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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무사의 귀환-108화 (108/114)

"그대가 살왕님에 대해 알고 있다니 놀랍구려. 하지만 난 그 분에 절기를 완벽히 익히지 못하여 그대의 기대에는 못 미칠 것 같구려. 허허."

혈비의 말을 들은 채홍이 웃으면서 말했다.

"혈비님 또한 초절정 고수시고 살수들 사이에서는 살아있는 전설이신분이지. 혈비님, 겸양이 너무 지나시치네요. 호호."

"좋게 봐줘서 고맙소이다."

채홍이 마지막으로 소개한 사람은 큰 대도를 들고 있는 자였다.

"이분은 하북팽가의 가주이신 하북도왕이시다.."

'하북팽가의 가주까지 신무림회에 속해있다니..'

"하북팽가의 도법에 대한 명성은 예전부터 익히 들었습니다."

나의 말에 팽문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가문의 도법을 좋게 봐주니 고맙소. 이런 자리에서 만나서 안타깝기는 하지만 대결에서 하북팽가의 도법이 어떤 건지 확실히 보여주겠네."

"네. 기대 하겠습니다."

'다섯명 전부 보통 고수가 아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한 지역의 패자로 군림할 만한 자들이다. 이 다섯 사람은 삼대봉공을 상대할 때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곧바로 신무림회 육왕과 우리 세사람은 대결을 시작하려고 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시작하기 전 나는 연화 소저와 영경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채홍만 상대해요. 다른 이들은 내가 맡을테니..채홍은 절정고수지만 독에 능하여 두 사람이 상대해도 쉽지 않을 수 있어요. 그리고 내가 살짝 어려움에 처해도 날 돕는다고 내 쪽으로 올 필요는 없어요. 난 충분히 저 다섯을 감당할 수 있으니 날 믿고 채홍만 제압해줘요."

나의 말에 영경과 연화 소저는 신뢰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악연을 끝내다

대결이 시작되자 아까 잠시 인사를 나눴던 고수들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듯이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

나와 직접적인 악연이라고는 오독교 교주와의 관계 뿐이라 다른 이들과의 대결은 조금 긴장감이 떨어져 있었는데, 그들의 눈빛을 보고 나도 그들과 대결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먼저 공격이 들어온 건 팽문호의 오호단문도였다.

전에 무림맹에서 팽문호의 아들인 팽소위와 진무 교관의 비무에서 하북팽가의 도법을 본 적이 있었기에 생소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팽소위 보다 더 뛰어난 고수이고 명문 세가의 가주 답게 그가 펼치는 오호단문도는 팽소위의 것보다 특별했다.

'만약 최근에 무경원에서 한단계 더 높은 경지로 올라가지 못했다면 팽가주의 오호단문도에도 크게 고전할 뻔 했구나.'

하지만 무경원에서 화경에 경지에 오른 뒤로는 상대방의 무공에 대한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 생겨서 초식의 다양한 변화 속에서도 초식의 방향과 궁극적인 움직임이 시야에 들어오기에 팽문호의 오호단문도를 큰 움직임 없이 제자리에서 가벼운 동작만으로 피하고 있었다.

"대단하군. 팽가주의 오호단문도를 저렇게 쉽게 피하다니..그럼 나의 칠상권도 한번 상대해 보시요."

팽가주를 이어 공격에 들어온 건 공동파의 광무자였다.

그의 칠상권은 대성하였기에 파괴력이 남달랐다.

또한 칠상권은 넓은 범위를 공격하는 무공이었기에 오호단문도를 상대할 때처럼 제자리에서 막아낼 수 없었다.

하여 나는 칠상권의 위력이 내몸에 닿기 직전 보법을 이용하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무경원에서 화경에 오른 이 후로 달라진 게 보법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동안 익혔던 모든 보법과 경신술이 하나가 되어 있었다.

"아니.. 사라졌다. 어디로 간거지?"

광무자는 자신의 칠상권이 적중했다고 생각한 순간 잔상만 남고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진 나를 찾으려 두리번 거렸다.

