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멈추고 다시 대결을 시작했다.
화경의 고수인 두 사람의 대결답게 그들의 반경 오장 안에는 휘몰아치는 두 사람의 내기가 충돌하여 성한 곳이 없었다.
두 사람은 이각(30분) 이상 전력을 다해 부딪쳤는데도 승부가 갈리지는 않았다.
나와 부회주 모두 작은 상처로 인한 선혈과 땀으로 얼룩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내가 초절정에 오른 이후로 날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사람은 회주님 말고는 너 뿐이다. 대단해."
"그 회주란 자는 너보다 많이 강한가?"
"내가 화경에 오른 뒤로는 한번도 겨루어 본 적 없지만 회주께서는 화경에 오른지 오년은 넘으셨으니 아마도 내가 회주와 겨룬다면 당연히 지겠지."
'15호도 상대하기 쉽지 않았는데.. 더 강하다니.. 이 상태서 회주와 바로 대결을 해서 이길 수 있을까? 15호라도 빨리 끝내서 체력을 아껴둬야겠다.'
난 검을 쥐는 자세를 바꾸고 내기를 끌어올렸다.
나의 변화를 느끼고 부회주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까지 전력을 다한 게 아니였구나? 날 상대로 감히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니 후회하게 해주마."
내가 부회주와의 싸움을 팽팽한 승부로 가져 갔던 건 그의 무공을 최대한 끌어 내보려고 한 것이었다.
'이제 네 무공은 다 봤으니 마무리를 지어야겠어.'
나는 부회주가 쓰는 무공을 똑같이 사용하며 상대했다.
"그건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네 놈의 무공을 쓸 수 있다고."
부회주는 반대로 나의 무공을 쓰면서 나를 상대하였다.
하지만 나는 이각동안 모든 무공을 보여주지 않았다.
특히 내가 익힌 무공 중 가장 강력한 무공인 무영검법은 쓰지 않았기에 나는 비장의 한 수를 숨기고 있었다.
그걸 모르는 부회주는 날 충분히 내 무공을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조금씩 무공을 빠르게 펼치고 빈틈을 파고들며 정신없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비장의 한 수인 무영검법을 선 보이자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의 무영검법에 실린 위력이 범상치 않음을 느낀 부회주가 자신의 전력을 다해 막았으나 나의 검은 그대로 그의 검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의 몸에 나의 검이 닿기 직전, 부회주가 몸을 비틀어 피하여 나의 검은 부회주의 왼쪽 팔을 스쳐 지나갔다.
"으악.!"
잠시 후, 그의 왼쪽 팔에서 피분수가 뿜어나오자 통증으로 인해 비명소리를 지른 후 정신을 차리고 급히 점혈을 하였다.
그는 자신의 사라진 왼팔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한거지? 난 분명 너의 검을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비장의 한 수인 무영검을 받아내고도 살아남은 자는 네가 처음이다. 확실히 화경의 경지는 다르긴 하군. 다시 한번 검을 써야겠구나."
내가 다시 검을 들고 그에게 천천히 다가서자 당황하는 부회주.
그는 나의 검에 당하고 겁을 먹었는지 더 이상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뒷걸음치며 물러섰다.
"설마 이대로 도망가려고? 아까 그 자신만만한 부회주는 어디 간거지?"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당장 저 자를 죽여라."
부회주는 뒤로 빠지며 자신의 부하들에게 나를 죽이라 명을 내렸다.
그들도 나와 부회주의 대결을 지켜봤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어서인지 마지못해 공격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놀아줄 시간이 없었기에 가차없이 그들을 베어버리며 전진을 했다.
거의 그들을 제거하고 부회주 근처에 다가섰을 때,
황궁 쪽에서 걸어내려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나에게 내기를 발출할 정도면.. 저자가 회주구나.'
멀리서 천천히 걸어왔지만 그의 온몸에서 풍겨오는 존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부회주를 처음 봤을 때처럼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가 내 앞에 섰을 때 그 자에게 말했다.
"당신이 신무림회의 회주인가보군요. 이제야 겨우 당신을 만나게 되었네요."
그 자가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오랜만이구나. 18호."
"아니..대장님이 어떻게 이곳에.. 회주가 대장님이었어요?"
내가 놀란 표정으로 말하자 그가 미소를 띄우며 말하였다.
"그래. 네가 놀랄만도 하지. 신무림회는 내가 만들었다. 나는 큰 계획만 세우고 나머지는 15호에게 맡겼지. 생각보다 15호가 능력이 괜찮았다. 황궁도 장악하고 무림에 고수들도 회유하고 그런데 유독 너와의 승부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더구나."
나는 놀란 마음을 진정하며 그에게 물었다.
"이번일도 대장님이 계획한 일인가요?"
"널 회유할려고 한 건 내 계획이었으나 네 여인을 납치한 것은 15호가 알아서 한 일이지."
