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초아
"상관 총관.. 당신은 초아를 위해서 그랬다고 하지만 이 상황을 초아가 알게 된다면 과연 그대에게 고마워 할까요?"
그 때 내실로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아니..초아가 어떻게..'
내실로 들어온 초아를 발견하고 연화 소저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초아야!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거야? 잘 지냈어?"
"그래. 연화야.. 너도 잘 지냈지?"
초아와 눈이 마주친 나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무영아, 미안해. 내가 수하 단속을 제대로 못해서 너에게 피해를 줬네."
"아니야. 초아야..그리고 황성에서 고마웠어."
초아는 옅은 미소를 지은 후 내게 말했다.
"그래. 너와는 따로 이야기하고 지금은 상관 총관과 먼저 이야기를 해야겠어."
"그렇게 해."
초아는 상관 총관의 앞으로 가서 그에게 말했다.
"내가 이곳에 없는 사이 총관이 주제 넘은 행동을 너무 많이 했더군요. 그리고 특히 이번 일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라서 저도 어쩔 수 없군요. 마지막으로 할 말 있어요?"
초아의 차분하지만 냉정한 말투에 상관 총관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했다.
"문주님이 되신 것 감축드립니다. 제가 판단을 잘못하여 문주님과 하오문 전체에 피해를 끼쳤습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초아가 하오문의 문주가 되었구나.. 초아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운이 달라진 느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일까?
"총관이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있으니 최대한 고통없이 보내줄게요."
"감사합니다. 문주님."
잠시 그를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초아.
이내 표정을 감추고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잘가요."
초아는 자신의 가슴쪽에서 비도를 꺼내어 상관 총관의 심장을 찔렀다.
워낙 빠르고 부드럽게 들어가 그가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순식간에 상관 총관은 절명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이 나쁘지 않았는지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초아는 밖에 있는 하오문 제자를 불러 상관 총관의 시신을 수습해 나가게 했다.
마무리를 하고 우리에게 다가온 초아에게 내가 말했다.
"총관과 오랜 기간을 함께 했었는데.. 괜찮아?"
"난 괜찮아..어차피 총관은 이런 상황을 각오하고 한 일이니..
그도 나를 많이 원망하진 않을거야."
"그래.. 그런데 네가 하오문의 문주가 된거야?"
"어.. 최근에 그렇게 되었어."
"네가 예전부터 문주가 되고 싶어했었다는 거 알아. 목표를 이루었네. 축하해."
"그래. 고마워."
연화와 영경도 초아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나서 연화와 영경은 자연스럽게 나와 초아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며 밖으로 나갔다.
"초아야, 너에게 묻고 싶은게 있어.."
"그래. 말해봐."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그녀에게 물었다.
"나 얼마 전에 오독교 교주를 만나서 알게 되었어. 그 춘약에 해독제는 없다는 것을.."
"그래. 해독제는 없었어. 그게 궁금했었어?"
"초아야, 전에 내가 오독교에서 일을 물었을 때 아무 일 없다고 했잖아.. 왜 그런 거야? 내가 너의 순결을.. "
초아가 내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그 일은 왜 갑자기..이미 지나간 일이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어떻게 그게 그냥 신경쓰지 않으면 될 일이야. 나는 너에게 사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나가버렸는데.."
초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 때 널 구하기 위하기 위해 내 순결을 너에게 준 것도 내 선택이었고,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것도 내 선택이야. 그러니 넌 사과할 것도 없고 그것 때문에 나에게 미안해 하거나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거야."
그녀의 차가운 말투에서 나에게 점점 멀어지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생각이 들자 너무나도 가슴이 아려왔다.
슬픔이 가득 차 있는 그녀의 눈빛.
나도 모르게 초아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버렸다.
"내 앞에서는 너무 강한 척 안해도 돼. 초아야."
나의 말에 울음을 터지며 흐느껴 우는 초아.
내 품 속을 적시는 초아의 눈물.