팽문호 역시 나를 자신의 시야에서 놓치고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 때 사신회의 회주 혈비가 소리치며 뛰어들었다.

"그자는 두 사람 머리 위에 있소."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나의 검을 혈비가 뛰어들어 막으며 말했다.

"검마와 권왕을 동시에 제압했다는 말을 듣고도 믿기 힘들었는데 지금보니 그 이상의 실력을 지니고 있구려."

두 사람은 아직까지 자신들 머리 위에서 나타난 나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 위치에서 내 머리로 순식간에 이동이 가능하지..이형환위인가?"

"이형환위.. 그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움직이죠."

경신술의 최고 경지인 이형환위 수법이 화경에 오른 뒤로는 자연스럽게 쓸 수가 있었다.

혈비까지 대결에 뛰어들어 삼대일의 승부가 되었지만 전혀 불안하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세 사람이 합격술로 나를 공격해왔지만 이형환위의 움직임에 모든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그러자 혈비가 자신의 비기를 꺼내들었다.

사신기예 무흔장.

검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뒤 표홀한 움직임으로 갑자기 들어오는 장법으로 상대의 숨을 끊는 일격필살의 수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생에서 혈비와 싸워보지 않았다면 막아내지 못했거나 막아내도 내상은 꽤나 입었을 만한 수법이었다.

하지만 이미 어떻게 초식이 진행되는지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는 허초를 동반한 무공은 오히려 상대에게 기회를 줄 뿐이었다.

나는 일부러 그의 검을 바라보는 척 하며 준비한 후 검으로 나의 가슴을 노리고 들어오는 그의 팔을 잘라버렸다.

"으악.."

가장 자신 있는 수법이었기에 무조건 성공할 거라 생각했던 혈비는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에서 뒹굴거리는 자신의 팔을 보고 멍한 표정이었다.

'전생에는 이 자 하나를 상대하다가 목숨을 잃었는데 이제는 그와 비슷한 고수 여럿을 상대로도 우위에 서 있다니 검회가 새롭구나.'

그런 그에게 개방의 취선걸왕이 다가와 잘린 팔 위를 점혈한 후 나에게 공격을 할 자세를 잡았다.

"그대라면 우리가 모두 함께 상대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 같소. 내 항룡십팔장을 받아 보시요."

취선걸왕은 취선보를 쓰며 취한 자처럼 휘청거리며 어느새 내 앞까지 다가왔다.

항룡십팔장을 상대로 현무열화신공을 펼쳤다.

장법으로는 최고 경지의 무공이었고 강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들어있는 무공으로 취선걸왕은 거의 대성 직전이었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나의 현무열화신공을 상대하면서 무언가 그는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고 있는 듯 했다.

한참을 장력을 주고 받고 나서 취선걸왕은 손바닥이 뜨거워 참을 수가 없었고 싸우던 도중 뒷걸음 치더니 장원에 있는 연못에 뛰어들었다.

"치이익."

양 손바닥이 물에 닿아 열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으악.."

물에 닿으면서 열기는 빠져나갔지만 화상을 입은 손바닥이 쓰라린 고통에 그의 입에서 괴로운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룡사 주지 천룡검왕이 나에게 뛰어들었다.

그가 쓰는 무공은 천룡검법이었는데, 최근에 싸웠던 사검주의 일월마검보다 더 빠르고 강력했다.

천룡사가 서장 제일문파로 이름을 떨치게 해 준 천룡검법이었으니 그걸 대성한 천룡검왕의 무공이 강력한 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와 싸우다보니 나도 모르게 사검주의 일월마검도 쓰고 있고 혈비의 사신기예 등 이것저것이 섞인 무공을 쓰니 천룡검왕도 당황하며 물러서며 말했다.

"검마의 무공도 그리고 혈비의 무공까지.. 설마 싸우면서 상대의 무공을 흡수한 것인가?"

"화경에 오르고 나니 그게 되더군요."

"설마.. 그럼 나의 무공도 가능하다는 건가?"

"보여드리지요."

다시 강력하게 서로의 검이 부딪쳤는데 그 초식은 천룡검법의 초식이었다.