"왜 이런 일을 벌일 거죠? 대장님은 권력에 관심이 없으셨잖아요."
"내가 권력 욕심이 없다고 누가 그런던가? 그건 네 생각 아닌가? 난 단 한번도 아버지처럼 살고 싶진 않았다."
"대장군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군부에서 아버지를 만났었나보군. 나와 많이 닮아서 눈치챘겠지."
"왜.. 그 분처럼 살고 싶지 않으시단 겁니까?"
회주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버지는 황실에 매번 이용만 당했으니까 내가 청나라 황실과 연을 맺어 구해주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이미 전장에서 돌아가셨겠지. 그래서 나는 황실과 무림을 새롭게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어찌됐건 난 대장님을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 생각도 못했네요."
"그래. 나도 무경원에서 널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너와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람 인연이란 알 수가 없구나."
"대장님과 싸우고 싶지는 않지만 가는 길이 다르니 어쩔 수 없겠죠?"
"그래. 너와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었지만 우리 둘은 서로 너무 멀리 온 거 같다. 이제 우리 둘 중 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거 같구나."
나는 대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은 뒤를 돌아보며 부회주에게 말을 했다.
"태율아, 내가 이기든 지든 연화 소저는 풀어주거라. 그리고 다시는 여인을 인질로 삼거나 이용하지는 말거라."
대장의 말에 못마땅하단 표정으로 부회주가 말했다.
"회주님, 굳이 쉬운 방법이 있는데 왜 그걸 포기하고 전면 승부를 하시려 하십니까? 그리고 연화 소저를 제가 납치해 오지 않았으면 18호가 여기까지 혼자 왔겠습니까? 그녀는 놓아줄 수 없습니다."
그의 말에 대장의 표정이 굳어지며 말했다.
"내가 너에게 몇번을 말했잖느냐..정도로 가는 것이 더 빠른 길이라고.. 아무래도 너에게는 신무림회를 맡길 수 없을 것 같구나."
대장의 말에 부회주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회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대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무영아, 내가 너와 겨루기 전에 태율이를 정리하고 와야겠구나."
"그러시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대장은 천천히 부회주에게로 다가갔다.
"그동안 고생했다. 네가 처음 잘못된 길에 들어섰을 때 바로 잡아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구나. 이제는 편히 쉬거라."
부회주는 그 말 뜻을 이해했는지 소리를 지르며 뒤돌아 도망쳤다.
"살려주세요. 제발.."
하지만 대장의 손을 떠난 검은 가차없이 부회주의 등 뒤를 뚫고 앞 가슴으로 튀어나왔다.
쿵.
부회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쓰러지며 생을 마감했다.
부회주를 정리한 대장은 나에게로 천천히 걸어와 말했다.
"혹시 몰라 미리 말해두마. 네가 날 이긴다면 연화 소저는 비사굴 안쪽에 네가 있었던 동굴에 있으니 데려가도록 해라. 네가 지더라도 그녀는 풀어줄테니 걱정말거라. 이제 방해 요소는 사라졌으니 제대로 대결을 시작하자구나."
"네. 대장님, 시작하죠."
우리 두 사람은 생사대적을 만난 듯 치열하게 부딪쳤다.
'대장과는 전생에도 대결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실력 차이가 많이 나서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라 여겼는데 지금이라면..'
대장과의 승부는 길게 끌면 끌수록 오히려 내게 더 손해라는 생각에 초반부터 무영검법을 꺼내 들었다.
대장은 나의 검에 실린 위력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고 검면으로 흘려 보내었다.
하지만 네가 검을 비틀 때마다 대장의 검과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무영검법의 매서움을 보고는 대장이 말했다.
"이게 무슨 검법이지? 한번도 보지 못한 검법이구나."
"제가 창안한 무영검법입니다."
"훌륭하구나. 내가 만든 검법과 정면 대결을 허면 재미 있겠구나."
"그 검법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나의 검은 무상검이다."
그렇게 말하며 대장이 자신의 무상검법을 펼치었다.
나도 뒤질세라 무영검법으로 무상검에 맞섰다.
무영검과 무상검이 부딪치는 순간 그 진동으로 인해 반경 이십장 내에 있던 모든 이는 내기가 폭발하여 내상을 크게 입고 피를 흘리고 쓰러졌다.
나와 대장의 검 역시 폭발력에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두 사람의 검에는 손잡이만 남고 사라졌는데 기로써 검을 만들어냈다.
"너도 심검을 터득한거냐? 놀라워.. 이 경지에 오른 이는 내가 유일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승부의 끝을 내보죠."
나와 대장은 심검을 들고 날아올라 허공에서 강한 충돌을 했다.
콰광쾅쾅.
심검의 강력한 충돌한 후 두 사람은 아래로 동시에 떨어졌다.
