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독보다 영화사 대표님-1화 (1/140)

#1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배우 서태원, ‘학폭 의혹’ 제기, 소속사 “확인 중”』

『서태원 측 학폭? 사실 아냐. “사실무근”』

『서태원, 학폭 추가 폭로. 일파만파』

『‘학폭 인정’ 서태원, 영화 ‘어드벤처’ 하차→활동 중단...“자숙하겠다”』

며칠 전부터 우후죽순 쏟아지던 기사들은 마침내 그 내용이 진실임을 밝혔다.

그 때문에, 한 시간 뒤 진행될 예정이었던 <어드벤처>의 제작발표회는 돌연 취소되었다.

『‘어드벤처’ 오늘(6일) 제작발표회 취소. 서태원 학폭 논란 여파』

기자들은 이 소식을 또 어떻게 알아냈는지 인터넷은 도배됐다.

무사히 개봉만이라도 할 수 있게 빌었건만.

진즉에 도착한 제작발표회장은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아니, 지하 주차장에 주차한 차에서 내리지도 못했다.

어느새 핸드폰엔 문자와 전화가 빗발쳐 기사를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지이잉-.

지이잉-.

그렇게도 같이 고생하던 이 과장.

그의 전화는 무시할 수 없었다.

“여보세요.”

-대, 대표님! 지금 회사로 항의 전화가 너무 많이 오고 있습니다!

내 속은 모래성처럼 부서지고 있었으나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순 없었다.

애써 태연하게 답했다.

“알겠어요. 우선 오늘은 퇴근해요. 이 과장.”

-예?!

이 과장이 어리둥절하게 되물었으나 말없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 주차장에 계속 있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에서였다.

핸들을 거칠게 돌려 주차장부터 빠져나왔다.

*

불륜, 마약, 폭행, 도박, 탈세 등등

연예계와 사건 사고는 끊을 수 없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런데 하필 이 시기에, 내 영화에 주연배우 과거가 발목을 붙잡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 대표. 그만 포기하자. 이제 어쩔 수 없다.”

신사역 사무실 근처 포차.

앞에 앉아있던 예정우는 연신 비워지는 내 잔을 채웠다.

그는 내 첫 영화의 사수였고, 제작사를 개업할 때까지 여러 방면으로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형님. 저 이제 어떻게 합니까.”

“뭘 어떡하긴 어떡해. 이번 영화는 포기하고, 다시 일어나야지.”

예정우의 말은 전혀 위로되지 않았다.

“어떻게 포기합니······까.”

순간 목구멍이 탁 막힌 것처럼 무언가 올라왔다.

“저 제 손으로 영화 만들고 싶어서 제작팀 막내부터 꾸역꾸역 올라와 PD 달고, 겨우 5년 전 제 이름 건 영화사 개업했습니다.”

울분 섞인 이야기를 듣던 예정우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알지 왜 모르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근데 왜! 제가 포기해야 합니까! 잘못은 그놈이 했는데 왜 내가 손해를 봐야 하고, 포기해야 하냐고요······.”

사무실 간판을 세울 때만 해도 내 꿈은 곧 이뤄질 거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대표의 삶은 전혀 녹록하지 않았다.

“형님. 저 지금 빚이 자그마치 20억입니다. 20억. 영화판 한 방 노리는 도박판이랑 다를 바 없다는 소리 많이 들어왔지만, 그렇게 생각하지도, 일하지도 않았습니다. 착실하게 남들보다 잠 줄여가며 열심히 살았고요. 이번 영화는 그 노력의 보상이라는 확신이 있었단 말입니다!”

속에 있던 이야기를 다 토해냈음에도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그럼. 어떡하냐. 주연배우가 양아치였다는데, 이건 네가 어떻게 할 수 있었던 일이 아니잖아.”

맞다.

캐스팅하면서 배우의 과거까지 캐 보진 않는다.

하물며 평소 행실이 안 좋다는 소문이 있더라도 연기만 잘하면 장땡이라는 사람들도 많다.

나조차도 그저 기가 막힌 시나리오와 배우의 필모그래피만으로 이 영화의 성공을 확신했으니까.

어느새 멍한 얼굴이 되어 예정우에게 중얼거렸다.

“그 새끼. 곧 군대 간답니다. 어드벤처는 평생 빛도 못 보게 생겼는데······. 형님. 이 이상은 제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에요.”

그쯤 말하자 급하게 먹던 술이 갑자기 훅 올라왔다.

“회생 불가라는 말입니다······.”

정신이 혼미해져 중얼거리곤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일어났다.

“야! 신 대표! 인마! 어디 가!”

희미하게 들리는 예정우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포차를 빠져나왔다.

*

포차 바깥은 새하얀 눈의 왕국이었다.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가는 와중에 입에선 허연 입김이 폴폴 나왔지만.

술에 너무 취했는지 추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살면서 이런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다.

끝이 없는 생각의 꼬리라는 걸 알기에.

하지만 절대라는 말은 없는가 보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내가 영화사를 개업하지 않았다면.

내가 영화를 하지-!

그때, 얼어있던 바닥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는.

“어, 어!”

쿵!

미끄러져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정말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누워서 본 하늘에선 무수히 많은 하얀 점들이 나를 향해 내리고 있었다.

그 점들은 내 눈으로 입으로 마구 들어와 녹았다.