"사실 난 처음에는 그대와 일대일로 싸워보고 싶었는데.. 방금 전까지 대결을 지켜보고 후회를 하고 있소."

"무슨 후회를 말하는 거죠?"

"처음부터 다섯명이 합공을 했어야 했는데.. 안일한 생각으로 조그만한 기회를 놓친 것 같아서 말이지."

"아직 승부가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그런 후회를 하십니까?"

"허허. 나도 나름 십대고수급에 든 자네. 이 정도에서도 판세를 읽지 못하면 그건 하수지."

"그럼 지금이라도 그만 두시겠습니까?"

나의 말에 다섯 사람 모두 서로의 눈치를 살피다가 천룡검왕이 내게 말했다.

"허허.. 그대의 말에 잠시나마 흔들렸던 내가 부끄럽소. 우리가 비록 그대에 비해 약하다는 걸 몸소 느꼈다지만 생사대적의 상대에게 목숨을 구걸할 만큼 우리가 비겁한 자들은 아니요."

나머지 네명의 뜻도 천룡검왕과 같은지 고개를 끄덕이며 의지를 다지는 듯 했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다섯명이 유기적으로 연합하여 공격이 들어왔다.

'확실히 의지가 달라지니 협공이 위협적이군. 하지만 부상자도 있어서 빈틈이 느껴진다. 처음부터 다섯명과 제대로 싸웠다면 나도 팔 하나쯤은 내 줄 각오로 싸워야 했을 거 같은데..'

하지만 이미 승기는 기울어져 있었기에 언제든 내가 마음먹고 끝내려면 끝을 볼 수 있었다.

'이들도 그걸 어느정도 알고 있는데도 죽자살자 공격하는 건 어느 이상의 경지를 경험한 무인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인가? 아니면 마지막 모습을 멋지게 싸우다 가고 싶은걸까?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겠구나.'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천룡검왕이 내게 말했다.

"우리의 마지막은 최고의 한 수로 보내주었으면 하네. 내 부탁을 들어 주겠는가?"

'그런 거였구나. 이들은 뼛속까지 무림인이구나. 적이지만 지금은 무림인 선배로 그들의 부탁을 들어줘야겠구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가장 익숙하며 수없이 반복했던 일초를 그들을 향해 내리쳤다.

나는 그 일초를 내 이름 따서 무영검법이라 불렀다.

그저 평범한 일초 같지만 내가 그동안 익혀온 모든 무공의 정수가 담겨 있어서 알면서도 막기 힘든 절대적 일검이었다.

천룡검왕과 네 사람은 무영검법의 일초에 담긴 위력을 느끼고 다섯명이서 힘을 모아 막아보려 했지만 그의 일초는 그들의 검을 가르고 그들의 가슴에 검상 자국을 남겼다.

"하하.. 우웩..이 검은..가히..천하제일검이다.."

사신회 회주 혈비는 그말을 남기고 그대로 쓰러졌고, 천룡검왕 또한 비슷한 말을 남겼다.

"내가 쫓던 궁극적인 검이 그 일초 담겨 있군. 고맙네..윽"

천룡검왕도 쓰러지고 나머지 세 사람도 나의 일검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생을 마감했다.

다섯명 초고수들을 검하고혼으로 만들고 둘러보니 아직 연화 소저와 영경이 채홍을 상대하고 있었다.

채홍의 온몸은 상처로 찢겨있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강렬했다.

그나마 영경은 적극적으로 싸우고 있었지만 연화 소저는 채홍이 온몸에 상처를 입은 뒤로는 간간히 영경을 도와줄 뿐 적극적으로 채홍을 공격하지는 않고 있었다.

'아무래도 연화 소저는 무공에 비해 실전 경험도 적고 살생도 거의 하지 않아서 다친 상대를 공격하는 게 마음 편하진 않겠지.'

하지만 영경도 마찬가지 마음인 듯 끝을 내지 못하고 위력적인 공격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영경아, 그만하고 물러서줘. 연화 소저도 그만 물러서세요. 어차피 채홍 교주와 악연은 저와 둘 사이에 있는거니 제가 마무리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나의 말에 영경과 연화 소저가 검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내가 자신의 앞에 서자 채홍이 입가의 흐르는 피를 닦으며 말했다.