'그동안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생각에 눈물이 내 빰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울음이 참으며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며 그녀를 달래 주었다.
한참을 흐느껴 울던 그녀가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는지 울음을 그치고 말했다.
"왜.. 갑자기 마음을 약해지게 해서 날 울리고 그래.. 문주가 되고나서 독해지려 했는데.."
"초아야..지금 이 모습도 너고, 밝은 모습도 너고, 차분하고 냉정한 모습도 모두 너야. 그러니 너무 강한 모습만을 보이려고 애쓰지마. 그리고 내 앞에서는 네가 편한 모습 그대로 보여줬으면 좋겠다."
나의 말에 또 다시 눈시울이 붉어지는 초아.
그녀의 눈망울에 고여있는 눈물을 닦아주다가 나와 초아의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의 얼굴을 향해 다가가 입맞췄다.
일각이 지나고 나서야 서로의 얼굴에서 떨어졌다.
떨어지고 나니 민망한 지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흠흠..이건 실수 인거야. 서로 잊자."
부끄러운 듯 헛기침을 하며 말하는 초아에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실수 아니야. 초아야. 나 널 좋아하고 있어."
초아는 나의 말에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라고? 밖에 있는 연화는 어쩌고 나한테 고백이야."
"연화 소저도 좋아해. 하지만 너도 좋아."
"뭐야! 지금 양다리라도 걸치겠다는 거야?"
차가운 표정과 살짝 화난 음성으로 말하는 초아를 보고 나는 말했다.
"그런게 아니라..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고.. 두 사람이 똑같이 좋아..그래서 누구 한명을 선택하기가 힘들어."
"우리 무영이가 아주 욕심이 넘치는구나. 한 사람만 좋아하는 거로는 충분치 않은 거야?"
"나도 내가 이러면 안되는 걸 아는데.. 연화 소저를 좋아하는 마음과 너를 좋아하는 마음이 각각 너무 커져서 혼란스러워.."
내가 진심 어린 표정과 말투로 말하자 초아도 조금은 표정이 풀어지며 말했다.
"서로를 먼저 좋아한 건 연화와 너이니까 내가 빠져주는 게 맞아. 그래도 네 말을 듣고나니 기분은 좋네."
"기분이 왜 좋은데?"
"항상 널 좋아하면서도 나 혼자서 너를 좋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네가 연화와 날 똑같이 좋아한다니까 기분이 좋아졌어.."
그 말을 하며 미소를 짓는 초아.
미소짓는 모습을 보니 초아가 더 아름다워 보였다.
"미안해. 그 때 네가 나에게 얼마나 잘해줬는데도 네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서.. 지금도 너에게 혼란만 줘서.."
"난 괜찮으니까..연화에게 더 잘해줘. 난 하오문 문주가 되서 일이 정말 많아졌어. 엄청 바쁘다고.. 그러니 이제는 네 생각 많이 하지 않을거야."
초아의 마지막 말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하지만 그녀를 선택할 수도 없었기에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하오문은 널 도울 수 없을 거 같아."
초아의 말에 내가 물었다.
"왜? 내가 고백해서 불편해서 그러는 거야?"
나의 말에 초아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그게 아니라 최근에 신무림회에서 하오문에 너와 현무회에 대한 정보를 달라고 의뢰를 해왔어."
"신무림회에서 우리를?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 설마 정보를 준거야?"
초아는 내 머리를 살짝 쥐어 박으며 말했다.
"이 바보야, 내가 문주인데 그런 의뢰를 받아들였겠니. 다만 그냥 거절할 수 없어서 중립을 선언했어. 너희 쪽에도 신무림회에 대한 정보를 일절 주지 않고 그쪽에도 너희 정보를 주지 않겠다고.."
"아! 그렇구나. 잘했네. 고마워."
"그럼 이제 정보를 다른 곳에서 얻어야겠네."
나의 말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야겠지. 그래도 가끔 저번 황성에서처럼 내가 개인적으로 도와줄 수도 있지."
