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부산(2)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다음 내쉬었다.
그러자 내가 좋아하는 특유의 냄새가 코를 통해 깊숙이 들어왔다.
바로 바다 냄새.
이 냄새는 제2의 도시이자 영화의 도시인 부산 곳곳에 물들어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전생에도 부산은 정말 많이 왔던 도시다.
리모델링 하기 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부산역은 그 추억을 꺼내기 충분한 공간이었다.
나는 괜히 벅찬 마음을 안고, 해운대로 이동했다.
영화제 초청과는 상관없이 3일 먼저 온 거라 별도로 예약해 둔 호텔에 체크 인한 뒤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3일 동안 뭐라도 건지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호텔 바깥 거리는 영화제가 한창 시작된 후라서 그런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코끝에 맴도는 바다향은 아까보다 훨씬 더 진해져 있었고.
주변 정취를 눈에 담으며 슬슬 사람들 속으로 걸었다.
아시아 필름마켓.
내가 다른 이들보다 먼저 부산에 온 또 다른 목적이다.
영화를 수입하는 일은 사실 어떻게 보면 복권과도 비슷했다.
시장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운이었다.
영화의 거래를 완성된 작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달랑 시놉시스 한 줄이나 감독, 주연배우가 누구인가.
정도의 단편적인 정보만을 보고 사야 할 때가 많았기에 모험을 걸어야 했다.
이마저도 계약 후 시나리오 수정, 주연배우 교체 등이 빈번했으니 긁지 않은 복권 중 당첨될 놈을 골라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참고로 흥행이 보장되는 소위 블록버스터급의 영화는 해외영화사에서 국내에 직배급사를 두고, 배급한다.
이래서 개인 사업자들의 영화 수입은 더욱더 리스크가 많이 따랐다.
전생에서도 제작사를 차리고, 주최되는 영화제마다 줄기차게 돌아다니며 영화를 수입했으나 성공한 작품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빚을 그렇게도 졌지.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국내에 들여오기만 해도 성공할 작품들은 내 머릿속에 수두룩 빽빽이었으니까.
일부러 마켓이 열리는 벡스코 근처 숙소를 잡았기에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저 멀리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웅장함을 뽐내고 있는 벡스코는 드넓은 광장까지 마켓에 참여한 사람들도 북적북적했다.
나도 얼른 그 치열한 경쟁 안으로 발을 디뎠다.
건물 안은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빽빽이 들어선 각 부스에서 영화를 사려는 사람들과 세일즈 담당자들의 열띤 미팅으로 생긴 열기를 다 막아내진 못했다.
가격을 어떻게든 유리한 쪽으로 조정하려고, 엎치락뒤치락 보이지 않은 기싸움이 대단했다.
그 기싸움에 처음부터 힘을 빼긴 싫어 내부를 천천히 돌았다.
영화의 정확한 스코어는 기억하기 힘들지만.
제목만 봐도 흥행 여부는 대충 알 수 있다.
당첨금으로 얻은 1,500만 원 중 이것저것 지출하고, 현재는 1,200만 원 정도가 남아 있었으니 자금은 충분하다.
전생에서는 외화 수입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책정되는 금액도 억 단위를 호가했다.
그러나 지금은 15년 전.
수중에 있는 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무얼 사볼까나.
마켓에 나온 영화들은 다양했다.
애니메이션.
뮤지컬 영화.
공포 영화 등등.
전생부터 영화광이었던 나는 오랜만에 보는 명작들의 포스터들이 반가웠으나 그중 살 만한 영화는 보이지 않았다.
마켓에 오기 전.
기준을 하나 세웠다.
최소한의 금액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뽑아낼 수 있는 영화를 사자.
이 기준에 맞는 영화를 찾느라 여러 부스를 기웃거렸다만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스마다 앉아있던 세일즈 담당자들은 조금은 앳된 내 모습에 그 흔한 안내조차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편했다.
맘 편한 쇼핑 중에 직원들이 자꾸 뭘 추천하면 귀찮아하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는데.
지나치던 부스에서 누군가의 불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그게 아니고. 음, 아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한 중년남성은 일본인 세일즈 담당자와의 대화에서 진땀을 빼며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고 있었다.
필름마켓에서는 영어가 필수다.
나도 그 때문에 회귀 후 영어를 놓지 않았던 거고.
그러니 일반적으로 대화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오지만 저런 풍경은 어떤 마켓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선수들끼리는 쓰는 용어들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중년남성은 한숨을 몇 번 푹푹 내쉬다가 이내 부스를 나왔다.
“휴우. 만만치가 않네.”
괜한 오지랖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으나 꼭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처음 오신 것 같은데,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중년남성은 갑자기 나타난 내 존재를 반갑게 맞았다.
“아! 그래 줄 수 있습니까? 제가 너무 안일하게 왔나 봅니다. 용어들을 하나도 모르니 원. 대화가 통하질 않네요.”