"벌써 그들을 다 죽인 것인가? 놀랍군. 회주님이라도 과연 당신을 상대할 수 있을 지 모르겠구나. 이제 얼른 죽여라."

"우리의 악연은 여기서 끝겠습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죽기 전에 부탁 하나 하지. 최대한 몸이 상하지 않게 죽여줬으면 좋겠어. 마지막 모습이 추하지 않게.."

"들어드리지요."

그 말과 함께 영경에게 전음을 보냈다.

[연화 소저와 너는 굳이 이 모습을 안 봤으면 좋겠다.]

나의 말을 이해했는지 영경은 자신의 고개를 돌리며 연화 소저의 시선도 다른 곳을 향하게 만들었다.

나는 무영검법의 일초로 채홍의 심장을 찔렀다.

섬전처럼 빠르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워 채홍은 자신의 심장을 바라보고 나의 검이 자신의 가슴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 흐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고개를 숙여졌다.

나는 그들의 시체를 중앙에 모아다가 현무열화신공으로 불태워버리고 영경과 연화소저와 함께 빠져나갔다.

불길이 무위 장원으로 번지며 장원이 활활 타버렸다.

'거짓 정보를 준 상관 총관을 만나야겠군. 초아의 소식을 모른다고 한 것도 거짓일 수 있겠군. 초아를 보면 무슨 말을 해야할까?'

나의 표정을 살피던 연화 소저는 나의 생각을 눈치 챈 건지 내게 물었다.

"초아 생각을 하고 계시는군요?"

나는 화들짝 놀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니.. 어떻게? 독심술이라도 익히셨나요?"

"무영 대협은 초아를 떠올릴 때 짓는 표정이 있어서요. 지금 그녀에게 미안함과 여러감정이 함께 들죠?"

나는 연화 소저가 내 속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깜짝 놀라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전 초아에게 너무 큰 실수를 저질러서요. 연화 소저에게도 미안하고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네요."

"그 문제는 저와 초아 두 사람 모두가 관련이 있으니 혼자 고민해서 결정 내리지 말고 저와 상의 해서 결정 해야 해요."

나는 연화 소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하오문으로 가실 거죠? 초아의 행방도 찾아야하고 상관 총관이 왜 배신했는지도 알아야하니까..하지만 그가 그곳에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게 가장 시급한 일인 거 같네요. 없더라도 일단 가서 단서를 찾아봐야겠죠."

우리는 강서성을 떠나 광동성으로 이동하고 선녀유곽에 도착해서 상관 총관을 찾았다.

당연히 도망을 갔을 거라 생각했던 상관 총관이 선녀유곽 내실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외군요. 이미 도망갔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태연히 우리를 맞이 할 줄은 몰랐네요."

"그들이 무영 대협을 제거했다면 제가 떠날 이유가 없는 거고 설사 그들이 패해 대협이 날 찾아온다면 하오문 문파를 배신한 제가 숨어봐야 금세 잡힐 걸 아니까요."

"그걸 알면서도 왜 그런 짓을 한거요?"

나의 말에 상관 총관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대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우리 아가씨의 인생을 망칠 자라는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아가씨에게서 관심을 끊고 살아달라 부탁했는데 무영 대협은 여전히 아가씨 주위를 맴돌고 계시기에 그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내가 초아의 인생을 망칠 자라고요?"

"아가씨는 무영 대협이 가까이 있으면 환란에 휘말리게 될 것입니다."

'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나로 인해 초아의 인생이 자신이 원하던 방향과는 많이 틀어졌으니...그리고 나를 도우면 신무림회와 적이 되겠지..그래도 그녀가 너무 보고 싶구나.'

"이 일은 저 혼자서 벌인 일이고 하오문은 관련 없으니 나를 죽이시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 드리겠습니다. 초아 아가씨에게서 멀리 떨어져서 그 분을 다신 찾지 말아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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