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우아아아아아!!
학교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얻은 허훈은 그 뒤로 자신감을 최고치로 찍었는지 장편 시나리오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또 나는 <투명한 사랑>의 영화제 출품을 완료했다.
출품한 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
국내 최대 규모의 영화제로 우리가 영화를 선보이기 딱 좋은 영화제였다.
이제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
졸업영화제에서 <투명한 사랑>이 2관왕을 한 뒤로부터 2주가 지난 오늘은 공기가 제법 선선해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우리는 한 카페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그거 봤죠?”
내 말을 기점으로 모두가 봇물 터지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저 이제 어떻게 해요!!”
당사자인 한보배가 가장 다급한 목소리였다.
우선 그녀를 진정시켰다.
“다행히도 반응이 대부분 호감입니다.”
“...호감인 거죠?! 어제는 카페에서 일하는데 알아보는 손님이 있었다니까요.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자 나경이 자신의 핸드폰을 쑤욱 들이밀었다.
“선배님 말대로 이 정도면 귀여워하는 수준 같아요. 그나저나 우리 영화에 대한 관심도가 굉장히 높아졌어요.”
“꺄아악! 반응을 직접 보고 싶진 않아요!”
나경의 핸드폰을 절대 보지 않겠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아버린 한보배는 제쳐두고, 모두의 시선은 그곳으로 향했다.
[어느 대학교 졸업영화제에서 수상한 여배우 반응]
이런 제목의 한 게시글에는 동영상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그 동영상을 클릭하자.
-우아아아아아!!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홍당무가 된 한보배를 위해 동영상은 금방 껐다만.
그 뒤로는 그녀가 후다닥 단상으로 올라가 상을 받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 댓글 반응을 확인했다.
[와. 고작 대학교 졸작인데 배우 얼굴 실화임? 엔터 회사들은 당장 저 배우 안 잡고 뭐 함?!]
[아 개 귀엽다 진짜. 언니 저 이제부터 덕질 시작이여.]
[이런 게 진정한 반전 매력 아님? 청순한 얼굴의 그렇지 못한 성격...]
[누나 사랑해요! 누나 사랑해요! 누나 사랑해요! 누나 사랑해요!]
[아니, 지금 님들이 놓치고 있는데, 이분 연기상 받은 거잖아? 그럼 저 얼굴에 연기도 된다는 충격적인 사실.]
[저 배우 나오는 영화 어디서 볼 수 있어요? 졸작이면 인터넷에 좀 풀어주면 안 됩니까? 궁금한데.]
그리고 그중, 가장 폭발적인 공감 수를 얻고 있는 댓글은 이것이었다.
[여기 ㅇㅅ대 졸업영화제고, 보통은 상 나눠주는 우리 학교에서 이례적으로 2관왕 한 작품임. 봤는데 진짜 영화 너무 잘 만들었음.]
이렇게까지 된 시작점은 졸업영화제에서 한보배의 수상 장면을 찍은 누군가가 인터넷에 올리면서부터였고.
게시글은 올라가자마자 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물론 한보배에게 허락받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그대로 인터넷에 노출한 건 범죄였으나 지금 시대엔 초상권을 지켜야 한다는 등의 의식이 부족했던 시대였다.
그리고 이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좋은 쪽이었다.
홍보를 하려면 무조건 돈이 든다.
단편이 이 정도로 화제가 된다면 장편 투자유치는 더욱더 쉬워질 것이다.
지금의 현상은 거의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었다.
“저 대표님. 최근 전화가 좀 옵니다.”
허훈의 말에 예상했다는 듯 물었다.
“아. 다른 제작사에서요?”
그는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하겠죠. 지금쯤이면 영화판에 소문 좀 났을 겁니다.”
“아하. 근데 저는 당연히! 같이 작업 중인 대표님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확히 어떤 회사인지 말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몸집이 꽤 큰 제작사에서 연락이 왔을 거다.
장편 제작은 아직 구두로만 이야기를 나눴으니 허훈이 조금이라도 돈을 생각했다면 연락이 오자마자 그쪽으로 붙었겠지.
그러나 그는 다른 곳과는 미팅조차 하지 않았다.
나와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다.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는 거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제가 이 영화 꼭 성공으로 이끌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가져온 게 있습니다.”
그와 장편 이야기를 나누자마자 계약서를 쓰지 않았던 이유는.
그에게도 선택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전생에서 느낀 게 있다.
아무리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해도 상대방의 의사가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마음이 뜬 사람은 다루기도 어렵고, 언젠간 떠났다.
이 정도의 반응이라면 이제는 괜찮겠지.
“응? 어떤 거요?”
매고 온 백팩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냈다.
“감독님이랑 배우님. 계약합시다.”
허훈과 한보배에게 내밀자 그들은 말똥말똥한 눈으로 계약서를 훑었다.
“와! 저 계약 같은 거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그녀는 들뜬 얼굴이었다.
“두 분 다 처음이라 말씀드리는 건데 저 사기꾼일 수도 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하게 보세요. 도장은 어디서든 절대 함부로 찍는 거 아닙니다.”