그런데 어째 넘어지고 나서부터 뒤통수에선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 뜨끈한 느낌은 점점 등을 맞닿은 땅바닥으로까지 이어졌다.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의식까지 희미해지는 것 같아 정신을 차리려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아 꺼냈다.

이 담배도 참.

처음부터 배우질 말았어야 했다.

오늘따라 후회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간신히 담배를 입에 물었으나 불을 붙이진 못했다.

라이터를 들고 있던 손이 풀썩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담배도 따라서 또르르 떨어졌다.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

“야! 신바드! 너 정신 안 차릴래?! 이거 왜 준비 안 해놨어!”

응?

방금까지 같이 술잔을 기울이던 예정우가 동그란 안경을 쓴 얼굴을 눈앞까지 들이밀곤 잡아먹을 듯 소리치고 있었다.

길바닥에 누워 자던 나를 찾기라도 한 건가?

내가 멍하니 있자 그는 내 얼굴 앞으로 손뼉을 쳐대기 시작했다.

짝짝!

“이게 오늘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너 어제 술 많이 먹었냐?!”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 머리를 도리도리 돌려대니 예정우가 더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왜 그래? 어디 아파?! 아프면 안돼에! 내가 다 해야 한다고!”

그런데 자세히 보니 흰머리가 희끗희끗하던 예정우의 얼굴이 이상하다.

되게 젊어졌다.

이질적인 기분이 들어 그의 볼을 잡고 주욱 늘어뜨렸다.

“아 아야! 이 좌시기 지짜! 아! 아파!!”

그 볼을 퐁 하고 놓자 볼이 흔들리며 제자리를 찾아간다.

“꿈이 아닌가?”

“꾸움? 꿈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너 오늘 끝나면 죽었어! 아! 빨리! 저기 캐노피 쳐야 한다고!”

분명 나는 빙판길에 넘어졌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던 것 같은데······.

그때,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이상하다.

방금까진 눈이 내렸는데?

예정우는 까치 머리에 비를 한 방울 톡 맞더니 좀 전까진 장난기 넘치던 얼굴이.

“좆됐다.”

자신의 말과 정확히 일치하게 뒤바뀌었다.

쏴아아아-!

빗방울은 순식간에 거세졌고.

예정우의 뒤로 보이던 영화 촬영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귀에 꽂고 있던 무전기엔 무전이 빗발쳤다.

-정우! 바드! 여기 빨리 캐노피! 롤 비닐! 우비!

알아서 움직여주길 바라는 염원 담긴 무전에도 예정우는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모습을 보니 떠오르는 건.

없었다.

그저 오랫동안 배어 온 습관에 따라 몸이 움직일 뿐.

눈앞에서 알짱거리며 각기 다른 크기의 캐노피 중 어느 것을 골라 필까 고민하는 예정우에게 말했다.

“에휴. 형님. 탑차에서 롤 비닐이랑 우비, 우산 꺼내서 스탭들 나눠주세요. 저는 캐노피치고 올게요.”

“어? 어어!”

15년 전 막내 시절에나 끌고 다녔을 법한 1톤 탑차 위로 풀썩 올라가 한구석에 두꺼운 고무줄로 감아 세워둔 캐노피를 모두 꺼냈다.

총 네 개 중 큰 놈 하나를 번쩍 어깨에 들쳐 매고, 카메라 장비가 모여있던 곳에 재빨리 친 다음 또 다른 큰 놈 하나는 조명 장비 위에 쳤다.

“오오! 고마워! 바드!”

비싼 장비가 많은 촬영팀과 조명팀이 감사 인사까지 건네는 걸 보니 한시름 논 것이지만, 아직 할 일은 남았다.

작은놈 두 개는 동시에 번쩍 들고 가 근처에 편 다음 흩어져 있던 각 팀이 짐을 놓고 잠시 대기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

캐노피 네 개를 혼자 다 치고 오는 10분 동안에도 예정우는 허둥거리고 있었다.

“형님. 막 수건도 꺼내서 스탭들 주셔야죠.”

“아! 그게, 개수 세야 하는데!”

이 형이 이렇게도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었나.

“장비 물먹으면 막 수건값보다 더 나옵니다. 형님.”

나는 막 수건 뭉치를 탑차에서 꺼내 온 스태프들에게 뿌렸다.

스태프들은 마치 돈뭉치라도 받아 가듯 숭덩숭덩 가져가 자신들의 몸과 장비들을 닦아댔고.

그렇게 한바탕 비 소동은 일단락됐다.

비가 오는 급박한 상황이라 얼떨결에 일을 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기분이 싸하다.

비가 멈출 때까지 잠시 촬영이 중단된 틈을 타 엉덩이에 손을 얹어 더듬더듬 확인했다.

제작팀 시절 항상 바지 뒷주머니에 일일 촬영 계획표(당일 촬영 분량의 계획표와 콘티를 정리해둔 인쇄물)를 넣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역시.

접혀 있던 일촬을 꺼내선 축축한 손으로 조심히 펼쳤다.

그런데.

[파노라마_감독 노흥기.]

파노라마는 15년 전 내가 제작팀 막내로 처음 영화를 시작했던 작품이다.

“바드야. 힘들어 뒤지겠다. 담배 콜?”

한가로이 불이나 부치러 가자는 예정우의 볼을 다시 한번 주욱 늘어뜨렸다.

“아아!”

이 느낌은 진짜다.

진짜로 영화를 시작한 그 시절로 돌아와 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