"나야 고맙기는 하지만 너와 하오문이 위험하지 않겠어?"
"그러니 아무도 모르게 조심히 도와줘야겠지. 네가 정말 큰 위기에 빠지지 않는 한 나서지 않을 거야. 이제는 네가 너무 강해져서 그런 위기도 오지 않을 거 같지만 말야."
초아의 말에 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항상 멀리서 나를 지켜보며 위기에서 구해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구나. 고마워."
"그럼 마지막으로 신무림회에 대한 정보를 줄게. 이건 하오문문주가 아니라 네 친구로써 주는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 당연하지. 말해봐."
"신무림회 회주가 누군지는 수뇌부 밖에 모르는 듯 해. 내가 말한 수뇌부는 네가 제거한 칠왕부터니까 그를 아는 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돼."
"누구지.. 황궁 사람일까? 아니면 사도련? 무림맹?"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건 확실해.. 곧 너를 찾아 올 거야. 아니면 네가 그를 찾아갈 지도 모르고.. 또한 들은 바로는 너와 비슷한 경지인 거 같아."
"그 자도 화경이라고? 그건 어떻게 알게 된거야?"
나의 말에 초아가 웃으며 말했다.
"무림에서 홀로 화경에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너와 비슷한 경지의 고수가 있다니까 기분이 상한 표정이다. 호호."
"그런 거 아닌데.."
"들은 바로는 삼대봉공과 회주가 대결해서 회주에게 완패를 당해서 삼대봉공이 진법도 같이 연마하면서 회주와 다시 승부를 겨루어 보려고 한다고 들었어."
"나도 삼대봉공과 겨룰 때 그 이야기를 들어본 거 같다. 진법을 익힌 이유가 자신들의 회주와 겨룰 때를 대비해서 익힌 거라고.."
"삼대봉공 모두 초절정의 끝자락에 오른 자들인데.. 세 사람이 완패했다면 화경 고수라고 밖에 볼 수 없지 않을까? 그래서 그렇게 결론을 내렸지."
초아의 말을 듣고나니 신무림회의 회주가 나와 비슷한 경지거나 더 우위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대봉공이 멀쩡한 상태에서 합격진까지 쓴다면 내가 쉽게 제압할 자신이 없는데.. 네 말대로 회주가 그들을 쉽게 제압했다면 나보다 더 우위에 있을 수도 있겠다."
내가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말하자 초아가 말했다.
"같은 화경에서는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그리고 당장 싸우는 것도 아닌데 너무 기죽지 말라고.."
초아의 말에 기운을 얻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싸우기도 전에 겁을 먹으면 안되지. 그런데 초아야.. 앞으로는 우리 자주 볼 수 있는거지?"
나의 말에 초아의 볼에 홍조가 피며 말했다.
"그래. 자주 네 앞에 나타날테니까 가끔 보고싶어도 참고 있어."
"그래..알겠어."
"이제 넌 나가보고 연화 좀 불러줘."
"연화 소저를?"
"둘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알았어."
나는 밖으로 나가 연화 소저를 부르고 초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었다.
두 사람은 반시진이 지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나누는 거지? 싸우는 건가?"
불안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나.
영경은 그런 나를 보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둘이 무슨 이야기 나누는지 궁금하지?"
"어.. 네가 살짝 들어가 볼래? 혹시 싸우나 보고 내게 알려줘."
"쯧쯧.. 그러게. 왜 양다리를 걸쳐 가지고.. 내가 갑자기 저기 들어가서 두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냐.. 설사 두 사람이 싸우더라도 살아남은 한 사람을 택하면 되겠네."
"무슨 막말을 하는거야.. 살아남은 사람을 택하라니.."
"내가 저 사이에 끼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까지 저 사이에 끼었으면 에휴...숨 막혔을 거 같다."
"너는 풍현이와 잘 되어가고 있는 거야?"
"왜 갑자기 그게 궁금한데.. 나에게 관심 끄셔."
그렇게 내게 말은 했지만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영경.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