 된 것이냐.

제작 중인 <투명한 사랑> 장편은 언제쯤 만나볼 수 있느냐.

등등.

이렇게 무난한 인터뷰가 30분간 지속됐고, 이제 곧 끝나겠구나, 생각할 때쯤.

장혜리는 이런 질문의 운을 뗐다.

“대표님 그럼 다음 질문드리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투명한 사랑> 장편 투자를 화분 엔터에서-.”

“잠시만요.”

나는 그녀의 말을 막아섰다.

“죄송하지만, 화분 엔터 관련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습니다.”

이건 들어오기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거다.

어쩌다 보니 <투명한 사랑>에는 화분 엔터 소속 배우들이 많이 출연한다.

그러니 우리 영화가 화분 엔터의 투자를 받았다는 건 적어도 개봉 후에나, 대중들에게 밝힐 생각이었다.

사실 우리가 무언가를 잘못한 건 아니지만, 괜히 연결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배배 꼬인 사람들이 꼭 있기 마련이다.

말이 나올 인터뷰는 독이 될 수 있다.

장혜리는 인터뷰 이후 처음으로 당황한 얼굴이었다.

“아, 좀 민감한 질문이셨군요. 죄송합니다.”

무슨 일인지 그녀는 무척이나 아쉬운 기색이었다.

“그럼 마지막 질문드리겠습니다. 이제 막 도약하신 대표님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요?”

음, 지금까지는 막힘없이 술술 대답하곤 했는데 마지막 질문은 조금 고민이 된다.

“아, 제 최종 목표요.”

회귀 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이번 생은 불운을 피해 보고자.

영화판을 바꿔보고자.

행복하게 살아보고자.

그런 나의 최종 목표는······.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는 거요.”

*

사무실 식구들은 옹기종기 모여 내 노트북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러다 예정우는.

“풉! 푸하하하하!”

무언가를 보고 배를 잡은 채로 주저앉았다.

비단 예정우 뿐만이 아니라 그 영상을 본 사무실 식구들은 다 웃고 난리가 났다.

오로지 나만 심각했다.

우리가 보고 있던 건 <워싱>의 관객 반응 예고편의 편집본.

최세준이 보내준 건 두 가지 버전이었는데.

사실 이 두 개는 출연하는 관객과 반응 등 거의 모든 것이 똑같았다.

다만, 천상현이 있냐. 없냐의 차이일 뿐.

팝콘을 뿌렸다는 사람이 천상현일 줄 누가 알았겠나.

영상으로 찍힌 그는 아주 가관이었다.

잔뜩 겁에 질린 채 팝콘 통으로 자신의 눈을 반쯤 가리더니 대뜸 옆 사람을 붙잡았다.

내가 알기로 그는 혼자 왔던 것 같은데 말이다.

-으아아아악-!

그다음은 익히 들었듯이 팝콘을 흩날렸다.

앞사람의 머리 위엔 소복이 쌓였고.

반경에 있던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팝콘을 맞았다.

이 장면을 보고 예정우가 저렇게 숨이 넘어갈 듯 웃은 것이다.

“와, 진짜 저 사람. 저렇게 무서워하면서 공포 영화를 왜 보러 온 거야?!”

눈물까지 흘리면서.

하여튼 최세준 과장이 왜 두 가지 버전으로 보냈느냐.

공식적으로 어떤 예고편을 쓸 것인가 의견이 갈렸기 때문이다.

최세준은 천상현의 반응이 너무 코믹해서 <워싱>과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었고.

나는 그 반대 의견이었다.

최세준의 말에도 동의하고, 천상현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의 반응을 넣은 예고편이 더 화제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화제는 홍보로 이어지니 나는 그걸 노리자는 것이었다.

“어때요? 여러분이라면 어떤 예고편 보고, 영화관까지 갈 것 같아요?”

사무실 사람들의 의견도 갈렸다.

예정우, 정 PD, 신 실장은 천상현이 출연하는 예고편.

허훈, 조감독, 인물 조감독은 천상현이 출연하지 않는 예고편.

어쩌다 보니 제작라인과 연출라인이 갈라서긴 했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VFX(Visual Effects) 담당 연출팀이었다.

조감독은 갈팡질팡하고 있는 그에게 엄포를 놓았다.

“야, 너 잘 결정해라. 이건 연출에 자존심이 걸려있는 문제라고!”

뭘 또 자존심까지 걸어······.

그런 거 아니야.

“으, 저는!”

연출팀은 결정을 내렸는지 발걸음을 옮겼다.

“이쪽이요!”

마침내 그가 선 곳은 제작라인이었다.

“저 배신자!”

조감독의 원망에도 연출팀은 소신을 꺾지 않았다.

“이 영화가 흥행해야 또 아라비안필름에서 일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관객이라면 이 예고편이 더 끌립니다!”

흐음. 소신 있는 모습이 아주 좋구만.

나는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최세준에게 전화해 결정된 우리의 의견을 전달했다.

*

예고편이 마무리되자.

YJ E&M은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워싱>을 공격적으로 홍보했다.

버스에, 강남 한복판 건물 전광판에, TV 광고에, 인터넷 유명 플랫폼 배너까지.

할 수 있는 광고는 모조리 때려 넣은 듯했다.

아마 YJ E&M 쪽에서도 돈 냄새를 맡았나 보다.

아니었으면 이 반의반도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우리로선 아주 좋은 시작이었다.

그리고 개봉 하루 전.

“어! 대표님! 인터뷰 올라왔다!”

“정말요?! 와!! 대표님 인터뷰! 읽어봐야지!”

예정우와 허훈은 한바탕 호들갑을 떨었다.

그냥 소소하게라도 홍보가 될까 싶어 <워싱>과 <투명한 사랑> 위주로 대답했으니 별 내용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사무실이 너무 조용해지길래 둘러보니 하나같이 노트북 속으로 빠져들어 가기 일보 직전이다.

관심 없던 사람들도 정독하고 있는가 보다.

뭘, 저렇게까지.

내 인터뷰 내가 읽어서 뭐 하나 싶어 다른 일을 하려는데.

예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대표님 이 기자 원래 알던 사람이야?”

“예?!”

나는 뭔가가 이상해 인터뷰 링크를 클릭했다.

이게 뭐야?

무슨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끝이 없다.

한 질문에 대답이 무지하게도 길다.

내가 이렇게도 길게 대답했던가?

“근데 뭐 이렇게 소녀팬처럼 기사를 써놨어. 사족이 엄청 많네.”

장혜리 기자가 올린 인터뷰 기사는 예를 들어 이러했다.

Q. 이제 막 도약하신 대표님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요?

A. 예. 제 최종 목표는 영화 같은 인생을 사는 겁니다. (웃음)

청년 사업가 신바드 대표는 <워싱>의 개봉으로 영화계에 첫발을 내밀 예정이다. 또 곧 촬영에 들어갈 <투명한 사랑> 장편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을 만큼 예술성이 짙은 영화다. 이처럼 그는 제작자로서 가장 중요한 보는 눈을 가진-. (중략) 그의 인생에 레드카펫이 깔리길 기대해본다.

이건 내 인터뷰가 아니라 거의 칼럼 수준 아닌가?

그리고 정확히 8일 뒤.

<워싱>은 첫 주 관객 50만을 찍으며 흥행의 시작을 알렸고.

드디어 아라비안필름의 자본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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