*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유일한 단편영화 부문으로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접수된 작품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개최 이래 경쟁률이 가장 높았던 해이기도 했다.
이런 실정이니 와이드앵글 부문의 심사위원들은 굉장히 고심하고, 또 고심하여 초청작들을 선정한 상태였고.
이제는 영화제 개막에 앞서 최우수작품도 선정해야만 했다.
세 명의 심사위원과 열댓 명의 보조 심사위원단은 긴 타원형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꽤 격양된 분위기 속에서 회의를 진행 중이었다.
영화 미디어 연구소장 류봉수는 핏대까지 내세우며 강조했다.
“와이드앵글 부문에서도 대중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스타가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대중들이 단편영화에도 관심을 가진다고요!”
상업 영화에 비해 단편영화나 독립영화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류봉수는 이번 영화제에 출품된 한 작품을 감상하며 확신이 들었다.
이건 그간 나왔던 단편 영화들과는 다르다고.
그의 옆에 있던 은동 아트센터 총괄이사 지성미는 답답한 듯 답했다.
“그걸 누가 모릅니까? 그럴 만한 작품이 없으니 몇 달 동안 심사하면서 고심했던 거 아닙니까.”
류봉수는 가슴 언저리에 고구마가 꽉 끼어있는 느낌이었다.
“왜 없습니까! <투명한 사랑> 계속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지성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니, 소장님. 그래서 그 작품은 이미 초청하기로 결정되지 않았습니까.”
류봉수는 그것으로 절대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는 지금 최우수작품 선정 작으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성미는 기함하며 양손을 내저었다.
“그건 절대 안 된다니깐요.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그 작품 나쁘지 않아요. 아니, 저도 좋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거 대학교 졸업작품이라면서요. 길고 난다는 감독들 작품이 전 세계에서 들어왔는데 이제 작품 하나 갓 연출한 새내기한테 어떻게 최우수를 줍니까!”
“그만. 그쯤 합시다.”
그들의 언쟁을 막아선 이는 아시아 영화 협회 사무국장 구성근.
그가 앉아있던 의자는 구성근의 큰 풍채에 눌려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두 분의 말씀 모두 이해합니다. 저도 그 작품 인상 깊게 봤고요. 그런데 류 소장님. 지 이사님 말씀대로 분명 사람들의 반감을 살 겁니다.”
류봉수도 그들의 말엔 동의했지만, <투명한 사랑>은 그 반발을 무릅쓰고 자신들이 밀어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었다.
“그래도 제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사무국장님.”
원래라면 다수결로 처리하고 끝낼 일이었다.
그러나 구성근도 그 작품이 못내 아쉽긴 했다.
‘그 반발을 모두 상회할 이슈가 생긴다면 또 모를까.’
이건 지성미 이사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보조 심사위원단 중 한 명이 몰래 핸드폰을 만지다가 무슨 동영상이라도 재생시켰는지.
-우아아아아아!!
이상한 굉음은 스피커를 타고, 회의실을 감쌌다.
“어, 어이쿠! 이게 왜, 왜 이래!”
그는 깜짝 놀라 핸드폰을 바닥에 떨구곤 허둥지둥 주우려다 어처구니없게도 자신의 발로 슈웅 차버리고 말았다.
주인을 떠난 핸드폰은 유려한 폼으로 미끄러져 맞은편에 앉아있던 류봉수의 발끝에 닿았고.
류봉수는 자석에 이끌리듯 허리를 숙여 그 수상한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핸드폰 주인은 당황한 얼굴로 다급히 말했다.
“아! 그, 그게! 맨 위에 떠 있길래 보다가 잘 못 눌렀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불같은 질책을 기다리며 허리를 푹 숙이고 있던 그는 잠시간 시간이 흘러도 아무 일이 없길래 빼꼼 상황을 살폈다.
그런데.
류봉수의 입꼬리는 승천할 듯 올라가 있었고, 눈은 핸드폰 액정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상태였다.
그의 검은 눈동자엔 어떤 것이 비춰 보이고 있었는데 그건 한 여자가 양팔을 올린 채 기쁨의 환호를 지르는 모습이었다.
*
며칠 뒤 고시원 바닥에서 열심히 팔굽혀 펴기를 하던 나는 책상 위 진동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지이잉-. 지이잉-.
지역번호 051로 시작하는 전화였다.
응? 이 번호는 부산인데?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 초청팀입니다. <투명한 사랑> 출품하신 신바드님 맞으십니까?
얼떨결에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투명한 사랑>이 와이드앵글 부문에 초청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와이드앵글 부문이요?”
-예. 그리고 한 가지 더 전달해드릴 게 있는데 <투명한 사랑> 팀이 폐막식 레드카펫에 초청되셨습니다.
레드카펫.
전생에선 내 작품의 사람들이 그 끝자락도 밟지 못했던 곳이다.
그들이 서는 모습을 얼마나 보고 싶던 곳이던가.
“하, 이거 설마 보이스피싱 같은 건 아니죠?!”
전화기 너머로 짧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네. 아닙니다! 정말로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