남자는 사업을 하는 사람인지 버릇처럼 명함 케이스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내게 건넸다.
그 바람에 나도 모르게 예전 버릇이 나와 우리는 명함을 교환했다.
별생각 없이 중년남성의 명함을 확인했는데.
하, 참나.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내가 잘 못 본 것인가 싶어 두어 번 눈을 비비고 다시 봤지만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화분 엔터테인먼트. 양상철 대표.]
화분 엔터테인먼트.
회귀할 때쯤 화분 엔터는 악재가 겹치고 겹쳐 회사가 파산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으나.
과거엔 3대 엔터의 위엄으로 호재만 줄줄이 사탕처럼 터졌던 대형 회사였다.
아마도 그때가 지금쯤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까지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그 당시 활동하던 그린 애플이라는 걸그룹 때문이다.
그린 애플은 배우들만 있던 화분 엔터에서 유일한 4인조 걸그룹으로 당시로는 조금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줬다.
어느 날, 해외 진출을 발표했는데.
보통 일본, 중국에 진출하는 것과 다르게 미국으로 떠난다고 한 것이다.
이미 한국에서 인지도가 있던 그룹이었기에 낯선 곳에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결정에 사람들은 많이 우려했었다.
나조차도 뭐 하러 그 고생을 사서 하냐고 주변 지인들과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상황은 빠르게 반전됐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전 세계 곳곳에서 그녀들을 향한 뜨거운 반응이 터진 것이다.
어느 유명 팝가수의 콘서트를 따라다니며 오프닝 무대를 서던 그린 애플의 동영상이 삽시간에 퍼지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뭐, 그 뒤에 한 사건이 그녀들을 끌어내리긴 했지만.
아직 그린 애플의 미국진출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걸 보면 아무래도 출국 전 시기인 것 같은데.
그런 회사의 대표를 갑자기 필름마켓에 만나게 된 것이다.
양상철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혹시, 그린 애플 소속사 대표님 아니십니까?”
그린 애플이라는 단어를 듣자 그는 허허실실 웃더니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예. 제가 그 양상철이 맞습니다. 허허. 이것 참. 요즘 어딜 가든 명함 드리면 이런 반응뿐이네요.”
그 얼굴엔 그린 애플에 대한 애정이 물씬 묻어있었다.
꼭 네 자매의 아빠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그런데 전생에서 알던 양상철의 이미지와는 어딘가 좀 달랐다.
뭐랄까.
좀 더 악독한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그러시군요. 그런데 화분 엔터에서 영화사업도 시작하신 겁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허허. 사업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그린 애플 애들이 열심히 해주고 있으니 저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야지요. 그래서 영화제 참여한 김에 어떤 곳인지 맛만 보려고 들린 겁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넘어갔을 그의 말이 나에게는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그린 애플을 물심양면으로 돕는다고?
그도 그런 게 그녀들에게 찾아왔던 사건은 그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은 멤버 아람의 갑작스러운 탈퇴 선언부터였다.
전 세계인의 인기를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입장 발표는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트렸고.
결국 그 영향은 팀 전체로 퍼졌다.
대중들이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아람의 탈퇴 이유.
컨디션 난조였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거짓말을 하는 거라며 아람을 비난했고.
그녀는 모든 손가락질을 감내하면서 팀을 탈퇴한 뒤 연예계를 영영 떠나버렸다.
그녀의 탈퇴로 3인조가 된 그린 애플의 인기는 점점 하락세를 타 결국 원하던 금의환향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귀국했다.
한국에서도 잊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화분 엔터 대표 양상철의 후회 섞인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아람 탈퇴 사건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러나 그건 너무 늦은 후회였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
당시 욕심에 눈이 먼 양상철은 저런 마인드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린 애플은 살인적인 스케줄을 어떻게든 소화할 수밖에 없었고.
아람은 그저 이러다 죽겠다 싶어 탈퇴한 것뿐이었다.
내가 전생에서 본 인터뷰와는 너무 다른 양상인데.
그럼 아람의 탈퇴 이유에는 양상철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개입돼있는 건가?
약간의 궁금증과 곧 나와 비슷한 처지가 될 그에게 동정심이 일었다.
또 그린 애플의 해외 진출 실패는 나로써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후엔 한류의 열풍이 태풍처럼 몰아치지만.
아람의 탈퇴만 아니었더라면 그 태풍을 조금 더 일찍, 화려하게 맞이할 수 있었을 거다.
그렇게 되면 내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 일은 없다.
우리는 상생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고작 작은 나라에서 온 소녀들의 음악이 알려진 것뿐이지만.
소녀들을 좋아하던 사람들은 점점 그 나라 출신의 배우, 드라마, 영화, 심지어는 언어와 문화까지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영화를 고를 시간이 빠듯하긴 했으나 양상철을 이대로 보낼 순 없었다.
“그럼 오늘 저랑 같이 다니시죠. 제가 마켓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예? 정말입니까?”
활짝 웃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네. 제가 이래 봬도 경력이 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