서로를 마주보며 서 있던 나와 대장은 서로에게 미소를 보이고는 나는 오른쪽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 앉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신무림회 사람들은 자신들의 회주가 승리를 했다고 생각하여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이내 회주의 왼쪽 가슴에서 뿜어져나오는 핏물과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다가 앞으로 고꾸라지는 회주를 보고 상황이 바뀌었음을 눈치챘다.
신무림회 사람들은 신처럼 생각하던 회주를 꺾은 나를 두려워하여 부상당한 몸이지만 아무도 덤비는 자가 없었다.
회주는 그대로 목숨을 잃었고, 나는 억지로 버텨내며 오른쪽 가슴을 점혈한 후 비사굴 쪽으로 걸어갔다.
회주의 말대로 비사굴에 들어가자 그 안에서 연화 소저가 혈도를 점혈당해 움직이지 못하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혈도를 풀어주며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좀 늦었죠.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어요."
"무영 대협. 오실 줄 알고 있었어요. 대협을 기다렸어요."
그 말과 함께 나를 꼭 껴안았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광동성으로 돌아가면 우리 같이 은거해서 평범하게 살아가요."
"좋아요. 전 무영 대협과 함께라면 어디든 좋아요."
*
광동성으로 돌아온 나는 현무회 수뇌부를 모아놓고 무림을 떠나 은거를 하겠다는 말을 했다.
다들 남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나의 굳은 결심에 보내줄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웃으며 보내주었다.
나를 이어 2대 회주에 풍현이 추대되어 현무회를 이끌었다.
신무림회는 모든 결정을 내리던 회주와 부회주가 동시에 사라짐으로 인해 유지되지 못하고 해체 되었고, 결국 현무회가 전 무림을 관리하게 되었다.
*
그로부터 5년 후,
태산 부근에 어느 한적한 산골짜기.
나는 땀을 흘리며 베어온 나무를 조각내 땔감으로 만들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빨리 밥 먹으러 들어 오래요."
나를 쏙 빼다 닮은 4살짜리 나의 딸아이가 방긋 웃으며 내게 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 지금 가마."
방에 들어가자, 연화가 맛있는 밥상을 차려놓고 날 기다리고있었다.
"여보, 시장하실텐데 얼른 식사하세요."
"당신도 얼른 같이 먹어요."
우리 세 식구는 밥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대화를 나누었다.
"여보, 내일 가면 얼마나 머물다가 오시나요?"
"이번에 가면 세달 정도 있다가 오게 될 거 같구려. 미안하오."
나의 말에 연화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여보에게 부탁한 일인데요. 잘 다녀와요."
"당신에게도 미안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게 되서 소정이에게도 미안하구나."
"소정이 걱정은 하지말아요. 근처에 든든한 삼촌들이 두명이나 있는데요. "
"그럼 내 두 사람에게 잘 말해두고 갈테니 혹시 시킬 일이 있으면 그들에게 바로 이야기해요."
"네. 걱정말아요."
나는 다음날 떠나기 전 근처에서 살고 있는 예현과 석견을 만나 연화와 소정을 부탁하고 떠났다.
예현과 석견이 이곳에 함께 살게 된 건 내가 은거하려 할 때 그들이 자신들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데려와 근처에 집을 짓고 살도록 했다.
한참동안 우리집으로 들락날락 거리더니 일년전 산골에 사는 처녀들을 만나 두 사람 다 가정을 꾸린 뒤로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정을 돌보는데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기에 소정이를 자신들의 딸처럼 대해줬기에 안심하고 떠날 수 있었다.
다음날 내가 떠나고 소정이가 연화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어디 가는 거에요? 오랫동안 못 오세요?"
"그래. 아버지는 네 동생을 만나러 가시는 거야. 전에 내가 말한 적 있지? 너에게는 작은 어머니가 있고 네 남동생도 있다고. 아직까지 그 작은 어머니가 맡고 있는 일이 있어서 못 오는데 그게 정리되면 이곳으로 이사를 오실거야."
"와! 그럼 남동생도 같이 오는 거죠? 신난다."
"그래. 오게 되면 사이좋게 잘 지내야 된다."
나는 하오문에 도착하여 초아를 찾았다.
초아가 나를 보고 달려와 안겼다.
"보고싶었어요."
"나도 보고싶었어. 잘 있었어?"
"네.. 무혁이가 당신을 많이 찾아서 그거 달래주느라 힘들았어요."
"무혁이는 지금 어디에 있어?"
"안에 있어요. 무혁아, 아버지 오셨다."
그 소리에 2살짜리 내 아들 무혁이가 아장아장 걸어나왔다.
"아빠다. 아빠."
"그래. 우리 무혁이 잘 지냈어?"
나는 아들을 품에 끌어안았다.
"여보, 나도 안아줘."
초아가 나와 무혁이 사이로 끼어들어 끌어안았다.
한참동안 우리 세 사람은 함께 부둥켜 안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자식까지 낳아 보니 전생에 알지 못한 감정을 매일매일 배워가네요. 다시 살게 해줘서 고마워요. 저승사자님.'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